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봉 金一鳳(1890 ~ 1933)】 "친일파 숙청 일제 기관 파괴 _폭탄을 깨물고 자폭·순국
평남 덕천군(德川郡) 풍덕면(豊德面) 율곡리(栗谷里) 출신이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189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5월경 오태국(吳泰國)은 백인회(白仁會)의 소개로 평남 순천(順川)의 김재진(金載珍)을 만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였다. 그후 오태국은 김재진으로부터 『독립신문』 2장과 경고문·군자금 영수증 등을 가지고 돌아와 주변에 대한독립단 가입을 권유하였다. 이에 김병국(金炳國)·차영필(車永弼)·윤명섭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주로 평남 덕천과 영변 등지에서 단원 모집과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1921년 4월 17일 단원 김병국의 집에서 유영규(劉泳奎)를 만나 단원 모두 대한독립자유회(大韓獨立自由會)에 가입하였다. 대한독립자유회는 1920년 8월경 유영규가 박경천의 집에서 북간도 군비단원 김기영(金基永)의 권유를 받고 평남 영변을 중심으로 조직한 비밀결사이다. 대한독립자유회는 덕천과 영변을 중심으로 회원을 확보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4월 24일 오태규 등과 함께 국내에 잠적함으로써 영변경찰서 경찰의 기습을 피할 수 있었으나, 유영규가 간도로 넘어가면서 조직이 일시 와해되었다.
1921년 7월 유영규가 광복단(光復團) 경무과장 김문선(金文善)과 함께 다시 국내로 돌아오자 함께 단원을 규합하여 조직을 재정비하고 활동을 재개하였다. 당시 조직 구성은 총무 유영규, 부총무 김재진, 경무과장 오태국, 모집부장 김병국이었고, 김문선·양봉엽·강찬성·차영필·이정진·강찬성·김종화·임영죽·윤명섭·황영화·이용순과 함께 활동하였다. 그 해 7월 23일 덕천군 시천교 지부장 박병양을 비롯하여 지역 부호들에게 회원 가입과 군자금 출자를 요구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8월 30일 회원 김종화의 밀고로 영변경찰서의 습격을 받아 유영규·김문선·오태국 등 10명의 단원이 체포되었다. 이때 차영필·최흥룡 등과 체포를 피한 탓에 군자금 모집 활동을 지속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평남 영원경찰서에 발각되어 1923년 12월 중순경 체포되었다.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에서 5개월간 조사를 받고 1924년 5월 22일 첫 공판을 받았다. 공판과정에서 신대한자유회(新大韓自由會)(대한독립자유회) 회원으로 1921년 4월 8일부터 평안 지역을 중심으로 16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여 간도 독립단본부로 보냈음을 당당하게 밝혔으며, 검사국의 고문 사실을 폭로하기도 하였다. 공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농사와 도로 포장 일을 하던 중 1933년 1월초 군자금 모금과 독립군 모집을 위해 국내에 잠입해있던 조선혁명군 소속의 변낙규(邊洛奎)를 만나 다시 독립운동을 개시하였다. 1월 18일 영변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서 변낙규, 조카 장인준(張仁俊), 유영규 등과 함께 무명의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장인준은 북간도 룽징(龍井)에서 대성중학교에 다녔던 인물로 그의 초청으로 영변 용연동의 개량서당 선생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 비밀결사에서 책임자를 맡아 총사령 변낙규, 동지규합 책임자 유영규, 모험대원 및 회계 책임자는 장인준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월 22일 군자금 마련을 위해 장인준·박봉수(朴鳳洙)와 더불어 영변군 자작리 잡화상점의 상습도박장을 습격하고자 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였다. 2월 4일 김준필(金俊弼)과 함께 덕천군의 부호 왕택준의 집을 찾아가 현금 150원을 모금하였다. 2월 7일 영변군 읍내 장에서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이 10원짜리 새 지폐로 물건을 사갔다는 정보를 접수한 덕천경찰서 경관대가 장인준이 근무하는 개량서당을 습격하여 그와 장인준을 체포하였다. 곧이어 유영규·김준필·유운규도 체포되었고, 변낙규·박봉수는 4월 12일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직접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이너마이트 4본 반, 공업용뇌관 7개, 흑색도화선 6척과 변낙규에게 건네받은 탄환 29정 중 28정, 브라우닝식 권총 1정, 10원 권 지폐 4매를 마천령 바위굴에 숨겨두고 있었다. 2월 중순, 경관대가 서당을 추가 수색하던 중 폭약물 6개가 누더기에 싸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용도를 추궁당하자 폭탄을 깨물고 자폭·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