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친구
권 향숙
만남의 광장 안이 시끌벅적하다.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간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반가워하며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초등학교 동창생인 고향 친구들을 대구 팔공산에서 만나는 날이다. 한해에 한번 씩 만나지만 몇 해 만에 만나는 듯이 반가웠다. 대기 중인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하는 차안에서는 나이가 들면 양기가 입으로 오른다는 말과 같이 재미있는 이야기가 쉴 사이 없이 오가고 있었다. 우리는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를 몸소 느끼며 식당으로 향했다.
고향친구가 직접 만들어온 쑥떡이며 싱싱한 회 소라 등은 우리들에게 만찬회장이 부럽지 않게 해주었다.
철썩이며 밀려오는 바닷물에 씻긴 반짝이는 형형색색의 앙증맞은 소라 껍데기와 조가비를 하얀 고무신에 담아 안고 모래투성이가 된 발을 풀 섶에 비비며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노을을 등 뒤로 하고 둑을 달린다. 한 집 두 집 전기불이 켜지고 마을 어귀 가로등 밑에 서성거리는 어머님의 걱정 어린 모습이 보인다. 끌어안고 온 고무신을 내려놓자 조가비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쏟아진 조가비 보다 먼저 어머님의 표정을 살핀다. 어머님은 조가비를 주워 손바닥에 담으시며 왜 이렇게 늦었냐고 하시며 걱정했던 야단은 치지 않고. 오히려 웃으시며 반겨주신다.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어머님의 앞치마에 눈물을 닦으며 안겼다.
작은 소라 껍데기와 조가비들은 정성어린 어머님의 손에 의해 깨끗하게 소독이 되어 반질반질 빛을 더했다. 나는 어머님의 옆에서 하나씩 바늘에 꿰어져 목걸이가 되어가는 조개들을 하나씩 주워 어머님이 꿰기 쉽게 주어주다 잠이 들었다. 어제 일을 까마득히 잊은 채 꿈속을 헤매 이다 깬 아침 내 머리맡에는 예쁜 조개 목걸이와 팔지가 나를 반긴다.
향수에 빠져 있던 나는 희끗희끗 머리에 서리가 내린 친구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친구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그려본다. 골프사업가로 서울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범 밭 두 친구는 말이 없어 사업가가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 친구였다. 반장은 공부벌레답게 시청 공무원이 되었다. 부 반장이었던 친구 또한 천재에 가까웠다. 개구쟁이 긴 했지만 악대부에서 악기란 악기는 다 다루는 재주꾼이었다. 공부는 언제 하는가 싶었지만 항상 전교 일 이등을 다투었다.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우며 아래윗집에서 살았던 단짝친구 그녀는 신학대학을 나와 전도사가 되었다. 유치원을 두 개나 운영하는 친구 대학원을 졸업하고 강단에서 강의를 하며 봉사로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교수 등 다수의 친구들이 성공한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듯 했다.
일박이일로 만나던 모임이 이번엔 무박으로 만나니 하루해는 그리 길지 않았다. 멀리 가야하는 친구들을 배려해서 산에서 내려와 역 가까운 노래방으로 향했다. 분위기 메이커인 친구의 ‘여행을 떠나요’ 노래는 흥을 돋우기에 좋은 노래였다. 우리들은 신나는 노래와 춤으로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한 시간 가량 재미있게 놀았다. 다음해는 고향 울진에서 만남 을 갖기로 하고 친구들을 배웅하고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오지않은 친구들은 내년 고향에서는 만날수 있겠지.....
가장 좋은 친구는 오래된 친구라고 했다. 멀리 남편의 직장을 따라 직업전선을 따라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리운 건 어린 시절에 함께 뛰어 놀던 친구들이다.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좋다는 옛 속담과 같이 나 역시 고향을 떠나 온지 사십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신토불이 고향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며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