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가자와 재가자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출가자와 재가자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출가자와 재가자 각각의 의미와 범위가 명확해야 할 것이다.
누가 출가자이고 누가 재가자냐고 묻는 경우, 우리는 우선 삭발하고 승복을 입은 스님이 출가자이고 머리 기르고 평상복을 입은 불교신자가 재가자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부처님 당시에나 통용될 수 있었던 구분이다.
불교 발생 이후 약 2600년이 흐른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출가자와 재가자를 구분하는 일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는 대부분의 승려들이 결혼을 한 후 사찰 내에서 가족을 부양하며 신행생활을 하며, 사찰은 물론이고 승려직 역시 세습된다.
한국에도 많은 대처 종단이 있으며, 가정생활을 하는 승려지만 삭발을 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또 현대 사회에서 불교지도자로서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불교학자와 수행지도자, 포교사, 불교운동가 등의 신분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 것인가?
먼저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말하는 일반종교의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 또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와 배우는 학생의 구분을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불교의 성직자, 즉 출가자는 불교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의의 대상이 되어 복전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독특하다.
비단 출가자와 재가자의 구분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서도 불교를 현대적으로 풀어낼 경우, 그 작업은 철저히 불전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현대라는 그릇 속에 불교를 담아서는 안 되고, 불교라는 그릇 속에 현대를 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출가자와 재가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고찰해 보는 본 장에서는 주로 초기불전을 자료로 삼아 그 기준을 확정해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 의거하여 현대 사회 속의 다양한 불교지도자의 신분을 재규정해 볼 것이다.
1) 초기불전에서 말하는 출가자와 재가자
재가자란 부처님(佛)과 가르침(法)과 승가(僧)라는 삼보에 귀의한 사람이다.
더 나아가 삼귀의 후 五戒나 十善戒, 또는 八齋戒를 지킬 것을 다짐한 사람이 재가불자라고 규정되기도 한다.
재가자가 오계를 受持할 때, 오계는 권장되는 윤리지침일 뿐 강제적 규정이 아니다.
오계를 어긴다고 해서 재가불자가 불자로서의 자격을 잃는다든지, 교단에 의해 벌칙을 받는다든지 하는 일은 없다.
한편 출가자는 삼보에 귀의한다는 점에서는 재가자와 동일하나 삭발하고 승복을 입은 후 具足戒를 받는다는 점에서 재가자와 차별된다.
구족계는 재가 오계와 같은 권장사항이 아니라, 강제규정인 승가의 규범이다.
이를 어길 경우 승가로부터 다양한 제재를 받는다.
<四分律>에 나열된 250가지 구족계 각각의 戒目(비구니는 348종)은 다음과 같이 분류, 정리된다.
바라이법(波羅夷法: prajika dhamma) - 4종(성교, 도둑질, 살인, 망어)
승가바시사법(僧伽婆尸沙法: samghadisesa dhamma) - 13종(자위, 무고 등)
부정법(不定法: aniyata dhamma) - 2종(밀폐된 곳에서 여인에게 잡담하는 것 등)
니살기바일제법(尼薩耆波逸提法: nisaggiya pacittiya dhamma) - 30종(여분의 가사를 10일 이상 소유하는 것 등)
바일제법(九十波逸提法: pacittiya dhamma) - 90종(다른 비구를 모독하는 것 등)
바라제제사니법(波羅提提舍尼법: patidesaniya dhamma) - 4종(친척이 아닌 비구니에게 음식을 받아먹는 것 등)
중다학법(衆多學法: sambahula sekhiya dhamma) - 100종(밥을 먹을 때 소리내지 않는 것 등)
멸쟁법(滅諍法: adhikaranasamatha dhamma) - 7종(다툼을 재판하는 방법)
이 중 가장 중한 죄는 네 가지 바라이죄인데, 이를 범한 자는 승가에서 영구히 추방되며, 재출가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① 직접 성교를 한 경우, ② 일정 금액 이상의 재물을 도둑질할 경우, ③ 살인을 하거나 교사한 경우, ④ 깨닫지 못했음에도 깨달았다고 거짓말을 할 경우의 네 가지가 바라이죄이다.
그런데 ‘① 직접적 성행위’는 그것이 邪淫이 아닌 이상 재가자에게는 도덕적으로 전혀 문제시되지 않는다.
재가자의 경우 위에 열거된 다른 모든 조항들을 어기지 않으며 청정하게 살아도, 배우자와 성교를 하기 때문에 출가자인 비구일 수가 없으며, 출가자의 경우는 250계 중 다른 계목은 모두 어겨도 적법한 절차에 의해 제재를 수용하면 승가에서 축출되지 않지만, 4바라이죄를 지을 경우는 승가에서 추방된다.
정상적인 부부관계의 경우 재가자에게는 죄가 되지 않지만 출가자에게는 단 한 번의 음행도 출가자의 신분을 잃게 만드는 가장 중한 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출가자와 재가자를 가르는 가장 근본적 기준은 ‘淫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재가자가 아무리 학식이 높고, 인품이 고매하고, 설법을 잘 해도 부인과의 性生活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상, 결코 출가자일 수가 없고, 갓 출가한 비구승이 불교교리도 잘 모르고, 수행자로서의 인격도 아직 갖추지 못했고, 제대로 설법을 하지 못해도 성교를 금하고 수행생활을 한다면 엄연한 출가자인 것이다.
