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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찬 목사
전 고려대 총장이었던 홍일식 씨가 미국에 갔을 때 하루는 한국인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식당에 손님이 많은 것을 보고 그는 주인에게 넌지시 “장사가 잘 되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주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장사가 잘 되면 뭐합니까?” 라고 대답하면서 한숨을 지었습니다.
사연을 듣고 보니 그 지역 흑인 불량배들이 이틀이 멀다 하고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돈을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난 홍일식 씨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주인에게 한 가지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특별한 날을 하루 정해 놓고 노부모를 모시고 오는 흑인에게는 원하는 만큼의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한국에 오랜 전통임을 그들에게 알려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험상궂게 생긴 흑인들에게 그런 방법이 통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주인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몇 년 후, 미국을 방문한 홍일식 씨가 그 음식점을 찾았을 때 음식점 주인은 그를 무척 반기면서 그간의 일을 자세히 얘기해 주었습니다. 흑인들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주인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홍씨의 제안을 실행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포스터를 붙이고 광고를 내어 널리 그 행사를 홍보하였는데 행사 당일이 되자 정말 식당 안은 노부모를 모시고 온 흑인들로 가득 들어찼습니다. 주인은 약속대로 무료로 음식을 제공했고 그 반응은 엄청나게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 일 이후 흑인들의 행패가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다른 동네의 흑인들이 들어와 행패를 부릴 때면 그 지역 흑인들이 달려와 보호해 주기까지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홍일식 씨에게 연거푸 고맙다는 말을 전하면서 앞으로 그런 행사를 정기적으로 할 생각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고 합니다.(21세기예화- 노부모를 모시고 온 흑인들)
효도는 세계 공통적인 요소임을 알게 합니다. 효, 즉 부모에 대한 공경은 십계명 중에서 인간에 대한 계명(도덕)의 첫째 계명인 제5계명으로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①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부모에 대한 공경은 그것이 '근원'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는 각각 내 영혼과 육체의 근원으로서 모두 다 '생명'을 주신 분들입니다. 내게 생명을 주셨다는 것은 나를 '존재케 했다'는 뜻이고,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케 한 자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자기의 의지에 의하여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부모로부터 보내심을 받고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보내신 자의 뜻에 순복하고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효의 절대적 의무를 발견하게 됩니다.
②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관계'입니다.
부부는 그 관계가 이혼에 의하여 해소될 수도 있으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어떤 경우로도 해소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효의 당위성이 있습니다.
③ 모든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은혜를 입고 자랍니다.
그들은 이 은혜를 자식들에게 베풀기 위하여 그들의 삶 자체를 기꺼이 희생합니다. 자식 된 자 그 누구도 부모들이 그들을 위하여 쏟은 정성과 노고, 근심과 걱정, 사랑과 기도의 간절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보답한다 할지라도 다할 수가 없는, 전혀 그 보상이 불가능한 은혜입니다. 그것은 참사랑이 주는 길만 열려 있고 받는 길은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갚은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제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그 자식에게 부모로서의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대신할 수가 있을 뿐입니다.
④ 자녀는 부모의 훈계를 따라 그들이 가치관과 인생관을 형성시켜 갑니다.
그들은 부모의 삶 자체에서 인생을 배우고 부모의 교훈을 통하여 '사람'이 되어 갑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부모로부터 아름다운 도덕적 성품을 이어받고 교훈과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국 교육국에서 공립학교 중고등학생 선생님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학생들을 교육시키는데 있어 애로 되는 사항이 무엇인가를 조사했는데 가장 많은 답변 네 가지를 발표했다합니다.
첫째가 수업태도입니다.
사춘기를 겪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하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친구들과 무엇인가 속삭이고 딴 세상에 가 있는 것처럼 산만한 수업태도 때문에 힘들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진리 탐구를 위해서 눈을 반짝거리며 쳐다봐야 가르치는 보람과 기쁨이 있는데 듣는 둥 마는 둥 하니까 신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훨씬 더한 것 같습니다. 절반 이상이 잠을 잔다고 합니다. 학원 갔다가 늦게 들어오고 밤 문화가 만연해 잠들을 안자니 학교 와서 잠을 자게 되고 이런 것이 사회적, 교육의 문제로 큰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단체 행동을 할 때 질서를 안 지킨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발달해 자신의 의사대로 개별 행동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합니다. 이때는 이유 없는 반항의 시기라서 교육이 힘들다는 겁니다. 무엇을 시키면 "왜 그런 일을 시키느냐? 안하면 안 되냐?" 전부 그렇게 나오니까 선생님으로서 참 힘들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휴지라던가 껌을 씹는다던가 하면 교실 아무데나 집어던져 버리면서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의식이 약한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네 번째는 숙제를 성실하게 해오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가 선생님들의 고민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조사를 30년마다 하는게 1980년대에도 똑같은 조사를 했더니 1950년대 문제는 하나도 문제가 안 되는 엄청난 문제의 변화가 있음이 발표되었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선생님을 협박하는 행위입니다.
