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만들어내는가? 흔히 마음의 창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창으로 들어오는 형상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듭니다. 나아가 나라의 역사도 만들지요. 사람의 눈은 그래서 마음의 눈이요 사회의 눈이며 나아가 시대의 눈일 수도 있습니다. 크게 갈 것도 없이 두 사람이 서로 마주봅니다. 눈으로 상대방이 서로의 마음에 새겨집니다. 물론 많은 경우 그냥 지나칩니다. 그런데 소위 운명적인 부딪침이 생깁니다. 마음에 새겨진 영상이 지워지지 않고 자꾸 생성됩니다. 재생되는 것입니다. 본 그대로, 더 나아가 새롭게. 그리고 새로운 소재를 위해 다시 보려고 합니다. 그 영상에 사랑이라는 제목이 더하면 겉잡을 수 없이 새롭게 생성됩니다. 소위 사랑의 열병을 앓게 만듭니다.
남자는 대를 이을 자손이 필요했고 여자는 삶을 이어갈 경제력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돈이 있고 여자는 젊고 건강합니다. 그래서 거래가 성립됩니다. 물론 시간이 흘러 나이 든 남자는 아내 된 여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또래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하겠지요. 여자가 남편을 존중하고 또 남편의 소원대로 자식을 낳아주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젊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간절함과 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남자는 이미 경험하였습니다. 자식을 살리려다 아내까지 잃은 것이지요.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식은 또 기다려볼 수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는 잃으면 끝입니다. 사랑하게 된 아내, 다시는 잃고 싶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비롯됩니다. 한창 튤립으로 온 나라가 아우성이던 때입니다. 수시로 튤립 모종을 사고파는 경매를 여는데 값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이런 경매장에서는 싸게 얻어서 비싸게 팔면 소위 장사가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열풍이 일어난 것입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따라붙게 되지요. 가난한 생선 장수나 화가도 껴듭니다. 결혼을 해야 할 텐데 가정을 만들자면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잘만 투자하면 긴 시간 걸리지 않고 큰돈을 만질 수 있게 됩니다. 그 유혹을 어찌 지나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큰돈이 오가는 곳에는 그만한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아처럼 수녀원에서 자란 소피아는 어느 날 청혼을 받습니다. 수녀원장의 소개로 팔려가듯 시집을 가게 됩니다. 물론 소피아 한 사람의 희생으로 주변 여러 친족이 덕을 얻게 됩니다. 나이 든 사업가 ‘코르넬리스’는 다행히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오로지 자기 대를 이을 자손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맞이한 아내는 아마도 생각보다 젊고 어여쁜 여자입니다. 나름 서로가 노력하지만 자식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도 젊고 예쁜 아내가 좋아집니다. 사랑하게 되지요. 소피아도 그런 남편을 존중해주고 노력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식을 하나뿐이겠습니까? 다섯, 여섯이라도 낳아주고 싶겠지요. 그러나 생명은 사람의 뜻대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코르넬리스의 집에는 젊고 건강하고 밉지 않은 하녀가 있습니다. 늘 드나드는 생선 장수와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이 두 남녀 또한 서로 뜨겁게 사랑합니다.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지 않은 저택에 적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셈입니다. 평범한 일상이지요. 어려움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습니다. 주인집 부부는 사람들도 좋고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하녀도 몰래 연애를 하면서 자기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평온한 집안입니다. 어느 날 주인은 예쁜 아내와 초상화를 그려놓으려 합니다. 그래서 쓸 만한 화가를 소개 받아 데려옵니다. 소피아와 젊은 화가 ‘얀'의 만남이 곧 새로운 운명을 만듭니다.
아무리 다정하게 잘해주어도 나이든 남편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창 몸이 피어나는 젊은 아내 소피아가 남편을 이해는 해도 자신의 육체의 욕망을 홀로 다스리기에는 버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젊고 멋진 화가를 만났습니다. 서로 마주하는 것을 피하려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은 상대방을 향하고 있습니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이해할 것입니다. 잊으려 몸부림치면 오히려 밤잠을 설치게 만듭니다. 그리고 둘만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집니다.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말하겠지요. 나아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습니다.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려고 궁리합니다.
어느 날 밤 소피아는 자기 하녀의 옷을 몰래 훔쳐 입고 얀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생선장수가 하녀를 만나러 가다가 그 옷만 보고는 자기 애인이 어디로 가는가 따라갑니다. 그리고는 어느 집으로 들어가 엉뚱한 남자와 부둥켜안고 키스하는 것을 봅니다. 뒤집어지지요. 내가 돈이 없다고 차버리는가? 나름 열심히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배신감에 치를 떱니다. 돈, 돈을 벌어야지. 아무튼 묘하게 그는 원양어선에 팔려갑니다. 기다리던 하녀는 오지 않는 애인을 기다리며 지쳐갑니다. 문제는 임신을 하게 된 것이지요. 정작 필요한 주인마님에게는 아이가 없고 하녀는 임신을 했으니 쫓겨날 판입니다. 마침 하녀는 주인마님의 외도를 눈치 채고 있습니다. 참으로 묘한 상황이 열립니다.
이 정도 되면 흔히 비극적인 치정사건 정도로 이야기가 끝나기 쉽습니다. 그런데 다릅니다. 비극을 예상하며 아슬아슬 고비를 지나갑니다. 아, 이렇게도 인생이 그려지기도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갑니다. 내 것이라고 움켜쥐면 인생은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놓으면 새로운 것이 쥐어지지요. 영화 ‘튤립 피버’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영화를 좋아 하시나봐
예 ㅎㅎ
즐거운 한주가 되세요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복된 날들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