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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연화불창(蓮花佛槍)-1
취마는 사상자들을 이끌고 대운하로 향했다.? 장강수로연맹에 연락해 미리 준비해둔 선박이라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선착장에 정박할 수가 없어 부두가 모처에 정박을 시켰다.? 취마는 부상자와 시체 처리를 그 선박 안에서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용문석굴에 수십여구가 넘는 시신을 나두었다가는 큰 뒤탈이 생긴다는 것은 어린 아이라도 아는 상식이었기에 격전이 일어난 흔적을 모두 없애기로 한 것이다.? ?
취마는 현장을 정리하고 시신과 부상자를 수레에 옮긴 후에 선박이 정박한 장소로 움직였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고 나서 취마는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 잔영대의 좌대장이 자신의 눈길을 피하고 있으며 무언가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취마는 무언가 일이 잘못 진행되어 가고 있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한가지 가정이 취마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취마는 자신의 가정이 틀리기를 바라며 부상자를 실은 수레를 뒤졌다.? ? 수레를 모두 뒤진 취마는 자신이 찾는 인물이 없자 안색이 굳어졌다.? 취마는 노기가 가득 찬 안색을 하고 좌대장을 향해 달려갔다.? 잔영대 좌대장은 취마가 자신에게 달려오자 안색이 굳어져 버렸다.? 취마는 좌대장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잔마는 어디에 있느냐."
"저어.. 그것이..."
"어서 말하지 못할까!"
좌대장이 우물쭈물하자 취마는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
"대주께서는 곡소 두 당주의 원한을 갚아야 한다며..."
"뭐라고! 이런 바보 같은 놈이 있나."
취마는 잔마의 성급한 행동에 그만 화가 치밀어 안색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취마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잔영대 좌대장에게 화풀이를 할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다.? ?
"이 어리석은 놈아. 두 아우의 죽음은 너에게만 아픔이었겠느냐. 너만큼 나도 아프다. 하지만 가장 마음이 아픈 사람이 팔 매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왜 팔 매가 홀로 남아 악삼과 그 패거리들을 쫓아갔는지 모른단 말이더냐."
취마의 시선은 용문석굴을 향했다.? 그리고 슬픔이 배어나는 눈빛을 한 취마의 넋두리는 주변에 있는 잔영대 부상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사실 곡소쌍마의 죽음은 잔마뿐 아니라 잔영대 대원들 전체에 커다란 충격이었다.? ? 특히 오랜 세월을 같이 한 의형제의 죽음은 잔마나 취마에겐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주어 복수심으로 심장을 타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취마의 독백처럼 가장 절망한 사람은 요마 모용혜였다.? ?
곡소쌍마를 비롯해 잔영대와 잔마, 취마 모두가 용문석굴에 뛰어든 것은 모용혜의 요청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요마 모용혜는 죄책감을 견디지 못했으나 겉으로는 그 표시를 하지 않았다.? ? 비록 마음 속은 자책으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을 먼저 해결하고 나서 철저한 복수를 행하기로 정했던 것이다.? ? 그리고 취마는 모용혜의 그런 마음과 결심을 눈치챘다.? 그래서 타오르는 복수심을 억누르고 모용혜가 일을 처리하도록 나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이 알려지지 않게 친히 현장을 정리하고 사상자를 끌고 후방으로 물러난 것이다.? 그런데 잔마가 자신의 마음이나 모용혜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성급한 행동을 취하자 분노가 났다.? 그리고 취마는 잔마의 어리석음에 허탈한 마음마저 들었다.? 호리병을 입가에 가져가면서 탄식하면서 취마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
악삼 일행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공동이었다.? 높이만 20여장이 넘는 거대한 공동의 한 가운데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 빛과 바람이 들어와 공동은 아늑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 네 개의 거대한 불상은 공동의 사면에 사방형으로 퍼져 위치해 있었고 구멍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 화강암으로 만든 사불상은 구멍을 통해 내려온 빛을 반사해 보는 모든 이를 감탄하게 만들 정도였다.? ?
그러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명품을 발견한 악삼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절망 그 자체였다.? ? 그 중에 악삼의 표정은 더욱 굳어 있었다.? 악삼은 석굴에 뛰어 들기 전에 동굴에서 바람이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일행들을 동굴로 피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동굴을 지나가면서 간간이 바람이 흐르기에 비록 뒤에서 잔영대가 추적하고 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거대한 암벽이 발길을 막아버리자 악삼은 당황하고 말았다.
