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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배운다.
“이 글은 미래 나의 자식에게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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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여행은 보고 느끼는 거야. 사람들을 보고 느끼고, 환경을 보고 느끼면, 너는 모든 것을 배운 여행가야.”
안녕! 나는 하반하 비밀병기를 여행한 5번 김윤수야. 여행은 3월 18일에 시작하여 12월 23일에 끝났어. 약 280일 여행한 거지. 280일 동안 9개국, 약 16개 도시를 여행했어. 이 여행을 하기 전에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로 21 세곡 푸르지오 203동 1504호에서 살던 평범한 아주 평범한 중학생이었어. 키는 176cm, 몸무게는 약 65kg정도로 평균인 아이들보다 약간 큰 편의 남자이고, 운동은 농구를 좋아하여 농구부에도 소속되어있었고 색깔은 빨강색을 좋아하여 학교에서 내가 쓰는 모든 것들이 발강색인 것으로 유명했어. 농구화도 빨강색이었단다. 친구들이 멀리서도 빨강색이 눈에 잘 뛴다고 편해하기도 했어 그러고 혈액형은 A형이고 우리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나로 3명이야.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잘해, 하반하, 학교에서 하는 대부분의 운동을 하면 모두 나의 이름을 말함 어디서든, 어떤 종목에서든 에이스로 불렸단다. 그러는 동시에 어디를 가던 선생님들께서 모범적이고 정의로운 학생으로 불려 인정도 받는단다. 그리하여 때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선도부를 하였고 선도부 중에서도 범도부라고 불렸어 범도부란 선도부와 호랑이 범을 합친 단어야. 재미있지? 정말 말이 없는 무서운 선도부 상상해 보았니? 규칙에서는 칼 같고 감정이 없을 것 같은 차가운 범도부.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선도부를 할 때와 어른들과 함께 할 때만 칼 같고 차가운 묵묵한 범도부 김윤수이지, 친구들, 가족들 앞에서는 아줌마 김윤수로 바뀌어 말을 정말 많이 한단다. 인간적이지 않니? 또한 나는 창의력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단다. 어렸을 때부터 창의력 키우는 활동을 많이 하여서 학교p서 가로 음악 표현하기, 미술 수업 때 자연을 창의적으로 표형하기 같은 것을 할 때마다 나의 빛나는 아이디어를 사용하여 항상 고득점을 얻었고, 하반하 창작 수업 때 만들었던 공익광고 찍어 만들기, 뮤직비디오, 아크로바틱, 창작 칼 군무 모두 내 아이디어를 사용하여 과제물들을 냈지. 이처럼 창의적인 면은 어디에서든 유용하여서 꼭 너도 창의력을 키웠으면 좋겠어. 사람이 장점만 있으면 안 되겠지?
나는 앞에서 말했듯 아줌마 김윤수로 변해 말을 많이 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불필요한 말을 자주 했단다. 예를 들어 내가 혼나는 상황인데 상대방의 화가 많이 줄어들어 그만 꾸중을 들을 수 있는데 내가 꼭 그럴 때 필요하지 않은 말을 덧붙여 상대방 기분을 나쁘게 하여 또 혼나게 되는 거야. 나는 이런 엄청난 단점이 있었어. 하지만 하반하에 와서 불필요한 말을 줄이는 연습을 한 후에는 굉장히 잘 생활하고 있단다.
나의 장래희망은 건축가야. 건축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직업이지. 그러한 내가 왜 여행을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을까? 이제 내 소개는 그만하고 내가 여행하게 된 계기를 설명해줄게. 뒷내용도 기대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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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왔을까?
