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5번째 편지 - [다름]을 [용인]하는 사회
요즘 신문을 펼치기가 겁이 납니다. 한국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합니다. 저는 역사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미국 연방 대법관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의 생전 인터뷰를 모은 <리브 투 리드 : 세상을 바꾸는 리더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편>을 보았습니다.
긴즈버그 대법관도 미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 걱정 어린 생각을 지니고 있어 유심히 그녀의 인터뷰를 살펴보았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여러 대목에서 공감이 갔습니다. 그녀가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떠나 원로 법조인으로서의 미국 사회에 대한 성찰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공감한 긴즈버그 대법관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제 결혼식 날 시어머니께서 최고의 조언을 해 주셨어요. '행복한 결혼의 비결을 알려 주마.' '저도 알고 싶은데요.' '때로는 귀를 닫는 게 도움이 된단다.' 듣기 싫은 말이 들리면 못 들은 척하란 거죠. 저는 그 충고를 충실히 따랐고요. 사랑하는 배우자뿐만 아니라 동료들을 대할 때도요."
저는 2020년 9월 7일 자 월요편지에서 '어떤 거리가 부부 사이의 가장 바람직한 필수 거리일까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변으로 어느 선배의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바람직한 부부의 거리는 보이지는 않지만 들리는 거리, 때로 큰 소리로 부르지만 안 들리는 척해도 익스큐즈가 되는 거리 아닐까?' 이 견해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시각 거리>에서는 벗어나지만 <청각 거리>의 경계선 내에 머무는 거리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듣기 싫은 말이 들리면 평생 못 들은 척하였다고 했습니다. 가정과 직장 모두에서 말입니다. 제가 제시한 부부 필수 거리 개념과 맞닿아 있어 공감이 갔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긴즈버그의 조언과는 반대로 모두가 참지 못하고 말로 문제를 확대시키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공감한 긴즈버그 대법관의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인터뷰하는 사람이 긴즈버그 대법관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에 더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한 단어를 고르라면 '경청'이 될 거예요. 요즘 사람들은 생각이 맞는 사람과만 대화하는 것 같아요. SNS 때문에 그게 더 심해진 것 같고요."
긴즈버그 대법관의 생각을 종합하면 이런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생각이 맞는 사람하고든 맞지 않는 사람하고든 대화하여야 한다. 또 대화를 할 때는 경청하여야 한다. 그러나 간혹 듣기 싫은 말을 할 때는 다투지 말고 슬그머니 못 들은 척하여야 한다.'
제가 공감한 긴즈버그 대법관의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는 거예요. 배경, 인종, 출신 국가가 너무나 다양하거든요. 서로의 다름을 단순히 용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 축복하며 하나가 되는 거죠.
미국의 좌우명인 '에 플루리브스 우눔(E pluribus unum)'은 '여럿이 모여 하나'라는 뜻이에요. 그 말은 우리는 다양하지만 한 국가를 이루었다는 의미예요."
긴즈버그 대법관은 미국 국민들이 다름을 서로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용인하고 나아가 축복하였기에 오늘날의 미국이 존재한다고 역설합니다.
저는 다름을 축복하였다는 대목에서 공감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는 서로 같은 성격을 가지기보다는 대개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 다른 유전자가 만나야 훌륭한 유전자를 가진 2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진화 생물학의 견해입니다.
부부는 전형적으로 서로 다름에 이끌려 사랑하고 이 다름을 결혼이라는 의식으로 축복합니다. 인간은 서로 다름에 이끌려야 새로운 세상을 만듭니다. 이것이 인류 진화의 비결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서로 다름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인격을 성숙시킵니다.
그러나 미국 사회나 한국 사회나 지금은 다름을 축복 하기는커녕 저주하고 있습니다. 다름의 위대함을 잊은 듯합니다.
제가 공감한 긴즈버그 대법관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현자가 그랬죠. 미국의 진정한 상징은 흰머리 독수리가 아니라 진자라고요. 진자는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면 원래대로 돌아가니까요? 그동안 미국에서 여러 차례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거기서 우리가 배우는 게 있길 바랄 뿐입니다."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이 교대로 집권합니다. 아마도 긴즈버그는 진자를 이런 정치적 의미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상대 진영이 집권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진자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 것 아닐까요? 그러나 오늘날 미국은 그런 관용과 배려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긴즈버그는 걱정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긴즈버그 대법관이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을 <용인>하자" 입니다.
다름을 축복하지는 못해도 용인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긴즈버그 대법관이 미국 사회에 대해 바라는 바 아니었을까요.
저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지금 한국 사회는?" 하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다름>을 <용인>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8.7.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