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개국1등공신 배현경(裵玄慶)
【자료1】고려사 열전(高麗史列傳)
玄慶 初名白玉衫 慶州人 膽力過人 起行伍累進大匡 太祖以 靑州人 玄律爲徇軍 郞中 玄慶 與 崇謙駁 曰 往者 林春吉 爲 徇軍吏 圖爲不軌泄伏辜此乃典兵權而 恃本州故也 今又以玄律 爲徇軍郞中臣等 竊惑之太祖善之改授 兵部郞中 太祖 征討四方 玄慶功居多 十九年(註:936年)疾篤 太祖? 其第執手 曰嗟乎 命而夫卿 子孫在 予其敢忘 太祖出門而 玄慶卒 遂駐駕命 官?葬事而後 還諡 武烈 子 殷祐
현경의 첫 이름은 백옥삼으로 경주인이다. 담력이 뛰어나 사병에서 시작하여 여러 번 승진하여 대광에 이르렀다. 태조가 청주사람 현율을 순군랑중을 삼고자 함에 현경이 신숭겸과 반박하기를, 지난날 임춘길을 순군리로 삼으니 반역을 꾀하였으나 일이 누설되어 처형되었다. 이는 병권을 쥐고 본주(中央)에 있었던 까닭이다. 이제 또 현율로서 순군랑중을 삼으니 신들은 의혹 합니다 하니, 태조가 알았다고 하시고 병부랑중을 바꾸어 버렸다.
태조가 사방을 정토할 때 현경의 공이 많았다. 태조 19년(註:936年)에 공의 병이 위독하자 태조가 그 집에 행차하여 그 손을 잡고 이르기를 아, 명이로구나 경의 자손이 있으니 내 어찌 감히 잊으랴, 태조가 문을 나서자 현경이 졸 하였다. 드디어 어가를 멈추게 하고 관에 명하여 장사를 돕게 하고 돌아갔다. 시호는 무열(武烈), 아들은 은우(殷祐)이다.
【자료2】무열공본전(武烈公本傳)
公姓裵氏諱玄慶初名白玉衫慶州人唐乾符元年甲午(註:874年)生家在太白山麓... 공(公)의 성(姓)은 배씨(裵氏)이며, 휘는 현경(玄慶)이다. 처음 이름은 백옥삼(白玉衫)이며 관(貫)은 경주(慶州)라, 唐나라 乾符元年 甲午(註:874年)에 태백산록(太白山麓: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으며, 고려 태조 19년(註:936年)에 향수 63세로 졸하였다.
담력이 크고 용맹하며 지략이 뛰어나, 궁예(弓裔)에게 부속(註:895年) 하여, 솔오(率伍)에서 출발하여 기장에 이르렀다. 그러나 궁예가 즉위한지 몇 년 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공은 서기 918年 에 당시 동료 기장이었던 삼능산(三能山,뒷날=申崇謙), 사귀(沙貴,뒷날=卜智謙), 홍술(弘述,뒷날=洪儒)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기로 하고 왕건(王建)에게 왕창근, 송함홍 등 점술가의 예언을 설명하면서, 거사를 권하여 왕건을 고려 태조(太祖)로 옹립하였고, 고려 개국1등공신에 올랐으며 뒷날 태사(太師)의 위에 올랐다.
【참고자료】
裵玄慶(初名:白玉衫) 연표(年表)
○서기 874년 甲午(신라 경문왕14), 황해도 평산(平山) 태백산자락에서 태어나다.
○서기 895년 乙卯. 왕건과 함깨 궁예에게 부속하여 솔오(率伍)에 임명되었다.
○서기 898년 戊午. 궁예가 왕건을 대장으로 삼고 公을 선봉장(先鋒將)을 삼았다.
○서기 900년 庚申. 궁예, 公을 아찬에 임명하고 마군장군(馬軍將軍)을 삼았다.
○서기 904년 甲子. 궁예가 국호를 '마진'으로 하고 公을 대장(大將)으로 삼았다.
○서기 906년 丙寅. 궁예, 국호를 '태봉'으로 고치고 公을 표기장군을 삼았다.
○서기 918년 戊寅 6월, 왕건을 王으로 추대하여 고려(高麗) 건국에 공헌하였다.
○이 해(태조원년) 8월, 公은 개국공신(開國功臣) 제1등(第一等)에 지정되었다.
○서기 919년 己卯(태조 2) 2월, 공을 대상(大相)으로 임명하였다.
○서기 927년 丁亥(태조 10) 春正日에, 公을 삼중대광 진무도총장 (三重大匡鎭撫都總將)으로 임명하다.
○서기 936년 丙申(태조 19)12월 13일,<六十三>으로 졸(卒)하였으며, 시호(諡號)는 무열(武烈)이다.
○서기 940년 庚子(태조 23), 신흥사에 공신당을 설치하고 公을 머리(首)에 모셨다.
○서기 994년 甲午(고려 성종 18) <死後 59年> 4월 23일, 公을 태조묘(太祖廟)에 배향(配享)하였다.
[자료3]배씨종사보감(裵氏宗史寶鑑)
고려 태조 왕건은, 개국 초에 건국에 공을 세운 많은 공신과 호족들에게 성명과 본관을 하사하였다. 옛날에는 나라에 공을 세워 공신에 녹훈된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서 귀화해 온 사람에게 포상의 표시로서 왕이 성씨(姓氏), 또는 이름을 하사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사성(賜姓), 또는 사명(賜名)이라 하였다. 이는 삼국시대초기부터 있었으며, 특히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가장 성행하였다.
[참고자료] 배씨종사보감의 사성(賜姓) 일람표.
