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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3) 알코올중독자, 노아
나의 형님 신부님은 오랫동안 알코올중독에 빠졌지만, 이젠 극복을 하고 단중독 사목에 전념하고 있다. 나는 형님 신부님이 알코올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으면 어머니가 더 오래 사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머니의 마지막 시절, 첫 번째 기도는 형님 신부님이 술을 끊는 것이었다. 나는 형님 신부님이 알코올중독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의지도 컸지만 어머니의 기도가 이룬 기적이라 믿는다. 알코올중독은 술 한 잔만 다시 마셔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중독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알코올중독은 보통 인간관계를 깨뜨리고 자신의 삶을 황폐화시키며 가족에게 큰 해를 끼치거나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도 많다.
노아는 성경에서 드물게 언급되는 의인으로 지칭된다. 의인이란 깨끗하고 흠 없는 사람,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믿음에 있어서 ‘퍼펙트맨’이다. 그런 그가 알코올중독자였다? 너무 심한 상상인가? 노아의 방주와 홍수 사건은 성경에서 재미있는 상상력을 유발하게 한다. 카인의 자손들이 퍼져나가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었는데 문제는 악이 너무 성행했다는 것이다. 하느님도 적당히 수습할 수 없을 정도라 완전히 새판을 짜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의인인 노아만은 살리려고 산꼭대기에 큰 방주를 만들라고 했다. 멀쩡한 하늘에서 비가 내려서 홍수를 대비한다고 큰 배를 만들고 있는 노아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시간이 되어 노아는 하느님의 명령대로 자신이 만든 큰 배에 가족들과 동물들을 태웠다. 그리고 폭우가 내려 산꼭대기까지 물이 찼다. 사람들이 배에 타기 위해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방주의 안과 밖이 죽음과 삶을 갈랐다.
홍수가 끝난 후 노아는 산기슭을 개척하여 포도밭을 일군다. 노아는 성경에서 포도를 재배한 첫 사람으로 등장한다. 포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하는 대표적 과일이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포도를 재배했고 약재와 술로 빚어 사용해왔다. 술을 적당히 하면 아주 이로운 도구가 되지만 과하면 술에 취해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사람은 술에 취하면 자신의 주사가 나온다. 우는 사람, 지붕에 오르려는 사람, 망가진 레코드판처럼 했던 이야기 무한 반복하는 사람, 집에 자는 아이들 깨워 전국노래자랑 시키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작정 시비 거는 사람 등등. 그런데 노아는 포도주에 취하면 주사가 벌거벗고 누워 자는 것이었다. 셈, 함, 야벳, 세 아들 중 둘째아들 함이 먼저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누워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함은 셈과 야벳에게 아버지를 조롱하고 빈정거렸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옷을 입혀드렸다. 술에서 깬 노아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셈과 야벳을 축복했지만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렸다.
의인으로 칭송받은 노아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이유는 모른다. “살아있는 성인은 없다”는 외국 속담이 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죄에 약하다는 뜻이다. 의인 노아도 우리와 같은 약한 인간이란 점이 오히려 안심이 된다. 죄를 지어도 계속 하느님을 향해서 가려는 회개의 노력이 중요하고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엘리와 사무엘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옛 성읍 실로는 이스라엘이 지파별로 제비를 뽑음으로써 가나안 땅의 분배가 이뤄진 곳입니다(여호 18장). 또한 판관제에서 왕정으로 바뀌던 과도기에 백성을 이끌며 이스라엘 임금의 길을 닦은 사무엘이 어린 시절을 보낸 성소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의 어머니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주님께 바쳐 성소에서 살게 하였습니다. 실로에서 사무엘을 키우고 교육한 이는 사제 엘리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았던 탓에 실제로 사제직을 수행한 건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였습니다(1사무 1,3; 2,18-26).
