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측 증인들에 대한 공격, 상상 초월해
정신적 폭력과 모욕에 검찰 원하는 답변으로
어렵지 않게 진실 가려지리라 생각했던 조국 측
검찰·언론 융단폭격에 증인들 기억마저 오염
"모든 관련자를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사건"
“검찰과 언론의 압박에 굴복한 법원이 검찰에 유리한 재판부를 만들어준 것이 조국 부부 재판에서 다수 혐의 유죄 판결을 이끌었습니다.”
조국 전 장관 1심 판결 분석 1~5편을 집필한 박지훈 대표는 5편 기사를 자신의 SNS에 공유하면서 1편부터 5편까지의 내용을 위와 같이 한 줄로 요약했다. 그렇다. 정경심 교수에 대한 세 번의 재판, 조국 전 장관에 대한 한 번의 재판 등 총 네 번의 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사법부는 철저하게 검찰과 언론이 짜놓은 프레임에 굴복했다.
변호인 “모든 관련자를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 사건”
그러나 검찰과 언론의 압박에 시달리고 영향받은 것은 재판부만이 아니다. 재판부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할 증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국 전 장관의 변호인단은 2022년 11월 18일에 있었던 최후 변론에서 다음과 같은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사건 기록을 들여다보면 이런 문제를 조민이라는 학생뿐만 아니라 이 사건 기록이 등장하는 거의 모든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과 그들의 체험 활동을 주도했던 기관의 평가자들에게 공통된 것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모두를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누구를 수사해 기소하고, 누구를 못 본 체 해줄 것인지는 오로지 수사기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 사건에서 진술자들 대부분이 엄격한 규범의 잣대를 들이댔었을 때 왜 그렇게 주눅들어 답변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태 초기만 해도 아무리 검찰의 수사가 야비하고 언론의 융단폭격이 거세도 어렵지 않게 진실이 가려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조 전 장관 측은 사법부를 믿었고, 조국 전 장관 가족의 지인들이 사실을 밝혀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검찰에 휘둘리다 못해 검찰의 공소사실보다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기까지 했다. 그리고 재판정에 나선 증인들은 검찰의 신문에 위축되어 검찰이 원하는 답변을 내놓았고, 피고인에게 유리할 수 있는 내용을 말할 때는 머뭇거리고, 주저했다.
피고인 측 증인에 대한 공격, 상상 초월해
조국 전 장관 일가 외에 가장 큰 곤욕을 치른 사람은 단국대 의대 장영표 교수 가족이었다. 장 교수는 논문과 인턴확인서를 내줬다는 이유로, 부인은 장 교수와 정경심 교수를 연결해줬다는 이유로, 아들은 ‘스펙 품앗이’를 했다는 이유로, 세 가족이 총 12번에 이르는 고강도의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들은 명목상 참고인이었지 검찰의 뜻에 따라 언제라도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는 처지였다. 장 교수는 이미 언론에 의해 학자로서 가장 치욕적인 ‘연구 부정 교수’로 낙인찍혀 있었고, 평범한 가족에 불과했던 그들은 ‘SKY캐슬 특권층’의 일원으로 공격당했다.
조민 씨의 친구였던 장 교수의 아들 장 씨는 2021년 7월 23일 항소심 증언을 마친 뒤 자신의 SNS에 “용기를 내어 전체 공개하겠습니다. 제 경험으로 인해 많으신 분들께서 오해를 푸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동영상의 여학생이 조민 씨가 맞다”고 시인하며 아래와 같이 글을 맺었다.
“저의 증오심과 적개심, 인터넷으로 세뇌된 삐뚤어진 마음, 즉 우리 가족이 너희를 도와줬는데 오히려 너희들 때문에 내 가족이 피해를 봤다 라는 생각이 그날 보복적이고 경솔한 진술을 하게 한 것 같습니다. 이 의미 없는 진흙탕 싸움이 어서 끝나고 교수님의 가정도 예전과 같이 평화를 되찾았으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이상 죄송하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장 씨는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세미나에 “조민 씨가 오지 않았다”고 시종 증언했고, 동영상에 나온 조민 씨를 보고도 “모른다”고 답했다. 조국 전 장관이 지도했던 동아리 활동도 부인했다. 위 글을 올리기 직전인 항소심 공판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조국 전 장관 가족 어느 누구도 장 교수의 아들 장 씨를 원망하지 않았다. 원망할 수 없었다. 누구라서 그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단순한 시달림과 두려움이 아니라 최성해 총장에 의해 목줄이 걸려있는 동양대 교수들과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내용을 알고 있을 리 없는 직원들까지 증인으로 불러내 조민 씨의 봉사활동과 표창장에 대해 “못 봤다, 모른다, 기억 안 난다”는 증언을 이끌어냈다.
정경심 교수 편에서 증언했던 장경욱 교수와 김 모 조교 등이 그 증언의 결과로서 학교 내외에서 감내해야 했던 정신적 폭력과 모욕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일부는 그 수모를 견디다 못해 학교를 떠나야 했고, 그 중 김 모 조교는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정경심 교수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던 동양대 장경욱 교수(사진 가운데)와 동양대 직원 및 조교들은 동양대 내외서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을 받아야 했다. 영화 '그대가 조국' 중
檢·言의 공격으로 오염되는 증인의 기억
검찰과 언론의 공격은 증인을 단순히 위축시키는 것을 넘어, "언론의 보도를 보니 조국 장관과 정경심 교수에 대한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는 식으로 그들의 인식과 기억을 오염시킨다.
네 번의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조국 전 장관 일가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수 있는 많은 관계자들은 증언 요청에 대부분 손사래를 쳤다. 대부분 단순한 불이익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겠지만, 일부는 검찰과 언론의 융단폭격의 결과로 “조국 전 장관과 정경심 교수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매몰차게 등을 돌리고 자신의 기억을 부정했다. 그 중에는 결정적인 증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재판에서도 이러한 폭력적 프레임은 그대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학교 담임선생님은 부모님 다음으로 따뜻하고 자상한 존재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의 아들 조원 씨의 학교생활기록부가 주요 쟁점 중의 하나였던 이 재판에서, 조원 씨의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들은 잔뜩 위축된 자세로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를 연발했다.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을 물어보니 “모른다”고 대답하고,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실제로 기억이 희미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정확하게’ 답변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저변에는 “혹시라도 잘못 얘기했다간 교사로서의 신분에 불이익이 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어쩌면 나도 허위 서류를 받고 생활기록부 처리를 잘못한 것일 수 있다”는 불안과 잠재적인 원망이 깔려 있었다.
그런 태도의 실체가 무엇이든, 혹은 간혹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언이 있더라도, 이러한 증인들의 불명확하고 애매한 자세는 재판부에게 “오죽하면 담임선생님들까지 저렇게 자신없이 얘기할까”라는 심증과 예단을 갖게 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1심 재판은 이런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