현재의 성씨(姓氏) |
사성조(始祖?) |
원래의 성, 또는 이름 |
사성한 왕 |
비고 |
경주배씨(慶州裵氏) |
현경(玄慶) |
본명:백옥삼(白玉衫) |
고려 태조 |
고려 개국공신 |
면천복씨(沔川卜氏) | 지겸(智謙) | 본명:복사귀(卜沙貴) | 고려 태조 | 고려 개국공신 |
의성홍씨(義城洪氏) | 유(儒) | 본명:홍술(弘述) | 고려 태조 | 고려 개국공신 |
평산신씨(平山申氏) | 숭겸(崇謙) | 본명:삼능산(三能山) | 고려 태조 | 고려 개국공신 |
풍양조씨(豊壤趙氏) |
맹(孟) |
본명:바위(巖) |
고려 태조 |
고려 개국공신 |
충주어씨(忠州魚氏) |
중익(重翼) |
지씨(池氏) |
고려 태조 |
|
강릉왕씨(江陵王氏) |
우(又) |
강릉김씨(江陵金氏) |
고려 태조 |
|
해주왕씨(海州王氏) |
유(儒) |
박씨(朴氏) |
고려 태조 |
|
연안차씨(延安車氏) |
효전(孝全) |
문화류씨(文化柳氏) |
고려 태조 |
柳車達의 장자 |
철원궁씨(鐵原弓氏) |
총 |
경주김씨(慶州金氏) |
고려 태조 |
|
안동권씨(安東權氏) |
행(幸) |
경주김씨(慶州金氏) |
고려 태조 |
|
광주이씨(光州李氏) |
순백(珣白) |
경주김씨(慶州金氏) |
고려 충숙왕 |
|
연안인씨(延安印氏) |
후(侯) |
본명:홀자대 |
고려 충렬왕 |
|
덕수장씨(德水張氏) |
순용(舜龍) |
본명:삼가(三哥) |
고려 충렬왕 |
|
정씨(鄭氏) |
공(公) |
본명:오십팔(五十八) |
고려 충렬왕 |
鄭氏의 일파 |
차씨(車氏) |
신(信) |
차홀태(車忽태) |
고려 충렬왕 |
車氏의 일파 |
수성최씨(隋城崔氏) |
영규(永奎) |
안동김씨(安東金氏) |
고려 충렬왕 |
|
일직손씨(一直孫氏) |
응(凝) |
순씨(荀氏) |
고려 현종 |
왕의 諱와 같아서 |
예천권씨(醴泉權氏) |
섬(暹) |
흔씨(昕氏) |
고려 충목왕 |
왕의 諱와 같아서 |
노씨(盧氏) |
영(英) |
본명:식독아(式篤兒) |
고려 충렬왕 |
盧氏의 일파 |
안씨(安氏) |
원(瑗) |
이씨(李氏) |
신라 애장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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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안씨(竹山安氏) |
방준(邦俊) |
李瑗의 아들 |
신라 경문왕 |
|
광주안씨(廣州安氏) |
방걸(邦傑) |
李瑗의 아들 |
신라 경문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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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남씨(英陽南氏) |
민(敏) |
김충(金忠) |
신라 경덕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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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씨(仁川李氏) |
허겸(許謙) |
태인허씨(泰仁許氏) |
당조(唐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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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문씨(甘泉文氏) |
세광(世光) |
경주김씨(慶州金氏) |
송조(宋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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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문씨(旌善文氏) |
임간(林幹) |
전씨(全氏) |
송조(宋朝) |
청해이씨(靑海李氏) |
지란(之蘭) |
본명:퉁두란 |
조선 태조 |
조선 개국공신 |
김해김씨(金海金氏) |
충선(忠善) |
본명:사야가(沙也哥) |
조선 선조 |
임진왜란 때 귀화 |
【참고자료】고려 태조(왕건)현릉의 배현경 무인상
▲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 만수산에 위치한 태조 현릉의 배현경 상.
개성 현릉(왕건릉)은, 서기 943년(태조 26) 5월에 조성. 첫째 왕후인 신혜왕후 유씨가 함께 묻혀 있다. 현릉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몇 차례 이장된 적이 있었다. 1018년(현종 9) 거란이 침입하자 부아산 향림사로 옮겼다가 다음 해 11월 다시 환장하였으며, 1217년(고종 4) 거란족이 침입하자 태조의 재궁(관)은 다시 봉은사로 옮겨졌다.
또 1232년(고종 19)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현릉은 다시 강화로 이장되었으며, 개경으로 서울을 옮긴 1270년(원종 11)에 임시로 이판동에 옮겼다가 1276년(충렬왕 2)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의 현릉 자리가 처음 태조가 묻혔던 바로 그 자리인지는 알 수 없다.
이곳은 또한 1906년(광무 10) 도적들에 의해 파헤쳐진 적이 있었으며, 1950년 한국전쟁 중에 파괴되었으나 1954년 복구한 적이 있다. 1992년 북한에서 발굴조사 후 새로 고치고, 1993년 5월 5일 한자로 쓴 "고려태조왕건왕릉개건비"를 세웠다. 이때 12지신상을 새긴 본래의 병풍석들은 무덤 안쪽에 넣어 보존하고 있다.
북한에서 발굴할 때 여러 가지 유물이 나왔는데, 그중 금동불상은 등신불로서 현재 개성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무덤안칸에는 벽화를 그렸는데, 동벽에 매화나무, 참대, 청룡이, 서벽에 소나무, 매화나무, 백호가, 북벽에 현무, 천장에는 8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列傳』
『武烈公 本傳』
『裵氏宗史 寶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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