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신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요한 1,47-51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제 4차 라테라노 공의회와 제 1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신앙교리로 선언하였지만,
천사들에 대한 여러 학설에 대하여 어떠한 유권적인 결정을 내린 일이 없습니다.
다만 교회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의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학설에 따르면 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적인 존재로서 '천사'라는 말은 직책의 이름이지 본성의 이름은 아니며,
천사는 그 존재 전체가 하느님의 봉사자이며 전령입니다.
구약성서에서 천사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존재로서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파견되어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인간을 보호하고,
인간을 도와주고,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고, 때로는 사람을 처벌하기도 합니다.
또 그들은 하느님을 모시는 신하요 군대로 인식되었으며
때로는 하느님의 발현이라고 생각되기도 하였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천사는 하느님의 사신으로서 인간에게 파견되고, 꿈에 나타나고,
흰옷을 입은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창조된 영적인 존재이며 하느님의 군대이며, 그리스도를 섬기고 사도들에게 봉사하고,
어린이들을 보호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천사세계의 중심이시며 천사들은 그분에게 속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속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을 당신의 구원계획을 알리는 전령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천사들은 더욱 그분께 속한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은 창조 때부터 구원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 구원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알리고,
이 구원 계획의 실현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구약에서 천사들은
인류의 선조들이 타락하여 낙원에서 쫓겨났을 때 지상낙원의 문을 닫았으며,
소돔의 멸망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보호하였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과 그녀의 아들 이스마엘을 구하였으며,
하느님의 명령으로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하였으며,
율법을 전해주는 직무를 수행하였으며,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40년간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으며,
판관 기드온에게 그의 소명을 알려주었고,
판관 삼손의 탄생을 알렸으며,
예언자 엘리야와 이사야를 도와주었습니다.
신약에서 천사들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예수님의 탄생을 알렸으며,
어린 예수님을 보호하였으며,
40일간 사막에서 단식하며 기도하신 예수님께 봉사하였으며,
번민에 싸여 겟쎄마니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께 용기를 북돋아 드렸습니다.
결국 천사들은 하느님의 사신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중요한 일을 하실 때마다
천사들을 보내셔서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대천사 3명도 각기 고유한 임무를 가지고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먼저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 같으냐?'라는 뜻으로
주 임무는 하느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악마를 쫓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은 강하시다.',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으로
주 임무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신의 역할입니다.
성서에는 가브리엘 대천사에 관한 내용이 3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다니 9, 21-27에서 구약시대에 다니엘 예언자에게 나타나
장차 메시아가 오실 것을 전했습니다.
두 번째는 루카 1, 11-19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도록 보낸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의 부친 즈카르야에게 예고했습니다.
세 번째는 루카 1, 30-33에서 마리아에게 파견되어 성령의 잉태하심으로
구세주를 낳을 것임을 알렸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께서 치유해 주셨다.',
'하느님의 묘약',
'하느님의 의사'라는 뜻으로
위협과 악마의 손에서 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토비트 3, 17에서 라파엘 대천사는 구약시대의 의인 토비야의 아들 소 토비야가
무사히 긴 여행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래서 라파엘 대천사는 여행자들의 수호천사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오늘 축일을 지내는 대천사들까지도
인간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천사들도 빼앗아 갈 수 없을 만큼 크십니다.
오늘 하루 천사들까지 동원하여 인간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느껴 보는 하루가 되도록 합시다.
부산교구 김주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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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다니엘 7,9-10.13-14 <또는 묵시 12,7-12ㄱ>
요한 1,47-51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필립보는 구약에서 예언된 인물을 만났다는 확신 속에
나타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촌락이었던 나자렛에서 큰 인물이 나올 수 없다는
나타나엘의 퉁명스러운 반응에 필립보는 직접 와서 보라고 제안합니다.
나타나엘이 있었던 무화과나무 아래는 라삐들이 성경 공부에 전념하는 장소였기에,
나타나엘은 이미 성경, 특히 사람들이 갈망하는 메시아에 관한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의 마음을
먼저 보시고 부르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런 예수님을 만난 나타나엘은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라는 예언의 말씀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늘과 땅을 결합시키시는 구원이 성취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 성경의 야곱이 꿈에 본 예언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닫힌 문은 예수님을 통해 다시 열리고,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었던 천사 같은 영적 존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조력자이자 파견자, 치유자인 대천사들은
하느님의 손과 발이자 목소리가 됩니다.
우리도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는 하느님의 손과 발, 목소리가 된다면,
세상 속에 살아가는 작은 천사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2017,9,29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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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봉 신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요한 1,47-51
천사 같더라
선행, 미담, 희생 .......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선한 행동을 보고 아름다움 이야기를 듣고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을 만날 때
기쁘고 그 이야기만 전해 들어도 마음은 감사가 넘치고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 사람은 ‘천사 같다’는 표현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미담이 사라지고 희생이 어리석은 일인 줄 폄하되고 있는 세상을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하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천사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생명을 갈구하고 목말라하는 세상에 천사가 되어 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외면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아낌없는 희생이며 봉사이며 철두철미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잊고
맨날 맨날 나를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해줄 천사를 기다립니다.
주님의 뜻이 자꾸만 꼬이고 얽히는 이유라 믿습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자기 한 몸의 영화를 위해서는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영예와 부귀와 존경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올랐으니 전혀 남부럽지 않고
누구보다 편하고 안락하게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흥청망청 세상의 즐거움을 살아가기를 원치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묻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나서서 회개하며 지냈습니다.
한 마디로 선하신 하느님 앞에 ‘죄인의 대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의 재상임에도 늘
“단식하고 자루 옷을 두르고 재를 쓴 채, 기도와 간청으로 탄원” (다니 9,3) 하였던 까닭이었지요.
이러한 다니엘 예언자의 모습이 하느님께 얼마나 기쁘셨는지
“가브리엘이라는 이가 저녁 예물을 바칠 때 빨리 날아서”(9,21)
다니엘에게 하느님의 응답을 전하게 하시며
“총애를 받는 사람”이라고 고백해 주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천사 같은 사람을 기뻐합니다.
천사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천사 같은 행동으로 세상을 감동시키기 원하시고 계심을 믿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세상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시고
세상을 변화시킬 것을 고대하고 계신 것이라 믿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천사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천사가 되어 천사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때문에 내 기도에 내 영혼에 내 삶에 천사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고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돕고 낫게 하고 위로하는 천사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새깁니다.
그들의 안녕을 원할 뿐 아니라 발 벗고 나서서 희생하고 더 사랑함으로 그리스도인은
정말 ‘천사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천사처럼 행하고 천사가 되어 도와야 할 일은 널려 있습니다.
이 땅에는 천사 같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우리 모두, 천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에게
천사되어 줄 때 “그분께 총애를 받는 사람”으로 선택되리라 믿습니다. 아멘
부산교구 장재봉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