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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 신앙
출 19: 1-8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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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달을 마무리 하는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귀한 계절에, 하나님의 전을 찾으신, 우리 믿음의 식구들..
만물이 소생하듯이,
믿음과 생활과 모든 것이, 주님의 능력의 더욱 성장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늘로 오리시어,
세계의 주인,
역사의 주인
교회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그것을 기회를 주신것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세 역사가 시작되어지는 데,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죄로 인하여, 심판에 서지 말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과 은혜의 편에 설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교회도, 헌금을 하여, 위로하는데 힘을 보태었습니다만, 서해사건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하지만 긴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금강산에서는 이산가족상봉장 건물을 몰수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정세가 혼란한 가운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더욱 부활하신 예수님 편에 서야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1.역사의 증인으로써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4절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의 의의는, 한 개인 한 개인을 구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의 의의는, 더 나가서,
예수님께서는 역사의 주인이 되시고,
또한 다가올 마지막 때의 대심판의 주인이 되심을 나타내는, 우주적 사건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처음 민족을 부르시는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역사를 시작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으로, 역사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 사건이요,
세계제일의 에굽을 심판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4절에, 하나님께서 애굽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을 너희 가 보았느니라..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언약의 말씀을 던져 주십니다.
5절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 소중한 말씀이기 때문에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세계가 다 하나님께 속하였는데, 이제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주었으니,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너희를 세계 모든 민족 가운데, 하나님의 소유되는 민족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때부터, 운명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탈출한 종과 노예들의 무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가나안 땅을 차지 합니다. 다윗왕을 배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시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오늘날 이렇게 세상이 혼란스럽고, 처처에 지진과 난리의 소문이 무성합니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면,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계속에 하나님의 백성들로
불러주시고 높혀주시고, 쓰임받게 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가 대곡동에 있지만, 우리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를 세계에서 불러서 쓰임받게 해주시는
귀한 교회가 되게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다시한번만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각자, 삶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나를...세계속에서 불러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으로 높혀 주실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나와 믿음생활하게 되었다는거...이게 얼마나 큰 은혜인줄 모릅니다.
다들 기도해 주셔서, 중국에 잘 다녀왔습니다.
중국에 가서 보니, 중국사람들이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에 대하여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한민족이라 하지 않고, 조선족이라고 우리를 부릅니다.
조선족이 살고 있는 곳이 세 군데가 있는데,
먼저는 남한에, 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북한에 북한입니다.
나머지는 만주에 동북삼성에 흩어져 있고, 그 중간에 조선족 자치주가 조그맣게 있습니다.
이렇게 세군데에 흩어져 있는데,
만주에 살고있는 우리민족을 보고는 소수민족이라고 불러 줍니다.
그리고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을 향하여는, 거지백성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당간부들만 괜찬케 살고 나머지 백성은 모두 거지들입니다.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남한에 사는 대한민국, 우리 국민들만, 높게 인정해 줍니다.
100년 되는 일본기술을 30년 만에 따라잡은 대단한 국민들이다.
한류로 인기 있고, 문화가 발전된 선진문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인정하고 높혀 주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만주와 북한과 남한...똑같은 한민족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한 민족인데도, 어떤이들은 소수민족으로 불리고, 거지백성으로 불리우는데,
도대체 무슨 차이로, 우리는 높임을 받는가?
한국에 내려보니 알것 같았습니다.
골목마다 십자가가 얼마나 걸려 있는지....남한만, 별스러울 정도로 예배드립니다. 전도합니다.
그런데 북한가면, 예수믿으면 사형을 시킵니다.
만주에 가보면, 교회를 수소문 해야 겨우 찾아갈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역사가 분명히, 말해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역사의 증인으로써,
오늘도 하나님의 섬겨 나가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역사를 인도하십니다.
6절 7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중국을 체험 해보니, 시야가 넒어지고, 생각이 넒어지고,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가서 보니까, 조선족 중국교포3세 지요.. 안내하는 분이,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라고 귀뜸을 해 주었습니다. 합니다.
가만히 보니까, 안내하는 사람들도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소메치가 많아서,
가방을 옆으로 메면, 가방 안에 든 것은, 옆사람 것이 되고,
가방을 뒤로 메면, 뒷 사람것이 되고,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있야만, 내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첫날부터 오는 날까지, 계속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다가 왔습니다.
마을에 시장이 있었는데, 김포장 서는 것 처럼, 여러 가지 물건이 있었습니다.
