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 2023년 9월 16일(토) 14:00-17:00
곳 :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4층) 소망실
강연회는 반영운 선생의 사회로 정시에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노 선생님의 제자이신 박 완 선생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1. 첫 번째 강연은 장문강 선생의 '바울, 루터, 노평구와 하나님 앞(Coram Deo)'
(하나님 앞의 노평구의 말씀 중 노 선생님의 '평생의 성서 공부 회고와 당부'입니다.)
"여기서 외람된 소리 같지만, 나는 시계 바늘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결혼도 않고 철저히 생애를 철학에만 바쳤던 칸트와, 여행 한 번 않고 공생애를 오로지 신약, 그것도 예수전 연구와 번역에만 전력하셨던, 나의 은사 되시는 쓰카모토 선생을 생각하고 부끄러움을, 통한을 금할 수 없다.
이리하여 나는 사실 금전이나 물질 아닌 고귀한, 아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인 나의 인생을 훔친 강도가 된 것이다. 아무리 신앙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인생의 황혼에 두려움을 금할 수 없는 바이다.
나는 해방 후 본지(성서연구)의 출간과 더불어 곧 나 자신의 성서 공부 집회를 시작했던 것이다. 몇 사람의 가정 집회로 시작햇으나 곧 이를 공개 집회로 돌려 서울 시내 여러 장소를 전전하며 해오다가, 후일 종로 YMCA에 대체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주일마다 밖에 광고까지 내면서 나로서는 꽤 열심히 하느라고 했으나, 결국 상갓집 개 모양 사람만 들락거리고 고정된 성서집회로서 정착은 잘 안 되었다."
이 말씀에 오늘의 무교회집회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인원수에 연연하지 않고, 진리중심으로 나갔던 노 선생님의 신앙인생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오늘의 강연 '하나님 앞의 바울' 부분 중, 침묵 10년의 바울에 대한 말씀도 있었습니다. '바울 평전'(톰 라이트 저, 박규태 역)을 인용하셨는데, '대략 36년부터 46년까지 10년 남짓 침묵이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다메섹 회심을 겪고 잠시 복음을 전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지낸 기간이 아닐까 합니다. 이 10년 후, 바나바가 안디옥교회로 그를 불러냈고, 예루살렘 회의에도 가고, 세 번의 전도여행을 합니다. 이 침묵의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써 단단하게 키우셨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2. 두 번째 강연은 한병덕 선생, '노평구 선생의 민족 이상에 관하여'
노 선생님이 월남 파병을 비판했던 글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전쟁터로 젊은이들을 내보내 그들의 생명을 돈과 바꾸려는 처참한 생각을 한 정치인, 대통령, 국가를 통렬히 나무라는 소리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싸움에 참가하다니! 이는 역사에 모욕이 될 뿐으로, 이번 월남 파병이 국회를 통한 자발적인 전쟁 참가가 될 때, 이는 민족의 이상에 큰 상처가 되는 것으로, 나는 차마 이를 바로 볼 수가 없는 바이다. (중략) 자유와 민주의 나라 미국에 대해 정의와 진리의 확신을 말 할 수 있는 정치가가 우리에게는 그래, 한 사람도 없단 말이야? 그렇다. 우리란 영원히 남의 눈치나 쳐다보고 사대적인 노예로 살아야 할 병신일 뿐인가. 아!"
이에 덧붙여, 한병덕 쌤 역시 자신의 비전(非戰)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의 핵 위협을 두려워하여 근래 서울시장, 대구시장, 북한에서 귀순한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북핵을 억제하는 최선의 길은 우리도 핵폭탄을 갖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핵을 가질 수도 없거니와 갖는다 해도 그것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철부지 아니면 지지자들 인기용 발언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중략) 북한의 남한에 대한 핵 위협을 제거하는 방법, 나아가 그것을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드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는 북한이 핵을 쏜다고 해도 맞고 보복하지 않겠다고 지도자가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어 전세계를 향해서 엄숙하게 선언하는 길이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게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취해야 할 바른 태도입니다. 작년 일본전국집회에서 미토 키요시(水戶 潔)라는 분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해, "지금이라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푸틴에게, 우리는 전쟁을 포기한다고 선언해야 한다." 말했을 때, 저도 그렇고 다른 분들도 백일몽이 아닌가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는 길, 평화를 사랑하는 크리스천의 양심이라고 이 강연을 들으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참 좋은 말씀을 들려주신 한 쌤께 감사드립니다.
