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반곽갱(豆飯藿羹)
[요약] (豆: 콩 두. 飯: 밥 반. 藿: 콩잎 곽. 羹: 국 갱)
콩밥과 콩잎 국이라는 뜻으로, 변변치 못한 음식을 말하는 것인데, 청빈한 생활을 의미하기도 함.
[출전]《사기(史記) 卷070 장의열전(張儀列傳)》,《전국책(戰國策)卷26》
[내용] 이 성어는 전국시대말기 유명한 종횡가인 장의(張儀)가 한(韓)나라 왕을 설득할 때 한 말로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의는 초나라를 떠나 도중에 한나라에 들려서 한왕에게 유세하며 말하기를
“한나라의 지세는 험준하고 많은 주민들이 산에서 삽니다. 농사짓는 곡식은 콩이 아니면 보리 정도 백성들의 조석 끼니는 대개가 콩으로 지은 밥이나 콩죽입니다. 1년만 농사를 그르치면 백성들은 가루조차 충분히 먹을 수 없습니다. 토지는 사방 9백 리에 지나지 않고 2년을 지탱할 식량이 없습니다. ...... ”
張儀去楚,因遂之韓,說韓王曰:「韓地險惡山居,五穀所生,非菽而麥,民之食大抵[飯]菽[飯]藿羹。一歲不收,民不饜糟糠。地不過九百里,無二歲之食。史記/卷070張儀列傳
韓地險惡,山居,五穀所生,非麥而豆;民之所食,大抵豆飯藿羹;一歲不收,民不饜糟糠;地方不滿九百里,無二歲之所食。
戰國策/卷26張儀為秦連橫說韓王
이하 경향신문 [여적] ‘콩가루 집안’을 욕하지 마라
이기환 논설위원 http://leekihwan.khan.kr/
콩(豆)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청빈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두반곽갱(豆飯藿羹·콩잎과 콩잎국)은 본디 변변치 못한 음식을 가리키는 사자성어다. ‘콩밥 먹는다’는 표현은 감옥살이를 뜻하는 말로 통용된다. 특히 일제 시대(1936년) 형무소 식단을 보면 콩이 40%나 들어가 있었다. 식감이 좋지 않은 콩을 씹느라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재소자들의 건강을 위해 단백질을 먹인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과연 그런 기특한 생각 때문이었을까. 콩과 관련된 최악의 표현은 역시 ‘콩가루’일 것이다.
8·15 해방 이후 쌀 부족 때문에 ‘콩가루’를 배급받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콩가루가 좋은 인상을 줄 리 없었다. 당시 언론까지 나서 ‘우리네 습관에 익숙지 않은 콩가루 먹는 법’, 즉 콩가루 레시피를 소개했다.(경향신문 1947년 10월19일) 탄수화물 식품(밥)에 비해 배도 부르지 않고 미풍에도 뿔뿔이 흩어지는 콩과 콩가루는 나쁜 이미지를 굳혔다. 벼나 밀과 달리 콩깍지 안에 여러 개의 콩이 따로 들어있고 그 콩알 자체도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콩가루 집안’이라는 소리가 나왔다는 설까지 있다.
비슷한 표현으로 ‘모래알’이 있지만, 그보다 입자가 미세한 ‘콩가루’는 더더욱 도덕적으로 타락한 집단이나 가족을 지칭하게 됐다. 그랬던 콩가루가 최근 반전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식물성 고단백의 고소한 웰빙음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음식뿐이 아니다. ‘콩가루 집안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소통이 이뤄진다’는 젊은이의 외침까지 등장했다.(박연의 <인문학으로 콩을 갈다>에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 친구가 되어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로 콩가루 문화’라는 것이다.
얼마 전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둘러싼 당내 갈등을 두고 “콩가루 집안이 잘되는 것 못 봤다”고 자탄했다. 그날 밤 TV예능프로그램에서 어떤 중국요리 셰프는 자장면의 고소한 맛을 내는 비법으로 ‘콩가루’를 꼽았다. 그러고 보니 콩가루는 너무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음식을 먹기 좋게, 모양 좋게 만드는 성질을 갖고 있다. 만약 윗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소통하는 진정한 콩가루 집안이라면 김태호 최고위원의 자탄과 달리 ‘잘되는 집안’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달라진 콩가루의 반전 매력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이하 동아일보 <!--[endif]--> [윤덕노의 음식이야기] 콩 밥
감옥서 수감자들 건강 챙기려고 먹였을까
감옥에서 왜 콩밥을 먹였을까?