2) 대승불전의 출가자와 재가자는 보살로서 동등한가?
우리는 부처님을 닮기 위해 신행 생활을 한다.
그런데 부처님의 어떤 삶을 닮고자 하는가에 따라 대승과 소승이 구분된다.
출가 후 성도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현생을 닮고자 하면 소승이고, 본생담에 등장하는 석가모니의 前身, 즉 석가보살을 닮고자 할 경우 대승인 것이다.
법화경이나 화엄경, 대반열반경 등 대승 경전에서는 출가든, 재가든 모든 불자들에게 보살의 길을 갈 것이 권유된다.
보살이란 원래 본생담에 등장하는 석가모니의 수많은 전생의 인격에 대해 붙여진 고유명사였다.
그런데 대승불전에서는, 석가모니의 전생과 같은 삶을 살아갈 경우 누구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자각 하에 보살이라는 고유명사가, 보통명사로 전용되기 시작하였다.
즉, 석가모니의 전생을 닮고자 하는 모든 불교도에게 보살이라는 호칭이 붙여졌던 것이다.
대승불전에서는 불교도의 신행 목표가 모든 번뇌를 제거한 아라한이 아니라 번뇌도 제거하고 지혜와 복덕을 모두 갖춘 부처로 상승하였다.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삭발 출가하여 전문적 수행자의 길을 가야 하지만, 부처가 되는 것은 무량겁 이후의 일이기에 보살도를 닦는 사람이 현생에 반드시 출가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의 재가자들은 보살의 삶을 살 경우 자신들 역시 불교수행의 당당한 주역일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대승이란 그 목표가 원대하기 때문에 大乘(큰 수레)이며, 보다 많은 중생을 실어 나를 수 있기 때문에 대승인 것이다.
이렇게 무량겁 이후의 성불을 지향하고,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자 역시 불교수행의 주역으로 살아가는 대승불교에서는 비구와 비구니를 출가보살, 우바새와 우바이를 재가보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승불교의 출가자와 재가자는 보살로서 평등하다고 보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무량겁 이후의 성불을 지향하며 보살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출가자와 재가자의 수행방법은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보살의 수행법으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육바라밀을 말한다.
그런데 보시의 경우 대소승을 막론하고 출가자에게는 법보시가 권장되고 재가자에게는 재보시가 권장되며, 지계의 경우 출가자에게는 250내지 348계가 附與되고 재가자에게는 5계 내지 8재계, 또는 10선계가 부여된다.
소승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대승불교의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 보살의 삶을 살긴 하지만, 출가와 재가라는 점에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승의ㆍ보살도는 소승적 출가-재가 관계를 파괴하는 수행의 길이 아니라, 소승적 출가-재가 관계에 덧씌워진 #수행의ㆍ길 이다.
보살이란 대승불교가 출현하면서 성립된 하나의 ‘이념’이지 불교도의 ‘신분’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승불교의 출가보살 역시 재가보살에게 가르침을 주고 福田의 역할을 하기 위해 계를 지키며 청정하게 살아가야 한다.
한편, 재가보살은 출가보살에게 귀의하여 시주물을 제공해야 한다.
대승불교라고 해서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3) 불교지도자의 신분에 대한 재검토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다종다양한 불교지도자를 만날 수 있다.
삭발하고 승복을 입은 스님, 삭발은 하지는 않았지만 전문적인 불교지도자로 활동하는 재가자, 불교교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불교학자, 재가자임에도 불교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신행하며 이를 남에게 전해 주는 일에 전념하는 포교사, 불교사회단체에 소속되어 현대사회의 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 참여하는 불교활동가 등등. 그러면 이들 중 누가 재가자이고 누가 출가자일까?
앞에서 검토해 보았듯이, 출가자와 재가자를 구분하는 가장 근본적 기준은 淫行에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라고 해서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근본불교의 신행목표인 아라한이 대승불교에 와서 부처로 바뀌었을 뿐이다.
대승불교도들은 출가자든, 재가자든 <본생담>의 보살과 같이 살아간다.
따라서 대승불교권에 속한 불교지도자라고 하더라도 부부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출가자일 수 없다.
사부대중으로 분류하면 우바새 또는 우바이인 것이다.
대승에서든 소승에서든 출가자란 삭발염의한 독신 수행자뿐이다.
삭발하고 승복을 입고 있든 그렇지 않든 부부생활을 하는 불교지도자는 모두 우바새(또는 우바이)인 것이다.
포교사든, 불교학자든, 불교활동가든 독신 수행하지 않는 이상, 또 削髮染衣하고 출가하지 않는 이상 모두 재가자인 것이다.
이들은 학교에서의 교사, 또는 일반종교의 성직자와 같이 존경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출가자와 같이 귀의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소승에서든 대승에서든 삼귀의에서 말하는 승보는 수다원에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四向四果의 聖人, 또는 비구, 비구니, 식차마니, 사미, 사미니의 출가 五衆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송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