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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모래 위의 글자☆]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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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의 글자]
권택명 옮김 / 시미즈 시게루 시집 / 시와표현시인선 013 / 시와표현(2016.02.05)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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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시 ]
모래 위의 글자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밝은 햇살이 있는 해변,
누구인지 사람 그림자가 하나, 그것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아니면 어린애인가,
그밖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몇 번의 지진과 산 같은 해일, 폭풍과 기근,
그래도 지치지 않고 갈등은 지속되고,
도시는 파괴되고, 살육은 되풀이되었다,
단 하나뿐인 사람의 그림자는
나무토막 한 개를 손에 잡자
모래 위에 무언가 글자를 쓰기 시작한다.
글자는 끝없이 이어져 간다.
회상처럼 한없이, 바람이 살랑이는 가운데,
숱한 고통과 슬픔이
이제 그곳에는 없는 숱한 남자와 여자의
비참한 경험이 상기되어서.
무너진 벽 그늘에, 그래도 웃는 얼굴은 없었던가?
그렇다, 숱한 기쁨과 축재축제 또한
비참함의 사이에 있었고, 그 또한
환상처럼 진실이기는 한 것이었다.
이제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시가
지금은 해변 가득 기록되어
춤추고 있는 아이들처럼
조개껍질이랑 해초와 장난치고 있다
그리고, 파도가 밀려와서
모든 것을 바다로 되돌린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밝은 해변,
어디까진지 바람이 건너간다.
세상의 물가에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저녁이 밀려온다
세상의 물가에는 아직
조약돌이랑 조개껍질의 엷은 색채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숱한 것들의 윤곽은
이미 풀어져서
파도 소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건 파도소리일까?
그건 세상의 끝일까,
저 한 줄기의, 희미한 흰 선 같은 것이
호弧를 그리며 보이던 곳은?
바로 조금 전까지.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그 목소리는 파도가 어디론가 데려간 것일까?
흰 호가 사라져간다.
무수한 것들의 수런거림이 동일해진다.
마치 침묵과도 같이.
아침의 나라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꿈의 비탈길을 끝까지 오르면
이윽고 시야가 열리고
그 앞에는, 아침의 나라가 있을지 모른다.
그곳에는 당신이 있고
「이제 혼자가 아니므로
그리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누구였던가.
깊은 꿈속을 찾아가면서
되풀이해서 생각해 보았지만
당신이 누구인지는, 그리고 또한
그 곳에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내 괴로움이란 무엇이었던가.
살아있는 것이 꿈인가?
이윽고 시야가 열리고
아침의 나라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림자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빛에는 어떤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므로
모든 존재의 배후에는
일종의 심연深淵이 있고, 그것은
무한량의 어둠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배후에도 그대의 배후에도
어떠한 시산도 보이지 않게 하는 어둠이…
그 때에는 일순, 배후에
넘어지면, 우리는 그대로
무無에 빠질 수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모든 사물과 존재는 무슨 까닭인지
가장 어둡고, 거무스름해진 돌에 이르기까지
거의 무無로 혼동한 정도의
그 곳에 있는 그 돌에 이르기까지,
틀림없이,
비록 조금이라고 해도
자신이 받은 빛을 반영하고 반사하여,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닌
타자가 짊어지고 있는 어둠을,
또 하나의 그 거무스름해진 돌 배후의, 그 심연을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약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곳에 있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 심연이
다만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그 위를
그대가 밟고 건너갈 수도 있는 거다.
반쪽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말의 반쪽이 모자란다고,
왠지 생각하며
그것을 찾으러, 어둠에 나와 보면
저쪽에서, 꿈길을
이쪽을 향해 오는 그림자가 있다
그것은 틀림없이 나의 말을 찾아서
어디서부터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나닐까 하고
나는 어렴풋이 기대하지만
어둠의 그림자는 그대로
다시금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다.
말은 아직 반쪽밖에 없으므로
우리들처럼
분명, 언제나 자신과 비슷한
남은 반쪽을, 어딘가에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없을지도 모르는데도,
있는 것은 꿈의 그림자뿐일지 모르는데도.
한 개의 돌이 되어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조금씩 세월이 감에 따라
한 개의 돌이 되어가는 건가 하고 생각한다.
일부분은 이미 흙에 묻혀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다.
때로 부러진 가지 끝에 어깨가 찔려 상처를 입고
흙먼지를 정면으로 뒤집어써서 눈을 감으며
한 개의 돌이 되어가는 건가 하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내 표면을 들여다보면
쉽게 독해되지 않는 글자나 표지가
이끼나 담쟁이덩굴 사이로, 이미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은 안쪽에서 표면으로 떠오른 것인 듯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마도, 그곳에 쓰여 있으리라.
새벽에도 저녁에도
이렇듯 땅의 한 구석에 몸을 두고 있으면
한 개의 돌이 되어가는 건가 하고 생각한다.
사라져간 숱한 사람들의
차고 넘칠 만큼의 사념이 항상 깃들어 있어서
때로는 소리도 없이 지나가는 바람에
뜨겁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을
슬며시 듣고 있기 때문일까?
배처럼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머지않아 부두를 떠나는 배처럼
미지의 것에 뱃머리를 향한 채
아직 조금 머물러 있는 것,
또는 연안의 가로수 가지 끝에
흔들리고 있는 누래진 잎새 하나,
완전히 저문 하늘에
아직 조금 떠 있는 구름의 붉은 색.
이윽고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극히 사소한 것들이
지금 존재하는 것의 신비함!
출범이 심야라면
내일의 풍경이 다른 것으로 되어
우리 마음에 생겨나게 하는 놀라움,
아니면, 모든 것이 바뀌어도
아직 지속되는 것을 간파하는 우리의 시력.
시시각각의 미래가 끊임없이 현재로
대체되려 하는 것이라면
이 둘의 호칭은 어디서
끊어지고 있는 것일까,
또는, 접안接岸하고 있는 배와
사라진 배 그림자는 어딘가에
배를 붙들어 매는 밧줄을 치고 있는 것일까?
