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에 시작된 신산회가 오늘로써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10주년의 기 쁨을 함께 만 끽하기 위하여 50명의 회원이 모여서 부안군 위도로 향하였다
위도는 주민 1500여명이 살고 있는 제법 큰 섬으로, 격포에서 배를 타고 5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섬이다
위도는 크나큰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첫번째 아픔은 1993년 발생한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로 292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은 위도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 유치 문제로 주민간의 갈등이 심화됐던 사건이다.
우리들은 아직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이 남아있는 위도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주님의 자비를 간구하였다.
10주년 가념 산행기 발간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산행기를 엮은 책자를 발간하였다
여러 사람들의 도움에 힘입어 60부를 발간하여 현재와 과거의 회원들에게 분배하였다
10여년 전의 젊고 예쁜 얼굴들을 다시 보면서 지난 세월을 아쉬워하였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여섯 분의 신부님께 책자를 우편으로 보내드렸더니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오셨다
야호! 출발이다
6월 11일, 격포에서 위도를 향해 출발하는 9시10분발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전북 부안군에 속하는 위도는 격포항에서 서쪽으로 15km 떨어져 있는 제법 큰 섬이다.
출발하자마자 짖궂은 비가 흩날려서 저으기 불안하였지만 다행히도 금방 그쳐서 마음을 놓았다
파장금항 도착
격포를 출한한지 약 50여분 만에 위도의 관문인 파장금항에 도착하였다
홍길동전의 실제적 모델로 알려진 위도는 섬의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았다 해서 고슴도치 위(蝟)자를 쓰고 있다
위도의 관문 파장금은 고슴도치의 입에 해당한다.
위도 사람들은 풍요운 섬이었던 위도가 가난한 섬이 된 것은 파장금항 앞에 방파제를 막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재물이 들어오는 입을 막아버렸으니 돈이 안 들어온다는 것이다
파장금에 내리다
위도는 조기의 황금어장이었던 칠산 바다의 중심 섬이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봄철 조기 파시가 열리면 위도에는 수많은 배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루었고 돈벼락을 맞았다
파시가 서면 파장금 항에는 선구점, 이발소, 다방, 세탁소, 의상실, 식당, 술집 등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조기 파시 때는 수천 척의 어선들이 몰려들었고 술집 색시들만 400여 명이 넘은 적도 있었다.
파시가 사라지고 칠산 바다에 조기의 씨가 마르면서 파장금은 한적한 항구가 되어버렸다.
산행 들머리
파장금항의 끄트머리에 있는 산행 들머리를 찾아 산행을 시작하였다
파도가 거세 조업을 할 수 없는 날이면 파장금은 선원들로 떠들썩해지고 술집마다 돈이 돌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끔씩 들어오는 등산객들로 인하여 고즈녁한 항구의 적막이 깨지게 된다
편안한 등산로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걷는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편안하였다
하지만 아침에 내린 비와 후텁지근한 날씨로 인하여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려 여간 괴롭지 않았다
수줍은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반겨주는 노오한 원추리의 미소가 간간이 보여서 큰 위안이 되었다
파도가 쳐야 바닷물이 썩지 않는다
사람이 흘려보낸 오욕(五慾)을 씻어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세월, 제 가슴을 때렸으면
저렇게 퍼런 멍이 들었겠는가
자식이 어미 속을 썩이면
그 어미가 참고 흘리는 눈물처럼
바다도 얼마나 많은 세월, 눈물을 흘렸으면
소금빨이 서도록 짜다는 말인가.......................................................임영석의 詩 <바다> 부분
원추리와 남자
섬에서 보는 원추리는 육지의 그것보다 훨씬 선명하고 청초하였다
오늘 중간대장을 맡으신 황이택 토마스모어 형님의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없었다
특히 빨간색 스타킹이 노오란 원추리와 제대로 조화를 이루어서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파장봉(해발 162m)
산행을 시작한지 약 40여분 만에 파장봉에 도착하였다
남동쪽 해안은 거의 직선상으로 단조롭고, 북서쪽은 곳곳에 깊은 만과 길게 돌출된 갑이 이어져 있다.
1978년에 임시강사로 근무하던 식도가 손에 잡힐듯이 가까이 다가와 보였다
그때 밤마다 숙직실로 놀러왔던 10대 소녀들도 이젠 모두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식도라는 섬은 고슴도치 입인 파장금의 바로 앞에 있어서 고슴도치의 밥이다.
그래서 이름도 밥섬, 식도(食島)
시름교에 서다
여인네들이 고독한 섬 생활의 시름을 달래던 곳이라 하여 '시름'인가???
오르내림이 있는 곳에 이처럼 다리가 놓여져서 산행이 훨씬 수월하였다
시름교에 선 여섯 명의 남자 중에서도 빨간 스타킹을 신은 황이택 형님이 단연 돋보인다 ㅋㅋㅋ
능선을 이어가면서 바라보는 최고봉 망월봉은 낮은 해발인데도 불구하고 다소 위압적으로 느껴진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오세영의 詩 <바닷가에서> 부분
즐거운 점심식사
정상인 망월봉에 도착하여 정자와 나무 그늘에서 점식 식사를 하였다
땀을 흠뻑 흘린 뒤에 함께 모여서 먹는 점심밥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꿀맛이었다
황이택 토마스모어 형님이 건네주시는 불소주를 한 잔 마셨더니 온몸에 불같은 에너지가 솟구쳤다
식사 후엔 신산회의 전용 바리스타 아해가 내려주는 원두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쉬었다
망월봉 (해발 254.9m)
최고봉 망월봉은 망봉제월(望峯霽月)이라 하여, 이 산봉우리에서 떠오르는 보름달 모습을 위도8경의 하나로 꼽는다.
