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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국사 도선의 탄생과 관련된 국사암...바위 구멍은 염원을 담은 기자신앙 행위일까 아니면...
국사암의 구멍은 성혈(性穴)
아이 낳기를 바라는 종교적, 주술적 행위
기자의례 의식이 있었던 국사암
영험한 국사암, 신성시하며 치성 드려
穴. 전갈자리 성혈(星穴)로 판단되기도
신라 말에 활동을 했던 선각국사 도선(道詵. 827~898), 그는 전남 영암 구림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는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그 뒤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846년(문성왕 8) 곡성 동리산의 혜철을 찾아가 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요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 천도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운봉산에서 굴을 파고 수도하기도 하였으며, 태백산에 움막을 치고 여름 한철을 보내기도 하였다. 도선은 전라남도 광양 백계산 옥룡사에 자리를 잡고 후학들을 지도하였는데, 언제나 수백 명의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도선은 당나라로 유학가서 밀교승려 일행으로부터 풍수학(風水學)을 배웠다. 그는 승려가 되어 전국을 돌며 사찰을 세워 왕권강화(王權强化)와 국태민안(國泰民安)에 앞장선 인물로 알려졌다.
역사적 인물보다는 신화적 인물로 더 알려진 불교사상과 풍수사상에 조예가 깊을 정도로 선각자(先覺者)였던 도선, 남보다 앞서서 사물이나 세상일에 깨달음이 남달랐다. 그에 대한 전설이 얽혀져있는 바위가 있으니 바로 구림마을에 있는 ‘국사바위’ 이다. 도선과 관련된 '국사암(國師岩)' 은 작은 구멍(穴)들이 많이 있다. 구멍은 의도적으로 판 것으로, 구멍은 작은 종지 같은 원뿔 모양이다.
구멍은 ‘성혈(星穴), 성혈(姓穴)’ 과 관련된 것으로 풀고 있다. 별을 표시하는 구멍으로서의 하늘에 기원과 아들을 낳아달라는 여성의 성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본다. 또는 자연 철학에 심취한 도선이 ‘깨달음(샤먼)’ 이 있을 때마다 바위에 표시를 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이밖에도 ‘무사항해와 만선’ 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바위에 구멍을 새겼다. 또 하나의 연관성은 천문 점성술가 최지몽이다.
국사암이 있는 곳은 바다와 가깝다. 바위에 올라서면 바다는 물론 저 멀리 월출산이 보인다. 특히 봉우리 모양이 붓 끝처럼 뾰족하여 붙어진 ‘주지봉(朱芝峰)과 문필봉(文筆峰)’ 이 잘 보이며, 마을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월출산은 아름다움과 신령스러움을 말이나 글로써 다할 수 없다. 그뿐인가? 천황봉에서 사해를 눈에 두면 지리산 끝자락과 바다 건너 한라산이니 비로 재화의 위엄이다. 백두대간의 돛대인 지리산에서 광주 무등산과 순천의 조계산, 그리고 영암의 월출산을 이어보면 마치 다이아몬드 모양이다. 또 지리산이 머리이고, 무등산과 조계산이 두 젖무덤이다. 당연히 월출산은 두 젖이 키운 용이다. 이 용이 달을 여의주로 입에 물고 한반도 남.서해에서 대양을 향해 날아오른다. 더하여 월출산은 달을 낳는 산이고, 달이 오르는 산이다. 맑거나 운무가 흐르고 구름이 가려도, 비를 흩뿌리고 눈 날려도, 봄,여름.가을.겨울, 어느 때에도 달을 낳는다. 산과 들, 못과 강에 마음과 눈길이 닿으면 달이 오른다. 그렇게 누구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기기묘묘한 산자락에 사방백리가 툭 트인 들판 위에 얹어 놓았다.
이 산 남쪽 주지봉과 문필봉이 마치 뾰족한 붓을 세워놓은 듯 우아하고 품위 있게 붓을 세웠으니 바로 월출산 자락, 주지봉과 문필봉이다. 주지봉과 문필봉은 풍수에서는 화산(火山)인 침봉(針峰)을 학자와 연결하면 ‘붓(筆)’ 으로 보고, 무인으로 풀면 ‘칼(劍)’ 로 본다. 그래서 구림마을 함양박씨 종가택과 간죽정은 주지봉과 문필봉을 바라보이게 세워 문인인 박규정, 박상건 같은 인물을 배출했고, 서호 회소마을 김해김씨 사군파 종가택도 주지봉과 문필봉이 바라보이게 집이 들어서게 하며, 무인인 김완 장군 같은 인물을 배출했다. 또한 서호 엄길마을의 종가택도 수레정과 함께 주지봉과 문필봉을 바라보게 하며, 천안전씨 가문의 전승문이 뿌리를 내려 전광택, 전광정, 전영택, 전종행과 전몽성 같은 인물을 배출했다. 또한 군서 모정마을 쌍취정과 원풍정도 주지봉과 문필봉의 풍경을 바라보게 위치를 잡아, 나주 목사 임구령이 터를 닦아 광산김씨인 관찰사 김병교 같은 인물을 배출했다. 구림마을에 있는 회사정도 주지봉과 문필봉을 바라보고 있다.
