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에게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불행한 소식이 될 수도 있겠지만, 6년 전 암 진단을 받은 나에게는 그것이 희소식이었다. 그 동안 움켜쥐고 있던 짐들을 다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내가 움켜쥐고 있었던 것은 비어 있는 작은 주먹 하나뿐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한 단체를 통해 몸과 마음의 수련을 시작했다. 잔잔했던 겉 생활과는 달리 내 마음에는 상처가 많았고 인간관계 속에서 가슴속엔 늘 소용돌이가 쳤었다. 겉으로 당당한 모습이었지만 그 뒤에는 스스로를 무능하고 가치 없다고 자책하는 자아가 도사리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피곤했다. 그러한 것들을 해결하는 길을 찾은 것이 몸과 마음의 수련이었다. 수련을 시작하면서 내 마음속 한 편에는 멋지고 강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와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목표는 나를 몰아붙이는 힘이 되었다. 어떤 훈련도 나를 두렵게 하지 못했다. 허약했던 육체도 일으키고 또 일으키니 마음이 원하는 대로 잘 움직이게 되었다. 나태한 생각이 들어오면 바로 물리치고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움직이는 쪽으로 만들어 갔다. 몸과 생각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잡념이 없어지고 단순해지자, 명상이 깊어졌다. 그 속에서 우주를 체험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눈을 감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단체의 일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내 눈에 여러 가지 비합리적인 일들이 비쳤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목표와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간혹 나 자신조차 원하지 않는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가슴 아픈 일이 많아졌다.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단체의 판에 박힌 성향을 조금씩 바꾸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지구상의 일이라면 어디에나 그런 부조화쯤은 있을 수 있는 거라 생각했기에, 부지런히 그 안에서 내 길을 걸었다. 즐겁고 아름다운 교류도 많았다. 그런 교류를 통해 나의 오랜 습관을 발견하고 바꾸는 과정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단체의 모습은 바뀌지 않았고 내 고민도 깊어졌다. 단체가 커지고 나름대로 체계가 생기면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굴러가며 개성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다가 가까이 가서 본 스승은 기쁨이 아닌 분노의 모습을, 자애가 아닌 미움과 복수의 표정을, 조화가 아닌 독선과 아집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나는 목표를 세웠지만 가는 길을 몰랐다. 그 길을 가는 데엔 스승이 필요했던 것인데……. 갈 길이 막막해졌다. 이것이 끝이 아님을 알겠는데, 그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내디뎌야 하는가. 나의 의지는 강해져 있었지만 나는 자유롭지 못했고 행복하지도 못했다. 고민과 갈등은 가슴을 황폐하게 했고 몸의 건강도 기울게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삐걱거렸다. 허무의 벼랑까지 가 있었던 것이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무의미했다. 말하자면 진정한 사망 상태였던 것 같다. 점차 몸을 일으켜 앉힐 수 없게 되었고, 밤엔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몇 년 간의 외국 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돌아오자마자 병원으로 갔고,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그 엄청난 진단 앞에서 내 얼굴에는 안도의 웃음이 새어나왔다. ‘야호! 이젠 나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핑계대지 않고 쉴 수 있다! 선택할 필요도 없다. 쉴 수밖에 없다!’ 병원 생활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사람 사는 세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검사 하느라 금식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아기자기한 놀이 같았다. 검사 기구들도 찬찬히 살펴보니 재미난 구조로 되어 있었고, 그것을 발명하고 만들어낸 사람들의 사랑과 정성을 품고 있었다. 예전에 무시하고 고개 돌렸던 물질적인 것들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의사와 간호사, 직원들과 입원실 환자들, 방문객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새롭고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병원 침대 위가 이처럼 행복하다니, 천국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술을 하고 퇴원을 했지만 골반에 전이되어 크게 자리 잡은 종양은 쉽게 치료되지 않았다. 먼저, 의사들이 의약 분업에 반대하기 위한 파업을 하느라 분주해지자 전이된 종양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고, 나중에 발견하고서도 별 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 다른 병원으로 옮겨 이런 저런 치료를 받았지만 그 때마다 병소는 오히려 더 커졌다. 마침내 진통제 처방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암(癌)과 계약 동거를 선언하고 5년 전 진도에 내려온 그는 어느덧 진도사람이 되었다. 그는 임회면 귀성마을 어귀에 ‘자연의 집’을 짓고, <명상치료공동체>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명상을 통해 참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며, 명상과 대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자연의 집’을 열어두고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문이 없다”
