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농장을 가꾸며
전주안골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명
희
전주에서 진안으로 가는 길
산허리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약 48개의 굽이굽이 돌아가는 모랫재 터널을 통과하자 3월 하순임에도 차창 밖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진안 연장리로 가기 전에 마령으로 들어가는 커브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우리 주말농장이 있다. 주 2~3회, 오가는데 소요시간은
왕복 한 시간이 조금 넘는다.
서리가 내렸는데도 노란 개나리와
하얀 목련이 활짝 피었다. 복숭아나무의 꽃망울도 하루가 다르게 부풀고, 고양이들도 따사로운 햇살에 취해 눈을 살포시 감는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시골 갈 때마다, 그날그날 할 일들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밭 경계 높은 뚝은 허물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된장국을 끓이려면 시원한 머위,
나물에 좋다는 아주까리 몇 포기와 취나물을 심어야겠지. 도라지와 고사리도 심어야지. 생각해보니 욕심이 끝이 없다.
고향마을 ‘쉼터’에서 그리
멀지않은 양지바른 곳에 손자손녀들이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소규모 주말농장을 마련했다. 아주 작은 주말농장이지만 준비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오랫동안 발길이 닿지 않은 숲엔 잡초가 무성하고 칡넝쿨과 나무가 뒤엉켜 있었다. 낫과 호미로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포크레인 작업만 며칠
동안 해야 했다. 흙보다 돌이 많았던 밭에서 여러번 돌멩이를 골라내고 퇴비도 듬뿍 뿌렸다. 로터리작업을 마치고 보니 제법 밭의 꼴을 갖추었다.
밭 주위에는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작은 수로와 농로까지 있으니 드나들기도 편했다.
말이 주말농장이지, 농사의 시작은
농지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모든 것을 다 갖춰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가뭄피해를 예방하려면 물이 필요했기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했고, 종자를
심고 수확기에 비를 피할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밭이랑을 만드는 관리기, 농약을 살포하는 기계도 필수였다. 그밖에도 농기구를 갖추었다. 농기구를
보관할 창고도 장만했다.
하우스 안에서는 감자와
엇가리배추, 상추, 쑥갓 등이 자라고 노지에 심을 호박, 가지. 오이, 땅콩, 고구마 등의 모종이 한창 다투어 기지개를 편다. 파종시기가
가까워지니 일기예보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파종해야할 씨앗의 목록을 차근차근 준비한다. 사방으로 감, 밤, 대추, 사과, 자두, 체리, 복숭아 등
품종도 다양하게 심었다.
고된 하루를 보내니 몸은 녹초가
되고 입에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리는 무거워 천근만근이고 짓누르는 어깨조차 앙탈을 부려, 팔의 회전을 거부하곤 한다. 거뜬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온몸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통증은 마치 노동에 대한 무언의 촛불시위라도 벌이는 듯했다. ‘세월 이길 장사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게도 세월이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무리하지 말고 건강만 챙기라는 자녀들의 만류에도 칠십 언저리에서 언제까지나 마음은
청춘인 줄로 착각했다. 갈수록 일손이 바빠질 텐데. 벌써부터 몸이 삐걱거린다. ‘난 할 수 있어!’ 자신한다는 것도 옛말이 됐다. 이젠 버겁다는
마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도 쉬운 일이 아니다.
20여 년 전 고향에서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은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로서 마을의 지킴이가 되었다. 누에는 번데기가 되기 직전 주름진 그 모습처럼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고 했던가? 유모차를 밀고 오는 할머니들과 주민들이 하나둘 모일 때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느껴진다. 점심과 저녁식사를 함께
해결하는 공동체가 된 주민들이다. 각 가정에서 끼니거리에 필요한 부재료를 저마다 들고 회관으로 모인다. 인심이 넉넉한 고향마을 사람들은 길손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부족함이 없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평온한 모습에서 도시로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다. 요즘 인생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들이 많은 농촌마을에선 70대 노인들이 90대 할아버지할머니들을 극진히 섬기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주말농장을 찾을 때마다,
화합하는 공동체정신과 어른들을 공경하는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릴 때 추억을 마음에 담고 풋풋한 향수를 그리는
자연학습장. 더불어 마음 밭도 옥토로 가꾸어 싱그러운 꿈나무를 심는 손자손녀들이 되었으면 하는 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바람이다.
(2017.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