악삼은 네 개 의 거대한 불상의 뒤편에 장막처럼 깔려 있는 거대한 암벽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악삼은 석굴에 들어가기 전에 동굴에서 차가운 바람이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했었다.? 그래서 일행들에게 석굴로 도망가도록 한 것이다.? 석굴을 지나가면서 간간이 바람이 흐르는 것을 확인했기에 잔영대가 추적해오고 있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거대한 공동에 네 개의 거대한 불상과 함께 나타난 암벽이 퇴로를 봉쇄해 버리자 악삼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토록 믿었던 바람이 20여장이 넘은 높이에 난 구멍에 흘러나오고 있음을 발견한 악삼은 어이가 없었다.? 20여장의 높이를 날아 오를 수 있는 경공이나 신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있다고 해도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직 날개가 달린 새나 가능한 높이였기에 모두 천장에 나있는 구멍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갈운지가 석불과 암벽을 바라보며 한숨쉬는 악삼에게 물었다.? ? 악삼은 고개를 돌려 갈운지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천천히 대답했다.
"길이 없다."?
"그건 무슨 말이에요?"
"내가 이 석굴에 뛰어 들라고 한 것은 바람이 흘러 나왔기 때문이야."
"그럼..."
"그래 설마하니 저런 구멍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다른 길은 없나요? 악가가."
"글세... 되돌아가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그 외에는 저 구멍을 통해 탈출하는 방법뿐인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악삼은 폭만 5장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들 악삼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일제히 움직였다.? 20여장 높이에 있는 구멍을 보고는 모두들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높이도 높이지만 공동의 한 가운데에 난 구멍은 중간에 발을 디딜만한 공간조차 없었기에 탈출이 불가능한 일임을 실감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석진이 공동 안으로 들어오자 시선이 일제히 움직였다.? 석진은 공동으로 들어오자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느끼지 못했다.? 단지 앞에 나타난 사불상의 위용에 놀라 입을 벌리고 감탄하는데 정신이 팔리고 만 것이다.?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는 뒷전으로 내보내고 사불상을 감상하는데 정신이 팔려버렸다.
그리고 석진이 공동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동굴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은 동굴로 자연스럽게 이동했고 모두들 표정이 굳어져버렸다.? ? 다들 긴장을 했는지 침묵이 공동을 지배했다.? 그런데 허리춤에 꽂아둔 건곤척을 꺼내 가볍게 휘두르며 앞으로 나선 조집사가 모두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젠 우리에게 단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게 뭔가요? 조 집사님."
갈운지가 조 집사에게 물었다.? ? 조 집사는 갈운지에게 시선을 고정한 후에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싸우는 겁니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이군."
조 집사가 싸우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자 갈운지는 한숨을 쉬었고 석진은 그들 사이에 끼어 한 마디했다.
"우리가 오는 동안 다른 통로는 없었습니다. 팔마당의 무리들은 바로 우리를 향해 올 겁니다."
"그럼 싸우는 수밖에 없군요."
조 집사가 현실을 이야기하자 갈운영은 결전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모두들 갈운영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런데 악삼과 황보영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들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고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황보영은 네 개의 석불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고 악삼은 암벽에 어떤 틈새라도 있는지 관찰하는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
악삼이 심각한 얼굴로 암벽을 관찰하며 신음성을 내고 있었지만 모두들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의 신경은 점차 커져 오는 발걸음 소리에 팔려 있었고 동굴을 처다 보는 안색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져 갔다.? 석진과 조 집사, 갈운영, 갈운지, 척금방은 결전만 남았다고 생각해 긴장감에 젖어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뒤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와 긴장이 깨져 버렸다.
"빌어먹을!"
그들은 갑자기 터져 나온 악삼의 욕설에 고개를 돌렸다.? 악삼이 암벽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고 있는 모습이 그들의 시선에 포착됐다.
"그만하고 이리로 와서 팔마당의 무리나 막을 준비를 해요. 악가가."