종양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갔다. 큰 근육과 신경이 지나는 곳이다 보니 통증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느다란 몸은 더욱 야위어 뼈와 가죽만 남아 앙상해졌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니 낮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누워서 커다란 유리창을 가득 채운 하늘을 바라보며 지냈다. 햇살이 투명하고, 구름이 아름다웠다. 구름은 시시각각 다른 모양의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렇게 누워 구름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했다. 그렇다. 행복했다! 문득 놀라웠다. 내가 행복하다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손을 놓고 지내는 내가 행복하다니.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존재 그대로가 행복이었다. 아픔이 극심했지만 다행히도 바둑을 두면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는 컴퓨터를 가지고 자주 밤샘 바둑을 두었는데, 나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며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는 데에 놀랐다. 상대방에게 무조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그 긴 밤의 통증을 홀로 다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와 나는 예기치 않게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감사의 샘물이 넘쳐나도록 해 준 이들이 많았다. 기도모임을 하며 속이야기를 나누고 속사람을 키우며 기쁨을 함께 했던 벗들이 있었다. 나는 암으로 해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무기로 해서 기도모임을 자주 가졌다. 또, 농사를 짓는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지혜와 지식의 차이를 명백히 보게 해 주었고, 인간의 진정한 품위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따뜻한 연민으로 나의 작은 몸을 안아주고 어루만져 주었으며, 그들의 죽음은 삶의 한 과정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인터넷을 통해 만난 여러 벗들도 있었다. 먼 길을 달려와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었으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소소한 생활의 면면까지도 같이 했다. 그러한 교류는 생명을 느끼게 해 주었다. 교류 자체가 생명이었다. 생명은 몸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었고, 내 몸이 겪는 아픔도 결코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분신들인가!’ 아픔 때문에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서성거리면서도 마음은 고통에서 멀었다. 여전히 숨은 감미로웠다. 눈을 떠서 거울을 보면 몹시 기울어진 몸이었지만 눈을 감으면 나는 지극히 건강했다. 그 느낌이 몹시도 이상해서 자꾸 눈을 감아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도 건강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참 희한하다!’ 멋지고 강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로 마음공부를 시작했지만 나는 허무의 벼랑 끝으로 갔고, 이제는 형편없이 기울어진 몸을 가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돌연 내 자신이 아름답고 거룩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기쁨이 떠나지 않았다. 간혹 아침 햇살을 이마에 받으며 ‘주님, 기쁨의 바다이신 당신 품으로 영원히 데려가 주세요.’라는 기도를 올리곤 했다. 그런데, 기도 끝에는 그것이 현실화되기엔 아직 좀 멀었다는 느낌이 오곤 했다. 그러면 다시 ‘내 몸이 쓸모가 있을까요? 매일 커지는 종양을 보면 이 몸이 그다지 쓸모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누워서 가만히 있어야 할지 일어나서 새로운 만남을 가져야 할지 헛갈립니다. 이 둔한 감각으로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대답을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올렸다. 아무 대답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거나 만남도 삶도 계속 되었다. 2003년이 되자 우연한 기회로 어느 암 센터를 알게 되었다. 통증이라도 줄여볼 생각으로 그곳에 가서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치료 방법은 수술뿐이었다. 수술이 가능하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골반의 절반을 쪼개어 내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놀라운 체험들을 가져다주었다. 오른쪽 골반과 다리가 없어져서 나의 거동은 더 불편해졌다. 몇 달 동안을 침대에 붙박여 지내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훨씬 자유로워졌다. 내 몸을 부끄러움 없이 다른 사람에게 내맡길 수 있었다. 모든 도움의 손길을 자연스럽고 즐겁게 받아들였고, 그 손길들은 바로 나의 것임을 뼛속 깊이 알 수 있었다. 남은 존재하지 않았다. 병실의 벗들은 바로 나의 분신이었고, 각자가 가져야 할 체험들을 충실히 겪고 있었다. 곁에 누워 있던 많은 벗들이 차례로 육신을 벗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엮어 주었다. 덕분에 죽음은 나와 친해졌고 내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병실을 천국으로 만들었던 벗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그 얼굴들이 웃고 있다.