한번 가 보고 싶다고 하니까.. 두손을 흔들면서 말립니다.
시장 구경을 하면, 꼭~~ 분명히~~ 물건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않가는 것이 좋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사실 눈 뜨고도 잃어버리는 것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물건 뿐만 아닙니다.
올 해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강제병합된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00년전 이때에, 고종황제 시절이 되겠습니다.
한일 합방에 싸인을 하고, 우리나라의 국권을 일본에게 빼앗겼습니다.
잃어버리고 난 다음, 국권이 얼마나 귀한 줄, 그제서야 알게 되어, 다시찾을려고 하니까
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 당시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고 하니까,
고종이 이준열사를 파견하였지만, 회의장에도 들여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요즈음도 비슷한 사건이 있습니다.
올해 11월이면, 세계주요 20개국회의가 우리나라에서 열립니다.
우리나라가 의장국이고, 세계 주요20개국 정상들이, 우리나라에 찾아와서 세계경제 에너지 안보 등 중요현안을 다루게 됩니다.
그런데 스펜인은 제외되었습니다. 20개국이 아닙니다.
경제규모는 우리보다가도 4단계나 더 크고, 인구나, 경제도 앞서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주요 나라들이 물밑에서, 20개국 회의를 만들때, 제외시켜 버렸습니다.
나중에 20개국이 모이는데, 스페인은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스페인은 20개국 모임에, 회원이 되게 해 달라고, 전국가적으로 애를 쓰고 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저 옵저버로, 회의에 참석하되, 권한이 없이 참관만 하라고 합니다.
중요한 때에,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의 흐름에서 제외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시면, 높아지고, 하나님께서 낮추시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낮아집니다.
애굽이 그랬습니다. 얼마나 강대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울부짖을때에,
하나님께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약속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구해내려고, 애굽을 심판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어 기도하며, 부르짖는 자의 음성을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역사속에서 불러 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잘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스페인 보다가도 못삽니다.
네델란드 보다가도, 스위스 보다가도 못삽니다.
하지만 만주의 우리동포들과 다르게, 북한과는 다르게, 우리는 세계주요국으로 대접받고 20개국 의장국도 되고, 존귀함을 받고 있습니다.
깨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
오늘 개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우리가정의 제정이 잃어버리지 않고, 계획하는 일들이 형통하여, 높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내가 하는 계획들이 잃어버리지 않고, 점점 하는 일들의 지경이 넒어질수 있겠습니까?
내가 힘쓴다고 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바뀌고,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오늘날 이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약하나, 내가 온힘을 다하여 부르짖고 부르짖을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시며,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켜 주시는
은혜를 입어야 하겠습니다.
신명기 28:1 에는 말씀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모르고 잃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점점 더 얻게 되는,..
하나님께 기억되는, 거룩한 백성의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 앞에 응답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8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이 사실을 알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응답하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어떤 백성들 보다가도, 더욱 힘써 하나님을 높혀드리는 백성이 되엇습니다.
어떤 백성들 보다가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백성보다가도, 하나님 말씀에 있는대로 복을 받는 백성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응답해야 합니다.
로또복권을 드릴까요? 그렇게 질문하는데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질문하였던 사람은 그냥 가버릴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하여도 거기에, 답하지 않는다면, 모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응답을 잘 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시편 57:5 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높혀드립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그럴때, 이스라엘 백성도 세계위에 높임을 받는 백성이 될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개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런 귀한 말씀을 들을때, 이 말씀이 내게 이루어 지기를 소원합니다.
이 말씀대로 살겠으니, 이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줄 믿습니다.
응답할 때, 이 말씀은 나의 말씀이 되어 질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밖은 이스라엘 백성을 뒤로하고,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역사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높혀 주시는가? 오늘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역사의 주인이 되십니다.
응답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고,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고, 존귀하게 쓰임받게 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복되게 쓰임받고, 높혀지게 되는
우리 모든 믿음의 식구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이스라엘에게 고하라
출 19: 1-8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시내산 아래 장막을 치고 모세는 하나님의 산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는 그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모세가 행한 설교의 내용은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몇 가지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설교자는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3절)
본문을 통해서 설교의 과정을 몇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만남이 없이 하나님을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설교자는 먼저 하나님을 만나서 자신의 심령이 하나님의 불로 타올라야 합니다. 모세는 설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음성 청취입니다.