집 툇마루에서 주지봉과 눈길이 닿으면 “아!” 소리에 숨이 잠시 머문다. 채우는 게 소소한 보람이면 비움은 장엄함이고, 승화되어 거룩함이다. 여기 텅 비어 넉넉함 들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생활이나 행동 따위의 올바른 방법이나 방향을 알려준 삶의 지침(指針)이다.
주지봉과 문필봉은 ‘인물배출의 명성, 권세양명의 출세, 발전융성의 성장, 여유 넉넉함의 풍요, 다산다복의 번창, 부귀영화의 행복, 자유평화의 평온, 건강평안의 무탈’ 등에 영험한 암봉으로 여기며 추앙했다. 실제 주지봉으로 인하여 수많은 훌륭한 인물과 자손이 번성했고 재산이 창성했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국사암에 올라서 월출산이 눈길과 마주치면 그저 신선놀음이다. 그래서 국사암에 새긴 구멍을 술잔으로 여기며 술 향기에 취해보기도 한다. 국사암은 신선이 놀던 '선유암(仙遊岩)' 이다.
국사암이 있는 주변으로 천과 바다가 있었다. 여기에 물은 흐르는 물이 다시 운무(雲霧)가 되는 마을이니 가히 신선이 인간과 함께하는 곳이다. 선계(仙界), 선인(仙人)의 선계로 드는 입구이자 신선이 세상으로 나오는 출구인 곳이 '구림(鳩林)' 이다.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지우며 발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묻지 않고 신선의 경지를 허락하는 마을이 바로 구림이다.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 봐도 구림마을에 대한 인간의 정서적 반응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구림마을을 돌아보면 ‘인간선경(人間仙境) 동화세계(童話世界) 구림마을’ , 구림마을이 신선이 사는 곳, 동화세계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조용한 평야 마을, 소슬한 소나무 아래의 마을 사람들/지혜의 물은 맑고도 용하지/3천 성인에게 예배하고 담담히 사귀니 삼요(三要)의 벗일세/내 여기와 뜨거운 번뇌 식히니/옥으로 만든 병에 담은 술을 대한 듯하네
인간선경, 동화세계인 구림마을 사람들은 ‘국사암’ 을 신성시했다. 평평한 지형에 큰 바위가 있어 이 바위를 영험하게 여겨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를 올렸다.
전설에 의하면 마을 아낙네들이 어느 날 물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오이가 물에 떠내려 와 한 처녀가 그 오이를 건져 먹었는데, 배가 불렀다고 한다. 어머니는 임신한 딸이 아이를 낳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딸이 난 이이를 그만 몰래 대나무 밭에 있던 바위에 아이를 버렸다고 한다. 버린 아이는 대나무밭에서 지낸 비둘기 떼가 그 아이를 에워 싸고 있었는데, 마을 처녀가 발견하고 키웠다고 한다.
이 아이가 바로 선각국사 ‘도선’ 이다.
도선은 선견지명이 있는 뛰어난 지식과 혜안이 있는 분이다. 세상을 꿰뚫어본 도선, 그는 전설적으로 태어난 것은 과학적으로는 맞지 않은 것이지만, 경주 박혁거세가, 김해 김수로왕이 미화시켜 그랬던 것처럼 분명 그는 그들처럼 신격화하며 구림마을에서 태어난 것은 분명하다. 탄생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그는 구림의 집안에서 태어나 인물이 특출했다. 영리함, 영특함, 총명함, 독특함, 특출함 등이 있는 일반사람과는 좀 다른 성향을 띠었다.
그는 당나라에서 풍수사상을 배워 신라 말의 승려로서 전국을 돌며 제자들을 양성하거나 사찰을 세웠다. 사찰은 음양지리설(陰陽地理說)과 풍수상지법(風水相地法)에 관련된 것들이다. 월출산 도갑사를 세운 도선, 그는 그가 태어난 마을 앞 천을 따라가면 월출산 계곡이 나오는데, 이 골짜기를 에워싼 능선의 기운이 너무 센 걸로 보고 이곳에 사찰을 세웠다. 도선은 도갑사 위쪽의 산맥이 마치 호랑이가 앞발을 세우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형국으로 봤다. 놀란 도선은 이 호랑이가 마을 사람들을 헤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아 호랑이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마을의 평온을 위해 산맥 앞에다 절을 세웠다.
한국풍수 원조격인 도선국사가 주장한 '비보설(裨輔說)' 의 영향을 받은 도갑사이다.
도선국사는 "사람이 만약 병이 들면 곧 혈맥을 찾아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병이 낫는다. 신선의 병도 그러하여 흠이 있는 땅을 보살피고 보완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그 흠결이 있는 곳에 사찰을 세워 비보(裨輔)하는 방법이다" 라고 설파했다.