눈雪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문을 열면, 희고, 작은 것들의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밀려온다.
먼 곳에서 금방 왔음에도
응대할 틈도 없이, 그들은 모습을 감춘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어렴풋이 움직였음에도,
결국 말하지 못했던 말처럼,
어딘가 먼 곳의, 어두운 건물 안에서
거의 무언에 가깝게 중얼거린 기도가
저 높은 곳까지 다 올라간 다음에
다시 한 번, 모양을 바꾸어
그 괴로움의 열기를 높은 곳에 맡긴 채
이곳을 찾아온 것인가 하고, 문득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도 희고
너무나도 이 세상 것이 아닌 느낌으로 차 있기에,
어딴 침묵의 언어였던가,
어떤 슬픔을 견디면서 올라간 것인가,
이미 의미를 말하지 않는 작은 존재의 방문이여.
이 허공의 어딘가에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어둠 속에 지친 몸을 누이고
잠을 기다리며 문득 생각한다,
이곳이 아니라도
이 커다란 공허의 어딘가에
은밀히 기쁨이 태어나려고 한다면
그로 인해, 이건 이미 공허가 아니라
의미를 띈 하나의 세계인 거라고.
기다리고 있던 먼 곳에서 소식이 와서
어딘가에 그녀가 마음을 설레며,
공항 로지에서 있을 다음 날 재회의 포옹을
미리 그리고 있을 때는
그 마음에 비추어져 밝아지는 선반 위에
분명, 이미 꽃이 장식되어 있고,
일시적인 부재不在를 대신하여, 이미
또 하나의 현존이 보이지 않은 채로
테이블 옆에서는 느껴지고 있으므로.
모근 것이 그런 식이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반대로 빈 테이블에는
이제 무엇인가 준비되는 일도 없고
그저 그곳에 기대듯이 하여
다른 한 사람이 깊은 부재를
오로지 견디고 있을 때도 있는 거다.
치유되지 않은 마음은 이제 어디로 서두르지도 않고,
옛 편지 다발을 풀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내하고 있는 이 커다란 괴로움이
주위의 공기를 마치 거룩한 것처럼
진동시키기 위해 찢겨지면서도
세상은 단순한 공허로만 있을 수 없어서,
틀림없이 그 곳에 생겨난 부재에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현존으로서의
거부할 수 없는 숨결을 띠게 하고 있다.
지친 몸을 누이면서도
문득 생각한다. 이곳이 아니라도
이 커다란 공허의 어딘가에서
깊은 괴로움에 견디며 지금도
잠들지 못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것은 이미 공허 따위가 아니라
오히려 의미가 퇴색한 하나의 세계가 되어
그것 또한, 어둠 속에서
은밀히 계속 견디고 있는 거라고.
때때로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때때로, 살아 있는 것 이상으로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내가 마음을 기울이는 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그들이 이미 초월해 갔기 때문이다.
갓 시작한 인생조차도
열리기 시작한 문을 재빨리
닫는 듯한 동작을 뒤로하고
바람 속에 웃음소리만을 남기고
사라져간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양한 억측으로 때로는
공포를 상기하여 그러기라도 하듯이
뒷걸음질치고 싶어하는 것을
하나의 여행 떠나는 것으로 받아들여
깊은 생각을 담아 우리들 쪽으로ㅓ
순간, 돌아보았을 때 그들의 얼굴을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것이 비추고 있었던 것을
우리는 생각해낸다. 그들의 발걸음은
이미 우리의 발걸음만큼 무겁지는 않으므로
진창 어디에도
발자취를 남기지는 않지만
아마도 확신을 가지고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만 한다면
우리도 또한 바람 속에 웃음소리만을
남기고 갈 수가 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빛인 것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빛 속으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빛 속에서
나온 것인가?
그리고, 언젠가 다시 한번
갑작스럽게 또는 천천히,
그 때가 오면 나는
빛 속으로 나가는 것인가?
아니면 빛 속에서
나가는 것인가?
어둠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대로 빛이고,
세상의 심연深淵 밑바닥까지
빛으로 가득 차 있다면
시작과 끝이 갈라놓는
세 개의 펼쳐짐은 아마도
시작과 끝을 둘러싸서
그곳에 그대로 빛으로서
끝없이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빛 그 자체는 다만 그곳에 있을 뿐,
행복도 불행도 아닌 것으로,
기쁨도 고통도 아닌 것으로.
나의 발소리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달리고 있는 자신의 발소리가 들린다,
길은 이미 어둡고
집은 아직 먼데
함께 있어야 할
친구의 모습은 이미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자신만 작은 발로
아직 달리고 있는 건가,
참을 수 없게 된 눈물이
조금만 더 있으면 목소리로 변하여.
꿈의 정경이었던가,
아미면 기억의 밑바닥에 숨어 있었던가,
반세기 이상의 세월 저 편에서
달려오는 작은 절망의 모습이
느닷없이 보인다.
돌아가야 할 집이 어디에 있는가,
아이들은 알고 있는가?
젖은 시야에 떠오르는 저 창에는
어째서 등불이 켜져 있는가,
그곳은 아직 자신의 집이 아닌데도.
발소리가 내 쪽으로
달려온다, 눈물을 뿌리면서.
나는 너를 맞이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몇 번이나 길은 막히고
너는 밤 속에서 때때로
외톨이로, 그래도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멀리 여기까지 달려온 건데.
그때였다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언제나 그랬다, 그 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친구도 없고 가족도 동행하지 않는 나 홀로 여행이었다,
보이는 것 모든 것이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의 중심으로 흘러 들어와
멈출 수도 없이 깊은 곳까지 떨어져 와서
영혼의 피부에 따끔따끔 스쳐오는 것이었다.
낮 동안의 거리를 밤처럼 어둡게 하는 비,
양쪽의 건물은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거대한 벽을 잇대어놓은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세상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도, 세상 그 자체 속에 있었던 것일까?