갈운지는 악삼이 암벽을 바라보며 성을 내고 있자 싸울 준비를 하자고 권했다.? 악삼은 암벽으로 나갈 방법이 없음을 확인하자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고 동굴입구로 향했다.? 이젠 배수의 진을 치고 싸우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악삼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데 사불상을 관찰하던 황보영이 말을 하기 시작하자 사태는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상해요! 네 개의 불상 중에 전면과 좌, 우면에 있는 세 불상은 알겠는데 후면에 있는 불상은 처음 보는 것이군요."
"보영 언니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 웬 불상타령이에요?"
유영군주는 후면에 있는 불상을 처음보는 것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황보영이 너무나 어이가 없어 보였다.? 자신들의 처지가 독 안의 쥐나 다름없어 살기 위해서는 고양이 코라도 물어야 하는 쥐 신세가 되었는데 갑자기 뜬금 없는 불상 타령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암벽에서 출구를 찾지 못해 굳은 표정으로 동굴 입구로 향하던 악삼에게는 전혀 달랐다.? 악삼은 황보영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질문했다.
"저 네 번째 불상은 불상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까? 보영 아가씨."
"네, 제가 아는 한 저런 복식과 형상을 가진 불상은 처음이에요."
"혹시 밀교라던가 천축의 형식은 아닙니까?"
"전혀 아니에요. 어머님께서 독실한 불교신자라 제가 불교에 대해 제법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런 불상은 천축, 묘강, 남만, 동영, 조선, 서역, 대막의 어디에도 없는 방식이에요."
"호오~ 그럼 불상이 아니라는 이야기이군요."
"그럴지도 모르겠... 허억! 무슨 짓이에요!"
악삼의 질문에 대답하던 황보영의 안색이 갑자기 사색이 되어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악삼이 네 번째 불상을 향해 창을 던진 것이다.
[위이잉.]
[콰쾅.]
강력한 폭음이 일어나더니 뿌연 먼지가 공동 전체에 퍼졌다.? 악삼이 던진 창은 네 번째 불상의 좌측 다리부분을 강타해 제법 큰 구멍을 만들었다.? ? 뜻밖에도 다리를 감싸고 있는 돌의 두께는 반 자에 불과 했고 내부에는 공간이 있었다.? 악삼은 출구를 찾아낸 것 같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다른 인물들의 안색은 새하얗게 굳어 있었다.? 악삼은 다른 사람들의 안색이 경악으로 굳어 있는 것을 무시했다.
"들어가 봅시다."
"드... 들어가자고요!"
악삼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황보영은 자신이 떠듬거리며 되물어 본 것에 대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상을 부셔버리고도 태연자약(泰然自若)한 악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그들의 안색이 변할 만큼 악삼의 행동의 행동은 놀랍다 못해 두려울 정도였다.? 만물에 신령이 있다고 생각하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불상은 특히 신령스런 성물이었다.? 누구도 손을 델 생각조차 못하는 신성한 불상을 창을 던져 파괴했으니 다들 두려움에 떠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악가가... 어떻게 불상을 향해 창을 던질 수 있죠?"
"보영 아가씨 의견으론 불상이 아니라고 했지 않느냐!"
"그래도 그렇지."
"불상이 아니라면 단순한 돌 조각에 불과하다. 설령 불상이라고 해도 우리들 목숨보다 무겁지는 않겠지."
악삼은 단호하게 말하면서 불상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에 휩싸인 불상 내부는 악삼의 들고 있는 호롱불에 의해 그 모습이 나타났다.? 불상의 포개진 다리의 내부는 작은 공간이었고 중앙에 있는 돌계단은 불상의 몸통으로 올라 갈 수 있게 설치되어 있었다.? 악삼은 불상의 다리 부분을 박살내고 내부 중앙에 있는 돌계단에 박혀 있는 자기 창을 뽑아냈다.
창 끝에 다시 등을 건 악삼은 돌계단을 걸어 불상의 상층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악삼이 불상 내부로 들어가자 다른 사람들은 서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 그러나 그들에게 남은 길은 악삼의 뒤를 따르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들은 불상 안으로 들어갔다.
