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민건강검진을 받았다.
일찍 예약한다고 10월에 신창한 것이 11월 11일 0900시. 한 달이나 기다려야 했다.
나이 드니 무슨 약속이 있으면 소풍날 받아 놓은 어린애처럼 밤잠을 설친다. 또 공복으로 오라고 해서 밤에
물 한 모금 안 마시다보니 아침에 아무리 용을 써도 대변을 볼 수 없었다. 대장암 검사를 위해 대변을 가져가야 하는데.
변기에 안자 아랫배를 쥐어짜도 나올 생각이 없었다.
날치기 시험공부하듯 "거짓말하면 건강검진 망친다"했는데, 일주일 전부터 맥주 한 모금 입에 안 대고
영양가 많고 소화 잘되는 부드러운 음식만 먹다보니 대장에서 내보내기 싫었던 것이다.
종합병원에 가면 빨리 마칠 수 있는데 붐비는 윤내과에 간 것은 집도 가깝고 젊은 원장이 단골? 환자들은 꼼꼼하게 카드를 챙기며
친절하게 봐 주기 때문이다.
올해 검진 대상은 일반건강검진, 위암검진, 대장암검진, 구강검진이었다.
사실은 당장 아픈데도 없는데 귀찮아서 받기 싫지만 나중에 암에라도 걸리면 자식들한테 빚 지운다고
마누라가 지청구를 해서 하는수 없이 갔다. 전화로 간호사가 시키는대로 9시 10분전에 갔는데 벌써 대기실이 만원이었다.
모두 오래 살고싶은 할방구, 할망구들이 었다.
간호사가 검사전 첵크리스트를 내밀었다. A4 용지 10장이 넘엇다.
음주, 담배, 평소 운동량, 수면량, 병이력, 가족병이력, 건강검진 이력, 치매징후 검사(오늘이 몇년 몇월 며칠이냐?).....
내가 물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요?" 간호사가 말했다. "건강검진 매뉴얼대롭니다!"
카드 작성 후 제일 먼저 위암 검사.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목구멍으로 내시경 카메라응 넣었다.
조금 고통스러웠지만 착한 아이처럼 잘 참았다. 내시경 검사가 끝나자 일반신체검사.
체중, 신장, 허리둘레(비만) 시력, 청력, 걷기(잛은거리 돌아오기 시간) 한 발로 서 있기 (시간) 엑스레이, 혈액검사.
검사 후 원장 진단. 엑스레이 사진 화면, 위암 내시경 화면 보여주며
"별다른 이상은 없는데 가벼운 위염 증상이 있습니다. 한 보름치 약을 처방해드릴테니 복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같은 건물 1층에는 새로 생긴 약국이 있었다. 그래 봐야 약값은 얼마 되지도 않앗다.
진료비는 위염 검사비 10%가 본인 부담이라 1만 6천원, 약값 6천7백 원.
못 가져간 대변은 '대장암' 검사 대용이므로 년말까지만 가져오면 된다고 했다.
밖에 나와서 '검사가 끝났으니 바닷가에 내려가 맥주나 한 잔 마실까? 그러면 금방 대변이 나올 텐데?
마아 참자! 집에서 마누라가 오늘은 설마 게걸음 걷지는 안 하겠지? 하고 밥상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집에 까지 걸으오면서 문득 옛날에 같이 근무했던 "빵떡 선장" 생각이 났다.
"빵떡"이라는 별명은 성 씨가 방 씨인데더 마작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1통을 일컬어 "빵떡"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마작을 할 때 1통이 나와도 절대로 "빵떡"이라고 소리지르지 말아야 했다.
현대3호에서 8개월 동안 같이 근무했던 "빵떡 선장"님은 경기고등학교 출신이엇다.
할아버지가 청진 갑부로 일제시대 제로기 1대릉 헌납(강제)한 분이었다. 당시 조선 25대 갑부에 속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경성의전(서울의대 전신) 출신으로 어머니가 일본 여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빵떡 선장은 술이 얼큰하면 불행한 어머니 생각에 곧장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빵떡 선장님은 죽엽청주를 좋아했는데 나도 자주 얻어마셨다.
내가 글을 쓴다니까, 자기 어머니 이야기는 절대로 쓰지 말라고 했다.
빵떡 선장님은 메리놀 병원에 '주치의'를 두고 있었는데 (처가가 의사 집안으로 부인이 간호사 출신) 매 년 병원에 갈 때마다
부인 몰래 주치의에게 '와이로'를 썼느데 양주 1병이었다. 주치의가 선장님 건강을 걱정하는 부인한테
"술 한두 잔 정도는 괜찮다"라는 말을 해주는 대가였다.
배를 탈 때는 그렇게 호기롭던 분이 나이 들어 정년퇴직하고 내 주머니에 돈 떨어지자
좋아하던 마작도 못하고, 술도 여자도 가가이 할 수 없고 마누라한테 구박? 받으니 세상 사는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어느 화창한 봄날 차를 몰고 방파제에 돌진해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주치의에게 양주까지 와이로써놓고서는 멀쩡한 목숨을 스스로 버리고 말았다. 오호통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