엘리는 개인적으로 훌륭한 사제였지만, 불행한 끝을 맞습니다. 이유는 두 아들의 비행에 있었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두 아들에 대한 엘리의 처신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들들이 악행을 저질러 백성 사이에 나쁜 소문까지 퍼졌지만, 엘리는 그들을 호되게 꾸짖는 경고나 사제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징계를 하지 않아 부정부패가 지속되게 만든 것입니다(3,13). 그 죗값으로 이스라엘은 결국 ‘에벤 에제르’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필리스티아에 참패합니다. 군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주님의 계약 궤를 지고 나간 엘리의 두 아들도 이 전쟁에서 쓰러집니다. 사실, 계약 궤는 십계명을 보관한 상자이지만 주님의 왕좌를 상징하는 기물이었기에(4,4 참조) 이스라엘의 사기 진작을 위해 모시고 나갔던 것입니다. 에벤 에제르는 ‘도움의 반석’이라는 뜻인데(7,12) 이런 의미의 장소에서 이스라엘이 패한 건 역설적이면서 의미심장합니다. 말하자면, 이 전쟁의 패배는 하느님께서 엘리의 두 아들을 치시기 위해 벌어진 일이라 할 수 있으니, 한 나라의 지도자가 백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래도 엘리는 다른 면에서 책임감 있는 사제였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건 두 아들이 전장에서 쓰러졌다는 비보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계약 궤를 필리스티아에 빼앗겼다는 충격 때문이었습니다(4,18). 또한 그는 자신이 듣지 못한 주님의 음성을 어린 사무엘이 들었을 때(3,1) 사무엘을 질투하거나 그의 앞길을 막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3,8-9). 또한 어린 사무엘에게서 두 아들 탓에 주님의 재앙이 내릴 거라는 예고를 전해들은 뒤에도 그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3,17-18).
엘리의 이런 모습은 이후 사무엘에게서 반복됩니다. 사무엘은 엘리의 두 아들을 제치고 예언직과 사제직을 겸하는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사무엘의 두 아들 역시 악행을 범해 백성에게 배척을 받는 탓에(8,1-5), 이스라엘 지도자의 자리는 사울이라는 새 젊은이에게 넘어가게 됩니다(10,17-27). 하지만 사무엘 역시 그에 대해 질투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 스승에 그 제자였던 것이지요. 그 뒤 사무엘은 베들레헴의 다윗에게 가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으니, 훗날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의 길을 한참 전에 미리 닦은 ‘구약의 세례자 요한’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여행을 떠나며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입니다. 일상의 바쁜 생활을 뒤로 한 채 훌쩍 떠난다는 것 자체로 기쁨이 되겠지만, 미리 여행의 목적지와 그 주변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또 먼저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읽으며 여행 계획을 세우다 보면, 저절로 행복한 웃음이 입가에 그려지게 됩니다. 물론 아무런 준비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떠나는 여행이라면 세심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여행지의 날씨는 어떤지, 그래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맛집은 어디고 예약은 필요한지, 여행을 위한 경비는 얼마나 드는지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더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면 다른 이들의 취향은 어떤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먼저 헤아려 보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이러한 준비가 없다면, 기분 좋게 출발한 여행도 잘못하면 피로만 쌓이는 힘든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마르코 복음사가와 함께 떠나려는 우리의 여행 역시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럼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이를 위해 이 여행을 계획하고 이끌어 가는 마르코의 의도를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코가 마련한 여행에 굳이 제목을 달아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 마르코는 우리에게 자신이 만난 나자렛 출신의 예수라는 분이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이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셨고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우리에게 증언하고자 이 여행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르코복음을 함께 읽는 이 여행의 목적은 예수님을 만나 그분이 누구이신지 깨닫고 그분께서 전해주신 기쁜 소식, 곧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그분이 진정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또 인간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여행이 본 목적을 달성하려면, 복음을 읽고 묵상하며 깨닫게 된 바를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려는 외적인 노력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행의 출발점에 서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예수님을 만나 그분이 누구이신지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은 “어디에 있든 바로 지금이 순간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분과 만나려는 마음, 날마다 끊임없이 그분을 찾으려는 열린 마음”(<복음의 기쁨> 3항)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그분을 찾고자 한다면, 협조자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어 마르코가 전하고자 한 예수님을 더욱 생생하게 만나고 그분과 친교를 이루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마르코와 함께 걷는 이 여행은 엠마오로 떠나던 두 제자와 동행하셨던 부활하신 예수님(루카 24,13-35 참조)과 함께 걷는 여정과도 같습니다. 그분의 따뜻한 눈빛과 음성, 그분의 힘 있는 말씀과 행적이 마르코를 통하여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신앙을 새롭게 변화시키길 희망합니다.