콩밥은 영양 만점에 밥맛도 좋다. 반면 우리말 이미지로는 최악이다. “콩밥 먹는다”고 하면 감옥에 간다는 말이니 콩밥은 감옥과 동의어처럼 쓰인다.
동양에서 콩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뿌리가 무척 깊다.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 북부의 만주지방이고 또 콩이 그만큼 흔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원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콩밥이라면 치를 떨었는데 한(漢)나라 역사가 반고가 쓴 한서(漢書)의 진승열전 얘기는 이렇다.
천하를 놓고 유방과 다투던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진을 쳤는데 마침 날씨가 춥고 큰비가 내려서 병사들이 얼어 죽고 또 배고픔에 시달렸다. 양식이 떨어져 식사를 할 때 콩(菽)을 절반가량 섞어 먹는다는 보고를 받은 항우는 철군을 결정한다. 콩밥을 먹는 것 자체가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려 전투를 하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한나라 때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에도 콩밥은 형편없는 음식으로 나온다. 전국시대 당시 한나라의 지형을 설명하면서 지리가 험해서 사람들이 보리와 밀도 재배를 못해 주로 콩밥을 먹고 콩잎으로 국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한자로 콩밥과 콩잎국을 두반곽갱(豆飯藿羹)이라고 하는데 보통 청빈한 생활을 의미하는 사자성어로 쓰이지만 본뜻은 변변치 못한 음식이다.
콩밥이 감옥을 상징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교도소에서 재소자에게 콩밥을 먹였기 때문이다. 1921년 동아일보에 콩밥이라도 먹게 해달라며 감옥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하는 절도범 기사가 보인다. 1928년에는 남편은 징역을 살며 콩밥을 먹는데 자신은 밖에서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콩밥만 먹고 지내는 부인 이야기도 실려 있다.
그렇다면 감옥에서는 왜 콩밥을 먹였을까. 콩이 값도 싸고 영양도 풍부해 재소자의 건강을 고려한 식사였다고 짐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옛날에, 그것도 일제강점기의 감옥에 그렇게 휴머니즘이 넘쳐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옥에서 콩밥을 먹인 것은 당시에도 콩밥이 정말로 형편없는 식사였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콩밥이 어떤 음식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글이 1936년 조선중앙일보에 실려 있다.
‘콩밥’이라는 제목의 동시다.
콩밥을 보면 넌더리가 나요.
밤낮 우리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콩밥만 짓지요.
“엄마, 나 콩밥 먹기 싫어, 쌀밥 지어, 응?” 하고 졸랐더니
엄마는 “없는 집 자식이 쌀밥이 뭐냐. 어서 못 먹겠니?”
하고 부지깽이를 들고 나오셨다.
나는 꿈쩍도 못하고 안 넘어가는 콩밥을 억지로 넘겼지요.
해마다 쌀농사는 짓는데 밤낮 왜 우리는 콩밥만 먹을까?’
콩밥이라면 넌더리를 내는 아이의 심정과 당시 사람들이 콩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분명하게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우리나라 재소자 식사 규정은 1957년에 만들어졌는데, 이때만 해도 콩밥을 먹였다. 규정에는 쌀 30%, 보리 50%, 콩 20%의 잡곡밥을 주도록 돼 있었다. 콩밥이 사라진 것은 1986년이다. 이때부터는 쌀과 보리만 섞은 보리밥을 주었다. 지금도 콩밥과 감옥을 함께 떠올리는 것을 보면 감옥의 콩밥이 사람들에게 어지간히 인상이 깊었던 모양이다.
콩밥을 거부감 없이 몸에 좋은 잡곡밥으로 여기에 된 것은 콩 값이 비싸진 근래의 일이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경찰 유치장에서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는 기사를 보고 느낀 격세지감이다.
<음식문화평론가>
첫댓글 豆飯藿羹..변변치 못한 음식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가 많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菽麥(숙맥)이 생각납니다.
콩과 보리도 구별 못하는 사람.
네에 콩과 보리를 잘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몽촌 몽촌님 콩 이야기를 덧붙여 한것입니다.
다른 뜻은 절대로 없습니다.죄송합니다.
@섬섬옥수 아닙다. 저도 그냥 세상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가 표현이 부족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두반곽갱- 공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열공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모르면서 흉내를 내어 보았습니다.
잘봤읍니다.
감사합니다. 열심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깊고 재미있는 여러 의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위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