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친화적인 전통 코팅제 ‘옻칠’
옻칠은 오랜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천연도료이다. 한비자의 『십과』를 살펴보면 “요(堯)임금 때는 칠이 없어 검소하여 대대로 도를 행하였다. 순(舜)임금 때는 산에서 재목을 베어다 다듬어 칠나무에서 칠을 내 흑칠을 하여 식기를 만들었다. 우(禹)임금은 제기를 만들어 겉에는 흑칠을 하고 속에는 주화(朱畵)를 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보면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옻칠을 써 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옻칠은 옻나무의 수지를 채취한 것으로 화학첨가제 없이 스스로 적절한 습도와 온도 조건에서 경화되며, 경화된 옻칠은 매우 견고하고 높은 내구성을 띤다. 또 고강도, 내열성, 내화학성, 절연성, 항균성, 방수성, 고광택성 등에서 현대 화학제품보다 월등한 부분이 있다.1 이런 특징 때문에 식탁, 밥그릇, 숟가락, 젓가락 등 주방용품과 공예품에 옻칠이 많이 쓰였다.
옛 기록이나 유물을 살펴보면,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백제 초기의 서울 석촌동 고분에서 주칠기(朱漆器)가 발굴된 것을 비롯하여 공주 무령왕릉에서는 채색한 두침·족좌까지 발굴되고 있어, 그 당시 활발했던 옻칠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에는 옻칠이 관수품(官需品)이자 군수품(軍需品)으로 취급된 기록이 있으며, 전국 각 군·현마다 옻나무 그루 수를 파악하여 3년마다 대장에 기록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옻나무과 나무(Anacardiaceae 및 Toxicodendreon family)는 세계적으로 80속, 600종 이상이 존재하지만 오직 3종류의 수종에서만 옻이 채취된다.3 지역에 따라 수종은 Rhus vernicifera(한국, 중국, 일본), Rhus succedanea(베트남, 대만), 그리고 Melanorrhoea usitata(미얀마, 캄보디아, 태국)로 구분되고 화학적 주성분은 서로 다르며 각각 우루시올, 락콜 그리고 티치올이다.
옻칠의 경화는 70~95%의 습도와 20~30℃ 온도의 제한된 범위에서 가능하다.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최근에는 저습도에서도 빨리 경화되는 옻칠 소재 개발 연구가 활발하다. 냉장고, 엘리베이터, 식탁 등에 부착 가능한 하이브리드 옻칠 필름이 개발되면 천연 항균력을 지닐 뿐 아니라 철이나 나무 소재를 보호할 수 있어 일석이조가 된다.
옻칠 문화재의 복원 및 유물의 연대 측정을 위하여 화학적 구조 분석을 통한 원산지 판별이 매우 중요한데, 최근 ToF-SIMS 기법을 이용하여 옻칠 도막의 원산지를 구별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다.4 도료나 코팅제 용도 이외에 옻칠의 다른 중요한 특징은 강한 접착력이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특징을 이용하여 금박 또는 화살촉을 붙이거나 깨진 도자기를 수리하는 데 옻칠을 사용하였다. 옻칠은 수분이 존재해도 접착력을 유지하는데, 분자 수준에서 옻칠의 화학구조를 살펴보면, 물속에서 강한 접착력을 나타내는 홍합 분비물의 화학구조와 유사하다. 이러한 특징을 이용하여 옻칠을 의료용 접착제 용도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산업적으로 광범위한 활용을 위해서는 옻칠의 알레르기 유발을 방지하는 연구도 함께 필요하다.
우리의 옛 발수 코팅, ‘명유’
명유(明油)는 단청의 마감재로 사용한 발수 코팅제이다. 명유는 곰팡이, 습기로부터 단청을 보호했다. 조선왕조 『의궤』, 『경국대전』 중 「공전」, 『임원경제지』 등 다양한 곳에 사용 기록이 나온다. 특히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태조 13권에는 “궁궐을 고쳐 칠하기를 명하였는데, 명유 400두를 썼다”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명유를 제조하는 사람은 유칠장(油漆匠) 또는 유구장(油具匠)으로 불렸는데 이것은 제조나 사용에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지우산(종이우산) 또는 종이 장판에 콩기름이나 들기름을 칠했으며, 무쇠 가마솥에도 들기름을 발라 녹스는 것을 방지했다. 남아있는 자료로 추측하건대, 명유 제조를 위해서는 들깨를 볶지 않고 짜서 생 들기름을 원료로 사용하고, 무명석, 황단 및 백반을 넣어 뭉근한 불에서 끓여 제조하는 것으로 보이나 그 정확한 제조 방법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명유 제조 방법은 오히려 현대 과학을 통해 규명하고 있는데, 분자 수준의 이해를 통해 이 전통 소재를 현대 산업에 다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명유의 원료인 들기름은 요오드값(192-209)이 높은 건성유에 속한다. 화학분자구조를 살펴보면, 글리세라이드의 3개 곁가지에 리놀레산, 리놀렌산 그리고 올레인산 등이 조합된 혼합물이다. 첨가물인 무명석(無名石)과 황단의 주성분은 각각 이산화망간과 산화납이며 고분자화 반응에서 촉매 역할을 한다. 뭉근한 불에서 가열함으로써 공기 중의 산소가 화학반응에 참여하게 되며 산화적고분자화 반응의 결과로 명유가 생성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통문화과학기술연구단에서는 최근 맥이 끊긴 명유의 재현에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현대 과학기술을 적용하여 환경친화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새로운 무독성 신명유를 제조하였다. 이 새로운 제조 방법은 반응의 전환율이 높고 생성물의 색상도 거의 투명에 가깝다.
개발된 환경친화적 신명유는 단청 마감재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옥 코팅제로 사용함으로써 나무의 숨결이 살아있는 모습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고 나아가 습기, 곰팡이, 해충 등으로부터 문화재 보호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1) R. Lu, T. Yoshida, T. Miyakoshi, Polymer Reviews, 2013, 53, 153-191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칠’3) R. Lu, T. Miyakoshi Lacquer Chemistry and Applications, pp 2-3, Elsevier, 20154) J. Lee, J.-M. Doh, H.-G. Hahn, K.-B. Lee, Y. Lee Surf. Interface Anal., 2017, 49,479-487
글, 사진. 한호규(한국과학기술연구원, 명예연구원)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0-08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