도선과 연관성이 있는 바위, 국사암은 수십 개의 구멍이 뚫어져있다. 기계에 의해 판 것처럼 된 구멍들이다. 정교함이 있는 구멍은 일정하게 나열되지가 않다. 어느 쪽에는 한 개만이 있고, 어느 부위에는 연결성을 하며 뚫어져있다. 바위에 혈(穴)이 곰보같이 산재하다.
가을 어느 날 구림마을을 찾아 마을에 있는 팬션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국사암을 찾아 그 바위에 올라 구멍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왜 바위에 구멍들이 생겼을까? 왜 구멍을 팠을까하는 의문을 제시하며 궁금 점을 풀어보려고 골똘했다. 바위에서 바라보이는 마을과 월출산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쉽게 나오질 않았다. 별을 표시한 건가. 아니면 듣던 대로 아들을 낳아달라고 했던 건가. 아니면 고기를 잡으러 간 것에 대한 무사고와 만선을 빌었던 건가? 이런저런 생각에 한참동안 바위에 새긴 구멍을 뚫어지라고 쳐다봤다.
바위가 무슨 형체를 한 것인가 싶어 이리저리 보기도하고 국사암에 대한 얽힌 것들을 풀어보려고 했다.
바위에 뚫린 구멍들은 대체적으로 ‘기자산앙(祈子信仰)’ 과 관련이 되어있다. 국사암도 ‘기자(祈子)’ 와 관련 된 것으로 추축이 됨이다. 또한 도선이 깨달음을 할 때마다 그 바위에 표시를 한 ‘각지(覺知)’ 로도 판단된다. 기자신앙으로 본 것은 선각자로 알려진 도선이 이 바위와 관련됐기 때문이다. 도선 같은 아들을 낳아달라고 이 바위에 구멍을 뚫었다는 구전으로 마을사람들은 말한다. 구멍은 여성의 성기로, 구멍을 뚫은 도구는 남성의 성기로 본 것이다. ‘다산(多産)’ 을 의미한 구멍이다.
바위 구멍은 표현 그대로 바위에 새긴 구멍을 의미하며 알구멍, 알터, 성혈(性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바위를 갈아 구멍을 만드는 행위는 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이어져왔다. 그 목적은 다산과 풍요, 건강, 출세 등 삶의 행복을 염원하기 위함이다. 바위 구멍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하늘과 신에 맡김으로써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가 바라는 바를 이루고자하는 간절한 소망의 표식이자 염원의 산물인 것이다.
성혈(性穴)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목한 구멍은 여성의 성기로 여기며, 이것을 여성의 생산성에 비유한 의례 행위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즉 오목한 구멍을 만들고 다른 도구로 구멍 속을 비비면서 마찰하는 남녀의 성적 교합과 비슷한 행위를 통해 ‘생산과 풍요’ 를 기원하는 ‘모방주술(模倣呪術)’ 의 일종이며, 민간신앙인 ‘기자신앙(祈子信仰)’ 의 한 형태이다.
또 도선은 어릴 적부터 자연에 심취하며 자연물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는 지형을 보고 기운이 센지를 약한지를 알아봤다. 그의 두뇌는 명석했고, 사고는 남달랐다. 두뇌가 비상했기에 그는 자연을 보기를 주술적을 넘어 철학적, 과학적으로 풀어냈다. 그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안목과 식견이 뛰어났다. 마을 사람들을 도선을 신동(神童)으로 여겼다. 그런 그이기에 마을 사람들은 도선 같은 아들하나 낳아주기를 소망했다. “제발 도선 같은 아이하나 낳게 해주세요” 하며 소망을 담은 바위에 ‘성혈(性穴)’ 을 냈다.
도선은 자연철학의 매력에 빠졌다. 그럴 때마다 깨달음을 얻고자 정진했다. 깨달음이 있을 때는 그 바위에 구멍을 새겼다. 구멍을 파 신에게 깨달음을 고하면서 마을과 가정의 평온과 건강을 위한, 세상의 평화와 부흥을 위한 중생들에게 사상을 전파시킬 것이라는 것을 그는 그 구멍이 음(陰)과 양(陽)의 조화를 통해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구멍을 새겼다. 도선은 깨달음만큼 그 바위가 영험(靈驗)하다고 봤다. 자신을 망각하는 상태 중에서 어떤 깨달음이나 지식을 얻는 종교적인 능력자를 부르는 ‘샤면(Shaman)’ 의 도선임을 그는 바위에 표시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아들을 낳아달라고 구멍을 냈기도 했지만, 바위가 너무 기가 세서 그 기를 달래주고자 구멍을 냈다. 양인 바위에 음인 구멍을 낸 것이다. 양이 너무 세면 양으로 달래주거나, 음이 너무 있으면 양으로 채워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과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다.
또한 주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던 마을 사람들이어서 마을 앞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가는 일에 아무사고가 나지 않도록 ‘안혈(安穴)’ 을 내거나, 고기를 많이 잡아 오도록 하는 마음에서 바위에 ‘산혈(産穴)’ 을 내어 바위 신에게 기도를 했다.