설교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통역을 맡은 사람은 당사자의 말을 듣고 그 말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대화 당사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 대화 당사자의 말을 듣지 않고 말만 한다면 그는 통역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모세가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진술했습니다. 거기에는 자기의 생각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말씀이라고 했으니 모든 말씀을 빼놓지 않고 전달했습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모세를 본받으려고 합니다. 설교 전에 먼저 하나님을 만납니다.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원하는 본문이 어딘지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습니다. 응답이 오면 그 본문을 읽으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본문에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성령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말씀을 전달합니다. 어떤 때는 회중과의 관계로 인하여 전달하기 곤란한 말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갈등도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전달합니다. 어떤 때는 말하기 두려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라면 두려운 중에도 외칩니다.
여러분은 제가 모세와 같은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먼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원하는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2.회중은 설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8절)
설교자와 설교의 내용이 중요하지만 설교를 듣는 회중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신령한 설교라 하더라도 회중의 반응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집니다. 오순절날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회중은 긍정적인 반응으로 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회중은 부정적인 반응으로 스데반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스데반의 설교가 베드로의 설교보다 영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회중의 믿음의 상태와 설교에 대한 반응이 달랐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럼 모세의 설교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살펴봅시다.
첫째,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들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말씀 안에 있는 생명력이 사람 속에 침투해 들어가며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롬10:17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단은 이 원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설교를 못듣게 합니다. 행7:57을 보면 스데반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기 전에 먼저 자신들의 귀를 막고 설교를 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하면서 스데반의 설교에 귀를 막았던 사람들처럼 설교를 듣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마치 솜으로 귀를 틀어막는 것처럼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잡생각 그리고 비틀어진 마음으로 영혼의 귀를 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교에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둘째,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모세의 설교를 들은 백성들이 일제히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겠다고 응답합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아멘'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 당신의 말대로 행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모세의 설교를 모세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살전2:13에 보면 바울의 설교가 데살로니가 교인들 속에서 역사하며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몇 가지입니다. 먼저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받았습니다. 받았는데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지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들 중에 가장 거룩한 사역이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설교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설교는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셋째, 들은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산해진미도 먹어야 배가 부르고 먹어야 몸에 영양가가 공급됩니다. 먹지 않으면 그림에 떡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설교도 듣고 행해야 합니다. 행할 때 말씀의 능력이 체험됩니다. 하지만 설교가 음식을 먹는 것과 다른 것은 음식은 보기만 해서는 효과가 없지만 설교는 듣기만 하면 말씀 자체의 능력이 역사해서 사람을 움직입니다.
어느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취임해 첫 예배에서 아주 멋지고 놀라운 설교를 했습니다. 성도들은 목사님을 잘 모셔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주일이 되자 성도들은 첫 주와 똑같은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됐습니다. 교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목사님이 취임 예배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착각하셨을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셋째 주간에도 목사님은 똑같은 설교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똑같은 설교를 세 번이나 듣게 된 성도들은 '우리가 목사님을 잘못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참다 못한 한 성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쯤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시겠습니까?”그러자 신임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삶 속에서 그대로 실천할 때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들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신자들을 빗댄 예화입니다. 하지만 행할 능력이 없어도 듣는데 힘을 쓰십시오. 어느 날 그 말씀이 믿어지고 믿어진 말씀이 내 속에서 나를 움직일 것입니다. 행할 수 없다고 설교 듣는 것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운동하며 나를 움직일 날이 올 것입니다.
3.모세의 설교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 이스라엘은 구원하시고 애굽 백성은 심판하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4절).
하나님은 구원자이시며 동시에 심판자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은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했으며 피와 이 재앙, 어둠의 재앙과 장자의 죽음 등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재앙으로 애굽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재앙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10재앙 중에 클라이맥스(climax)는 장자의 죽음입니다. 애굽 전역에 죽음의 천사가 지나가는데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가고 어린양의 피가 없는 집은 죽음의 천사가 들어가서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이 되시느냐 구원의 하나님이 되시느냐는 어린양의 피를 발랐는가 아닌가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발라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애굽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으로 경험되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어린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의미합니다. 어린양의 피에 대한 반응으로 구원과 심판이 결정되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구원과 심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엡2:13을 보십시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어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하여 흘리신 보배로운 피 공로를 믿는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과 화목하여 가까워진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4절).
