광주에서 체육교사 퇴임 후 이웃에서 농사짓고 계신 이우 아재가 문중행사에 같이 가자고 여러번 제안하셨는데 참여치 못했다. 동강동문회 신현식 사무국장이 전남동부 총무라며 같이 가자 하는데 그도 못했다. 집에서 느리작거리다가 벌교교육장에서 혼자 있다는 바보에게 가 함께 장어탕 점심을 먹는다. 어느 동네의 어르신들이 또 비슷한 나이의 모임인지 단체 손님이 차 있고, 장날이라 온 손님은 자리가 없다고 돌아가게 한다. 보슬비가 내리는 속에 분청박물관에 주차하는데 옆 트럭에서 날 대부라 부르는 신명환 선배가 내린다. 도덕에서 농사 짓는다며 거친 손을 내미신다. 인태 형님의 애길하며 같이 들어가니 등록부에서는 자료를 주지 않아 오기를 부려 차지한다. 50석이 안되는 좁은 공간에 많은 이들이 이미 앉아 있다. 벌교고를 퇴직하신 일식형님이 앉아 계시고 이우 아재도 보인다. 현식이도 반긴다. 그는 몇 분을 인사시키는데 나나 처음 뵌 분들이다. 신행호라는 회장도 인사하고 이름을 들은 바 많은 고흥타임즈 신금식 회장은 명함을 주신다. 어느 파냐고 묻는데 난 오헌공인지 백헌공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사는 동네를 묻고 아버지를 묻는데 난 대충 얼버무리며 자리에 앉는다. 도와 군의 지원이라 도지사 군수의 인사말도 책자에 있는데 군수를 대신 문화체육과장이 오늘 주인공의 후손인 시중공파 신진우 회장의 인사말만 한다. 다행이다. 비슷한 말을 여러명 하는 정치행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발표는 임명첩의 보이지 않은 글자와 전체 내용에 대해 말씀하시는 분, 좌수사 관첩과 임명첩의 글씨를 비교하는 학자 그리고 쉰 다음 제장명 교수의 수군 재건과정과 신군안 의병, 그리고 마지막에 목포대에 계신다는 젊은 여교수가 신장군의 족보와 가계에 대해 발표한다. 모두 들을 만하고 필체에서 연면성과 서사습관 등으로 이순신의 친필이라고 말하는 원광대 교수의 발표에 이 장군이 직접 쓰셨을까 의문을 갖는데 토론하신 안동교 선생이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세세히 지적하신다. 고흥신씨였던 신군안이 고령신씨 2차 족보발간 때 시중공파로 보첩된 사실은 발표자도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송시종 문화원장이 조금 긴 질문을 하면서 관향을 바꾼 사실을 묻자 발표자는 사례를 말하면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좌장 김희태 선생은 이순신 장군이 발급한 사실이 중요하다고 한다. 준비한 지역문화연구소 이수정 대표는 오늘이(음력이지만) 임명첩이 발급되니 날이라고 한다. 옆에 앉은 일식 형이 내일 남원에 가겠느냐고 하시는 데 난 연락하겟다고만 한다. 문중 사람들 나와 사진을 찍으라 하기에 마지못해 가에 선다. 신진우 회장에게 인사하며 수건을 받아 계단을 내려오는데 신금식 회장이 내 전화번호를 적는다. 신건호 군의원 등 회장단은 할 애기가 있다고 남기에 현식에게 손을 흔들고 나온다. 말을 걸어오는 점암의 감우 아재를 우산씌워 차에 모셔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