이밖에도 가설에 의하면 해와 달, 별 등 천체의 음직임을 관측해 인간의 운명과 미래를 예측한 천문 점성술에 능한 최지몽(崔知夢. 907~987)이 고려 초 태조 왕건을 비롯해 6명의 국왕을 보좌하면서 때로는 위기에 빠진 왕을 빼어난 천문 점성술로 구해내기도 했던 최지몽이다. 천문 점성술로 왕들의 재위기간이 끝날 때까지 각종 현안문제를 조언하는 역할을 했던 그는 꿈을 잘 풀이한 인물로 구약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을 들 수 있다. 한국판 요셉 최지몽은 부친(최상흔)이 고위 향직을 갖고 있는 등 서남해 해상교통로라는 이점을 이요해 해상무역에 종사했고, 부를 축적하여 유력 가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구림마을의 유력 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별에 관심이 많았던 총명한 아이였다.
최지몽은 항상 밤에 집밖을 나가 동틀 때 쯤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 별을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별에 관심이 많은 그는 별을 관측하면서 별의 위치와 별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했다. 별을 관측할 때마다 그는 별의 위치나 영향에 대한 것을 바위 등에 표식하거나 나뭇잎과 벽에 기록을 했다. 그는 천문 점성술에 조예가 깊었을 정도로 별점에 일가견이 있었다. 해몽(解夢)에도 능했다. 그런 그이기에 궁궐에서는 이런 소문을 듣고 왕은 천문 점성술에 뛰어난 최지몽을 궁궐로 불러들인다. 최지몽이 18세가 될 때이다.
태조 왕건은 간밤에 꾸었던 꿈이 매우 궁금했었다. 그래서 신하를 영암으로 급히 내려 보내 최지몽을 궁으로 불러들인 태조 왕건은 최지몽에게 간밤에 꾼 꿈을 해몽해주길 바랐다. 최지몽은 태조가 삼한 통일하게 될 징조라고 꿈을 해석해서 태조에게 칭찬을 받고 ‘지몽(知夢)’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왕건이 한반도를 통일하게 되면서 개국공신이 되었다. 점성술이 왕실의 운명을 예언하고 보호하며, 제왕의 통치와 교화 능력을 향상시키는 제왕학(帝王學)의 지위를 갖기 때문에 최지몽의 역할은 컸다. 도선과 최지몽의 활약은 천문 점성술이 고려 초기 사상문화의 측면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왕실의 참모이자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죽을 때(81세 일기)까지 수행했던 최지몽은 왕조 창업과 전쟁, 등 험난한 시기일수록 온전히 관료로서의 삶을 마쳤다. 왕실과 국왕을 위태롭게 하는 모반의 조짐을 예견하고 조언하는 천문 점성술사로서의 주변의 시기와 견제로 일반 관료와 같이 평탄한 삶은 아니었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관료로서 장수했다. 천문 점성술이 당시 사상은 물론,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기에 그는 장수한 관료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최지몽은 18세인 924년(태조 7) 천하통일을 예언하여 태조 왕건에게 발탁된 뒤 81세인 987년(성종 6)에 사망할 때까지 태조,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까지 63년간 6명의 국왕을 보좌한 인물이다.
국사바위에 새겨진 구멍은 최지몽과도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하는 추론을 해봄이다. 도선이 깨달음을 할 때마다 새겼던 것처럼 최지몽도 별에 대한 이치를 알게 되면 바위에 새기곤 했다.
최지몽을 두고 별밤지기, 별 박사, 천문 점성술사 등의 여러 별칭이 따르고 있다. 국사암은 선각국사 도선과 연관된 바위지만, 별을 관측한 최지몽과도 연관성에 있었을 것이라는 데, 과도한 추측이든 지나친 단순화든 그랬을 것이라는 ‘ㅂ지요’ , 확실하다고 믿는 사실에 대한 주장이나 물음을 나타내는 종결어미가 걸맞은 듯하다. “최지몽이 바위에 새긴 구멍입지요” 라고 말이다.
이런 여러 설(說)이 얽혀져있는 국사암이다. 관련 설 중에는 아들을 낳게 해달라는 애니미즘의 ‘기자신앙(祈子信仰)’ 에서 구멍을 낸 것이 가장 사실에 가깝다. 국사암의 구멍은 기자(祈子)와 연관된 ‘성혈(性穴)’ 이기도 하지만 별과 연관된 ‘성혈(星穴)’ 로도 의미들 둔다.