예전에 있던 조잡한 고슴도치 모형은 사라지고, 대신에 육각 정자가 근사하게 세워져 있었다
'망월봉'의 글씨가 선명한 우람한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산의 규모에 비해 너무 커보였다
정상은 전망을 가로막는 것들이 드물어 전후좌우로 펼쳐진 섬 경치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하산이다
망월봉에서 좌측 내림길은 서해훼리위령탑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우측이 시름교를 통해서 파장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우리는 망월봉에서 개들넘을 거쳐 도제봉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였다
위도에는 망월봉과 도제봉, 망금봉을 잇는 12km 길이의 등산로가 나있으며, 시간과 체력에 코스를 조절해 산행할 수 있다.
개들넘교를 넘다
진말고개에는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정자나무가 한 그루 있고. 도로를 가로질러 개들넘교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 지명은 개펄 너머에 있다고 해서 '개들넘'이란 이름 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위도면사무소로 하산하는 팀과 도제봉으로 가는 팀으로 나뉘어 움직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도제봉으로 가는 팀에 합류하였는데 기력이 쇠진되는 바람에 오래도록 후회하였다
리따가 쓰러지다
앞에서 힘들게 가던 리따 자매님이 다리를 잡고 쓰러지며 고통을 호소하였다
여러 명의 사내들이 달려들어 오래도록 마사지를 한 끝에 일어서서 다시 걸을 수 있었다
흉부외과 의사인 고영상씨가 다리를 짤라야 한다고 여러 번 말해서 한바탕 웃었다 ㅋㅋㅋ
내 고향
동구 밖
수백 살 나이에 지난 세월 움켜쥔 늙은 정자나무는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이다
고향 길에
어김없이 지나야 하는 그 곳은
돌담 길에 호박 엮이듯
어릴 적 추억들도 걸려 있다
옹기종기 모여 동네의 쉼터로
부초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는 이야기
풍문으로 떠돌던 이끼 낀 세월의 얘기도 묻혀 있고
저마다 자신만의 사연으로 바라본다.................................................염병기의 詩 <정자나무를 품다>부분
위도버스를 타다
지친 몸으로 위도 고슴도치해수욕장에 도착하여 잠시 쉬다가 버스 경적 소리에 놀라 일어섰다
문화관광해설사 역할까지 하는 백은기 기사님이 운전하는 위도 순환버스였다(인터넷에서 유명 인사임)
위도인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잔뜩 실린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하고 넉살이 좋았다
하도 더워서 누군가가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소리치니 기사님 왈,
"이 차가 아 흔아홉 살이요.
에어컨을 이빠이 틀어도 이렇게 젤젤거리요
다음 달에 새차가 나옹게 그때 다시 오시오. 잉~"
파장금항으로 돌아오다
파장금항에서 버스에서 내린 다음 위도순환버스를 탈 그룹과 타지 않을 구룹으로 나누었다
22명이 순환버스를 타고 위도 관광에 나서고 나머지는 그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노닥거렸다
여객선은 하루에 한번 다니고, 전기도 자정까지만 들어오던 시절에 근무하던 위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에로비디오를 찍다
우리가 탈 배를 기다리는 동안 방파제 끝에 있는 등대까지 산책하였다
빨간 등대와 푸른 물결, 하얀색의 여객선이 어우러져서 에로틱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고영상 감독이 연출하고 결혼 30주년을 맞이한 최석영 요한 부부가 주인공이 되어 에로 비다오를 한 편 찍었다 ㅋㅋㅋ
파장금에서 오후 5시 10분에 출항하는 막배를 타고 다시 격포로 돌아왔다
격포에서 1km가량 떨어져 있는 종암마을의 모정에서 반지락미역국과 홍어회, 생김치로 10살 생일잔치를 즐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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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을 다녀와서
<섬>창립 10주년의 기쁨으로 위도의 상처를 어루만지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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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44
16.06.12 13:5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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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언제 읽어도 감칠맛 나는 산행기 입니다.
10주년 생일잔치 치르느라 회장님
정말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 특히 그 사진첩 제작도 힘든 과정인데
자금 조달까지 맡으셔서 정말 정말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10주년 산행 사진첩이 나오기까지 고생하신 회장님 감사드리고, 둘러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모두들 수고하셨고, 건강이 받쳐주는날까지 행복하고 즐거운 산행 함께 만들어갑시다~~~^^
더위도 식혀주는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10년도 뒤돌아 보니 짧네요 ㅎ
기념책 출판부터.. 작전지휘한 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덥긴 했지만 나름 즐거웠습니다.
특히나.. 홍어무침. 김치 바지락 미역국은 더위를 씻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수고하신 모든분들 감사드립니다.
손 놓고 있다가.. 케익사는 것도 잊어버린 우를 범했네요~~ㅎㅎ
이제 서서히 총무 각시도 내 놓을때가 되었나봐요~~
또 한 번 위도의 감흥에 젖게 하는 산행기 즐감했습니다.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우정과 생생함이 묻어 납니다.
회장님!!! 하나하나 찾아서 편집하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그 노고의 덕분에 많은 회원들이 10년을 되짚어 보면서 그 때의 젊음에 다시 한 번 빠져보는.....
행복감...... 감사합니다.
정말 10년의세월에 감사합니다 그동안 무탈하게 여기까지 함께 할수있었던건 주님의은총과 회원님들의 사랑이 아닐까싶네요
더욱 배려하고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