미국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선생님을 협박하는 행위가 가끔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협박하는 정도가 그냥 겁을 주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위협까지 주고 있습니다. 미국은 총의 소지가 합법화 되어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들 수십 명을 쏴서 죽여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학점을 안주면 죽여 버리겠다고 해서 그것이 선생님들의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여학생이 임신했을 때의 선생님들이 너무나 힘들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남녀 학생들이 성 경험한 퍼센트가 80~90퍼센트라고 신문에 통계가 늘 나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로 선생님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마약 복용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1980년대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때 마약의 맛을 알게 되면 그 학생의 인생은 끝이 나는 겁니다. 거의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큰 고민이라는 겁니다.
네 번째로 갱단 가입과 살인 행위가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1950년대 문제는 하나도 문제가 안 되는 엄청난 변화가 현실화된 것이 1980년대 선생님들의 고민이라고 발표되었다는 것입니다.
네 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가 유명한 현인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잘 키울 수 있습니까” 현인은 어머니를 정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정원에 있는 네 그루의 나무를 한번 뽑아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갓 심어놓은 첫번째 나무를 아주 쉽게 뽑았습니다. 두번째 나무는 심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힘으로 가능했습니다. 세번째는 심은지 꽤 지난 나무였습니다.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그것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네번째 나무는 이미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쏟았으나 나무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현인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자녀교육도 이 나무와 같습니다. 오랜 습관은 깊은 뿌리를 내려서 그것을 바꾸기가 어렵지요. 어린 자녀에게 좋은 습관을 갖게 하십시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건강한 심성과 좋은 습관입니다. 이것은 신앙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은 교육 관례상 실제적인 생활 지침(훈계)은 아버지의 몫이었으며, 일반적 교훈이나 율법 등의 가르침은 어머니에게 속하였다 합니다.
유대인들의 신앙 교육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이었고 그 가정안에서 부모는 가르치는 자로 아들은 배우는 자로 규정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부모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자녀를 공개적인 재판 과정 후 형벌에 처하라고 합니다.
“(신 21: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신 21:19)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신 21: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신 21: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의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왜냐하면 교육에 있어서 부모는 하나님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부모들은 공적 장소에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으로 가지고 가서 그 자녀들에게 다시 교훈하였으며 자녀들은 그 부모에게 묻고 배우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신 4: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를 위하여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하노라 하시매”
(수 4: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수 4: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이스라엘은 유목 생활을 했습니다.
(창46:31~34) “요셉이 그 형들과 아비의 권속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비의 권속이 내게로 왔는데 그들은 목자라 목축으로 업을 삼으므로 그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당신들은 고하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거하게 되리이다.” 합니다.
유목인 생활은 떠돌이 집시 생활입니다. 짐승의 떼를 몰고 풀과 물을 찾아서 끝없이 이동하는 생활입니다. 삶의 장소가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항상 끝없는 이동을 해야 되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들판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양육을 받고 그 직업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학교는 근처도 못 가는 이런 아이들이 지금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 교육을 어디서 시키겠습니까? 그래서 가정교육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라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을 또 자기 자녀에게 가르칩니다. 이렇게 신앙이 유산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장 열심히 자녀들에게 읽어주고 자신들도 읽는 잠언 전체를 보시면 거의 모두의 글이 “내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라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들아!”하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이요,
하나는 부모님이 자녀를 부르는 소리로 해석합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이름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녀를 보면 그의 아들 이삭이나 손자들인 야곱, 에서는 교회도 없었고 학교도 없었고 주일학교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모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되었는가? 가정이 곧 교회요 율법학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밝힐 때 항상 “나는 너의 조국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네 아비 이삭의 하나님이요 지금은 너의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말년에 열두 아들을 앉혀놓고 대제사장적 일을 합니다.
