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 앞에서 엄니의 얼굴을 본다/이길섭
아내가 간소한 생일상을 차렸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숟갈을 드는데
미역국 위로 해맑은 엄니의 얼굴이 보인다.
전쟁 끝나고 두 해인가 지나서
엄니는 새재*에서 내려와 금강을 건너
산벚꽃길 따라서 시집을 왔다고 했다,
꾀꼬리 노랫소리 그리도 고왔을 산벚꽃길.
척박한 산골의 시집살이 삼년만에
수수꽃 날리는 새벽녘 빗소리를 들으며,
엄니는 아홉 달짜리 조숙아를 안아들었다.
햇빛에 그슬린 스물두살 앳된 여인은
하늘이 애기 목숨 어찌할쎄라 거듭 마음 졸였다.
가슴 위로 밤마다 가랑비가 흘러내렸고.
차례로 박꽃이 피고 수수꽃이 피었다.
돌상에 흰무리 올릴 쌀 됫박도 없는 살림이었다.
담 아래 부잣집 종손댁에 부탁해
쌀 한 되 꾸어다 수수떡과 돌상을 차렸다.
그 자리에서 흰무리 무명천에 폭 싸가지고
논산훈련소 시동생 면회 간 시어머니!
그날은 시도때도 없이 소쩍새가
소리를 지르며 구슬피 울었다. 다시 또
난산 끝에 어머니가 눈물 훔치며 먹었을
미역국을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눈을 감고
잘생긴 큰 손주 좋은 자리 취직하던 해
소쩍새와 산새들이 볕 좋은 언덕 위
음택 자리를 찾아 엄니를 모시고 갔었다
평생을 아이와 함께 살았던 미숙아망막증은
일흔 앞에 두고 있는 지금도 진행형인데.
*새재: 공주시 봉정동에 있는 고개, 어머니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