2006-10-19
정치에 대한 단상<기자영>
요 며칠 동안 내 머리 속엔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자리 잡고 있다.
한자를 풀어보자면 ‘바를 정’과 ‘글월 문’이 합쳐져 이뤄진 ‘정’자와 ‘다스릴 치’가 만나 ‘정치’라는 낱말이 되었다.
낱말의 속뜻을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글월, 즉 말씀 혹은 메시지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라고 가늠해볼 수 있겠다.
나라를 이루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의 생각과 언행의 기본 요소가 되는 메시지를 바르게 다스리는 것 말이다.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견해를 공적인 자리에 내놓고, 그 견해들을 함께 살펴보고 이야기한 뒤 합의된 몇가지의 것을 선택해서 공동의 목표로 삼아야 했을 것이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정치라는 장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를 어떻게 정했는가, 하는 것이 시대마다 달랐다.
큰 제국이 생성된 이후부터, 정치에서 소외되는 계층들이 만들어졌고, 그들은 정치 마당에 참여하기 위해 무던히도 투쟁해왔다.
그 결과로 점차 모든 계층들이 그 곳에 낄 수 있었다.
적어도 겉모양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바른 다스림’을 떠올릴까? 또 진정으로 모든 계층들이 다 정치 마당에서 공정하게 자신의 견해들을 피력하고 있는가?
요즘 사람들은 정치를 쇼나 도박에 비유한다.
위의 두 질문에 대해 따져보는 것은 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나의 삶에 정치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오늘은 그것을 가지고 생각해 본다.
나는 이 바닷가 마을이 좋다.
마당 여기저기에 돋는 갖가지 풀잎들이 고맙다.
요즘엔 갓의 여린 잎들이 언덕을 뒤덮는다.
고모는 그 여린 잎들을 따다가 무와 함께 물김치를 담거나, 파와 함께 김치를 담는다.
새콤하게 익은 김치의 맛이 온 몸의 신경을 돌아 머릿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또 들판에는 쑥과 냉이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무청으로 시래기 된장국을 끓이면 그 국물이 속을 편안하게 달래준다.
겨울은 농한기여서 마을 어르신들도 한가로우시다.
나의 벗들은 언제든지 들러서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차를 잔으로 떠서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 이야기 속엔 청정한 기운이 담겨 있다.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이 몸이 좀 더 허락한다면, 바다낚시를 따라가서 배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 보거나, 아무개가 직접 지었다는 소담한 흙집 구경도 가겠지만, 그것이 되지 않는다 해도 벗들은 그 정경과 기운을 실어다가 내게 전해준다.
이 좋은 삶을 정치가 가져다 준 것인가?
지금은 정치를 정치인이 하지 않는다.
언론이 한다.
그것도 바르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권익만을 챙기려고 하는 일이니 ‘정치’ 말고 다른 말로 바꾸던지 해야 할 것 같다.
정치는 없다.
사업(사사로운 이득을 챙기는 일)만 있을 뿐.
지금의 소위 정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데에는 매우 소질이 있다.
교육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부풀리는 것, 매스 미디어를 통해 해가 되는 소비를 부추기면서 경제부양이라고 속이는 것, 돈 있는 사람들의 금고를 더욱 채워주기 위해 돈으로 행복까지 살 수 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쇼들, 그런 드라마나 쇼들을 뒷받침하는 손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들에게서 배우지 않고, 에너지를 마구 써대면서도 불안에 시달리는 소위 경제 대국들을 부각시키는 것 등.
차라리 소위 정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싶다.
소위 정치라고 하는 것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행복하다.
몸은 갖가지 능력을 갖게 되고, 정신은 고상하다.
이제 정치에 대한 생각은 이쯤 해서 접으려고 한다. 그것에 에너지를 소모하기에는 이 순간의 삶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이다.
2008-04-24
무저항 비폭력 (기자영 칼럼)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들을 품고 있다.
그 생각들을 말로 표현하고 행위를 통해 물질화시킴으로써 그 생각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의 생각들이 더욱 넓고 크게 말로 표현되느냐에 따라 그것들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따라서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짐으로써 그것이 선택적으로 물질화되어 나타난다.
지금 체험하는 사회가 만족스러운 것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 물질화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활 체험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나를 포함하고 있는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생각이 나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이루려는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겠지만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생각이 자기 자신에게 참으로 유익한 것인지는 잘 모르는 것이 대중들의 현주소이다.