맹금류인 독수리는 새 중의 왕입니다. 독수리는 둥지를 지을 때 아주 높고 험준한 바위 틈 사이에 보금자리를 마련합니다. 독수리의 둥지가 큰 것은 직경이 3m나 되고 무게만도 2t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둥지를 지을 때 처음에 거친 가시를 꺾어서 철통같은 울타리를 칩니다. 다음에는 갈 잎사귀 같은 것으로 그 사이 사이를 막아서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부드러운 풀을 깔아서 포근하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목덜미에 있는 가장 부드러운 솜털을 하나씩 뽑아서 부드럽고 포근한 침실을 만듭니다. 그렇게 한 후에 새끼를 낳아서 기릅니다. 새끼는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로 자라니 세상에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면서 날개가 제법 자랐을 때 어미 독수리가 비행 훈련을 시키려 합니다. 독수리 새끼는 결사적으로 이를 거부합니다. 그때 어미 독수리는 새끼가 거하는 둥지를 어지럽히기 시작합니다. 먼저 둥지 속에 있는 부드러운 솜털을 물어다 냅니다. 다음으로 풀과 갈잎을 물어다 내니 가시가 몸을 찌르기 시작합니다. 이젠 둥지가 더 이상 새끼의 보금자리일 수가 없습니다. 이때 어미 독수리가 비행 훈련을 요청합니다. 이때 새끼 독수리는 보금자리에서 고통을 받기보다는 엄마 등에 업혀서 훈련받기를 선택합니다. 새끼를 업은 엄마 독수리는 쏜살같이 높은 창고에 대풍이 몰아치는 대양으로 나아가서 갑자기 새끼를 떨어뜨립니다. 생전 처음 펴 보는 날개로 있는 힘을 다하여 날개를 저어 보다가 할 수 없이 바다로 떨어집니다.「이젠 죽었구나」하는 순간에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얼른 받아서 다시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이렇게 공수 비행 낙하훈련을 계속하여 비행기 날개보다 더 강한 날개로 하늘을 날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인도하신다는 말은 독수리가 강한 훈련을 통해서 새 중의 새인 진짜 독수리를 만드는 것처럼 신자를 훈련하여 진짜 신자를 만든다는 말씀입니다. 애굽을 나와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하시지 않고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것처럼 거듭난 신자에게 광야 훈련을 시키십니다. 독수리 어미가 새끼가 스스로 날수 있을 때가지 훈련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 땅에서 하늘의 삶을 살수 있을 때까지 쉬지 않고 훈련하십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령함에 이르기 위한 훈련이 계속됨을 말씀하고 있지만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훈련을 무시한 축복을 사모합니다. 광야가 없는 가나안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이 있으면 그 훈련을 저주로 생각합니다. 강도 높은 훈련이 오면 훈련을 통해서 자신이 변화되기보다 훈련만을 제거해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자동차 운전학원에서는 운전자를 만들어내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광야 학교는 창공을 나는 독수리처럼 신령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내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훈련이 올 때 자신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셋째, 세계를 소유하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5절).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경험한 후에는 그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온 우주의 창조주요 통치자인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고 자신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에 그는 감격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당시의 세계 최강대국인 애굽의 바로 앞에서도 담대했습니다.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로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바로를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모세의 설교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남다른 자긍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10재앙 가운데서 자신들을 보호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려주신 하나님, 자신들의 보호자가 시시한 지역신이 아니라 세계를 소유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세계를 소유하신 하나님을 믿기를 바랍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입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별들을 허공에 매다시고 인간의 생사화복과 우주의 시작과 종말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관광회사 직원은 저에게 미리 대답할 요령을 가르쳐 줬습니다. 어떻게 대답하면 붙고 어떻게 대답하면 떨어진다는 경험을 말해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도 걱정이 안되더군요. 하나님이 보내시면 가는 것이고 안보내시면 안 가는 것입니다. 잔고가 많은 저금통장을 가지고 가서 보여주면 비자 받는데 더 수월하다고 하면서 통장을 준비해 오라고 하더군요. 인터뷰가 끝난 후에 통장을 살펴보니 1만원 조금 더 있었습니다. 영사는 제 서류를 보지도 않고 10년 짜리 비자를 내줬습니다. 저는 세계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저를 미국에 잠시 보내시기로 작정하셨다고 믿습니다. 통장의 잔고나 준비된 서류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인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넷째, 말씀대로 사는 자를 복 주시는 하나님을 전했습니다(5-6절).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세 가지 말합니다.