그치지 않는 비는 옷에 스며들고 피부가 비치게 하며
마음까지 차갑게 두드리고 있었다.
분명 그 비참한 여행길이었던 거다.
내가 세상의 말없는 아픔을
통째로 이 몸에 받아
진정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
어떤 것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모습을 안 것은.
어제의 구름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어제의 구름은 어째서 저토록 급한 걸음으로
서쪽을 향해 도망쳐갔는가.
그 주위를 한동안
선회하고 있던 검고 무수한 점도
어딘가로 사라져 없어진 후위
아직 땅거미에 완전히 갇히지 않은
그 때, 구름은 마치
시간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엷은 장밋빛에서 황금빛으로
이윽고 짙은 보랏빛으로
자기자신을 숨기고 자기자신을 변용시키면서
이미 어두워진 마을 위쪽을
더욱 어두운 숲 훨씬 위쪽으로
계속 달음질쳐 사라져 갔다.
멈춰 있거나 한다면 시간에게
붙잡혀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사라졌다.
모든 것을 쫓아 버리고
시간은 그 곳에 남은 세계를 푹
검은 천으로 덮어 감싸 버렸다. 하지만
천에는 무수한 구멍들이 뚫려 있고
무언가 시간의 뒤쪽에서
신호 같은 것이
아주 멀리이긴 하지만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
사라져 버린 게 있을 때는
희미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재회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죽은 사람들은
이 세상의 규칙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변환하는 모습을 얻었으므로
당신이 고뇌하는 것 같은 건
이제 아무 것도 없다.
머지않아 자신이, 다시 한번
저 편에서 만날 수가 있어도
그 사람은 나를
정말 알 수 있을까 하고
당신은 매우 신경이 쓰이는 듯하다.
그토록 젊어서 그 사람은 죽었는데
이토록 나이가 든 자신을 어떻게
나인 줄 알 수 있을까 하고 당신은 말한다,
만나고 싶지만 매우 두렵다고.
하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이미 나이 따윈 없고
그때그때 서로 간에
가장 추억이 깊었던 지난날의 모습을
그 몸에 걸치고 하얀 길 도상途上에
재회의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므로
당신이 염려하는 것 같은 일은
필시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는
당신도 또한 옛날 그대로이므로,
그 재회 역시 가령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점에 서서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작은 한 장의 스케치를 꺼내 본다.
솔로 문지른 검은 잉크가 베어든 것이
눈물자국처럼 종이 위에
흘러가다 멈추고 다시 흘러간다.
그때부터 얼마만큼의 세월이 지났을까,
엄동의 추위 속에서 온통 얼어붙고
그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던 강의 흐름도
지금은 정적 속에 갇혔다고 한다.
기억도 또한 깊이 갇히어
지난날 전란의 아비규환도
피바라도 지금은 잊혀진 것처럼
꿈의 옷을 걸치고 있는 것일까?
오로지 눈 덮인 들판을 생각하는 새 한 마리
황량한 저편 기슭으로 날아가는 것이 환상처럼 보인다,
자유로운 존재처럼 어쩌면 언제든지
희망은 있다는 말을 전하기라도 하고 싶은 것처럼.
장소의 기억이란 무엇인가, 동토 속에
묻혀 여전히 무엇인가가 구전되어 갈 때,
계절이 찾아오면 그 곳엔 들꽃이 피고
양쪽 기슭에 사람들이 돌아와서
서로 손을 흔들 날도 있을 것인가?
숲길에서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눈 뜰 일이 없는 흙의 잠 밑바닥에서
내 것이 아닌 눈뜸이
먼 저 편의 오는 아침
희미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가 이미 보고 있지 않은 그 아침의
빛에 이끌려 누군가가
새로운 하늘에 흐르는 색깔을 보고 있다.
숲길의 지나간 시간의 그늘에
이윽고 열리는 몇 개의 미래가 보인다.
겨울 동안에도 눅눅한 퇴적은
작은 생명을 계속 유지해온 거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이곳에는 있다고
누군가에 전하는 것 같지도 않게.
이리하여, 깊은 잠의 퇴적이 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온화한
지고至高의 임무로 인정을 받는다.
마른 잎 옆에 마음을 눕힐 때.
숲길 안쪽에서 3월의 바람이 반짝인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얼마나 숱한 것들이
말없이 나를 지탱하고 있는가 하고.
그리고 또한 엄청나게 멀리서부터
우주 저 편의 벼랑에서 자신이 거쳐 온
여로의 길이를 생각한다, 이미 스스로는
생각해낼 수도 없는 많은 것들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가지가지 경험들을
지금, 여기까지, 지니고서.
보잘것없는 내가 자신의 두 손으로
어수선하게 축적했을 뿐인 기억 따위
아마도,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그것도 잘 보면 거기에는
가장 먼별 조각의
숨결의 리듬에서 오는 신비한 반짝임이
엿보이기도 히는 것이다, 스스로는
이제 그것을 어디서 몸에 지니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존재하는 것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바람이 불고 있다.
머지않아 해가 저물려 하고 있다.
「이 지상에서 사라진 후
벌써 얼마나 되었는가」라고
누군가가 바람 속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면
묘지 저편에는
나지막한 숲이 있을 뿐
묘지 표석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아무튼 한 번은
이 세상에 존재해서 좋았다」고
목소리는 연이어 말했다.
고통은 없었는가,
탄식은 없었는가,
몇 갠가의 이별이 점차 주변을
어둡게 한 적도 없었는가,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이곳에 존재하는 것을
기적이나 무엇인 것처럼 목소리의 주인은
받아들이고 있었던가?
그것은 기쁨이었던가?
풀밭 저 편의 나지막한 숲 위에서
하늘이 엷은 제비꽃 색으로 물들고
석양은 여느 때와 같이
먼 시간의 저 편의 바람이
지금, 여기에 불고 있다.
겨울날에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겨울 마른 숲 속에
지금은 땅을 가득 채우고는 꽃의 기억도 없다.