비밀병기에 오게 된 이야기를 시작해보지... 우선 하반하와 만나게 된 이유는 호준이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께 추천을 해주셔서 8기 여름시즌 16기를 가게 되어 하반하와 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단다. 비밀병기 오기 전에 겨울시즌 17기를 나의 의지로 갔는데 겨울시즌이 끝날 때 쯤 태국에서 써니 선생님께서 나에게 내년 비밀병기에 한번 와본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셔서 나는 “괜찮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저의 장래희망인 건축가를 준비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할 것입니다. 특히 겨울시즌 오기 전에 수학을 잘 가르쳐주시는 수학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 덕분에 수학이 재미있다는 것을 배웠고 수학점수도 확 올라갔어. 그래서 한국에서 학교를 다님 공부를 열심히 할 것입니다.” 라고 정중히 거절했단다. 그런데 써니 선생님은 포기하시지 않고 나에게 내년에는 9기가 아니라 비밀병기라서 정산 프로그램을 약하게 하고 스포츠 위주인 소수정예 팀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하셨단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 절대 공부할 성격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하반하에서 공부습관을 배워가야 한다고 하셨단다. 하지만 나는 대학교를 가서 건축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나의 고집을 계속 밀고 나가 결국 써니 선생님도 포기하겠다고 선언 하셨단다.
하지만 8기 비상파티에서 부모님과 함께, 써니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가서 인사를 드린 후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이야길 넘어가더라고! 그 결과는 우리 부모님께서 써니 선생님께 “그럼 윤수가 내년에 하반하 비밀병기에 가는 것이 좋겠죠? 그죠? 감사합니다,” 라며 끝이나버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이 나에게 내년에 비밀병기 그냥 가라는 말을 꺼내실 때 내가 말을 끊으며 절대 가지 않겠다고 짜증을 내었다가 엄청 혼났단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몇일 동안 혼나고 하반하의 장점을 듣다가 나는 결국 가겠다는 선택을 내렸단다. 왜냐하면 내가 계속 가지 않겠다고 해도 끊임없이 나에게 하반하에 가라고 연설을 했음에 틀림없었지. 그러고 부모님이 나에게 1년을 그냥 쉬러간다고 생각하며 가서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배우면 한국에서 찾을 수 없었던 나의 장래희망인 건축가에 대한 확신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남들보다 한 가지라도 더 많이 보고 경험하면 좋은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지. 그러고 내가 생각하길 그때 나의 성적상황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내 꿈이 건축가인데 여행을 하면 여러 나라의 자연 환경에 맞게 지어진 건축물들을 자세히 보고 배울 수 있기에 간다고 선택한 것 이었어. 그리하여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하고 중산고라는 멋진 남고를 3일 동안 등교하다가 자퇴를 하고 남들이 학교를 가는 시간에 사복을 입고 아무 이유 없이 다른 동네 돌아다니고 버스를 타고 모든 노선을 돌아가 보고 혼자 피씨방도 가고 혼자 노래방도 가고 하반하 준비물도 쇼핑하러가며 시간을 사용하다가 비밀병기에 오게 된 거란다! 자퇴라! 멋있지 않니? 이제 내가 여행하며 보고 느끼며 배운 나라별 글을 보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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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에게 아주 강렬했던! 하반하 비밀병기 첫 여행지 헝가리에 대하여 적어볼까 한다. 3월 18일에 한국 인천공항을 떠나 헝가리 부다패스트 공항에 도착하였단다. 도착하니 너무 추워서 옷을 여러 겹으로 겹쳐 꽁꽁 싸매고 공항을 나왔단다! 꽁꽁 싸맸다고 해도 겨울용이 아닌 가을 트레이닝복 한 벌에 반팔 티, 후드 티, 아버지의 경량 패딩을 입은 것뿐이었어. 