그 때문에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널리 유포하여 동조자를 얻고자 하는 수단으로 매스미디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매스미디어가 본래의 공정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 먼저 국민 전체에 대해 공평한 시각과 입장을 갖고 있을 것이고 각 계층의 상황과 욕구를 골고루 대변해주고 전체가 조화롭게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각 계층이 어떤 의무를 해야 하고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을 것이다.
만약 매스미디어가 힘을 가진 계층에 속해 있고 절대적으로 그 계층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면 그것은 나라 전체를 조화롭고 행복하게 이끌어줄 수 없다. 이런 매스미디어에는 힘을 실어주지 않는 것이 국민들을 위한 국민들의 책임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잘 통찰하지 못하고 그저 힘 있어 보이는 무리들의 주장에 세뇌된다면 제 구실을 하지 않는 엉터리 매스미디어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될 뿐이다.
먼저 자기 자신의 내면을 잘 통찰해야 한다.
각자가 이기적인 마음만을 가지고 있다면 각자의 생각이 실현되기는 어렵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우리의 생각은 쉽게 실현된다.
거기에서 창조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을 모색하고 토론하고 그 결과를 정론화 하고 그것을 토대로 한 청사진을 만들어 행위로 옮기는 과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편과 네편을 만들어 서로의 생각에 무조건 반대하며 싸우고 미워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초상이다.
더군다나 힘을 가진 편에서는 그 힘을 이해의 마당을 만드는 데에 쓰지 않고 상대편을 잡아들이고 입을 막는 데에 쓰고 있다.
그것은 힘을 가진 자의 염치없는 행위가 아닌가?
그렇다면, 다음에 다른 편이 힘을 가지면 그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스스로 두려운 것이다.
두려움 때문에 반대편을 몰살시키려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반대편이 없어지는가?
본래 사람들의 생각들은 다 다른 것이다.
그래서 그 다양함으로 인해 세상은 재미있고 살 만한 곳이 되는 것이다.
상대편을 다 잡아 가두고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자유롭게 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 해도 그런 나라는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곳 살기 싫은 곳이 될 것이다.
매스미디어를 그런 다양한 생각들의 소개장으로 이용하면 어떤가?
여러 가지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과정이 우리를 신바람 나게 만들고 뇌를 움직여서 더 좋은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설혹 매스미디어가 그렇게 해주지 않더라도 그것을 탓하면서도 그들의 생각대로 미적미적 뒤를 좇아가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잘 통찰해보고 같은 생각들을 모아보기도 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올곧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면 엉터리 매스미디어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길을 잘 걷는 사람들은 누구를 미워할 틈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비판은 그다지 유용한 것이 아니다.
건전한 대안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대안을 작은 걸음으로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을 감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게 보면 훨씬 넓게 있는 그대로가 보인다.
지구별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나이 먹어 왔지만 그 변화의 속도가 지금은 매우 빨라졌다.
지구 온난화는 인류에게 생활습관의 변화와 새로운 에너지 개발이라는 과제를 주고 있다.
종교와 문화의 차이로 인한 전쟁은 고루하고 견고한 신념의 틀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지구인 전체에게 알려주고 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경제난은 이윤만을 추구하고 노동을 소외시킨 채 돈이 돈을 벌어주는 자본주의의 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물질이 넘쳐나고 먹을거리들도 엄청난 양의 쓰레기로 버려지는데도 굶주리는 사람들 집이 팔리지 않아 한 도시가 빈 집으로 채워지고 있는 데도 집이 없어서 노숙하는 사람들 우리 인류의 계산법은 어떻기에 이런 이상한 결과가 빚어지는가?
그럼에도 한 편으로는 많은 영성가들과 영성 그룹들이 출현하여 물질세계를 이끌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더욱 친밀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인류의 내적 통찰력이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
사소한 고민에 사로잡혀 일희일비하는 뇌의 문을 활짝 열어 세상 전체를 바라보면 지금 우리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갖가지 생각들이 과연 우리에게 유익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며 전체의 부분으로서 나는 나를 포함한 전체의 유익을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 가슴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누구를 미워할 필요도 없고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이기적인 사고에 갇힌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고 용기를 내어 머리가 아닌 가슴의 소리를 따라가자.