옛적, 어린 아이들이 걸어가면서
울려 퍼뜨리던 웃음소리도 어딘가
하늘가로 사라지고
그저 공허만이 길을 덮은 채
멀리까지 펼쳐져 있다.
어디로 숨어 버렸을까
어디로 간다고도 들은 바가 없는
지나간 나날의 그 신비한 언어여!
겨울날의 침묵 속에서 누가 가르쳐주는가,
그 신비한 언어를? 저녁마다 붉은 구름이,
아니면 엄청난 재해나
무시무시한 수많은 항쟁을 통과하여
먼 곳에서부터 돌아오는 샤들의 무리가,
세상과 우리 자신이 이처럼
기이 곳에 존재하는 것은 풀기 어려운
기적이라고
한 번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새들의 지저귐, 저녁 하늘의 장미처럼.
봄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희부옇게 밝아오는 하늘아래서
다시 한번, 이 계절을
함께 맞이하는 건
말할 수 없는 행복, 다만 그뿐인 것.
꿈이라기에는 사물의 유곽이 분명하고
현실이하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모든 게 변하기 쉬운 것처럼
우리 앞에서
시야의 끝은 멀리 물러간다. 하지만
지나온 그 먼 곳에서
이쪽을 향해 돌아보면
우리는 한참 멀리까지
걸어온 것으로도 생각된다.
봄의 호숫가 다가와서
대기는 지금 고운 향기로 가득차고
몸을 굽혀 보면 대지는
꽃의 포말이 여기저기서 움직이고 있다.
오래 인내한 시간의 약속이 이 아침
실현을 향해 기울어져가는 걸 알게 된다.
세월의 가장자리를 따라 정말
멀리까지 걸어온 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 계절을
함께 맞이하는 건
말할 수 없는 행복, 다만 그뿐인 것.
피하기 어려운, 머지않은 이별의 예조가
밝음 속에 머물고는 있지만.
시詩
시미즈 시게루 詩 / 권택명 옮김
더 싱싱하고, 더 순한
맛깔스러운 과일을 당신에게
내드리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는데도
내 손이 닿는 탓으로 저 가지 끝의 것과는
이미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것이 돼 버려
거의 그것은 단순한 추억 같다.
당신의 손을 이끌고「이것 봐요, 이게 그거예요」라고
바로 당신이 따도록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지만,
대지와 뿌리와 바람과 가지와의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참다운 모습이
빛을 받으며 그곳에 있으므로.
그럼에도 당신은 내 손에서
과일만을 받고 싶다고 말한다. 틀림없이
나의 조심스러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내가 계속 숨겨오고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아니면 당신이 몸을 두고 있는 곳에는
같은 과일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일까?
거의 모든 과일, 짙은 잎새 그늘에
엷은 홍자색과 동일하게 엷은 황록색을
녹여 섞은 과일이 가지가 휘어지게 맺혀 있는 모습은
그것만으로 황송한 세계 그 자체이지만
내가 그것을 통째로 언젠가는 내드릴 수가 있을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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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 한국어역 시집 발간에 부쳐
경애하는 김남조 선생님의 뜨거운 격려와 지도, 그리고 친애하는 권택명 시인의 따뜻한 우정과 도움에 힘입어, 이번에 저의 첫 한국어역시집『모래 위의 글자』를 상재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먼저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인생에서 이런 꿈이 실현되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돌아보면, 한일 양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서로 밀접한 문화교류를 이룩해왔지만 근대에 이르러 일본의 잘못된 식민지 정책이, 한국 국민들께 다대한 어려움과 고통을 강요한 사실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또한 시인으로서, 이 기회를 빌려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언어 예술에 관계하는 사람으로서는, 한국의 여러분들게, 자국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강제한 시기의 경험이, 얼마나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에 새겨져 있을까 하고, 저 자신 깊은 고통을 느끼며 공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일본시인클럽 회장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2011년 가을에 김남조 선생님을 비롯한 한국의 시인들께서 일본을 방문해 주셨고, 그 다음해 가을에는 일본 시인들을 서울로 초대해주셔서, ‘문학의 집 서울’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가운데, 한층 더 교류를 깊게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또한 이때의 한국 방문은 진정으로 우리 시인들에게는 서로 간의 마음을 가로막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감을, 새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시인이란 오직 ‘인간적 진실’과 연계되는 것을 그 책무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진실’은 다양한 민족이나 언어, 문화나 종교, 또는 생활습관의 상이 등을 넘어, 우리를 협력과 조화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점을 믿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에는, 너무나도 많은 갈등과 항쟁이 있으며 불행이나 비참함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런 까닭에 더 한층,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희망의 징조를 시의 언어 속에서 계속 탐색해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한, 시를 쓴다고 하는 행위를 통해, 존재의 궁극적인 긍정에 이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며 기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우주가 존재하고,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들과 당신들, 그리고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 이것만큼 자명하면서 이것만큼 놀라운 일은, 저로서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애초부터 우주가 존재하지 않고, 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필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이 신비를 계속 질문해가는 것이, 언제부턴가 저에게 세계의 깊은 곳에 언어의 추를 내리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충분한 성과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의 작은 열매로 받아주시면 기쁘겠습니다.
김남조 선생님의 따뜻하신 배려와 권택명 시인의 수고로, 이번에 간행되는 이 한 권의 시집을 읽게 되시는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이 기회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2015년 가을
시미즈 시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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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택명 옮김 / 시미즈 시게루 詩集 [※모래 위의 글자※]
[ 해설 ] -
존재와 시간 -「유한성」을 넘어서는 긍정과 희망의 시학
권택명
시미즈 시게루淸水 茂 시인은 창작과 평론을 함께 하며 일본의 대표적 시인 단체 중 하나인「일본시인클럽」의 회장을 역임한 저명한 원로 시인이다. 또한 명문 와세다早稻田대학의 명예교수인 불문학자이고,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가지 서양화가이며,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탁월한 예술인이자 일본 시단 내에서 온후한 인품으로도 존경 받고 있는 대표적 지성知性이다.