기자신앙의 ‘자손창성(子孫昌盛)’ 과 관계가 있다. 국사암 같은 기자신앙은 그 형태에 따라 암돌과 숫돌로 구분이 된다. 끝이 뾰족한 것은 숫돌이고, 뭉텅한 것은 암돌이다. 국사암은 ‘뭉텅한 암돌’ 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런 돌이 기자신앙(祈子信仰)과 연관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국사암에 일곱 개의 구멍을 뚫은 것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믿음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이는 자손창성을 기대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성혈(性穴)인 구멍이 뚫린 것은 모두 기자신앙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위에 구멍을 파는 행위는 성행위로 본 것은 웃기고 재미있는 우스갯소리의 넌센스적인 풀이지만, 어찌하던 어성들은 아이를 낳기 바라며 바위를 문지르고, 그 지리는 마침내 구멍이 되어버리게 한, 자식을 점지(點指)해주기를 바라는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아이를 점지하는 바위 국사암, 성석(性石)은 인간의 성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바위에 행해지는 종교적, 주술적 의례들은 소원을 비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대체로 아이 낳기를 기원하거나, 풍요를 기원하며 마음의 보호를 원하기도 한다. 그 중 아이를 원하는 의례적인 행위들은 개인적인 치성과 성석에 대한 모의적인 성행위로 나타난다.
치성을 드릴 때 부정하지 않은 날을 잡아 바위 앞에 정성껏 재물을 차리고 아이 낳기를 빈다. 그리고 바위를 쓰다듬거나 껴안기도 하고, 패어진 구멍에 돌을 넣거나 타고 놀기, 동전이나 돌 붙이기, 구멍에 나뭇가지 등을 끼우기 등을 행한다.
바위를 껴안고 쓰다듬은 행위는 남근석을 어루만지면서 바위의 생산적인 힘이 산모에게 옮겨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돌을 던져 넣는 것, 공알바위에 돌 던지기 등의 형태에서 많이 나타난다. 영암 구림마을에 있는 국사암은 공알바위는 아니다. 바위에 일부로 구멍을 내고 거기에 뾰족한 돌로 비벼 되면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이 전해진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부녀자들이 이곳을 찾아 바위에 구멍을 내고 돌을 넣어 비벼 되며 아이 낳기를 기원했다.
그래서인지 국사암은 작은 구멍들이 많이 있다. 이처럼 바위에 구멍을 뚫고 구멍에 돌을 비비는 행위는 구멍을 여성의 자궁으로 보고, 돌을 남성으로 보는 관념에 의해 나타난다.
따라서 돌을 구멍에 넣는 것은 여성의 자궁에 남근을 넣는 것과 같은 의미이고, 이는 생명의 탄생과 직결되어 ‘부녀자의 임신’ 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구멍에 나뭇가지를 넣거나 동전 등을 바위에 붙이는 것 등도 이와 동일한 의미에서 연유한 행위들이다. 그리고 바위를 올라타는 것은 조금 더 현실과 유사한 성행위를 모방하는 것으로 이 역시 생명의 출산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 만들어진 구멍이 바로 ‘성혈(性穴)’ 이다. 바위에 뚫어진 구멍을 보면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보기 힘든 구멍들이 많이 패여 있다. 전남 영암 군서 구림마을에 국사암을 보면 작은 종지 정도의 구멍이 파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손가락이나 돌멩이 등을 이용해 모의적(실제 것을 본떠서 시험적으로 해봄)인 성행위를 한 흔적들로 아이 낳기를 바라는 ‘기자의례(祈子儀禮)’ 의식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성석(性石)과 기자(祈子)의 관계는 그 유래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국사암이나 남근석과 여근석의 유래를 보면 아이 낳기를 바라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국사암에는 한 금실 좋은 부부가 치성(致誠))을 드린 후 아이를 낳았고,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또한 대를 이어갈 자식이 없던 부부가 바위에 치성을 드려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이 구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부자의 이야기가 소문이 나서 군서 구림마을의 국사암에 아이 낳기를 치성을 드리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이 마을의 바위는 아이의 탄생 이후에도 10년 정도 바위에 치성을 드려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삼신신앙(三神信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바위가 출산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바위에 아이 낳기를 원하는 행위는 바위를 성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숭배(崇拜) 관념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성을 표현하고 성행위를 하는 것은 생명을 창조하는 근원으로 여기고, 숭배하였다는 점에서 바위와 성의 관념이 합쳐져 ‘생명력의 원천’ 으로서 국사암 같은 성석(性石)이 자리하게 된 것이다.
국사암은 탯줄도 자르지 않은 도선을 버렸던 바위와 관련성이 있기 때문에 성석으로 본다. 이 바위에는 작은 돌로 비빈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구멍이 수없이 패여 있다. 치성을 드리러 온 사람들이 바위에 대고 모의적인 성행위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도선과 관련된 바위에 구멍을 파 돌멩이를 대고 문지르면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국사암에 치성을 드리고 돌멩이로 구멍이 파인 바위를 문지르는데, 사람들의 신앙심이 깊어질수록 구멍은 점점 커지고 깊어진다.
국사암은 바위에 구멍을 내서 돌멩이를 문질러서 아이를 낳기를 기원하는 행위를 한 흔적이다. 바위에 무수히 만들어진 성혈(性穴) 국사암, 사람들이 구멍을 파서 돌멩이를 문질러 상징적으로 성행위를 함으로써 주술적인 힘을 빌리는 것이다.