[성경 이야기] 성경을 계속 번역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은 다음 단어의 뜻을 몇 개나 알고 계십니까?
- 갑분싸. 존버, TMI, 렬루, 커엽다. 사바다, 롬곡옵높, 좋페, 법블레스유, 이생망, 팬아저, 복세편살, 엄근진, 혼코노, 괄도네넴띤, 실화냐다큐맨큐나, 번달번줍, 톤그로, 애빼시
저는 청년들과 많이 소통하는데도 3개 남짓 짐작할 뿐 무슨 외계어 수준입니다. ‘희얼사’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MZ 세대 신조어로 ‘희귀한 얼굴 사진’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무물보’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의 줄임인데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런 신조어들은 사실 시대마다 있었습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널리 쓰인 ‘마카오신사’라는 말은 멋있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유행했습니다. 요즘 학생들에게 마카오신사라고하면 ‘아, 홍콩 옆에 있는 마카오에서 오신 분’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경우 대화를 할 때 같은 한국어를 쓰면서도 소통은 어려울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부산에 처음 갔었습니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까지 양평이나 가평에 있는 할아버지 댁이나 외가집만 가보았지 그렇게 멀리 여행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부산 사투리는 정말 외국어 같아서 전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표준어를 사용하는 TV나 라디오 등 대중매체가 발달하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직장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소통의 간격이 많이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뿐 아니라 관습이나 문화는 한반도 내에서도 사실 많은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3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신약 구약성경을 나라와 시대에 따라 번역을 한다고 가정할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은 성경입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은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머리말을 찾아보면 어떤 원본(Test)에서 번역된 것인지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아람어로 기록됐습니다. 물론 성경 원본은 분실되고 현재는 수사본들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상당 수 유다인들이 그리스 본토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그리스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유다 민족의 근간이 돼 주고 있는 성경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다인들에게 전해지려면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 작업이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최초 성서번역은 히브리어(구약) 성서를 그리스어로 옮긴 70인역본입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문화적 배경이 달랐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이들은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다인들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은 히브리어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된 모세오경, 예언서, 성문서 부분을 그리스어로 옮겨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70명의 유다인 학자들이 번역작업에 참여했다고 해서 그 성서 번역본을 라틴어로 70이라는 뜻의 ‘칠십인역’(Septuaginta)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이 칠십인역 성서를 간략하게 ‘LXX’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지역 유다인들이 주로 사용했던 구약성경은 바로 이 70인역이었습니다. 그런데 70인역의 번역학자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문자 그대로 옮기지 않고 의미 전달을 위해 필요한 경우 주석을 하는 방식으로 의역을 시도했습니다. 그리스도교 복음이 로마세계에 전파된 1세기 말 이후부터 구약과 신약은 아람어, 시리아어, 라틴어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3세기 이후에는 라틴어가 세계 공용어로 정착된 후 밀라노의 주교 예로니모(345-419년)는 교황 다마소 1세의 위임을 받아 라틴어 성경 개정판인 ‘불가타’(Vulgata)를 만들었습니다. 불가타(382년) 성경은 서방교회 최초의 표준성서로 권위를 인정받았으며, 중세시대를 거쳐 종교개혁 이후까지도 1000년 이상 가톨릭교회 유일한 공인 성서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후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는 영국 평민들을 위해 위클리프(1330~1384년)가 신약성경(1382년)과 구약성경(1384년)을 처음으로 영어로 완역했습니다. 그리고 이 번역본들은 인쇄 기계 발명에 힘입어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영국의 틴테일(1480~1536년)은 영어로, 독일의 루터 (1483~1546년)는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해서 평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성경 번역은 1790년대 초에 시작됐으나 본격적으로 번역이 시작된 것은 1882년 개신교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선교사 J.로스와 평신도인 이응찬 · 백홍준 등이 루카복음서를 번역해 1883년에 간행하면서부터였습니다. 1887년에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됨으로써 국어 번역의 바탕이 마련되었습니다. 1900년 5월에 신약, 1911년에 구약성서를 완벽해서 ‘성경전서’로 합본 간행했습니다. 