이번에 한국어 번역 시집 발간을 위해 특별히 자선해 보내온 100편의 시편들은, 동서양의 예술과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시인의 식견과 감성이 팔순의 연조와 더불어 매우 깊고 넓은 층위로 심화 ․ 확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정수精髓이다. 생애에 걸쳐 치열하게 예술과 문학, 시 창작과 씨름해온 노 시인의 깊은 내면에서 형성된 심혼의 결정체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번역을 위해 그의 시편들을 여러 번 꼼꼼히 읽고 났을 때 필자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앙드레 지드의『좁은 문』에 나오는 한 구절이었다. 읽은 지 오래 되어 확인을 위해 다시 찾아 본 그 구절은 아래와 같이 되어 있었다. 여주인공인 알리사가 서로 애틋한 연정을 품고 있는, 시를 쓰는 사촌 남동생 제롬에게 보내는 편지 중 한 구절이다.「‘위대한 시인’이란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 ‘순수한 시인’이라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좁은 문」104쪽. 앙드레 지드. 오현우 옮김, 문예출판사.2014)
물론 이 말은 시미즈 시게루 시인이 ‘위대한 시인’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다. 필자의 방점은 ‘순수한 시인’이라는 말에 있다. 이때의 ‘순수’는 ‘진실’과 유의어이며, 이는 시미즈 시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어린아이’라는 어휘와도 연관되는 것이고, 이 시집의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는 그의 시 정신과도 맥락이 닿아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시인의 시작詩作 태도와 시에 대한 관점, 그리고 그가 천착하는 시 세계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란 오직「인간적 진실」과 관계되는 것을, 그 책무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진실」은 다양한 민족이나 언어, 문화나 종교, 또는 생활습관의 상이 등을 넘어, 우리를 협력과 조화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점을 믿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에는, 너무나도 많은 갈등과 항쟁이 있으며, 불행이나 비참함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런 까닭에 더 한층,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희망의 징조를 시의 언어 속에서 계속 탐색해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한국어역 시집에 부치는 시인의 말에서
「시인이란 오직 ‘인간적 진실’과 관계되는 것을 그 책무로 한다」는 말은, 시가 본질적으로 인간과 그 근원에 관계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과장이나 허위, 왜곡이나 변질이 없는 진실한 상태, 즉 순수함이나 순전함과 연계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견해로 볼 수 있다. 환언하면, 공자가 시를 두고 말한,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는 것(思無邪)」이고, 존재의 본질이나 근원 또는 인식과 연관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시미즈 시게루 시인의 시를 읽고 나면, 맑고 깊은 눈을 지닌, 철학자와도 같은 무구無垢한 구심점의 시인, 또는 절대자 앞에 선 겸손한 구도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의 이런 모습이 실제의 작품으로 표현되는 양상을 보기로 한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내가 알지 못하는 얼마나 숱한 것들이/말없이 나를 지탱하고 있는가, 하고/그리고 또한, 엄청나게 멀리서부터/우주 저 편의 벼랑에서, 자신이 거쳐온/여로의 길이를 생각한다. 이미 스스로는/생각해낼 수도 없는 많은 것들의/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경험의 가지가지를/지금, 여기까지, 지니고서//보잘것 없는 내가, 자신의 두 손으로/어수선하게 축적했을 뿐인 기억 따위/아마도, 아무것도 아니겠지만/그것도 잘 보면, 거기에는/가장 먼 별 조각의/숨결의 리듬에서 오는. 신비한 반짝임이/엿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스스로는/이제 그것을 어디서 몸에 지니게 되었는지도 모른 채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전문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며 현존現存과 그 근원을 상고하는 존재론적 인식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생각한다’는 단어는, 이 시집의 다수 작품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인간과 사물, 우주와 자연, 동 ․식물 등 모든 존재 자체 또는 존재의 원점과 시원始原으로 향하는 시인의 시선을 이끌어내는 어구이다. 따라서 그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이자 존재의 밑바닥에 닿고자 하는 사색이며 지속적인 반추反芻의 깊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시인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하는 겸허한 표현과 더불어, 그러한 시인「두 손으로 어수선하게 축적했을 뿐인 지상의 삶의 기억 따위는 아마도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그것들을 잘 보면 거기에는 가장 먼 별 조각의 숨결의 리듬에서 오는 신비한 반짝임이 엿보이기도 한다」고 쓰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자칫 추상적․ 관념적으로 흐르기 쉬운 작품의 흐름을, 구체적인 심상心象으로 견고히 잡아주고 있다. 추상과 구상, 관념과 실체의 균형을 취하는 시적 형상화의 탁월함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이와 같은 존재론적 바탕 위에서, 집요하게 현존 또는 실존을 파고드는 시인의 자세는, 「때때로 생각한다, 어째서/나는 이곳에 있는 걸까, 하고/처음부터 내가 없어도/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그곳에/공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마치 평온한 수면처럼」이라고 하는「평온한 수면처럼」이나, 「오늘 아침,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우리가 몸을 두고 있는 이 세상은/어째서 이토록이나 작고/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의 모습은/이토록이나 급한가 하고」라고 하는「오늘 아침,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등의 작품들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생각」즉 사고思考는 시인이 세상과 세계를 인식하는 실마리인데 시미즈 시게루 시인의 경우, 우선 시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응시와 인식에서 시작하여, 가까운 사물이나 자연 등으로 그 앵글과 외연이 확대되어가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더불어 시적 방법론상으로 볼 때 시미즈 시인은 여러 시편에서 부단한 질문자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시인의 포즈는 그의 접근 방식이「신중함」또는 대상에 대한 외경을 포함한「겸손함」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러 작품에서 “아련함” “어렴풋함” “희미한” “얼만큼의” 등의 수식어가 빈번히 등장하는 것과, 숫자인 경우에도 “하나” 또는 “몇 개” 등 소량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 역시, 시인의 이런 자세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질문형이 아닌 서술형의 작품에서도 선지자나 선각자 연하는 제스처가 없다는 점에서, 앞부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시인의 「순수(진실)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시를 통해 존재와 삶의 진실에 다가서려는 시인의 시선이 잘 드러나는 작품을 두 편 살펴보기로 한다.