뭐... 남자는 하체가 시원해야하니까! (근데 시원한 게 아니라 추운 건데 괜찮겠지?) 공항을 나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숙소까지 걸어갔단다. 버스와 지하철은 굉장히 깨끗하고 편했어.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으니 죽은 자의 도시 같은 느낌을 받았단다. 확실히 추운 나라여서 그런지 해가 빨리 지니 사람들이 빨리 집에 들어가고 사람들이 집안에 빨리 들어가니 가게들도 문을 열어둘 필요가 없는 것이란다. 어두운데다가 사람이 보이지도 않으니 볼 것 들이 건축물들 밖에 없어 건축물 보는데 집중을 하게 되더라. 사방에는 서양 영화에 나오는 오래되고 세련된 건물들이 즐비하였어. 역시 유럽식 건축 스타일과 한국식 건축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고 산업화가 빨리되었다는 것도 눈에 보이더라. 건축물만 보아도 그 나라가 보인단다. 나도 지금 생각해보니 신기해. 우리가 머무르던 숙소는 한 층이 굉장히 좋은 곳이었어. 하지만 층수가 높아서 꽤 많은 도미토리방이 있어 많은 인원이 들어갈수 있었단다. 숙소 면적이 좋은 관계로 계단은 나선형 계단을 사용 하였더라고. 좁은 공간을 가장 효율적이게 사용할 수 있는 계단이 바로 나선형 계단 이란다! 학생들은 2개의 도미토리방을 사용하였고, 아래층 도미토리방은 외국인과 같이 사용하는데 그 외국인들이 담배를 굉장히 많이 펴서 그 방은 담배 연기와 함께 지냈어. 아마 그 방에서 2달 이상 살았더라면 이미 폐암이 걸렸을 거야. 이곳 사람들이 부엌에서 요리해 먹는 것을 보았는데 항상 빵과 간편 파스타 요리를 해먹더라. 이곳 사람들의 주식인 것 같았어. 마트에서도 빵과 파스타를 가장 많이 팔기도 했어. 위층 도미토리 방을 들어갈 때 밖이 보이는 좁은 복도를 지나가야 하는데 난간이 너무 낮아 걸어 다니다 떨어질까 무서웠단다. 한국은 안전이 우선이라 허리 이상 되는 난간이 설치되어야 하는데 안전부분이 취약한 것 같았어.
그들이 입는 옷은 패딩아닌 패딩을 입고 다녔는데 아마 경량 패딩처럼 얇지만 겉은 가죽인 옷을 입고 다닌 것 가아. 헝가리에는 약 4일을 머물렀는데 그 사이 우리는 밤 산책을 옛궁전, 성당을 갔단다. 그곳을 가기위해 거대한 다리를 건넜는데 강바람이 엄청 강해서 빨리 지나왔지만 굉장히 튼튼하고 아름답더라고. 옛날 궁전과 성당은 한국식 건물들처럼 무겁고 따뜻한 느낌이 없고 웅장하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느낌이 강했어. 조명에 비친 궁전이 마치 금색의 뾰족뾰족한 금관 같더라고. 성당에 있는 여러 색의 스테인 글라스는 마치 왕관에 박혀있는 보석 같았고 역시 왕족은 건물도 왕족 같은 것을 사용하네. 강의 물살은 너무 강해 마치 “노인과 바다”의 바다 물살을 연상시켰단다. 부다패스트는 나에게 외국에 익숙해지게 하는 장소였고 추위를 익숙하게 해주는 훈련소였고 건축물을 자세히 볼수 있게 해주는 곳이었단다. 한마디로 부다패스트를 말하자면 “부다패스트는 데이트다.”. 누군가와 걷는다는 것 자체가 황홀하고 달콤하기 때문이란다. 야경을 보는 것을 추천해줄게 다음은 슬로바키아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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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실사 판 겨울왕국. 슬로바키아 가장 재미있는 스포츠를 하러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설상 타트라산에서 여러 가지 코스를 즐기실 준비가 되셨나요? go pass라는 카드 한 장이면 스키장 안에서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곳에 머물면서 생활하실 곳이 필요하신가요? 그럼 야스나 RELAX 호텔로 오십시요~ 눈이 계속 오는 이곳의 자연환경에 맞게 지어진 포근한 호텔! 눈이 아무리 많이 내려도 버틸 수 있도록 지붕이 특별히 튼튼하고 눈이 잘 흘러내리게 가파르게 되어있습니다! 꼭대기 층에서는 지붕에 있는 창문으로 하늘에 있는 별과 달을 볼 수 있습니다! 숙소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무료로 한 번에 스키장까지 갈수 있답니다. 자연 눈으로 덮인 설산 타트라산에서 열심히 스키, 보드를 타고 다시 무료 버스를 타면 편안하게 숙소를 도착할 수 있습니다. 추운 곳에서 열정적으로 스포츠를 즐긴 후 몸에 쌓인 피로를 따뜻한 물로 샤워한 후 개운하게 침대 속에 들어가면 3초안에 잠이 들수 있습니다. 잠자는 동안 당신이 감기에 걸리지 않게 라디에이터가 당신의 건강을 지켜줍니다. 스키와 보드를 탈 때 감기가 걸리면 괴로우실 것입니다. 그런 당신을 위한 맞춤식 기계가 복도에 있고 방에 무려 3개가 더 달려있습니다.