선각국사 도선의 전설이 서려져있는 국사암, 바위를 갈아(穴) 그 가루를 먹음으로써 바위가 지닌 생산능력이 자신이 몸으로 옮겨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국사암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어 갉아내는 일이 쉽지 않은데도 바위가 움푹 패일정도이니 자식을 얻고자하는 여인네들의 소망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사암 같은 바위가 성석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이 성을 쾌락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성에 대한 표현을 부정하게 보는 까닭은 욕심이나 쾌락에 마음을 빼앗겨 수도자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참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 성은 단지 쾌락과 유희의 대상이 아니라 ‘신성하고 숭배되는 요소’ 이기도 하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명력을 전해주는 대상이며,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대상인 것이다. 생명력을 담은 성은 금기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숭배의 대상’ 이 되는 것이다. 성에 대한 숭배는 우리민족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일반적인 긍정적 사고를 넘어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초월적인 긍정적 사고로 치환하는 방식의 원형적 사고방식과 접근법이므로 이것이 타 종교와 융합되어 영암 군서 구림마을에 성석(性石)과 같은 ‘국사암’ 형태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국사암의 성적인 바위는 그 영험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외부에서 들어온 종교와 우리 민간에서 행해지는 신앙행위가 결합된 형태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또한 불교와 우리의 민간신앙이 합쳐졌기 때문에 국사암이 더욱 영험한 힘과 신통.신묘.신비.신기.신묘.용함의 능력을 지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은 국사암을 두고 “나에게 도깨비방망이 같은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비로 광명진언(光明眞言)이다” 라고 했다. 광명진언은 신라 원효 스님이 ‘유심안락도(唯心安樂道)' 에서 진언의 공덕을 강조하면서 이 진언을 독송하면 비로자나 부처님의 태양처럼 밝은 광명과 지혜로 모든 조업이 소멸하고 인연 영가(靈駕)의 천도 발원이 이루어진다고 해 늘 암송하라고 이른 바 있다.
국사암에 치성을 드린 구림마을 사람들은 바위에 구멍을 내는 밝고 환한 그림의 여백에 써넣은 찬사 글의 ’광명화찬(光明畵讚)‘ 을 통해 기자(祈子)를 염원하는 인품도 온후하고, 용모도 출중하고, 능력도 탁월하고, 가문도 좋고, 포부도 원대하고, 충성심도 뛰어나고, 끼도 특출하고, 생활력도 강하고, 덕장의 위치에서 시대부터 낭만을 품었던 이상주의자로 군림하길 ’광명진언(光明眞言)‘ 을 했다.
선현들의 말에 의하면 “하늘의 뜻을 받들어 군주를 대신할 자는 반드시 남쪽에서 일어난다 했소!” “지금 시세를 살펴보면 가히 제왕의 사업을 일으킬 만하니 뜻있는 선비라면 용과 봉황을 타고 날아오를 때가 아니겠소!” 했다.
구림마을 사람들은 국사암의 아이 하나 낳아달라는 기자산앙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하늘의 뜻을 받들어 군주를 대신하는 남쪽의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영웅(英雄)‘ 을 고대했다.
다산과 자손창성을 빌고, 기복(祈福)의 기자신앙은 영가의 업장을 소멸해 영가를 좋은 곳으로 보내는 것이고, 더불어 자손들이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선각국사 도선과 관련된 국사암은 영험(靈驗)한 바위임은 분명하다. 국사암 오른 쪽엔 갓 바위처럼 튀어나온 바위 위에 또 하나의 바위가 얹어져있다. 영락없이 미륵불바위다. 추측하건데 이곳에 정한수를 떠 올려놓고 기도를 했었지 안했을까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것도 부족해 바위에 혈(穴)을 두며 기도를 하면서 소망했다.
국사암 하늘과 교감하는 바위로서 그 구멍이 천지를 관통한 것으로 현묘지도(玄妙至道)의 ‘현빈일규(玄牝一竅)’ 인 셈이다. 말하자면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이 사람 몸속에서 합일(合一)하는 한 구멍을 여는 것이 현빈일규라는 이야기다. 영험함이 있는 국사암에선 한 구멍이 열리면 백규개통(百竅皆通) 즉, 모든 구멍이 뚫리는 최고의 경지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혈(穴) 이 있는 국사암은 결국 하늘빛의 현(玄)으로 표상되는 참된 기운의 진기(眞氣)와 빈(牝)으로 대표되는 조합된 진정의 묘합(妙合)으로 한 구멍을 열어 인류의 스승이 된 셈이다.
국사암의 정도(正道)를 수련하면 그 한 구멍이 어느 자리인지, 무슨 의미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분명한 한 구멍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선도에선 한 구멍을 음의 집의 ‘빈궁(牝宮)’ 또는 음의 마을의 ’빈부(牝府)’ 라고도 한다. 기(氣)와 신(神)이 머무르고 교감해 오르내림이 그치지 않는 곳이라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다. 국사암은 ‘빈궁 또는 빈부’ 이다.