바람이 불고 있다/머지않아 해가 저물려 하고 있다/「이 지상에서 사라진 후/벌써 얼마나 되었는가」라고 누군가가 바람 속에서/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돌아보면/묘지 저 편에는/나지막한 숲이 있을 뿐/묘지 표식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아무튼 한 번은/이 세상에 존재해서 좋았다」고/목소리는 연이어 말했다//고통은 없었는가/탄식은 없었는가/몇 갠가의 이별이 점차 주변을/어둡게 한 적도 없었는가/몇 갠가의 이별이 점차 주변을/어둡게 한 적도 없었는가/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을/이곳에 존재하는 것을/기적이나 무엇인 것처럼 목소리의 주인은/받아들이고 있었던가?/그것은 기쁨이었던가?//풀밭 저편의 나지막한 숲 위에서/하늘이 엷은 제비꽃 색으로 물들고/석양은 어느 때와 같이/먼 시간의 저 편 바람이 지금, 여기에 불고 있다
-「존재하는 것」전문
내가 지나간 후에/여전히 존재하는 세상/짓밟혀 어지럽혀진 터를/능란하게 정리하고/그 후에, 다시/무수한 생명을 소생시키는 대지/바로 가까이에서는/달의 이동에 힘을 쓰고/먼 안쪽에서는 성운星雲을 아로새기는 밤/이들 어둠이나 대지, 세상은/먼 시간 속에 있는가?//하지만 어떤 바람이/불어 지나갔는지를/아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지나간 것들이고/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이다//그리고, 자신도 또한/바람에 날려서/지나가는 존재임은/알고 있는 영원이/모조리/목격한 모든 걸 잊지 않으려고/이렇게 애쓰고 있는 건/그것으로, 사라지는 것에 대한/전별을 준비하기 위한 것인가/지나가는 세상과 대지/달과 성운을 위한
-「지나가는 것」전문
「존재하는 것」과「지나가는 것」으로 제목을 달리 하고 있지만, 실상은 존재하는 것은 결국 지나가는 것이고, 그 대상이 지나가도 또 이 지상에는 남아 있는 것이 있다는 순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스미즈 시게루 시의 핵심 테마 중 하나인, 존재의 현존과 부재, 소멸과 생성,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 있는 꿈과 환상이나 사랑까지가 하나로 묶이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울러 묘지와 숲, 풀밭, 하늘, 제비꽃, 석양, 달, 성운, 바람 같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상관물들이 추상적 개념과 진술의 밸런스를 취해주고 시어들 간의 긴장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점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미즈 시인의 세심한 시적 기법이다.
한편으로 시인이 자주 불러오는「바람」이라는 존재가, 내향적이고 관조적 분위기를 지니는 이 두 작품의 흐름 속에서, 동적인 자극이나 변화의 힘을 가하는 것 또는 존재의 불안정을 유도하거나 상징하는 매개체로서, 시적 전개의 전환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점에도 주목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존재와 본질, 근원에 대한 시인의 끈질긴 탐색은, 대부분「시간」의 흐름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에, 하이데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존재」와「시간」은 인간의 중요한 관심사이고, 시인에게는 더더욱 간과할 수 없는 테마이다. 특히나「인간적 진실」에 깊이 닿기를 희구하는 시미즈 시인의 작품 속에, 여러 계절을 나타내는 작품들과 더불어 “순간”이나 “시간” “세월” “각일각” “시시각각” “어제” “오늘” “영원” 등의 시간 관련 언어들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우선 두 편의 작품을 살펴보기로 한다.
어제의 구름은 어째서 저토록 급한 걸음으로/서쪽을 향해 도망쳐갔는가/그 주위를 한동안/선회하고 있던 검고, 무수한 점도/어딘가로 사라져 없어진 후의/아직 땅거미에 완전히 갇히지 않은/그 때, 구름은 마치/시간을 두려워하는 것처럼/엷은 장밋빛에서 황금빛으로/이윽고 짙은 보랏빛으로/자기 자신을 숨기고, 자기 자신을 변용시키면서/이미 어두워진 마을 위쪽을/더욱 어두운 숲 훨씬 위쪽으로/계속 달음질쳐 사라져갔다/멈춰 있거나 한다면, 시간에게/붙잡혀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사라졌다/모든 것을 쫓아 버리고/시간은 그 곳에 남은 세계를 푹/검은 천으로 덮어 감싸 버렸다. 하지만/천에는 무수한 구멍들이 뚫려 있고/무언가 시간의 뒤쪽에서/신호 같은 것이/아주 멀리이긴 하지만,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사라져 버린 게 있을 때는/희미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는 걸/전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어제의 구름」전문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나는 쓰고 있는 건가/마치 소멸에 저항이라도 하듯이/언어를 엮어간다//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을/진정으로 남기고 얻었는가?/존재한다고 하는 행위는 그대로/운반돼 가버리는 것에 대한 이의신청이다//진정 써야 할 것/그것은 이들 모든 것의/신청에 귀를 기울이는 거다/여름 끝 무렵의 들에 호랑나비가 날고 있다//놀다 지친 어린아이는 탁자에 기대어/꾸벅꾸벅 졸고 있다. 머지않아 석양/옛날과 다름없이, 하늘은 열심히/내일을 계속 나르고 있다//분명 ,진정으로 써야 할 것 따위/아무 것도 없다 존재한다고 하는 것의/풀기 어려운 신비를 초월하는 건/아무 것도 없으므로, 그래도//하늘에 흘러가는 주황색의 한 자루 솔처럼/백지 위에 글자를 늘어놓는다/글자는 나비 날개를 닮아 있을까/어린아이가 꿈속에서 웃고 있다
-「석양에」전문
역시 시미즈 시인의 시 속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술어들인 “사라져 간다”와 “떨어져 내린다”(이 외에도 “돌아간다” “운반되어간다” 등의 유사한 술어들이 사용되고 있다)가 교차되면서, 의미의 변주를 하고 있다. 아울러 호랑나비, 어린아이, 하늘, 나비 날개 등의 구체적 사물들이 연결고리가 되어, 추상적인 시의 흐름에 긴장도를 주는 시적 기법도 역시 함께 구사되고 있다.