어때! 슬로바키아에서 살면 천국일 것 같지 않니? 우리는 부다패스트에서 미리 추위에 몸을 달련시켜서인지 효과가 있었단다. 한국스키장에서 느끼는 추우가 슬로바키아 스키장에서의 추위보다 더 강하더라. 그래도 눈은 슬로바키아가 더 좋아. 슬로바키아 타트라산이 정말 설산인데 그곳에 그냥 스키장 코스만 얹어 놓은 곳이라 그런지 산 정상 눈보라 안에서 사슴도 보았단다. 눈보라가 얼마나 강한지 곤돌라 건물에 뾰족뾰족한 얼음이 생겼고 스키를 타는 동안 고글 없이는 스키를 탈수 없을 정도로 눈보라가 심했어. 그래도 심장을 졸이며 스키를 탔단다. 한국이 아닌 슬로바키아에서 외국인들과 스키를 타보니 우리와 다르게 안전하게 스키를 타는 것을 보고 굉장히 안전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았단다. 그러고 슬로바키아라고 다들 두껍게 입고 다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짧고 얇게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단다. 이런 모습을 보니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든 적응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배웠어. 가파른 산에 눈이 내리니 스키를 탈수 있고 눈이 많이 내리니 눈이 지붕에 쌓여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지붕을 가파르게 한단다. 나는 이것을 통해 사람들이 자연환경에 맞추어 살아가는 방식을 배운 것을 느꼈단다. 너희도 꼭 놀러 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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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를 가게 되었단다. 아우슈비츠는 히틀러가 유대인 대학살을 할 당시 사람들을 가두었던 감옥이란다. 우리가 폴란드를 들렸던 이유를 아우슈비츠를 가기 위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사성이 아주 깊은 곳이야. 우리가 아우슈비츠에 가는 날은 비가 내리고 흐릿흐릿한 날이었어. 내 문집에 제목이“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배운다.”이지 않니? 사람들의 생활을 배운다는 것은 꼭 현재만 배우는 것이 아니란다. 나는 히틀러가 유대인 대학살을 했을 당시 유대인들의 삶에 대하여 배웠단다.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 안으로 끌려가기 전에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에서 쥐죽은 듯 몰래 숨어서 살았단다. 창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커튼으로 모두 가리고 빛이 새어나오지도 못하게 막고 항상 최소의 양의 음식을 먹으며 생활했단다. 운이 좋지 않으면 군인들이 쳐들어와 학살을 사거나 끌고 가 아우슈비츠에 가두었단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간 사람들은 철광 노동을 하는데 작업 중 죽거나 다치면 화학실로 끌려가게 되어 화학가스로 죽게 된단다. 아우슈비츠에 가서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물품, 머리카락 등을 모아둔 전시관을 보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더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그런 양이 나올까 싶었단다. 그때 학살당했던 유대인들의 절규가 들렸단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의 숙소가 예전에 실제 유대인들이 숨어살던 건물을 사용한 곳이었는데, 현재는 집안의 가장들이 멀리 일하러 갔다가 돌아와 쉬는 숙소가 되어있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옷을 보니 노동을 하는 사람 같더라고. 그들이 매일 밤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기뻐하는 것을 보고, 어떤 나라던 모든 가정의 가장들은 힘들게 일을 하고 하루를 끝내기 전에 가족들을 보면 기운은 되찾는다는 것을 느꼈단다. 나의 아버지도 그러실 수 있게 나는 좋은 가족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단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화나지 않게 하기, 씻고 나오시면 식사를 바로 드실 수 있게 식사 준비해두기 등... 그들도 힘들지 않은 척을 하는 것을 옆에서 보니, 항상 나의 어머니가 아버지 힘드시다고, 일이 너무 힘들다고 하시는데 나의 앞에서는 천하무적처럼 보이는 나의 아버지도 그러시고 계신 거였구나 생각하였단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에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의 피로를 풀어드릴 수 있는 것을 생각해두어야겠지? 이들을 위해 나는 10시에 소등을 하였단다. 그들이 일찍 자서 피로를 풀어야 다음날 일을 열심히, 안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들은 식사를 정말 간단히 빵과 파스타, 소세지 정도만 먹더라고. 