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책 살 일이 있어도 영광도서에 잘 가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15%나 할인해주고 배달까지 해주는데 서점에 가면 카드가 있어도 5%밖에 적립해주지 않으니 누가 서점에 가겠는가? 그래서 서점 문을 많이 닫았다.
또 오랜만에 집을 한번 나갔다 하면 포신 떠난 대포알이 되어 옛날 버릇을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없는 형편에 예상도 하지 않았던 헛돈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까운 경성대 부경대 근처에 있는 중고서적상 알라딘에 자주 간다.
하도 소문이 자자해서 [82년생 김지영]을 샀다. 정가 13000원인데 9400원이나 했다. 베스터셀러라 해도 중고서적 가격치고는 비싼 편이엇다. 보통 출간 3~4년이지나면 50% 이하인데.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10월에 초판이 나왔는데 지금까지 국내에서 120만 부를 찍은 밀리언셀러로 16개국에 판권이 팔렷다고 한다. 일본에 이어 중국에서도 베스터셀러에 올랐다고 한다. 초판 4만부가 다 팔려 6만5천부를 증판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최근 영화까지 나왔는데 개봉하자마자 예매율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엣날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 생각난다.
책 제목을 봐서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갔지만 어떤 책인가 싶어 한 수 배우려고 샀다.
저자 조남주는 1978년 서울생으로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PD수첩 등 방송작가로 10년 동안 일하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 소설상으로 등단한 신예작가이다. 줄거리를 더듬어보자.
1982년에 태어난 주인공 김지영을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보편적인 가정에서 언니와 남동생 3남매가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다.
대학시절 남학생도 사귀고 직장에 다니다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다. 육아 문제로 하는 수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경단녀가 된다.
그후 딸 정지원양이 자라나면서 김지영 씨는 다시 직장을 찾는다.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하며
남편 정대현 씨를 놀라게 한다. 부산 출신인 남편 정대현 씨는 김지영 씨가 장난을 하는 줄 안다. 흡사 장모님 말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난이 아니었다. 시부모님 앞에서도 "정 서바앙! 어쩌고..."하면서 마치 장모 같은 말투를 썼던 것이다.
김지영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 전까지는 줄거리나 문장이 특별한 것도 없고 그저 보통 대졸 여성들이 겪는 평범한 이야기였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살어온 자서전 비슷한 "르포"였다.
그런데 출간 9개월 만에 22만 부나 팔렷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졸출신 여성들이 다 겪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사실 그대로 담담하게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젊은 여성들이 직장생활하다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1982년에 태어난 여자 이름 중에서 김지영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옛날 배곯던 시절 할머니 어머니 세대에는 감히 상상도 못햇던 성차별, 여성들만 겪어야 하는 불만을 자연스럽게 토로해
이 세상의 모든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엇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모든 여성들은 자기가 주인공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성 차별에 대한 대화 몇 구절을 옮겨보자.
"아, 됐어.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
다른 남자를 사귀다가 그만 둔 여자라고 비웃는 소리다. (대학 시절 좋아했던 남자 선배가 하는 소리)
"....골 키퍼가 있어야 골 넣는 맛이 난다는 둥,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는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여자는 없다는 둥 우습지도 않는
19금 유머까지 남발하며 자꾸 술을 권해...."
억지로 불려나간 회사 회식장에서 남자 부장이 하는 쌍스런 소리다.
김치녀, 된장녀.....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며 돌아디나는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소설 속의 김지영 씨는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정신병원에 다닌다. 우울증, 불면증 치료제로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역학(易學)을 공부하고 주인공인 "82년생 김지영" 씨의 사주(四柱)도 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