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신우택(39) 과장은 본사 이전에 앞서 지난해 1월 가족 전체가 부산으로 이사왔다.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고, 초기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신 과장 가족은 '부산사람'이 다 됐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아내(35)는 생판 모르는 아파트 주민들과 모임을 만들어 매주 여행을 다닐 정도로 '부산 아줌마'로 변했다. 직장도 아예 부산으로 옮겼다. 사투리를 전혀 몰라 '왕따'를 당할까 우려했던 초등학생 아들(8)은 반 대표까지 맡았다.
같은 회사의 이용욱(44) 과장도 빠른 속도로 부산에 정착한 케이스다. 이 과장의 부인이 딸(10)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운영위원회 위원까지 맡고 있을 정도다. 이 과장은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부산사투리에 서툴러 이웃 주민들 얘기를 절반도 못 알아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가니 부산 사람들이 누구보다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교육 여건이나 주거 환경도 서울에 비해 결코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한 금융공기업 직원들의 '부산사람 되기'가 한창이다. 캠코를 비롯해 한국주택금융공사 대한주택보증 한국예탁결제원 등 서울서 근무하다 부산으로 이전한 금융공기업 직원은 2000여 명에 이른다. 대연혁신도시 입주 등 이미 부산으로 이주한 직원이 200명을 훨씬 넘는다. 이전 공기업 직원 중 아직 적지 않은 직원이 자녀교육 문제 등으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고 있지만, 올해 중 부산 이주자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게 공기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새 학기에 맞춰 다음 달 이사 계획을 잡은 직원들도 어렵잖게 만나볼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다 2005년 본사 이전 뒤 한동안 서울과 부산에서 '두 집 살림'을 했던 한국거래소 직원 중 상당수도 온 가족이 이미 부산으로 이사했다.
앞선 사례처럼 부산으로 옮겨와 터를 잡은 직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생을 살던 고향을 떠나 이제 막 타지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처지다. 이들은 저마다 하루빨리 부산에 정착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회사 차원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사진촬영 동아리와 자전거 동호회 직원들은 가족 동반으로 부산 곳곳을 찾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지역의 문화체험과 맛집 탐방 시간을 갖고 있다. 주택금융공사도 부산국제영화제, 갈맷길 트레킹 등 지역 행사에 직원들을 참여시키는가 하면, 봉사 동아리인 '이웃사랑회'를 통해 부산 사람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있다.
이전한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바로 사투리다. 캠코의 직원 동호회인 '부산지역연구회'는 정기적으로 '사투리 강좌'를 열고 있는데, 직원들의 열기가 뜨겁다. 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정언 주임은 "이주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직원들이 사투리와 부산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빠르게 지역에 녹아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한 직원 중 상당수는 20, 30대 미혼 남녀로, 정착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부산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것.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입주기관협의회는 입주 기관 미혼 직원을 대상으로 정례 미팅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직원은 여전히 '서울 사람'티를 못 벗고 '金歸月來(금귀월래·금요일에 서울 갔다 월요일 부산 출근)'를 계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셔틀버스 이용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등 부산사람 되기에 동참하는 직원은 계속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