이런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외국인들과 섞여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많이 부딪쳐 봐야하는 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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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한군데 우크라이나. 혹시 그거 아니?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여자가 가장 이쁘다고 유명한 나라란다. 어때! 기대되지? 우크라이나의 첫 번째 동네 이름은 리비우였단다. 폴란드에서 기차타고 버스타고 힘들게 왔단다. 버스에서 내려 우리는 약 5km정도 되는 거리를 배낭매고 걸어서 숙소까지 걸어갔는데 피곤한 몸에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걸었더니 죽을 맛이더라고. 그러는 동안 은재는 정말 죽을 뻔 했다고 하더라. 아무튼 그날 밤 이동은 비밀병기 학생들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일 것 같아. 우리는 도시외각으로 걸어가 “COFFEE HOUSE”라는 숙소에 쭉~! 머무르게 되었어. 아주 편안한 숙소에서 머무르며 우리는 학교, 대학교, 대정방 교회에서 공연을 하였단다. 학교에서 할 때는 초, 중, 고 가 모두 있었는데 처음 보는 종류의 공연인지 신기해하며 반응을 잘해주더라. 대학교에서는 다들 시시하다는 듯이 반응이 없어서 공연하는 맛이 없었단다. 대정방 교회에서는 어린이부터 늙으신 분들까지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모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어. 그곳에서 정말 열심히 공연하였단다. 공연이 끝난 후 우리는 애국가를 불렀단다. 그러더니 몇몇이 울기 시작하였단다. 사실 애국가를 부르기 전에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말하고 어서 통일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시작을 했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애국가를 부른 후 그곳에 있던 분들도 우크라이나 국가를 불러주셨단다. 정말 아름다운 노래였단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은 통한다는 것을 배웠단다. 이곳에서 느꼈던 것은 전 세계는 1개의 민족이라는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우크라이나 국가. 꼭 한번 들어 보렴! 내가 우크라이나가 세계에서 여자가 가장 이쁘기로 유명한 나라라고 했지? 내가 이런 말을 했던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미인의 나라라는 것을 증명하듯 나는 “그녀”를 대정방 교회에서 만났단다. 그녀는 바비인형같이 어깨아래까지 내려가는 곱슬곱슬한 금발이고 피부는 정말 하얗고 눈이 정말 아름다웠어. 회색 가디건에 흰색 원피스를 입은 나보다 약간키가 작고 마른 체형! 이었단다. 그녀가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와서 그녀의 부모님이 자신의 딸과 사진 찍어 달라하여 나는 바로 YES!를 외쳤단다. 왜냐고? 하반하의 모든 남자학생들이 예쁘다고 같이 사진 찍고 싶다고 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나는 그녀와 사진을 찍은 후 다시 만나고 싶어 하며 그녀를 잊지 않고 생활하고 있단다. 교회를 가는데 사람들이 모두 깔끔하게 입고 나오더라고 그것이 예의 인가봐. 리비우에 머물 때는 너무 따뜻한 봄 날씨여서 외출을 자주 하였단다. 리비우 외각에서 도심 쪽으로 나가니 건물들이 크고 사람들이 많고 교통이 복잡 하더라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 모두 모델 같은 사람들이었어. 우리는 도심 쪽에서 코스요리를 주는 전통 음식 레스토랑을 갔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모든 전통음식은 감자로 만든 음식이었어. 나는 감자로 이렇게 많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웠단다. 내가 평소에 자구 먹지 않던 감자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자주 쓰이는 식재료가 될 수 있구나 라고 배웠단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딱히 여러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던 나라란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가고 싶은 나라 중 한군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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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거대한 sea line이라는 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로 넘어왔단다. sea line이라는 거대한 배에서 선장님께서 하반하를 기장실로 초대하여 sea line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자세히 들었는데, 이 거대한 배는 대한민국 포항의 조선소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고. 다른 나라에서 조선업 세계 1등인 대한민국에서 만든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러웠단다.
