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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1880 -1936)는 충남 대덕의 외가에서 태어나 외할아버지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고,13세가 되기 전에 사서삼경과 삼국지,수호지를 읽으면서 한시를 읊는신동으로 통했다,
19세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신채호는 교육, 언론, 역사, 역사연구,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고, 일제하에서는 해외로 망명하여 민족사 연구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결국에는감옥서 일생을 마치는 역사학자이며 애국지사다.
신채호는 황성신문사에 들어가 장지연, 박은식 등 개신 유학파의 날카로운 논설을 써 일본의 침략을 폭로했고 교육,역사관계의 글을 써 민중을 계몽하였다.
그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是日也 放聲大哭’을 써 장안을 울음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신채호는 비밀독립단체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국권회복에나섰고, 역사연구를 통해 민족혼과 대외투쟁의식을 고취시켰다.
생가입구에 있는 집인데 용도는 모르겠다.
약간의 주차장도 있고 역시 입구에 있는 유허비.
마침 오늘 생가에 지붕일을 하고 있었다.
서울에도 눈은 있었지만 이곳 대전은 정말 눈 천지다.
눈이 많긴 해도 바람없이 맑은 날이라 날씨는 정말 따뜻했다.
처음부터 된비알을 오른다.
바위라곤 하나없는데 섬바우라 참 이상하네,,,,,,,,!
일흔을 훌쩍 넘기신 오익근 선배님과 민들레님. 섬바우(선바위. 440m)에서,(바위는 없고 소나무 2그루 뿐인데...)
전남 광주의 유명산꾼 백계남씨도 다녀갔네.
어남산(464.5m)에서 김성미씨와 육정섭 선배님.
어남산 삼각점,
오늘구간에는 이정표가 자주 있어 길 따라가기는 아주 좋다.
마루금엔 제법 눈이 쌓여있다.
삼막재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급경사였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별거 아닌것 같아도.......
지금은 눈들이 많이 녹아 이정도였는데 며칠 전쯤엔 정말 좋았겠다.
삼막재(우측 어남동이다.
은행나무 묘포장인가?
반대쪽(신대리)엔 인삼밭도 보였다.
지금은 바위지만 나무 화석이었다.(근처에 제법 여러개가 있었다)
이런 날개 이정표가 자주 있어 지루하지 않아 좋다.
천비산(465,6m)정상.
오늘의 최고봉이라 나도 한컷,
남서쪽을 바라보며......
동쪽을 바라보며......
안전시설 지주목에 쌓인 눈이 철모 같아서......... ,
안산직전봉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산줄기.
동쪽을 바라보니 아련하게 식장산(623.6m)도 보인다.
안산1봉,
사람이 앉아있는 모습같아서.....
안산(264,1m) 대전 463 삼각점,
고통스러워 하는 소나무(얼마나 힘들까!)
놋점골,청소년수련마을,
소나무 정원수와 눈,
놋점골과 유등천.
주목나무 묘목.
유등천. 이물은 갑천으로 흘러들어 결국 금강의 물줄기가 되는것이다.
오늘 선두에서 고생하신 조대장님,
오늘 산행도 이제 끝입니다.(가운데 주력좋은 신상오씨와 김성미씨)
샛고개로 내려가는 나무계단.
오늘산행은 이곳에서......끝,
금산군과 대전시계이기도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635번 도로, 아래 4차선 터널이 생기면서 샛고개는 옛길로 변해버렸죠,
눈녹는 고개의 모습.
3시 30분 후미도착(4시간 30분) 산행종료,
청국장 전문집으로 이동합니다,
(산행후기)
서울에도 상당량의 눈이 내리긴 했지만 곧 이은 제설(除雪)로 불편함은 없었지만 대전(大田) 쪽으로 내려오니 정말 많은 눈으로 모든 세상천지가 하얗게 덮여있었다.
마침 산행지 가까이 단제 신채호 선생 생가지(生家址)가 있어 온 김에 들려보기도 했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많은 추위를 예상 했었지만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라 춥기보다는 오히려 더위를 느꼈던 그런 날씨였다.
소나무사이를 지날 때는 눈 더미가 툭툭하고 떨어지며 몇 번이나 눈 벼락을 맞기도 했었다.
낮은 산이지만 오르내림이 제법 심한 산이었고 날씨마저 따뜻해 땀이 줄줄 나기도 한다,
산행 출발하기 전 산악회에서 주는 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산에서는 점심을 안 먹었더니 시간이 조금 흐르자 시장기를 느껴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준비해간 빵으로 간식을 하며 쉬어가기도 했다.
선두와 후미와의 차이가 조금은 있었지만 크게 지루할 정도는 아니었다.
잃어버린 꿈의 조각들을 찾아줄 것만 같았던 산들이었기에 티 없이 맑은 하늘을 거울삼아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같은 마음으로 같은 산길을 걷는 기분 난의포식(暖衣飽食)한 그런 기분이기도 했었다.
많은 눈이긴 해도 럿셀이 필요한 그런 정도의 눈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과 낭만적이고 동심(童心)의 세계에서 즐겁고 재미나는 눈 산행으로 하루를 보낸 그런 날이었다.
산에 가면 누구나 작은 마음은 커지게 되어있고 닫힌 마음도 열리게 되어 있으니 자연 잊었던 사람도 생각나고 추억속의 그리움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이 어딘가 모르게 쫒기는 모습이라 나도 모르는 사이 나와 많이 흡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새 달력일 때는 빳빳하고 식구들의 사랑도 받았는데 마지막장에다 날짜도 다 되어가고 한 장이다 보니 작은 바람결에도 흔들리며 식구들의 눈 밖에 나기도 하는 것이다.
내일은 날마다 있는 것인데 금년이 다 가기 전에 하루라도 산행을 더 하고 싶어 가는 세월 붙잡아 두고도 싶지만 잡는다고 어디 가만있을 세월인가!
너무 서둘지 마자 하면서도 가는 세월이 마냥 아쉬워 뒤돌아보는 삶이 나도 제법 늙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도 민첩하고 방향감각이 뛰어난 영재(英才)도 아닌 나는 산에 가면 갈수록 이제는 한계치를 조금씩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세월은 가더라도 역사는 남을 것이다.
하루를 적게 살더라도 역사에 오점(汚點)남기는 일은 하지 말자 하면서도 깊은 생각에 참을성 없고 너그러움이 부족한 나는 항상 후회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았다.
나이 먹고 철들면 안 그럴 것 같았는데도 불같은 성격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는데도 그 버릇 남 주지 못하니 내가 생각해도 한참은 잘못된 것 스스로 인정 하는 것이다.
허지만 어쩌겠나.
소금은 짜야 맛이고 설탕은 달아야 제 맛인 것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산행도 끝이 나고 배부르게 밥까지 먹었으니 세상 부러울 것 하나도 없었다.
오랜만에 정다웠던 산우(山友)들을 만나 즐거운 하루 보냈으니 오늘 이 기분으로 내일까지는 충분히 충전 했으니 오늘 하루는 많은 소득을 본 그런 날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즐겁게 마무리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