2009-03-10
내 인생의 좋은 날
죽음 앞에 선 말기암 환자가 세상을 향해 내민 작은 선물
기자영 지음|248쪽|12,000원|2009년 8월 5일 초판 발행
“사람이 얼마나 아플 수 있는지, 얼마나 외로울 수 있는지,
얼마나 자기를 덜어낼 수 있는지, 얼마나 깨끗할 수 있는지,
얼마나 자기를 비울 수 있는지, 마침내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것들을 실험해 보기로 작심한 위대한 영혼의 환생이 ‘자영’인가?
지금 그는 포천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 있지만,
진정 그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포천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 깊은 곳은
거기 텅 비어 있는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 부근에 그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현주 (목사, 《지금도 쓸쓸하냐》 저자)
저자소개
1965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근사 체험을 하고 나서 삶에 대해 묻고 고민하기 시작했고,
1980년 십대 중반에 광주항쟁을 체험하면서 인간의 소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1990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6년 동안 개원의로 지냈다.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마음 공부의 길로 들어섰다.
2000년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은 뒤 진도 귀성마을에서 살면서 명상 공동체를 위한 ‘자연의 집’을 지었다.
Daum ‘의식혁명’카페의 카페지기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과 성장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현재는 포천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지내고 있다.
도서목차
발문 이현주 책을 내며 춤추는 나무 프롤로그
사랑의 숨바꼭질 몸에게 건네는 말 어린 시절의 풍경 몸에게 건네는 말 진통제 구심력 원심력 숲의 대향연
연인 민자 앵자 아줌마 상심 씨 가장 무도회 MRI 통 속에서의 명상 오른 다리에게 투명다리 사랑의 쉼터
천국에서의 일곱 주 돌아보아야 할 것들 작은 신의 아이들 작은 친구 바이러스 바이러스 아기처럼 십자수
삼계탕 할 말 있어요 그리움 피에로 되기 기도에 대해 돌아보아야 할 것들 평화의 집 암과 함께한 좋은 날들
암과 함께한 좋은 날들 1 암과 함께한 좋은 날들 2 암과 함께한 좋은 날들 3 암과 함께한 좋은 날들 4
보조를 맞추다 진이의 사랑 입 창조와 배설 형제들의 것 살풀이 눕는 자리 귀향 나를 잊었었구나
몸이 아픈 형제자매님들께 사랑하는 호스피스 자매님들께 자연의 집 개구리 올챙잇적 첫 수확 사랑해요
소풍 얻어먹고 산다 돌 다듬는 사람 베로니카를 생각하며 미카엘 씨를 보내며 섬에 온 무탄트 지붕 올리는
“오늘은 새로운 아침과 같은 날이다. 순간순간 모험이 찾아올 것이며, 우리는 손을 잡고 그 모험에 뛰어들 것이다. 모든 상황들이 삶의 재료가 될 것이고, 넘어야 할 흥미로운 장애물이 될 것이며, 가지고 놀 장난감이 될 것이다.”―본문 중에서
이 책의 저자 기자영은 지금 포천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 산소호흡기를 쓰고 누워 있다. 마흔다섯, 불혹을 딛고 이제 막 인생의 2막을 펼칠 나이.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한때 잘 나가는 치과의사였던 그녀가 암 진단을 받은 것은 그녀 나이 서른여섯인 2000년이었다. 종양이 전이되면서 그녀는 골반의 절반을 쪼개어내고 한쪽 다리를 잘라낸 뒤, 대부분의 시간을 자리에 누운 채 혹은 목발과 의족에 의지하며 9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녀에게 암은 모험의 세계였고 깨달음과 경이의 세계였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온 9년의 세월에게, 행복한 세월이었노라고, 감사하다고 그녀가 고백할 수 있는 이유다.
그녀를 오래 지켜봐 온 이현주 목사는 이 책의 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영은 침상에 누워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거기가 자신의 생활 공간이라고 했다. 그 가냘픈 손을 잡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야기하는 물건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아니, 조용하게 움직이는 아름다움 자체였다.” 누워 꼼짝도 못하는 가냘픈 말기암 환자가 어떻게 아름다움 자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병든 몸으로 어떻게 타인에게 이렇게 지극한 감동을 선물할 수 있을까?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들 그 감동을 전해받는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 감사의 마음, 그리고 세상을 향한 모험심과 진리를 탐구하는 영혼의 강인함이 그에게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은 암 진단을 받고 난 뒤인 2003년부터 2009년 봄까지 쓴 일기 가운데 83편을 가려서 엮은 것이다. 그녀는 침상에 앉거나 누운 몸으로 노트북 컴퓨터에 이 일기들을 썼고, 그것을 자신이 카페지기로 활동하는 Daum의 ‘의식혁명’ 카페에 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일기’를 읽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기도 하고 감동과 힘을 얻어가기도 했다.