배이 갑판에서도 공연을 했는데 바다의 소리가 얼마나 강한지 우리의 거대한 북소리가 들리지 않더라... 이때 또 한 번 자연의 강인함을 느꼈어. 이스탄불에는 새벽쯤에 도착하였는데 배가 항구에 도착하기 전 갑판에 나와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야경을 배에서 보았는데 정말 아름답더군... TV,책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정말 다른데, 바다에 떠있는 배에서 실제로 이스탄불의 야경을 보니 정말 말을 못하겠더라. 우리는 항구에 도착한 후 1시간 정도 기다리다 우리의 숙소 orient호텔로 갔단다. orient호텔은 숙박 시설 겸, 식당 겸, Bar였는데, 5층까지 있었어, 4층은 식당 겸, Bar이고 5층은 테라스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했어. 왜냐고? 나는 광합성 하는 느낌이 너무 좋아. 그런데 이곳은 엄청 강한 햇빛이 내리쬐지만 엄청 강한 바닷바람 또한 불어서 땀이 나지 않고 광합성을 할 수 있단다. 바다와 1km도 떨어져있지 않아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갈매기들이 가끔 놀러와 나를 굉장히 오래 쳐다보다 강한 바닷바람에 몸을 날린단다. 그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있으면 모스크에 있는 미나렛에서 코란이 나오는데 1개의 모스크에서 나는 코란 소리도 굉장히 큰데 3,4개의 모스크에서 돌아가며 1초도 쉬지 않고 코란을 읽는단다. 그런 모스가 이스탄불에만 300여개가 있고 터키 전역에는 6만 7천여 개의 모스크가 남겨져 있어. 어때 어마어마하지? 모스크의 건물은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무늬를 넣은 타일을 붙여 장식해져있어. 그래서 터키는 타일기술과 카펫기술이 발달해 있단다. 나도 타일 기술을 배우고 싶어 우리는 윈드서핑을 배우기 위해 패티에로 넘어갔는데 숙소가 정말 깨끗하고 좋았어. 숙소 안에는 2개의 거대한 수영장이 있고 3층짜리 건물이 있었는데 그런 건물을 우리가 3개나 사용하였단다. 아침식사는 가운데 건물에서 먹었단다. 항상 빵과 딸기잼, 치즈, 우유, 시리얼, 대장님 음식을 아침 식사로 먹었단다. 터키에서만 파는 시미트라는 깨 빵이 정말 고소해 맛있었어.
윈드서핑을 타러 바다까지 가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어. 우리는 처음 보는 윈드서핑 보드로 연습을 하였단다. 초반에는 보트위에 올라가자마자 중심을 못 잡아 바다로 떨어졌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을 거야. 하지만 대장님의 강의를 듣고 계속 연습하다보니 바람을 익는 법을 배우게 되고 파도를 읽는 법을 배우게 되고 서핑보드위에서 노는 법을 배웠단다. 그러다보니 다들 4.0, 4.5 크기의 돛을 이용하는데 나는 5.0, 5.5, 6.0크기의 돛을 타기까지 했어 돛이 크면 클수록 내가 잡을 수 있는 바람의 양이 많아져서 뒤로 누워도 등이 물에 닿지 않고 물에 빠지지도 않을 수가 있단다.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그렇게 열심히 윈드서핑을 탄 후에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쪽에 있는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였단다. 여행 중 농구를 가장 열심히 했던 곳이 바로 패티에란다. 터키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인데 터키는 한국인이 여행하기 정말 좋은 나라인 것 같아. 한국과 터키는 형제 나라라면서 터키사람들이 한국인들을 굉장히 좋아하여서 도움을 굉장히 많이 준단다. 사람들이 친절한 나라 터키로 여행한번 가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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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쩌저적 소리가 날 것 같은 이집트에 도착! 이집트에서 왜 쩌저적 소리가 날것 같냐고? 이유는 비가 오지 않는데 햇빛은 너무 강해서 너무 건조하기 때문이야. 이집트가 얼마냐 덥냐하면 신발을 빨고 밖에 말려두면 4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더라고... 