(1)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여기에서 '소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굴라'는 평범한 소유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소유물, 즉 '아주 귀중한 소유물' 또는 '매우 값진 소유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언약의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그들은 세상 열방 중에서 하나님이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백성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약속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2)제사장 나라가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 행하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민족으로서 하나님과 열방 사이를 중재하는 제사장이 됨과 동시에 그들을 다스리는 왕권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말입니다. 이 약속은 우리가 말씀대로 살 때 제사장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3)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다른 열방 민족들과는 구별된다는 의미입니다. 지옥과 구별된 천국 백성이 되고 영벌과 구별된 영생을 얻은 백성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말씀대로 살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목사인 저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제 능력으로는 말씀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위에서 약속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성경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안되며 은혜 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된다고 가르칩니다. 자동차의 모든 부품이 갖춰 있어도 전기의 힘이 없으면 엔진이 돌아가지 못하고 휘발유의 폭발이 없으면 엔진이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말씀을 실천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11장에 보면 성령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언약에 세운 나라
출 19: 1-8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초하룻날, 바로 그 날 그들은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은 르비딤을 떠나서, 시내 광야에 이르러, 광야에다 장막을 쳤다. 이스라엘이 그 곳 산 아래에 장막을 친 다음에,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 가니, 주님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 가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모세가 돌아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모으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모든 말씀을 그들에게 선포하였다. 모든 백성이 다 함께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모세는, 백성이 한 말을 주님께 그대로 말씀드렸다.]
• 창세기의 인권선언
벌써 대림환의 초가 두 개 밝혀졌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밝아지셨습니까? 대림환의 초는 주님을 모신 세상이 조금씩 밝아짐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초를 둘러싸고 있는 리쓰(wreath)는 하나님의 원만하고 풍성한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 둘 초에 불이 밝혀지듯이 우리 마음에도 주님의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기를 소망합니다.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입니다.
교회는 이 무렵을 인권주일로 지킵니다. ‘인권’이라는 말 앞에는 흔히 ‘천부天賦’라는 단어가 붙습니다.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뜻입니다. 인권은 그러니까 하늘로부터 받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 ‘인권’은 영어로 ‘human rights’라고 하는 데, 여러 종류의 인권이 있기 때문에 복수형인 ‘rights’를 씁니다. ‘right’라는 단어는 ‘옳다’(rectitude)는 뜻과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entitlement) 혹은 ‘권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권이란 따라서 ‘옳고 정당한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 혹은 권리’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우리 사회에서 좀 급진적인 사람처럼 인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통념상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던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소수자 인권).
성경은 세상의 그 어떤 문서보다도 ‘인권’의 가치에 깊이 주목합니다.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는 바빌론 포로 생활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망해 바빌론에 끌려간 사람들은 망국민의 설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시편 137편은 그들이 겪었던 내적 고통을 잘 드러내줍니다.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두었더니,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는구나.”(1-3)
시인은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탄식합니다. 그런데 끌려갔던 이들 가운데 있던 제사장들은 시름에 찬 백성들에게 천지 창조 이야기와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창조 이야기는 우주 발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창조의 순서입니다. 첫째와 둘째 날 빛과 창공을 만드신 주님은 셋째 날 물과 뭍을 갈라놓고는 땅에게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를 종류대로 내라고 명하십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이야기꾼은 넷째 날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빈약한 생물학적 지식을 가지고 보더라도 여기에는 좀 문제가 있습니다.
셋째 날과 넷째 날이 뒤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해와 달과 별이 없이 식물은 자랄 수 없습니다. 이건 상식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이야기꾼의 숨은 뜻이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은 바빌론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하던 대상입니다. 그들이 신으로 숭상하는 것들은 사실 야훼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이 준다고 믿었던 먹을거리도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다는 사실을 이야기꾼은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간 창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제정일치 시대의 왕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꾼은 그 단어를 모든 인간에게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유래한다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식민지 백성이라고, 가난하다고, 배우지 못했다고, 힘이 없다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부모가 없다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거역인 동시에 심오한 인권선언인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창세기의 이런 비전은 출애굽 공동체의 이상과도 연결됩니다.
• 소명의 공유
압제의 땅 애굽을 떠나온 출애굽 공동체는 수르 광야와 신 광야를 지나고, 오아시스 지대인 르비딤을 통과해 시내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힘겨운 여정이었습니다. 바로(Pharaoh) 한 사람이 지배하고 나머지는 모두 피지배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불의한 체제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평등의 새 세상을 이루겠다는 그들의 장한 꿈은 고단한 여정 가운데서 퇴색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쉬고 싶고,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에 속합니다. 광야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 적절치 않은 장소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불평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감정은 전염성이 강해서 한 두 사람이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다른 이들도 그 불만에 물들게 됩니다.
