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국민가수를 보고
텔레비전과는 담을 쌓고 살다가 우연히 본 미스터트롯을 보고 그들의 흥과 노래에 빠져서 목요일 시간대가 되면 나도 모르게 TV를 켜고 잠을 잊은 그대가 된 지 오래다.
미스터트롯에 빠져 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까지 열심히 보다 보니 누군가의 팬이 되었고 그가 부르는 노래에 빠져 매우 행복한 느낌을 받다가 미스트롯 경연이 한창일 때는 별로 감동이 없어 멈추기로 했다.
미스트롯에 감동하지 못한 이유는 여성들의 눈물 때문에 안 그래도 여성 호르몬이 과다하게 생성되어가는 시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까 두려워서 내려 두었다가 새로운 포맷 즉 트로트가 아닌 다른 장르를 모두 합하여 경연한다기에 관심을 가지고 쭉 보고 있다.
물론 경연은 남과 여, 아이와 어른 차별 없이 참여하여 나름의 흥과 끼를 발산하고 평가받으면 사실 별일 아닐 수도 있는데 인간의 잔인함이 엿보이는 순간들이 포착되어 과연 어린아이를 어른들 틈에 끼워 넣은 것이 현명한 짓일까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
미스터트롯 때도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참여했고 또 다른 미스트롯에도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참여하였지만 결국은 중간에 탈락하고 1:1 매치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면 사실 큰 불편함은 느낄 수 없는데 그들의 재능이 특출하여 모든 경쟁을 통과하면 지명하여 대결하는 코너에 이르고 지명당한 자나 지명한 자의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존재한다.
지나간 프로그램에 관한 얘기는 접어두고 내일은 국민가수에서 김유하와 이 솔로몬이 라이벌전 즉 1:1 데스매치를 하는 것을 보면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굉장히 불편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모두가 편안했는데 나만 불편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일곱 살짜리 어린애는 라이벌전이 뭔지도 모르고 참가자 중에 가장 좋아하는 솔로몬 삼촌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가.
그저 좋아하는 삼촌이기에 같이 해보고 싶은데 그것을 라이벌전이라는 이름 속에서 행해야 한다는 것을 어린아이가 알 수 있게 설명하고 선택함이 당연한 일임에도 방송인들은 그들이 얻고자 하는 만족을 위해 달콤한 꼼수를 부렸다는데 불쾌함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진짜 삼촌과 조카처럼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고받으며 잘도 만들어 낸 무대는 가슴이 뜨겁고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알고 있는 어른과 모르는 철부지 아이의 심정은 과연 방송 종사자들이 헤아리고 있었는지는 의문이 든다는 얘기다.
두 사람이 가진 음역대가 맞지 않아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아이의 눈높이에서 다가가고 남과 똑같은 무대를 꾸며야 하는 어른의 처지에서 보면 정말로 환장할 노릇임은 틀림이 없다.
대화가 가능한 성인이라면 자신의 주장을 하겠지만 어른이라는 나이와 경륜의 차이 때문에 경쟁이라고는 해도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없는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늪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하는 느낌이다.
경쟁이 끝나고 모든 것은 어른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지만 밀려오는 허전함과 자괴감에 남이 없는 곳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참 잔인한 것이 방송 종사자라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기까지 하다.
역도 소년이라고 표현되는 이병찬이라는 친구가 있다.
처음부터 봤기 때문에 몇십 킬로의 역도 무게보다 훨씬 가벼운 마이크를 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순수한 모습에 모두는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방송에서 의도적으로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들이 많다는 것을 나만 느끼는 느낌인지 궁금해진다.
특히 심사위원이라고 하는 분들이 하는 반응을 굳이 방송에 소음처럼 넣어 방송을 꼭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경연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실력인데 뭔가 띄어주기 위한 반응처럼 들릴 수 있는 불필요한 얘기를 함께 송출하는 의도가 불순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병찬이라는 하는 청년의 순수함과 맑은 미소에 빠져 응원하고 있는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지만 심사위원이라고 하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것이 아니라 냉정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방송으로 흘러나올 만큼 큰소리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다른 심사위원에게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심사위원의 마음을 편집하면서 글자로 표현하여 삽입해 보낸다면 그것은 별문제가 없겠지만 큰소리로 우려하고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불필요한 얘기를 가감 없이 내보는 방송 종사자도 심사위원도 정말 문제가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경연프로그램을 보면서 무한 감동하고 우리나라에 이토록 풍부한 성량과 감정을 가진 노래 잘하는 인재들이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너무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누가 일등을 하던 그것은 상관이 없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듣는 사람이 받는 위로도 존재하고 느낌은 다들 다르게 들리는 것이 음악이니까 굳이 누가 최고라고 하는 표현은 한낱 수식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저렇게도 잘할까?
이것이 내가 가지는 경연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이다.
경연에서 경쟁하고 있음에도 상대에게 용기를 주는 표현과 등을 두드리는 격려가 존재하기에 더욱 멋있어 보이는 것은 틀림이 없다.
우린 어차피 한 무대에 서야 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라는 느낌이 존재해 보기 좋은 것이고 우린 그런 모습 때문에 열광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스타일은 있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 기계로 찍어낸 것이 아니듯이 다르고 또 사람마다 취향 또한 다르므로 요즘은 사람을 표현할 때 잘생겼다는 주관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개성 있다는 표현을 하는 이유가 바로 다름에 대한 인정하는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도 각기 다르다.
저음 중음 고음이 존재하듯이 다양한 색감을 가진 낙엽처럼 다양한 느낌이 가미되어 있는 음색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그 수많은 음색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음색을 가진 경연자에 눈길을 주지 않을까 한다.
물론 나도 내가 주목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
단지 그 사람이 경연에 참여하였으니까 일 등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 설령 실패한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불편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렇게 생기고 저런 목소리를 가졌기에 내 마음이 끌렸듯이 다른 사람 또한 나름의 느낌으로 또 다른 사람을 응원하고 좋아하게 될 테니까.
음악 경연프로그램이 사실 너무 난무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직업인들이 행할 수 있는 행동의 제약 때문에 힘들어 할 텐데 우린 그래도 좋은 목소리를 발견하고 행복해할 수 있다는 사실만 따진다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너무 어린아이의 천재성을 발견했다고 유난을 떨 것이 아니라 아이와 어른의 경연은 엄연히 구별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있다.
서로가 불편한 설정을 해서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드는 것이 방송이 해야 할 일도 아니고 수억을 건 경연장에 돈이 뭔지도 몰라도 상관없는 어른, 아이를 한 무대에 올리는 것도 멋있어 보이지는 않더라는 얘기다.
세상의 삶의 방식마저 바꿔버린 코로나로 힘든 모두에게 노래는 위안과 위로를 주는 좋은 명약임은 틀림이 없다.
재능이 많은 청년을 보유한 우리나라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