암과 함께 살게 되면서 그녀는, 병을 앓기 전에는 판단과 비판의 눈으로만 보이던 것들, 너무 작거나 보잘것없어서 지나친 것들, 혹은 너무 바빠서 눈에 들어오지조차 않던 것들이 실은 가득한 사랑을 품고 있는 것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늘과 구름, 나무, 풀, 개, 친구, 엄마, 동네 아이들, 이웃 아줌마, 또는 과거의 아픈 기억이나 추억, 심지어 몸 안의 아픈 세포들까지도 실은 사랑의 존재들임을 알게 되고, 그런 깨달음에 겨워 행복을 노래한다.
“오른쪽 골반과 다리가 없어져서 나의 거동은 더 불편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훨씬 자유로워졌다. 내 몸을 부끄러움 없이 다른 사람에게 내맡길 수 있었다. 모든 도움의 손길을 자연스럽고 즐겁게 받아들였고, 그 손길들은 바로 나의 것임을 뼛속 깊이 알 수 있었다. 남은 존재하지 않았다. 병실의 벗들은 바로 나의 분신이었고, 각자가 가져야 할 체험들을 충실히 겪고 있었다.”(〈암과 함께한 좋은 날들 4〉중에서)
“점차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고 골반이 기울어지고 몸이 기우뚱해져 소위 정상에서 멀어져갈수록 살아 움직이는 것 자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자각하게 되었다. 때로 움직일 힘이 없어 가만 누워 유리창 너머 보이는 푸른 하늘만 보아도 아! 그 아름다움…… 숨 쉬고 눈을 떠 그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의 충만한 행복과 기쁨. 불편한 육체 속에서 빛나는 영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구심력 원심력〉중에서)
“누워 구름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했다. 그렇다, 행복했다! 문득 놀라웠다. 내가 행복하다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손을 놓고 지내는 내가 행복하다니.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존재는 그대로가 행복이었다.”(〈암과 함께한 좋은 날들 2〉중에서)
암과 함께 살아가는 날들이 마냥 깨달음과 행복의 세계일 수만은 없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에는 고통과 아픔에 대한 것이 빠질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고통과 아픔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간다. 저자도 “지독한 통증과 함께한 나날들 속에 어찌 평정함만 있었을까? 하지만 나중에 읽어본 내 일기 속에는 잔잔한 즐거움과 평화, 통찰과 기쁨이 드러나 있었다”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에게 즐거움과 기쁨은 고통이라는 뿌리와 줄기에서 피어난 꽃봉오리였다. 그녀에게 “고통은 항상 지나가는 것이었고, 그것이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꽃이 피었다.” 그 꽃은 자신은 물론 각자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타인들에게도 즐거움과 기쁨을 준다. 고통을 겪은 자만이 줄 수 있는 ‘치유’의 힘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들이 각자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도 분명 역할이 있습니다.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세상을 더 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저는 몸이 아프고 나서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 넓은 세상이 보였습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도 아픈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아픔을 안다는 것은 존재를 좀더 온전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치유의 힘은 거기에서 나옵니다.…… 아픈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서 맡은 역할은 치유가 아닐까 합니다.”(〈몸이 아픈 나의 형제자매님들께〉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몸을 타고서 강을 건너 피안에 이르려 하는 나그네들이다. 기자영은 강을 건너는 도구로 아픈 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아픈 몸으로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는 이미 ‘의식혁명’ 카페에서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이 세상 사람들은 각자 다 아픈 부분이 있다. 그것이 곧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손을 내미는 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자영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죽음을 앞둔 저자가 세상을 향해 내민 작은 선물에는, 누구라도 세상을 향해 자기만의 선물을 내밀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선물이 숨어 있다.
첫댓글 드림 카페에서 몇 번인가 소식을 전해듣던 그녀, 오늘 비로서 내 마음 속에 태어나다.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정말 꽃잎 한장 같은 분이셧군요 그렇게 가벼히 떠나는 하늘 길...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