출애굽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을 가리켜 ‘히브리’ 혹은 ‘이브림’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여기저기 떠돌며 살던 사람들, 문명화된 세계의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로서 애굽에서 ‘불결한 사람’으로 분류되던 이들입니다. 히브리는 민족 이름이 아니라 계층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삶의 내력도 다르고, 조상도 다르고, 함께 나눌 기억도 없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끈은 없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고, 샘이 깊은 물이 마르지 않는 법인데, 출애굽 공동체는 언제라도 해체될 수 있는 불안한 조직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의 욕망은 늘 자기중심적입니다. 더러 다른 이를 배려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자기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 불편한 감정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공동체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들이 함께 나눌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애굽에서 겪어야 했던 고역에 대한 기억과, 애굽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겪었던 구원체험이 있었습니다. 히브리들은 어느 순간 자기들 가운데 생겨난 새로운 정체성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히브리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신 야훼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신뢰였습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끈은 바로 ‘야훼 하나님’이었습니다. 출애굽 공동체는 마침내 시내산 앞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신앙 공동체가 출현하는 순간입니다. 그들의 정체성의 뿌리는 과거에 있지 않습니다. 함께 지향하고 함께 이루어 가야 할 미래에 있습니다.
• 동의를 구하는 하나님
언약을 맺기 전에 하나님은 모세를 따로 불러 백성들의 기억을 환기시키라고 말합니다. 애굽에서 벗어날 때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너무나 극적인 사건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거기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아도 참 곡절이 많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우리들 아닙니까. 어떤 때는 삶의 충만함을 느끼다가 다음 순간에는 더할 수 없이 쓸쓸한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살아온 날을 돌아보면 보이지 않는 어떤 손길이 우리를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4)
이 말씀은 출애굽 공동체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의 경험입니다. 마침내 언약을 맺기 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런 약속을 들려주십니다.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5a)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당신의 계명을 부과하고 있지 않습니다. 선택권은 백성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할 것인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주체는 바로 히브리들입니다. 모든 백성이 ‘그렇게 하겠다’고 할 때 비로소 언약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깨닫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모세나 다른 지도자들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 아닙니다. 엘리트가 아닌 평범한 민중들에게 자기들의 국가 정체에 대해 동의할 것인지를 묻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왕적 지배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적인 통치자이십니다. ‘이게 좋으니까 너희는 무조건 받아라’ 하는 강제와 억지가 없으십니다. 히브리인들은 자기 결정권 없이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주인이 ‘하라’ 하면 하고, ‘말라’ 하면 마는 것이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인정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 기회와 자유를 주십니다. 지배받는 이들의 자발적 동의가 전제되지 않은 지배는 하나님조차 거부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도 같은 사실을 보여줍니다. 아버지는 철없는 작은 아들이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집을 떠나는 것을 허용합니다. 아들의 탈선이 불 보듯 뻔한 데도 아버지는 아파할 뿐, 아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아들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통해 스스로 배워야 성숙해짐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녀 세대들을 위해 뭐든지 다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숙제도 대신 해주고, 생각도 대신 해주고, 꿈도 대신 꿔주고, 갈등도 대신 해결해주려 합니다. ‘다 너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이건 사랑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갈등과 고뇌 속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배워야 할 인생의 교훈을 빼앗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새로운 가치
백성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다 실천하겠다’고 동의하자 하나님은 그들이 예기치 않았던 역사적 소명을 맡기십니다.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6a)
이것은 평범한 약속이 아닙니다. 나라 전체가, 구성원 하나하나가 거룩한 제사장이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고대 세계의 어느 나라에도 특권적인 사제 계급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과 가까운 사람으로 인식되었기에 왕들은 그들을 가까이 두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특권층이었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제사장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서는 살렘 왕 멜기세덱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섬긴 제사장이었다고 말합니다(창14:18).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위해 복을 빌어 주었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었습니다(출3:1). 제사장 가문은 왕들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근동지방에 닥쳐온 7년 기근 동안 비축해 두었던 곡식을 풀어 사람들의 땅을 국유화했지만, 제사장들의 토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특권을 주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주신 비전은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 되고, 모든 구성원들이 거룩하게 되는 나라의 꿈입니다. 물론 나중에는 제사장 계급이 형성되었지만, 초기의 이스라엘이 꿈꾸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자건 제사장이건 일반 백성이건 모두가 ‘Torah’ 아래 있습니다. 토라는 형제/자매애에 바탕을 둔 평등 공통체를 이끌어가는 법입니다. 그 토라의 내용은 세 단어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미슈팟mishpat’입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정의(minimal justice)를 일컫는 말입니다. 잘못하면 벌을 받고, 손해를 입히면 보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사회는 존속되기 어렵습니다. 미슈팟은 사회적인 특권층이나 약자들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공평함입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사법적 정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둘째는 ‘쩨다카tzedakah’입니다. 이것은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라고 새길 수 있습니다. 토라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추수할 때 밭의 한 모퉁이는 남겨두라든지, 안식년이 되면 땅의 소출을 거두지 말고 빚을 탕감해주라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살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 잠시 동안 머물다 가는 나그네 혹은 식객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위해 나누어주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정의입니다.