강한 햇빛으로 농사가 잘될까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시장에 가보니 꽤 저렴한 가격에 농사물들이 판매되고 있었어, 그러고 강한 햇빛으로 과일들이 정말 달았어. 그렇게 단 포도는 내 인생 중 처음이었어. 이집트에서는 특별워커가 가동되었는데 내가 그 특별 워커였단다. 다합에서는 요리를 직접 해먹었기 때문에 시장을 가는데 한국에서 보았던 마트들이 아닌 전기가 들어오는지 안 들어오는지 모르는 전구가 딱 1개 달려있고 그렇게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밖에 고기를 걸어두고 파리와 함께 팔더라고. 나는 고기가 상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었는데 상해있지는 않고 맛만 좋더라. 특별워커를 하며 이집트 스쿠버다이빙 강사님의 아내 분들이 요리하는 것들을 보았는데 항상 밥에 짧은 면을 넣어서 밥을 만들고 빨강색의 토마토소스 맛이 나는 감자 반찬을 만들고 가끔 소간으로 순대같이 생긴 것을 만들더라. 근데 그들은 항상 음식이 굉장히 많이씩하고 많이씩 남기며 뒷정리를 절대 하지 않더라고. 우리가 몇 번을 말하더라도 절대 뒷정리를 하지 않아서 우리가 자주 정리했단다.
그런데 혹시 그거 아니? 이집트는 아직도 일부다처제가 가능하다는거? 그러고 그들은 가족들끼리 결혼을 해도 된단다. 그리하여 스쿠버 다이빙 강사선생님들의 아내 분들은 굉장히 젊은 친척들이야. 나는 일부다처제가 아직도 이집트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굉장히 놀라웠단다.
이집트여성들이 사용하는 히잡은 굉장히 넓은 천을 사용하는데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빨래하는가 항상 궁금했는데, 그들은 빨래를 하고 난간에 그냥 펼쳐서 올려놓지도 않고 그냥 모든 것들을 겹쳐서 걸어두더라고. 심지어 물도 짜고 널어두지 않아. 그래도 옷들이 마르는 이집트의 날씨. 너도 느껴지니? 심지어 건조한 더움이면 옷이 아니고 물이어도 순식간에 증발하겠지? 나는 스쿠버다이빙 레스큐 자격증을 땄는데 레스큐는 내가 자격증을 땄던 어드밴스, 오픈 워터와 전혀 다른 코스야. 내가 실제로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자격을 가졌다는 것이 자랑스럽단다. 이집트의 기온이 워낙 뜨겁기 때문에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열이 최대한 적게 전달되게끔 건축을 해야 해.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옛날부터 집의 벽과 천장을 아주 두껍게 만들었단다. 물론 창문을 크게 마늘지는 않고, 하지만 요즘은 햇빛을 반사하는 색이 흰색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두꺼운 벽과 천장에 흰색 페인트가 발라져있단다. 어때 사람들은 정말 똑똑한 것 같지? 나는 이집트가 두 번째 이지만 워커 일을 정말 많이 하며 요리 솜씨도 늘었고, 요리센스도 늘었고, 이집트 음식재료 가게에서는 무슨 재료들을 파는지도 배웠단다.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워가는 이집트 여행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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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내가 가장 걱정하던 나라 인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충격을 먹었단다. 사실 내가 냄새에 민감한 사람이 아닌데 인도 사람들에게서 알 수 없는 사람냄새가 나더라고. 초반에는 처음 맡아보는 향이여서 그런지 내 몸이 별로 좋아하지를 않더라고. 그래서 안도에서 약 2달을 어떻게 버티지? 라는 생각이 순간 들며 예전에 찬희 선생님께서 자신은 인도음식에 맞지 않아서 10kg정도가 빠졌다는 이야기가 기억났어. 과연 어떤 것 들이 길래 찬희 선생님을 힘들게 했을까? 우리는 마테란에서 약 1달간 머물렀단다. 마테란은 맞추픽추 같은 고지대에 있는 마을이야. 꽤나 높은 산에 있는데 아직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야. 왜냐고? 그곳은 정말 친환경적이게 마을에 차라곤 응급차 1대뿐이거든. 그 응급차도 돌아다니는 것을 거의 본적이 없어. 그래도 차가 없었던 것이 어색하지 않게 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가서 차 없는 북적북적한 도로를 체험하였단다. 