#3. 세 번째 강연은 박상익 선생이었습니다. 제목은 '노평구 선생과 나'
"대학시절 인생의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종로서적에서 우치무라 간조를 만났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했다. 긴 터널 끝에 빛이 보였다. 문득 연전에 선배의 하숙집에서 본 무교회 잡지 '성서연구'가 떠올랐다. 잡지를 서점에서 찾았지만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국회도서관에 갔다. 검정 옻칠한 계단 난간을 짚고 오르던 촉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성서연구를 찾는다고 경비원에게 말했더니 여기는 외부 대출 불가란다. 대출이 안 되면 표지라도 보여달라고 사정했다. 젊은 애가 딱해 보였던지 기다리라 하고 책을 찾으러 서고에 갔다. 그때 거절당했으면 노 선생과의 만남이 어긋날 수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책과 도서관은 내 인생의 핵심 요인이다.
성서연구 뒤표지에 적힌 '서울시 서대문구 불광동 353-34'로 구독료와 구독신청서를 봉투에 넣어 부쳤다. 2월말이었다. 몇일 후 잡지가 배송되었다. 잡지 뒷면의 집회 광고를 보고 3월 9일 일요일 오후 2시 YMCA 2층 성서집회에 처음 참석했다. 노 선생님을 처음 뵌 날이다. 그날은 마침 22살 생일날이었다."
이후 노 선생님이 자신을 어떻게 가르쳐주셨는지, 어떻게 길을 인도해주셨는지 말씀하였습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잡지 '성서연구'로 인해 인생의 진로가 바뀌었다는 그 인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자이신 반영운 선생도 역시 똑같이 책을 통해 노평구 선생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시는 방법은 참으로 묘하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이어 가족을 대표하여 참석하신 노 선생님의 둘째 아드님이신 노 영 선생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노평구 선생의 둘째 아드님이신 노 영 선생
| 안내말씀 하시는 임세영 선생 |
훤칠한 모습의 노 영 선생은 아버지를 닮으신 듯했습니다. 2남1녀 중 혼자 남았노라며 가정사를 모두 맡아하던 형의 갑작스런 죽음에 이어, 평생 아팠던 여동생마저 보내야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은 아버지의 진면목을 몰랐었다. 그런데 책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서 인생의 해답을 찾아가는 것만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 자랄 때 부모님은 단칸방 두 개를 얻어 따로 사셨는데, 방 두 개짜리보다 단칸방 두 개가 더 저렴해서 그랬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아버지의 공부방은 책으로 가득했는데, 책꽂이 제작을 위해 나무를 사다 말리고, 제도를 하여 목공소에 갖다주면서 그대로 조립해달라고 의뢰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책을 아꼈다고 생각한다.
또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에 아버지 학력란도 그렇고, 직업을 적을 때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무직'이라 적기도 민망하여 아버지께 여쭈었더니, 한참을 고민하신 끝에 '출판인'이라고 해라 하셨었다. 출판인이라니!
이렇게 제자분들이 아버지를 잊지 않고 추억해주셔서 감사하고, 와주신 분들께도 감사하다."
지금은 불광동과 답십리에 있는 노인병원 의사로 일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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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자이신 임세영 선생이 저녁식사회에 참석 하지 않는 분들 먼저 인사를 하게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떴습니다. 강연장과 붙어있는 연동교회 앞 효제금마루라는 식당에서 화기애애한 뒤풀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여유있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지하철 파업으로 도로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택시기사의 꼼수 운전 덕분에 부산행 예약시간에 간신히 댈 수 있어 그것도 감사했습니다.(^.^)
특히 작년에 죽을 고비를 넘기셨던 최명자 님도 만나고, 아파트 노인회 회장님이 되셨다는 인천의 김영희 님의 건강한 모습 뵈니 정말 좋았습니다. 또 오랜만에 송희영 쌤을 따라 나오신 이복례 님의 건강하고 쾌활한 모습에 안심하였습니다. 강연회에 가니 보고싶었던 분들을 만나뵐 수 있었답니다. 홍성에서는 박 완 선생이 풀무 3학년 남학생을 데리고 오셨더군요. 씩씩하신 이재자 님과 이은겸 님 등 홍성분들은 기차시간이 남아 한병덕, 김명자 쌤과 더불어 차담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강연회를 열어주신 노평구 선생의 제자분들, 안내를 잘 해주신 김명자 쌤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당신의 백성은 어디에 있던지 부르셔서 참 복음의 길로 인도하심을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성서를 뒷전으로 하고 이상한 종교로 변해 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이 땅에 귀한 종들을 보내셔서 소수로 하여금 참 복음을 지키고 따르게 하심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하나님 감사가 저절로 나오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