구름이나 석양, 황혼 등의 어휘들도 시미즈 시인이 즐겨 사용하는 조사措辭인데, 모두가 시간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존재의 항존성을 부인하게 하는 것들이다. 떨어져 내리고 사라져가는 것은 죽음과 소멸을 의미한다.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이 이와 같은「유한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시미즈 시인의 경우 이 자각이 때로 어둡고 공허한 것이라고는 인식하지만, 비탄이나 절망으로까지는 내려가지 않는 점이, 그의 특징적인 세계(“세계” 또는 “세상”이라는 어휘도 시에서 자주 등장한다)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사라져 버린 게 있을 때는/희미하게 드러나는 것이 있다는 걸/전하고 싶었기 때문일까?」라거나,「옛날과 다름없이 하늘은 열심히/내일을 계속 나르고」있다는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보이고,「어린아이가 꿈속에서 웃고 있다」고 하는 긍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가을」이라는 작품에서는, 가을의 경건한 분위기를 표현하면서「근원적인 것으로 돌아가기 전의/이런 시간에는/분명하고, 커다란 긍정으로 둘러싸이고 싶다고/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면서,「커다란」이란 수식어를 통해, 긍정성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또한「어둠 속에 지친 몸을 누이고/잠을 기다리며 문득 생각한다/이곳이 아니라도/이 커다란 공허의 어딘가에/은밀히 기쁨이 태어나려고 한다면/그로 인해 공허가 아니라/의미를 띈 하나의 세계인 거라고」하는「이 공허의 어딘가에」같은 작품에서도, 공허(허무)와 부재를 넘어 긍정적 의미를 찾아내는 시인의 일관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존재와 생에 대한 그의 궁극적 사념체계가, 긍정과 희망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서 표출되는 것이리라.
시인이 이처럼 존재와 시간에 대해 긍정에 바탕을 둔 시적 현실을 창조해내는 것은, 자신을 비롯하여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신비」로 보는 인식과 연관된다.(예컨대, 세상과 우리 자신이 이처럼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풀기 어려운 기적이라고 말하는「겨울날에」등의 작품이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은 그의 시적 지향점을 이 시집의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시를 쓴다고 하는 행위를 통해, 존재의 궁극적인 긍정에 이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존재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며 기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우주가 존재하고 그리고 현실적으로 우리들과 당신들, 그리고 내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 이것만큼 자명하면서 이것만큼 놀라운 일은, 저로서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애초부터 우주가 존재하지 않고, 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필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이 신비를 계속 질문해가는 것이, 언제부턴가 저에게 세계의 깊은 곳에 언어의 추를 내리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 한국어역 시집에 부치는 시인의 말에서
아울러, 시미즈 시인은 지난 해 일본에서『시라고 불리는 희망』이라는 제목의 시론집을 발간한 바 있는데, 수록된 글 가운데 특히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을 포함한 「유한성」에 대해 거론하면서, 고대로부터 철학이나 종교가 이「유한성」을 회피하는 수단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왔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견해와 더불어, 자신의 시관詩觀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진술하고 있다.
우리는 이「유한성」이라는 숙명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참으로 자명한 것인 이 기적, 그리고 다음에는 그것이 짊어지고 있는「유한성」이라는 숙명, 그것을 직시하고 확인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다. 표현하고 싶다는 소원을 품는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금 거창한 것 같지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세계(세상)에 대해 타자他者에 대해, 우리가 시도하려고 하는「사랑의 행위」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자와의, 또 세계(세상)와의 관계를 맺는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라고 불리는 희망」211쪽, 시미즈 시게루, 도교 콜색사.2014)
시작詩作 행위를 시인이 세상과 타자他者에 대해 시도하는 관계 맺기이며「사랑의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시를 궁극적「희망」이라고 보는 긍정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는 언술이다. 이는 바로 그가 시에 대해 거는 기대이기도 하고, 시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로 믿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시미즈 시인의 이러한 긍정적 시관이 막연하고 단순한 낙관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가 서문에서 언급한 대로, 갈등과 항쟁, 불행과 비참함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의 세계 속에서「유한성」이라는「숙명」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희망의 메시지 즉 위로와 사랑의 발신이 필요하다는 통절한 자각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래와 같은 시는 이러한 시인의 자세가 감동적으로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싸움/언제 멈출지도 모르는 이 살육/지표에 인간이 있고, 인간이 땅을 쟁탈하고/마을이 불태워지고, 아이들이 끌려간다//자유를 위해서라고 누군가 말하고/사랑을 위해서라고 또 누군가 말한다/아니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더 이상 마을이 불태워지지 않도록/아이들이 끌려가 사라지지 않도록/한 어머니가 탄식을 노래한다//그저 그것뿐인 노래/쓸쓸한 바닷가에서 불리어진 그 노래가/어떤 식으로든 바람을 타고/아니면 새가 건너가는 데 끌리어/먼 산간의 자그만 촌락에 올려서/한 어머니가 같은 탄식을 노래한다//그저 그것뿐인 노래/각각에게 다른 언어로/땅 위 모든 곳의/각각의 마을에서, 깊은 밤 속에서/각각의 고통스런 일을 마친 어머니가/같은 하나의 노래를 부른다//더 이상 마을이 불태워지지 않도록/더 이상 아이들이 끌려가 사라지지 않도록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전문
시를 희망이라고 보는 것은 아마도 시인들의 보편적 시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래 필자가 읽은 책들에서 발견한 아래와 같은 글들 역시, 시미즈 시인의「희망」의 시학과 동일한 관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들로서, 21세기 현대 문명 속에서 시와 시인이 걸어가야 할 여정일 것으로 생각된다.
