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마르 4,3)”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께 지난 한 해 논농사를 지으시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비만 오면 옆의 밭에서 흙이 빗물에 씻겨 논으로 들어오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벼가 토사로 내려온 흙에 묻혀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밭주인도 어쩔 도리가 없어 특별한 대책이 없이 매년 그런 문제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비만 오면 삽을 들고 그 논에 가시는 아버지의 마음엔 걱정 반 고심(苦心) 반이었습니다. 비가 올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벼를 살려 보시려고 고랑을 파고 물길을 놓기를 반복하셨습니다. 또 매년 벼를 심으실 때 그 논만 보며 우려하시고 더 깊게 고랑을 파서 물길을 바꾸어 놓으셨지만 쏟아지는 비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추수가 가까웠을 무렵, 아버지는 논에 가셔서 그곳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올해는 벼가 작년보다는 덜 묻혔어.’하시며 그 자리에서 꿋꿋이 버티어 낟알을 낸 벼를 낫으로 조심스럽게 베어 논두렁 한 곳에 놓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뵈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말썽 많고 근심거리 논이구나. 매년 그리고 비가 올 적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니 아버지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때마다 그 논과 논에 심겨진 벼를 돌보시고, 얼마 되지 않는 낟알을 낸 벼를 조심스레 거두시는 모습이 가슴 뭉클할 정도였다. 심지어 그런 논일 줄 아시고도 다음 해에 그 자리에 또 모를 심으시고 돌보시는 아버지시구나.’
그런 아버지의 마음과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좋은 땅이 아니라 길이나 돌밭, 가시덤불과 같은 땅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하느님의 포기 없는 사랑과 자비를 헤아리게 됩니다. 좋은 환경, 많은 소출을 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 마음을 쓰시고 돌보시는 하느님 아버지. 비가 올 때마다 문제가 발생하듯 시련이나 유혹이 있을 때마다 죄스러움을 면치 못하는 우리 자신이지만, 농부이신 하느님은 그 때마다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심을 더 깊게 새기게 됩니다. 그리고 적은 소출이지만 더 소중히 거두시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하느님께는 우리의 보잘 것 없는 기도, 선행, 애덕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서른 배, 예순 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을 일구는 것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면, 이 세상을 마치고 하느님 손에 안길 때까지 우리 역시도 포기하거나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근근이라도 매일 주님께 바칠 복음의 열매를 맺기로 결심해 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매일 우리 삶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시고 돌보시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