한글판 「공동번역 성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재일치 운동 움직임에 따라 세계성서공회 연합회와 교황청 성경위원회가 성경 공동번역 사업에 합의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성경 공동번역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1968년 1월 공동번역위원회가 구성됐고, 1971년 4월 신약성경을 우선 출간했습니다. 또 이것을 개정한 뒤 구약성경과 합쳐 「공동번역 성서」를 발간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독자가 원문을 읽는 사람과 같이 뜻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다 보니 원문과 멀어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1988년부터 독자적으로 성경의 우리말 번역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2005년 10월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 개막에 맞춰 ‘새 성경’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새 성경은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 지 221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천주교회가 독자적으로 완역한 성경입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성경을 읽는 이에게 하느님 말씀을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전달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시대와 장소, 인종과 계층을 초월해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는 하느님 계시입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은 특정 시대, 특정 장소의 특정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 기록돼 있습니다. 성경 번역은 하느님 말씀을 그 시대에 맞는,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옮기는 것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성경 번역은 단순한 외국어 번역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재창조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순간, 번역학자를 통해, 또한 성경을 읽는 신자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작용하여 하느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5) 애가
예루살렘의 비극을 탄식하는 슬픈 노래
히브리어 구약 성경 「타낙」은 애가를 ‘에카’로 표기합니다. 이는 고통스러울 때 저절로 나오게 되는 탄식으로, 우리말 ‘아!’ ‘어찌하여!’ 등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서가 아닌 성문서로 분류합니다. 헬라어 성경 「칠십인역」은 이를 ‘트레노이’(Θρηνοι)라고 옮깁니다. 우리말로 ‘슬픔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한자로 ‘애가’(哀歌), ‘조가’(弔歌)라고 표현하지요. 이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라멘타씨오네스’(Lamentationes)로 음역합니다. 우리말로 ‘애도’, ‘탄식’이라는 뜻입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교회 성경 분류 전통에 따라 ‘애가’로 표기하고, 예언서로 분류해 예레미야서 다음에 배치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이렇게 배열한 이유는 애가의 저자를 예레미야 예언자로 보는 전승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가를 ‘예레미야의 애가’라 부르기도 합니다. 「칠십인역」은 본문에 앞서 머리글로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고 예루살렘이 사막으로 변하자, 예레미야는 주저앉아 눈물지으며 예루살렘을 위한 애가를 부르며 말하였다”라고 덧붙여 놓았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를 애가의 저자로 보는 전통은 역대기 하권 35장 25절에 근거합니다. “요시아가 자기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자, 온 유다와 예루살렘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예레미야도 요시야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다. 그래서 요시아를 애도할 때에는 오늘날까지도 노래하는 남녀들이 모두 그 애가를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이스라엘의 규정으로 삼았다. 그 애가는 애가집에 실려 있다.”(2역대 35,24-25)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예례미야가 애가의 저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애가에 담긴 다섯 개의 시가 서로 다른 문학 양식과 내용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가는 유다교 축제 때 읽는 멜길롯 곧 ‘다섯 두루마리’(룻기ㆍ아가ㆍ코헬렛ㆍ애가ㆍ에스테르기)에 속하는 책으로, 예루살렘 함락 후 성전이 파괴된 아브달(파스카로 시작되는 한 해의 다섯 번째 달로 대략 7~8월) 9일에 봉독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루살렘 성전은 두 차례 파괴됩니다.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에, 서기 70년 로마 제국에 짓밟힙니다. 공교롭게도 두 차례 모두 ‘아브달 9일’(티샤 베아브)에 일어났습니다. 열왕기 하권 25장 8-9절과 예레미야서 52장 12-13절은 제1성전이 파괴된 날을 각각 아브달 제7일과 제10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몇몇 열왕기 사본과 루치아노의 칠십인역본, 랍비 전통에서는 아브달 7일부터 성전 외곽이 파괴되기 시작해 성전 본 건물이 파괴된 것은 9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성전 파괴의 날’을 아브달 9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날 유다인들은 단식하고, 목욕, 기름 바름, 향수 등을 금하며 가죽신을 신지 않는 것으로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를 추념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성주간 전례 때 애가를 봉독합니다.