시 쓰기는 끊임없이 희망하는 방식의 글쓰기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시가 말하려는 희망은 달성되기 위한 희망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로 남기 위한 희망이다. 희망이 거기 있으니 희망하는 대상이 또한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희망이다. 꽃을 희망한다는 것은 꽃을 거기 피게 한 어떤 아름다운 명령에 대한 희망이며, 맑은 물을 희망한다는 것은 물을 그렇게 맑게 한 어떤 순결한 명령에 대한 희망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희망을 단단히 간직하는 일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262쪽, 황현산, 삼인,2015)
진정한 시란 이처럼 패배할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쓰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운명적인 정서, 길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길도 보이지 않지만 그대로 갈 수밖에 없는 태도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런 시의 성격이 어떤 생산적인 의미를 담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가 의미 없는 무용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비록 지금 우리에게 한 편의 시가 지닌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고.「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권성우 작품 해설「시의 힘」290쪽, 서경식, 서은혜 옮김, 현암사, 2015)
그 중에서도 시미즈 시인의 시에 거는「희망」은, 서구 문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동서양의 시를 아우르며, 또한 일본의 전전戰前과 전후戰後를 거쳐 온 대표적 지성으로서, 체험적 시론에 바탕을 두고 견고하게 육화肉化된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존재와 시간을 아우르는 가운데「유한성」의 숙명을 수용하면서도, 그는 시가 지니는 위무慰撫와 치유의 힘을 믿는다. 한계를 초월하는 긍정과 희망이, 부정과 허무의 지평을 넘어 부단히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세계(세상)를 향해 지속적으로「인간적 진실」에 대한 발신을 지속해오고 있다는 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바라기는 이 시집이 번역이라는 미흡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한국의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나아가서는 시미즈 시인이「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점에 서서」라는 작품에서 희구한 것처럼, 남북뿐만 아니라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 관계에서도,「한일 양국의 사람들이 현해탄을 오가며 서로 손을 흔들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끝으로 시미즈 시인이 「시」그 자체에 걸고 있는 기대(긍정과 희망)를 곡진하고 절절한 심경으로 담아 놓은 표제작「모래 위의 글자」를 인용하는 것으로 부족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시미즈 시인의 지속적인 건승․ 건필과 더불어 한일 현대시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원한다.
밝은 햇살이 있는 해변/누구인지 사람 그림자가 하나, 그것은/남자인가 여자인가, 아니면 어린애인가/그밖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몇 번의 지진과 산 같은 해일, 폭풍과 기근/그래도 지치지도 않고 갈등은 지속되고/도시는 파괴되고, 살육은 되풀이되었다//단 하나뿐인 사람의 그림자는/나무토막을 한 개 손에 잡자/모래 위에 무언가 글자를 쓰기 시작한다/글자는 끝없이 이어져간다//회상처럼 한없이 바람이 살랑이는 가운데/숱한 고통과 슬픔이/이제 그곳에는 없는 숱한 남자와 여자의/비참한 경험이 상기되어서//무너진 벽 그늘에, 그래도 웃는 얼굴을 없었던가?/그렇다, 숱한 기쁨과 축제 또한/비참함의 사이에 있었고, 그 또한/환상처럼 진실이기는 한 것이었다//이제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시가/지금은 해변 가득 기록되어/춤추고 있는 아이들처럼/조개껍질이랑 해초와 장난치고 있다//그리고, 파도가 밀려와서/모든 것을 바다로 되돌린다/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밝은 해변/어디까진지 바람이 건너간다
-「모래 위의 글자」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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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명징한 통찰의 유려한 시문학
시미즈 시게루淸水 茂 시인의 작품은 명징한 서정과 탁월한 시기법에 더하여 유려한 시어의 보물창고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 시단의 중후한 원로 시인이면서 정평 있는 불문학자인 이 분의 작품은 뿌리에서 정수리까지를 통찰하는 지혜의 시선을 또한 보여준다.
삶 안에 깃들이는 모든 사물이 그에게 겸손하고 유정한 손님으로 왔었고 낮은 음성의 진지한 담화로 쌓이면서 시미즈 문학의 양분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성숙한 문학의 정리된 미학은 아름다우며 커다란 울림의 감동을 나누어주리라 믿어진다.
- 金南祚
이번에 한국어 번역 시집 발간을 위해 특별히 자선해 보내온 100편의 시편들은, 동서양의 예술과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시인의 식견과 감성이 팔순의 연조와 더불어 매우 깊고 넓은 층위로 심화·확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정수精髓이다. 생애에 걸쳐 치열하게 예술과 문학, 시 창작과 씨름해온 노 시인의 깊은 내면에서 형성된 심혼의 결정체라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권택명(해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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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미즈 시게루淸水 茂 시인∥
∙ 1932년 일본 도쿄東京 출생.
∙ 와세다루早槄田 대학 불문과 교수 역임
∙ 현재 동 대학 명예교수
∙ 일본 시인클럽 회장 역임
∙ 시집 :『샤로운 아침의 파도소리』『물밑의정적』『모래 위의 글자』『시미즈 시게루 시집』등이 있으며,
∙ 에세이집으로『그늘 속의 어스름한 빛』『이브 본느프와 시집』등 저서 및 역서 다수
∙ 서양화 개인전 다수 개최 및 화집도 발간함
▶ 권택명 시인∥
∙시인, 한일번역문학가.
∙ 1950년 경주시 안강읍 출생
∙ 1974년 <심상심상> 신인상으로 데뷔
∙ 시집으로『첼로를 들으며』『예루살렘의 노을』등 5권
∙ 한일, 일한 문학번역서로『한국현대시 3인집-구상, 김남조, 김광림(모리타 스스무 감수)』, 이어령 시집『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사가와 아키 공역)』, 혼다 히사시本多 壽 시집『피에타 Pieta』등 10권이 있다
∙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교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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