셋째는 ‘헤세드hesed’입니다. 이것은 언약에 바탕을 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등지고 사는 백성들에게 진노하시다가도 언약을 기억하시고 사랑을 베푸십니다. 성경은 이것을 ‘인자함’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형제/자매들에게 같은 사랑을 품어야 합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들을 우리 형제/자매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생명의 세상을 열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자비의 사회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합니까? 기본적 정의인 미슈팟, 분배적 정의인 쩨다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헤세드, 이 모든 것들이 망가진 것은 아닙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는 세상, 천부의 인권이 존중되는 세상이야말로 발전된 세상, 진보된 세상, 예수님이 꿈꾸셨던 세상이 아닙니까?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우리는 이런 세상의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야 할 길을 찾은 사람은 낙심할 수 없습니다. 이런 꿈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울면서라도 씨를 뿌리며 살아갑니다. 이런 희망과 보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구원받은 성도의 축복
출 19: 1-8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5,6)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一.하나님은 약속대로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1-2)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면서 40년 동안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출 3:12)"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이처럼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대로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형편과 관계없이, 세상권세가 막아도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친히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라는 뜻도 "약속대로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부족하다고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구원하시는 일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환경이 어렵다해도 지장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야 하며,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면 반드시 이뤄주십니다
. (요15: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새벽기도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게 되고, 믿음이 건전하게 자라나게 되니다. (마 5:17-18)"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二.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구원하셨습니다.3-4)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어떻게 구원해 주셨나를 생각하고 감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구원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년간 종살이 하는 비참한 환경에서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에 애굽사람들을 여러 가지 재앙으로 심판하셨습니다. 마침내는 장자재앙으로 그 머리를 치시고 또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독수리 날개로 엎어 인도하신 것입니다.
(신 32:11)"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독수리가 새끼를 키울 때는 새끼가 안일하게 지내지 못하도록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독수리는 새끼가 새의 왕자가 되기 까지 강훈련을 시킵니다. 새끼를 업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사정없이 아래로 떨어 뜨립니다. 그러면 새끼는 살기 위해 날개를 너풀 거립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가 땅에 닿기 전에 아래로 내려와서 다시 업어 위로 올라 갑니다. 이와 같이 강훈련을 통해 새끼는 강하고 튼튼하게 자라나 새의 왕자가 됩니다.
이것이 어미 독수리의 새끼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생활에 젖어 출애굽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보금 자리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죄의 낙을 즐기며 의미없는 삶을 살기를 원치않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역사를 이루는 거룩한 사명자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험한 광야로 끌어내사 강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애굽과 같은 죄악세상에서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일제 학정에서 건져 주신 일, 육이오 사변 때 전쟁의 비참함과 죽음에서 건저 주신일,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오늘날까지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베플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생각하고 감사로 영광돌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신 1:30-31)"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독수리 날개로 구원해 주시며, 친히 인도해 주심을 감사하며,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감격속에서 항상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三.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5)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는 이제까지 베플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잘 순종해야 합니다.
1.하나님의 계명인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2.신앙생활의 기본적인 것부터 지켜야 합니다.
주일성수해야 합니다-주일성수는 십계명의 중심인 동시에 성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말씀입니다. 주일날 매매하는 것, 일하는 것, 오락하는 것은 금하셧습니다.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이는 하나님께 복받는 비결입니다. (말 3: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많이 범하고, 징계도 제일 많이 지은 죄입니다.