인도의 첫 번째 마을이 마테란이라 말이 유독 많지만 다른 지역도 이정도의 말들이 길을 돌아다닐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더라고... 마테란에는 정말 말, 원숭이, 천국이야. 그러고 내가 마테란에서 보았던 모든 건물들의 특징을 알아냈지. 바로 모든 건물들의 지붕은 양철로 되어있는 판이라는 것과 개인 물탱크가 건물 어디인가 설치되어있어. 이런 특징들을 보고 마테란에는 비가 자주 오는 구나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는 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증거는 마트 어디에서든 비닐 옷과 방수되는 챙 모자를 판다는 것이고 물들이 하수구로 잘 빠지게 시설이 잘 돼있다는 것이야. 사실은 그닥 정교하지는 않은데 무식하게 엄청 큰 수로가 있어. 항상 비가 오면 폭포처럼 물이 흐르게 말이야. 이런 것들을 통해 비가 정말 많이씩 내린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이처럼 건축물과 마트에서 공통으로 무엇을 가장 많이 파는지를 자세히 보면 그 지역의 자연환경을 알 수 있단다. 인도에는 거지 분들이 많다 들었는데 꽤나 넓은 마테란에는 거지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거야.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대단한 일이란다. 마테란은 모든 사람들의 워너비 마을이었어. 물론 난폭한 원숭이가 빠지면 말이야. 우리는 뱅갈로르에 며칠 머물다가 오르빌로 갔단다. 오르빌은 외국인이 모여 사는 마을이란다. 그 마을은 THE MOTHER, 쓰리오르빈도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그들을 신처럼 모시고 숭배한단다. 정말 신기한 마을이란다. 내가 본 대체적인 인도인들의 인상이 좋지는 않지만 말을 걸어보면 정말 친절하다는 것을 느꼈단다. 만약 인도를 여행하게 된다면 인상이 험악해 보인다고 피하지 말고 언제든 도움을 요청해. 그들은 언제든 우리를 도와주실 분들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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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나는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배우려 노력하였단다. 내 인생에 다시 세계여행을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세계여행은 정말 좋은 추억이었단다. 너희도 꼭 세계여행하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배우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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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윤수군 훌륭하신 부모님을 두었군요. 꼭 효도하셔야겠어여
ㅆ
윤수 미래의 자녀들이 윤수만 같아도 잘 컸다고 할 것 같은데?
사람을 통해 세상을 통해 인생을 배워나가는 하반하생들의 미래는 밝다~♡
참으로 훌륭한 보고서! 잘 읽었어요.
건축가를 꿈꾸며 여행을 하니 더 좋았겠다는 생각!
윤수의 보고서를 읽으며 비밀병기의 여정을 다시 한 번 따라가고, 배우게 되는구나. 다음에 이 곳들을 여행할 기회가 있으면, 윤수가 미래의 자녀에게 당부하던 그 말들을 나도 한 번 떠올려봐야겠는걸~^^
참 많은 재능을 가진 윤수, 건축가의 꿈도 꼭 이루기를 바한다~!!
우여곡절 끝에 하반하 비밀병기에 함께 함으로
각 나라마다 다양한 건축물의 특징이나
유래 등을 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들었던거 같으네~
무엇보다도 여행지마다
윤수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적어놓은 글을 보니
미래의 윤수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나눠줄수 있는
준비된 좋은 아빠가 될수 있을거 같어
엄만 너무 행복하구나~~
남은시간 마무리 잘 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사랑한다 윤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