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50:15)
오늘 이 세대는 믿는 자와 불신자의 양태가 극명하게 갈린다.
불신자들은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 마치 지옥의 불구덩이에 들어간 것처럼 난리를 친다.
오늘 우리는 주님에 대한 갈망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 같다.
시대가 참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기에 나는 마음이 바쁘다.
해야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 보다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한 압박감이 밀려온다.
잃은 양을 찾으라는 주님의 명령 앞에 그렇게 하지 못함에 송구하다.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금식을 하셨다.
우리 또한 성령에 이끌리기를 원한다.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다.
그곳에 잃어버린 양들이 있다면 찾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들을 찾는 것일 것이다.
어쩌면 많이 놓친 것이다.
그래서 좀 아쉽고 주님께 송구한 것이다.
마음은 늘 그렇게 가고 있지만 삶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출발해 보려고 하지만, 늘 발목을 잡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마음과 육체와의 충돌인 것이다.
마음은 가려고 하지만 육체는 다른 것을 하고 있다.
그 싸움은 어쩌면 평생을 하는 것이리라.
영적싸움은 오직 영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마음과 육체의 관계 또한 영적인 것이다.
우리 몸은 영과 혼과 육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다.
우리 몸에서 영혼이 빠져 나가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 이후에는 기회가 없어진다.
주님을 사랑할 기회도 없어진다.
복음을 전할 기회도 없어진다.
모든 기회는 육체가 살아 있을 동안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육체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주와 복음을 위해 다시 한번 달려보기를 소망한다.
우리 인생에 주님 찾아 오셔서 구원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 은혜 잊지 말자.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일 잊어서는 안 된다.
어렵고 힘들어도 감사하자.
그리고 자신을 늘 축복하자.
우리의 믿음의 언어의 고백은 자신을 살린다.
그것이 불신자들과의 구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명예를 가지고 있다.
그 명예를 가지고 잘 살라고 하신다.
멋있게 살라고 하신다.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요즈음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가슴이 아픈 것을 많이 느낀다.
인생에 힘들고 지친 자들도 많다.
삶의 무게로 인해 짓눌리는 경우도 많이 본다.
내 마음도 많이 무겁다.
결국은 주님 밖에 없음을 또한 고백해 본다.
“주여 도우소서.
주님만이 길임을 믿고 나아갑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주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