(창49:1)“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찌어다.”라고 열두 아들들의 앞날을 예언하면서 복을 비는 기도와 책망을 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예언하고 축복하고 책망한 내용대로 100퍼센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열두 아들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니 가정이 교회요 곧 학교입니다. 아버지가 제사장이며 선생님입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이런 신앙 문화로 형성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가정 중심의 신앙 문화를 만들어야 훌륭한 신앙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책임질 수 없는 자녀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 자녀에게 나만큼 관심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에 대한 성경적 정의를 할때 청지기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내가 맡아서 관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큰일을 하지 않아도 내게 맡겨주신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하면 그 자체가 인생의 성공이요 큰 수확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큰일을 못했어도 내 아이는 어떤 일을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로서 더글라스 맥아더 처럼 기도하며 자녀를 훈계하며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 기도문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나에게 이러한 자녀들을 주옵소서
약할 때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강한 힘과
무서울 때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여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나에게 주옵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나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바라옵건데 그를 쉬움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과 도전에 대하여 분투 항거 할 줄 알도륵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나 설한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긍휼히 여길 줄 알도륵 가르쳐 주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악한 생각을 극복하는 자녀
장래를 바라보는 동시에 과거의 경험을 활용하는 자녀를 나에게 주옵소서
이것을 다 주신 다음 이에 더하여 유우머를 알게 하시며
인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삶을 즐길 줄 알게 하시어
자기 자신을 너무 증대하게 여기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줄 알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매일 기도하며 성경 읽고 듣고 지키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은 소박하다는 것과
참된 지혜는 개방된 것이요 참된 힘은 바른 신앙심과
온유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륵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어느 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어머니로서의 법을 세워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6.25 전쟁 때 강원도 원통에 주둔하고 있던 어느 국군 부대에서 생긴 일입니다. 하루 종일 계속된 힘겨운 전투를 마치고 군인들이 잠자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모두 두려움과 불안에 쌓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중대장이 사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군인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그대들의 어머니를 생각하시오. 그대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을 어머니를, 그대들을 위해서 물을 떠 놓고 하늘을 향해 빌고 있을 어머니를!" 갑자기 막사는 조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대장이 나중에 그 당시를 회고하기를, 그 군인들은 막사 안에서 잠을 잔 것이 아니라 어머니 품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신 분입니다. 자녀들에 대한 사랑과 희생이 가장 순수하고 가장 뜨겁고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미국 아틀란타 근처 산악 지대에서 치열한 남북 전쟁이 있은 직후 연합군 소속의 젊은 장교가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위생병들이 발견하여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의식을 회복하자 무신론자인 자신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려 주신다면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필라델피아 템플 대학교와 세계의 종합 병원을 설립하여 20여 권의 저서를 내는 등 수많은 영혼을 구원시켰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미국이 배출한 가장 기적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러셀 콘웰'입니다.
훈계와 법을 따르면 복된 역사가 임합니다.
(잠 1: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록펠러는 그의 어머니가 남긴 교육한 십계명을 지켰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를 육신의 아버지보다 조금 더 섬겨라.
두 번째, 목사님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섬겨라.
세 번째, 주일에는 가능한 한 본 교회에서 드리라.
네 번째,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다섯 번째,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마라.
여섯 번째, 아침에 하루의 목표를 세우고 기도로 시작해라.
일곱 번째, 일 마친 저녁은 반성의 기도를 드리라.
여덟 번째, 성경말씀은 날마다 읽으라. 특히 아침에 읽으라.
아홉 번째,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힘껏 도우라.
열 번째, 예배 시간에는 일찍 가서 항상 앞자리에 앉으라.
이것이 아들을 위한 교육이었습니다. 그 교육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제일 부자가 되었고 이 세계에서 십일조를 제일 많이 낸 사람은 이 사람입니다. 록펠러는 한때 세계에서 제일 부자였습니다. 뉴욕 사람들은 한때 수도세를 안냈습니다. 록펠러가 혼자서 다 냈기 때문입니다.
링컨도 그렇습니다. 링컨이 9세 되던 해 어머니 낸시 행크스는 "부자나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 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링컨은 어머니가 남겨준 흠정역 성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새어머니 새러부시 존스턴 링컨은 침례교인으로 에이브(링컨의 애칭)를 특히 귀여워 해 그에게 쓰기를 가르치며 신앙으로 교육했다 합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자란 그는 남북전쟁이 치열해질수록 링컨은 더 깊이 신앙에 몰두했고 역사를 이끄는 이는 하나님이며 자신은 그의 도구에 불과함을 잊지 않았다합니다. 링컨은 전쟁중 때때로 국가금식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또 고백해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긍휼과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와 풍요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잊어왔습니다. 전쟁이라는 재난 앞에서 국가적인 죄를 자백하고 세상의 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유명한 게티즈버그의 연설에서도 국가의 안위를 하나님께 의탁하는 링컨의 신앙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호 아래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는 과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를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이 위대한 과제에 헌신해야 합니다"
역사적인 업적과 인품, 극빈한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지위에 오르고 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링컨의 생애 뒤에는 전쟁 중에도 "내게 맡겨진 일이 많아 더 열심히 기도해야한다"며 늘 하나님을 찾았던 신실한 믿음이 있었다합니다.
미국에서 최초의 대통령이 탄생한지 200주년이 되던 1989년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을 조사한 결과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종합 1위를 차지했는데 업적과 위기관리능력, 성격과 도덕성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지도력과 정치력에서는 루스벨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합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부모의 교훈을 순종한 자에게는 실저적인 보상이라 할 수 있는 면류관을 제시하심으로 더 적극적으로 지혜에 대한 순종의 삶을 살도록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교육 방법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충성한 성도에게도 면류관을 약속해 주십니다.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