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바른 질서는 규율의 뿌리이다
레지오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단원들 안에 규율을 지키는 정신을 기른다.
(가) 회합의 차림은 규정에 따라야 한다.
(나) 하나하나의 임무를 질서 있게 이어나가도록 한다.
(다) 규정에 따라 안건을 정확히 처리한다.
(라) 질서의 원천이신 성모님의 정신이 스며들게 한다.
이러한 규율의 정신이 없으면, 회합은 마치 머리는 명석하나 몸은 마비된 것처럼 힘을 잃게 된다. 쁘레시디움 회합이 힘을 잃어버리면, 단원들을 다스리거나 밀고 나가지 못하며, 그들이 레지오의 조직 안에서 영성적으로 성장하는 데 전혀 도움을 줄 수 없게 된다. 규율이 없으면 단원들은 인간의 본능대로, 될 수 있는 한 통제를 피해 혼자 활동하려 하거나, 순간적이고 변덕스러운 충동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신앙 안에서 무언가 이루어 보고자 헌신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규율에 매이도록 만든다면, 세상에서 비할 데 없이 큰 힘이 그 안에 항상 작용하게 된다. 그리하여 신앙 단체의 규율이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질서 있게 운영되며, 특히 교회 당국자로부터 따뜻한 호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도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레지오는 보화를 지니고 있으며, 그 보화는 바로 규율의 정신이다. 레지오는 이 보화를 외부에 나누어 줄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오늘날 세상은 억압과 자유방임의 두 극단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있다. 이렇게 어지러운 현대 세계에서 레지오가 제공하는 규율의 정신은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화가 아니겠는가. 내적 규율이 없더라도 전통이나 강력한 외적 규율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인이나 단체가 외적 규율에만 의존하고 있다가 위기가 닥쳐와 그 규율이 무너지면 개인도 단체도 곧 함께 무너지고 만다. 이와 같이 내적 규율이 외적 규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적 규율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상 양자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규율이 감미로운 신앙적 동기 안에서 서로 얽히어 적절한 비율로 결합될 때,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 세 겹의 강한 동아줄'(코헬 4,12)을 갖게 되는 것이다.
12. 시간을 지키자
시간을 정확히 지키지 않고서는 "네 왕실의 기강을 바로잡아라."(이사 38,1)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 어떤 단체가 조직원들을 무질서에 젖도록 잘못 훈련한다면, 그러한 단체는 조직원들을 근본적으로 비뚤어지게 만드는 것이며, 더욱이 모든 올바른 교육과 규율의 바탕이 되는 단체에 대한 존경심을 없애는 것이다. 생명처럼 소중한 것을 쉽게 줄 수 있는데도 이를 게을리한다면, 이는 마치 '배를 칠하는 데 드는 몇 푼의 돈을 아끼려다가 배를 썩히고 만다.'는 속담처럼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이 된다.
때때로 탁자 위에 시계가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계가 회합 진행에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또 어떤 경우에는, 회합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마침 시간을 지킬 때만 시계를 보고, 그 외에 활동 보고나 다른 순서를 진행할 때는 전혀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시작 기도에서부터 회합이 끝날 때까지의 모든 진행 순서에 시간과 질서를 엄격하게 지키는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만일 간부들이 이 점을 지키지 않으면 단원들이 충고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단원들 역시 잘못을 거들어 돕는 결과를 빚고 만다.
13. 기도는 정성스럽게 바치자
성급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기도를 바치는 데도 침착하게 하지 않고 서두른다. 그리하여 기도를 잘못 이끌어 가는 한 사람의 부주의가 전체 쁘레시디움으로 하여금 경건하지 못한 태도로 기도를 바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실상 일반화되어 있는 잘못 한 가지를 지적한다면, 그것은 기도를 너무 빠르게 바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은, 성모상이 모셔진 자리에 실제로 바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은, 성모상이 모셔진 자리에 실제로 성모님이 단원들과 함께 계시는 것처럼 여기며 기도하라는 레지오의 지시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14. 기도는 회합과 한 덩이가 되어야 한다
회합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체 앞에 함께 모여 묵주기도를 바친 다음, 각 쁘레시디움 회합실로 가도록 하자는 제안이 나온 일이 있었다. 회합에 대하여 레지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 원칙은 통일성이다. 따라서 이 원칙에 어긋나는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 회합이 하나의 모습으로 통일되어야만 회합에서 다루는 모든 것이 기도의 특성을 지니게 되며, 이 통일된 힘으로 영웅적인 활동과 노력들이 더욱 두드러지게 실천에 옮겨진다. 그러므로 만일 주회합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기도를 바친다면, 레지오의 통일된 힘으로부터 나오는 이러한 기도의 특성을 잃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회합의 성격을 전반적으로 바꿔 놓게 되고, 회합을 바탕으로 세워진 레지오 조직의 특성 그 자체를 변질시킨다. 따라서 이처럼 변질된 조직체는 제아무리 큰 성과를 올린다 하더라도 이미 레지오 마리애가 아닌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를 토대로 할 때,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쁘레시디움 회합에서는 묵주기도를 비롯하여 기도문 중 어느 하나라도 생략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몸이 살아 있기 위해 숨을 쉬어야 하는 것처럼, 레지오 회합에서의 묵주기도는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요소이다.
15. 다른 신심 행사 중에 바쳐진 레지오 기도문
설사 쁘레시디움 회합을 열기 전에 본당 공동체의 다른 행사에서 레지오의 기도문을 바쳤다 하더라도, 쁘레시디움 회합에서는 모든 레지오의 기도문을 새롭게 다시 바쳐야 한다. 그 이유는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16. 회합에서 레지오의 기도문 외에 다른 특별한 기도를 바치는 문제
회합에서 바치는 기도에 어떤 다른 특별한 지향을 둘 수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고 있다. 이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여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다음과 같이 그 원칙을 명확히 해 두고자 한다.
(가) 레지오 회합의 통상 기도문을 특별한 지향으로 바치는 문제 : 회합에서 바치는 기도는 반드시 레지오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성모님의 지향을 위해서 바쳐야 하며, 다른 지향을 둘 수 없다.
(나) 다른 기도문을 레지오의 통상 기도문에 덧붙여 특별한 지향을 도구 바치는 문제 : 레지오의 기도문 자체가 이미 상당히 길기 때문에 다른 기도문을 덧붙여 바칠 수 없다. 다만 간혹 레지오와 관련된 일로 특별한 기도를 바쳐야 할 때가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에 한하여 통상 기도문에 덧붙인 다른 짧은 기도를 바칠 수는 있다. 그러나 추가 기도는 극히 제한적이어야 하며 자주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둔다.
(다) 어떤 특별한 지향을 위하여 기도를 바쳐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이를 단원들에게 알리어 단원들의 개인적인 신심 행위를 통하여 그 지향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