애가는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 후 유다인들을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애가에 담긴 모든 노래가 기원전 538년 유배 시대가 끝나기 이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중 둘째와 넷째 노래는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이 파괴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지어졌다고 합니다. 또 첫째 시는 기원전 598년 제1차 유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애가는 모두 5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곧 다섯 편의 슬픈 노래가 묶여 있지요. 애가는 예루살렘 도성, 곧 ‘시온’을 의인화해 시온의 죽음을 슬퍼하는 비탄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1장 예루살렘의 참상, 2장 예루살렘 파괴, 3장 고통과 희망, 4장 징벌의 한가운데에서 비통한 현실, 5장 애원의 기도로 이어집니다.
애가 1-4장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각 22개 구절로 이어갑니다. 첫째ㆍ둘째ㆍ넷째 애가는 ‘정치’, 셋째 애가는 ‘개인’, 다섯째 애가는 ‘공동체’ 차원에서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를 애도합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애가는 예루살렘 멸망이 하느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으로 말미암은 결과라고 강조합니다.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성실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에 불가피하게 내려진 비극이 바로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이 재난의 원인과 의미를 깨달은 유다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애가는 하느님께서 예루살렘 멸망을 통해 당신 백성의 참회와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또 이를 통해 다시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는 당신 백성을 물리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백성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애가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일으켜 주시라고 간청합니다.(애가 5,21) 하느님께서는 성실하시므로 이스라엘이 다시금 회개해 돌아온다면 그들은 구원될 것입니다.(애가 3,40-41; 4,22; 5,21)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2) 인류 최초 살인 범죄자, 카인
아담과 하와는 카인과 아벨 두 형제를 두었다. 성경은 영화대본처럼 스토리가 일사천리로 전개된다. 물론 문장의 행간(行間)에는 수없이 많은 고뇌와 걱정,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내 경우 세 살 터울인 동생이 태어나고 난 후 동생과 많이 싸웠다. 싸움의 이유는 이념,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존재자체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우리 집은 마루에서 매일 저녁기도를 바쳤다. 우리 둘은 맨 뒤에서 몸을 배배꼬면서 있다가 눈이 마주치면 “뭘 봐! 임마”하며 서로 잡고 뒹굴며 싸웠다. 나와 동생의 싸움이 끝난 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보통처럼 동생에게 주먹을 날렸는데 동생이 맞기만 하고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를 형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 이후 우리는 수십 년간 말다툼 한번 한 적도 없다.
카인은 유목민, 아벨은 정착민으로 추정되는 두 계급은 사는 방법과 문화가 전혀 달랐을 것이다. 봉헌 이야기는 폭력의 이유에 대해 좀 더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을 제공한다. 하느님은 카인의 제물은 거부하시고 아벨의 것만 받으셨다. 카인이 바친 예물은 굳이 원문으로 보면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바치는 예물이며 맏배가 아니었다. 반대로 아벨은 원칙대로 맏배와 함께 자기 자신도 봉헌했다. 카인에게는 동생에 대한 하느님의 편애(?) 때문에 생긴 질투심 등 자신도 이해 못할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카인이 가장 섭섭한 것은 사실 하느님이지만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비겁하게 약한 동생으로 표적을 바꾸었다. 카인의 분노, 섭섭함, 창피함 등 여러 감정들이 대폭발을 일으켜 결국 아벨을 죽인다.
하느님이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고 하신 질문은 아벨이 있는 장소가 아니라 카인의 양심의 문을 두드리시는 것이다. 이때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카인은 죄를 부정한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왜 그것을 저에게 물어보십니까?”
우리 마음 안에는 사실 카인과 아벨의 모습이 어느 정도 내재해있다. 우리나라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보다 내가 잘 알고 속으로는 나보다 못한 점도 많은 것 같은 사촌이 땅을 샀다고! 정신적으로 느끼는 현타(?)는 실제 몸에도 슬슬 나타난다.
분명히 죄라고 하는 상황은 오늘날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카인이 낙원에서 쫓겨난 죄의 결과는 ‘하느님께로부터 이탈’이며 결국 죽음이다. 질투는 모든 인간이 갖는 보편적 특성이다. 이것도 성장하면서 훈련을 통해 성숙의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 주님은 한 번의 잘못으로 내치는 분이 아닌 자비로운 분이다. 하느님은 카인에게 약속한다. “다른 사람들의 위협에서 보호하겠고 표를 찍어 어느 누구도 죽이지 못하게 하겠다.”
“행복의 문이 하나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를 향해 열린 문을 보지 못하게 된다.”(헬렌 켈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