국사암의 혈(穴), 에너지 전환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의 지혜는 마침내 어머니 자연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성석의 역할을 띤 국사암의 애니머즘(Animism.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본 우주에 만물에 영혼이 있다는 믿음)과 샤머니즘(Shamanism. 초자연력을 가진 인물 또는 신령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지며 초자연적인 존재와 직접적인 교류를 하여 교류한 내용을 바탕으로 미래를 점쳐주고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신자들은 그 힘을 빌려 농사의 풍요, 가족의 안전, 다산, 건강 등을 기원하는 무속신앙) 너머의 세계사적 관점의 전환이다.
이성을 넘어 신적 조명까지 이루려는 주술의 역사성에 대한 신앙의 이해, 주술이 종교적 신앙을 형성하는 문화적 맥락에서 설펴보고 설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조망하여 통합적으로 서술하는 시도를 하는데, 이러한 시도들은 21세기 이후 지구적 전환(Global Turn)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Turn) 잔환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인간은 이제 자연을 관통하는 무한하고 경력한 자연의 신비라는 비명에 귀 기울여야한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바람이 춤추고, 햇살이 노래하고, 강물이 장단을 치는 그런 멋진 무대를 연출한 구림마을 같은 푸근한 고장을 만들어가고 지켜가려는 것이 바로 인간의 도리로 보인다.
하늘은 명랑해지고, 땅이 활발해지고 그 성(性)을 다하여 내단(內丹)이 이뤄진다 라는 믿음 하에 음양의 도를 닦는 것으로 하나의 음, 하나의 양과 하나의 성, 하나의 명(命)일뿐이다. 도(道)에 성을 근원하고, 명(命)에 바탕 하니 명은 명령과 같은 것이다. 하늘이 명으로써 사람에게 부여하였다는 의미다. 성(性)은 곧 리(理)다. 사람은 성으로써 하늘이 이치에 말미암은 것이다.
무릇 그 명령을 완전히 하고자하면 부지런히 돌이켜 바로잡는 것이 명(命)이며, 작용을 본받아 따르는 것이 명(命)이다. 존심(存心)과 양성(養性)은 이 명을 방심하지 않고 돌이키는 것이요. 집의(集義)와 생기(生氣)는 이 명을 쓰는 법도다.
생명쌍수에 해당된 기를 닦아 기를 깨우치는 수련의 ‘연기화신(煙氣化神)’ 하고, 신을 단련하여 본래의 공허(하늘)로 돌아가는 ‘연신환천(煙神還天)’ 하는 것은 그 성(性)을 회복하고 그 명(命)을 회 복하여 외단(外丹)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구림마을 사람들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정성스럽게 하며 바위에 성혈(性穴)을 새겼다.
아를 낳게 해달라고 기자신앙에 의해 혈(穴)을 새겼던 국사암은 그 바위에 영혼이 있다고 본 ‘만유정령설(萬有精靈說)의 애니머즘’ 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는 영적, 생명적인 것이 있다고 보는 세계관으로 자연계의 형상을 어떤 영적이거나 생명적인 작용으로 보는 게 특징이다.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이 애니미즘이다. 애니미즘은 만물에 영혼이 존재하고 사람, 동물, 사물, 지형, 자연협상 등 물질세계의 모든 요소 혹은 우주에 있는 모든 것과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는 영(靈)을 지니고 있고, 이를 통해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고,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영적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해와 달, 별과 같은 천체나 바위, 강, 바다, 나무, 돌 등 자연물, 무생물, 자연현상에 신격을 부여하여 자연현상을 영(靈)과 생명의 작용 혹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자연계와 자연계의 모든 사물, 생물이나 현상, 물질과 무생물에 영혼 아니면 의식이 깃들고 존재한다고 해석하고 모든 자연물에는 영혼적(靈魂的) 존재가 있음을 인정하는 원시적인 종교의 형태이자 자연계의 모든 사물에는 영적, 생명적인 것이 존재하기에 인간처럼 의식, 욕구, 느낌 등이 존재하고, 자연계의 이러한 현상 또한 영적 및 생명적인 것의 작용으로 보는 세계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영적의 힘 혹은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자연과 문화의 구분이 거의 없고 물체와 자연 또는 전 우주가 설아 있고 유사 주체화된 것으로 인식하는 세계관이자 사고방식이다. 기우제. 풍요제나 거석 숭배, 남근 숭배, 태양 숭배, 달 숭배, 물 숭배, 불 숭배, 나무 숭배 등이 이에 해당된다.
국사암에 새겨진 구명은 기자신앙에서 연류된 것뿐인가라는 의문점이다. 구멍들이 일정하게 놓여져 있지는 않지만, 좀더 자세히 보면 별자리를 표시한 것으로 추론된다. 국사암의 구멍들은 '전갈자리' 를 표시해놓은 듯하다.