3.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순종해야 합니다.
믿는 일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 순종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항상 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온 백성들이 하나님이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믿음의 결단을 하였습니다(7-8)
믿음생활은 결단을 요합다. 때로는 선택하며, 결단을 해야 합니다. (단 1:8)"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우리도 새롭게 결심하고 금년에는 모든 면에 진보와 발전이 있어야 합니다.
四.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5-6)
1.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열국 중에 그의 소유를 삼는다고 하셨습니다. 전에는 이스라엘은 바로의 소유였습니다. 바로가 시키는대로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위에 군림하여 자유를 억압하고 기쁨과 희망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사용한 "내 소유"라는 단어는 귀중한 보석, 특별한 보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냉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천하보다 귀한 소중한 보석으로 여기시며 사랑하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을 때는 사단의 소유였습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감정과 물질과 정욕의 종이 되어 세상이 헛된 것을 섬기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사 하나님을 섬기는 의의 종이 되게 하시고 우리를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를 죄악세상에서 불러내서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를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장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보호자요,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특별히 보호해 주십니다.
청와대에 소속이 되면 청소부만 돼도 대단합니다. 몇억씩 뇌물을 주고 봐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께 소속된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후사입니다. 그러므로 긍지를 가지고 두려워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사 43:1-2)"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2.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십니다.
제사장은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영광스런 직분입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크게 세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일입니다(레10:11).
예배를 인도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 없이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가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나라는 한마디로 만백성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목자의 나라요,
성경선생입니다. 이것은 실로 말할 수 없는 큰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바로의 노예가 되어 하루 하루를 목적과 비젼도 없이 허망된 것을 위해 일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그들을 하나님의 귀한 구속 역사를 이루는 복된 사명을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이 귀한 제사장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해서 구원받게 하는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벧전 2: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어느 신실한 집사님이 전도하는데, 구석진 곳에 위치한 한 집의 문 앞에 서서 잠시 성령님의 도우심을 기도하고 나서 벨을 아무리 눌러도 응답이 없어서 그냥 돌아서려는데 마음 속에 강한 음성이 들려 옵니다."그냥 떠나지 마라."그는 다시 돌아서서 초인 종을 계속 눌러 보았으나 응답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 사람을 찾으며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그만둘까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아주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웬 사람이길래 이렇게 귀찮게 구는거요?" 퉁명스런 질문에 전도하러 나왔다니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일 없으니 딴 데나 가보시오 " 이렇게 거지 취급하듯하며 문을 소리나게 닫고는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집사님이 낙심하여 돌아서려는데 급한 음성이 귓가에 들려 옵니다." 절대로 포기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 초인종을 한참 누르니
까 주인이 화난 표정과 거친 음성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집사님은 말을 걸기가 어려워서 손에 들고있던 전도지를 건네주고는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라고 간신히 전도하고는 떠밀려 그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몇 집을 더 방문하고는 집에 돌아와 밤 늦게 잠자리에 누웠을 때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받아보니 아까 방문하여 문전박대당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조용한 음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늘 오후 당신을 매정하게 쫓아냈던 그 사람입니다. 저는 제 삶에 지치고 의미를 잃었기 때문에 당신이 찾아왔을 때 죽기로 결심하고 막 목을 매려던 순간이었습니다.그 때 밖에서 누르는 초인종 소리를 들었지만 방해받기 싫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죽으려고 하는데 웬 사람이 또다시 문을 두드리며 찾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죽더라도 누군가 한 번 보고나 죽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문을 열어보니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해서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도않고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 생애의 마지막 계획을 또 다시 방해했습니다. 당신이 다시 찾아와서 건네주는 한장의 종이를 무심결에 받아들고 당신을 쫓아보낸 후'죽더라도 이것을 읽은 후에 죽어도 별 다른 문제가 없지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종이에 적혀있는 글을 읽노라니까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나면서 예수라는 사람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전도지에 적혀있는 당신의 전화번호를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날 만나 복음을 듣고 회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3.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거룩-구별되었다. 하나님께 속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거룩한 백성을 삼고자 하십니다. 거룩한 백성이란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자입니다. 세상과 짝하지 말고 성별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구원하신 목적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부르신 목적이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세상 만백성과 특별히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또 거룩이란 도덕적인 순결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요, 또 이들을 통해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코자 하시는 크신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강력한 증거가 되며,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마5: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년초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지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을 내리고 믿음의 새출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성도가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