잔갈자리는 홍도 12궁 중 제8궁에 해당하는 별지리로 태양은 매년 11월 21일부터 12월 16일 사이에 이 별자리를 지나게 된다. 이 별자리는 태양이 지나가는 황도상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별자리이다. 전갈자리는 꼬리를 특징으로 하는 전갈의 형태를 닮았다. 전갈은 독침을 가진 곤충으로 공격적이고 복수심이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전갈자리는 이러한 전갈의 특성을 상징하며, 강력하고 열정적인 성격을 나타낸다고 한다. 전갈자리의 상징은 독침을 들고 있는 전갈의 모양으로 표현된다. 전갈자리의 상징은 '남성의 생식기' 를 나타내기도 한다고 한다. 전갈자리는 '성적인 에너지의 욕망' 을 강하게 표현하는 별자리로 '생명력과 재생력' 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전갈자리의 장점은 '의지력, 집중력, 책임감, 리더십, 독창성, 직관력' 등이다. 그런 성향을 보여주고자 전갈자리를 새겼지 안았을까한다. 의지력, 집중력, 책임감, 독창성과 직관력을 갖춘 도선과 최지몽의 성향을 볼 때 그 구멍은 전갈지리라는 것에 심증이 간다.
전갈자리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집념하며,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전갈자리는 자신의 일에 책임감이 강하며,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전갈자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생각을 가지며, 남들과 다른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 전갈자리는 자신의 감각과 직관을 믿으며, 다른 사람들의 의도나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의미를 두고 볼 때 국사암의 구멍은 단순한 기자신앙에서 머물지 않고, 전갈자리의 상징성과 장점이 발휘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구멍을 팠을 것으로 보인다.
국사암이 있는 근거리에 위치한 ‘낭주원’ 한옥펜션에서 머물었을 때 펜션에서 느끼는 것 또한 현빈일규의 강한 기가 작용해 생기는 넘쳤고, 명(命)은 길어진 듯했다. 언젠간 나도 국사암에 혈(穴)을 내고 싶음이다.
다산, 풍요, 건강을 넘어선 안정성, 신뢰성, 인내를 지닌 현실적이고 안정된 성격과 신뢰할 있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황소자리’ 를 표시하고 싶다.
국사암은 선각국사 도선과의 관련된 바위에서 국한 되선 안 된다. 이 바위는 여러 설이 얽혀진 바위로 봐야 한다. 성혈(性穴)의 바위이면서 성혈(星穴)의 바위이기도 하고, 마을 지키는 '수호신(守護神)' 바위이기도 하다. 국사암은 신선이 노닐던 바위로서 '선바위(仙岩)' 이다.
지금의 구림마을은 집들로 주로 이루어졌지만, 예전에는 숲과 집들이 조성된 마을이다. 소나무와 대나무들이 많았던 마을은 거의 소나무나 대나무는 일부 지역의 고택을 빼놓고는 찾아볼 수 없다. 숲이 있는 곳에는 기암괴석과 왕대들이 하늘을 가리는 보기 드문 곳이었다. 대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으면 숨어있는 집채만한 바위가 나온다. 대나무 숲을 들어가다 보면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 웅장한 바위가 막아서 있다. 국사암이 있는 동쪽으로는 내가 있어 물이 흐르고 있다. 흐르는 물은 가녀린 여자의 생삭기를 말해준다. 그리고 구림마을 국사암은 초입에 바다(영산강)과 월출산을 감시하듯 서있는 기암은 속세를 떠난 남자를 닮았다.
구림마을 국사암은 기자 산앙의 근간을 이루던 자손 바위였지만, 구림마을은 '북두칠성 신앙의 근간을 이루던 별나라' 였다. 국사암에서 제사를 지냈던 구림마을에서는 지역 호족의 호칭도 '성주(星州)' 이고, 마을의 호칭도 '칠성(七星)고을' 이었다.
국사암은 '미륵불 바위' 이다. 불심(佛心)이 서린 바위이다. 불교가 생기기 전에는 선돌(立石)로서의 신성시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겼다. 바위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 번영과 영화를 기하고, 나라의 국태민안을 기했다. 바위는 마을의 경계석이면서 '성수러운 장소' 로 여겼다. 바위는 풍수(風水)와 흉(凶)한 것을 보완하고 치유하여 길(吉)하도록 고치고, 조화시켜서 복이 나오도록 한 '비보(裨輔)' 기능을 했다.
국사암은 영험(靈驗)이 있는 바위이다. 여러 전설이 서린 바위이다. 이런 바위는 기자신앙, 천체 점성술, 풍농(어)제, 비보, 수호 등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지금 국사암은 도선에 대한 얽힌 전설만 안내하고 있다. 바위에 있는 구멍에 대한 설명은 없다. 바위에는 현재 '아이비 넝쿨' 이 점령하다 시피 우거져있다. 바위 한쪽은 아이비 넝쿨로 덮어진 상태다.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바위인데도 방치되어 있다. 국사암 이 바위를 단순한 도선의 설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고 본다. 국가적인 문화재로 보호하고 보전되어야 한다.
김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