잔마 도지광은 의형인 취마의 눈을 피해 대열에서 이탈하자마자 석굴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렸다.? 비록 한쪽 팔이 날아가 버린 비운을 겪었지만 그의 표정은 결코 주눅들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가슴은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복수심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음에도 이겨 나갈 수 있게 만들고 있었다.? ? 처음에는 잘려진 팔 때문에 중심을 못 잡아 걷기에도 힘들었지만 석굴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익숙해져 다른 사람들이 보면 잔마가 처음부터 외팔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겉보기에는 차갑고 싸늘하며 잔혹한 외모를 지닌 도지광의 내면은 전혀 달랐다.? 특히 의형제들에 대한 정은 상상이상으로 깊었고 차가운 외모와 달리 타오르는 불꽃같은 남자였다.? 그런 잔마가 석굴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잔마는 석굴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몸을 숨겨야 했다.? 잔마의 눈에 10여 명의 인물들이 석굴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10여명 중에 두 사람이 열혈남아 잔마 도지광의 타오르는 가슴에 차가운 냉수를 한 바가지나 퍼붓는 효과를 냈다.? ? 잔마는 두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두 눈을 비비며 다시 한 번 노려보았다.?
'저 여인은 장 총사가 아닌가. 그리고 장 총사 옆에 있는 노인은 분명히 학경자( 驚子) 봉 노인인데... 저 노인이 이곳엔 웬 일로 나타난 거지.'
잔마 도지광이 발걸음이 멈추고 몸을 숨길 정도로 학경자 봉경덕은 두려운 인물이었다.? 별호가 말해주듯 학경자를 만난 인물들은 학질에 걸릴만큼 고생해 나중에 봉씨만 봐도 경기를 일으켰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흑도에서도 경원할 만큼 학경자의 악명은 드높았다.
그런데 여든이 넘도록 학경자가 장수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수많은 원한을 만들어 하루가 멀다하고 복수한다며 달려드는 인물들이 있었지만 학경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야말로 그 누구도 학경자의 수명을 한치조차 줄이지 못했다.? 학경자의 무위와 역량이 그것을 용납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극악한 인물도 나이가 들면 한 풀 꺽인다는 속설을 증언하려는지 환갑을 맞이한 학경자가 홀연히 강호에서 그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 물론 복수할 대상이 사라졌다면 허탈해 하며 칼을 던져 버릴 만큼 강호인들이 선량한 인물이 아니었다.? 학경자에게 원한을 가진 강호인들은 학경자가 몸을 감춘지 20년이 넘는 지금에도 그 추적의 손길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학경자와 아직 원한을 맺지 않은 다른 강호인들은 그가 몸을 감추자 환호하며 잔치를 벌였다.?
그만큼 강호인들에게 학경자는 증오의 대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학경자에 대해 논할 때 단 두 종류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했다.? 하나는 그 더러운 성질머리였고 두 번째는 그 무공이었다.? 정확히 그 무위를 측량하지 못했지만 능히 십대고수의 수준이라고 다들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학경자에게 십대고수에 영예를 넘기고 싶어하지 않았고 조용히 논외로 사라져 갔고 20여 년 전에 사라졌기에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인물이 되었다.? ? 그러나 과거에 학경자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을 잊지 않고 있는 잔마에겐 절대로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논외의 인물이 아니었다.
'빠드득... 그 때 당한 원한을 잊지 않고 있었다.'
잔마의 두 눈동자는 원한으로 인해 불타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뒤 안 재고 덤벼들 정도로 잔마는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었다.? ? 석굴의 앞엔 자신의 과거를 원한으로 점철시킨 원수가 석굴 안에는 얼마 전에 두 의동생을 죽인 원수가 있었지만 잔마는 냉정하게 대처했다.? ? 학경자와 장 총사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면서 기회를 노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학경자와 장 소군은 잔마가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용문석굴의 내부 지도와 그 주변 지도를 대비하면서 악삼등이 도망간 동굴을 연구하고 있었다.? 장 소군은 지도와 현장을 세심히 대비하며 검토를 끝냈다.?
"이 지점이군요."
"여기가 이 동굴이 끝나는 지점입니까? 장 총사."
"그렇습니다. 자 어사 가도록 하지요."
"총사. 잠시만 더 기다리면 안됩니까?."
동이각주 선우 전은 동굴의 출구로 예상되는 지점으로 급하게 이동하려는 장 소군을 잡았다.? ? 장 소군은 선우 전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궁륭산 태을궁에서 모든 일을 끝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목표였던 오행도는 구경도 못하고 쓸데없는 원한을 만들었어요. 게다가 본 방의 정체가 드러나 큰 우환거리를 만들었어요."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 아니에요. 선우 각주는 잘 모르고 있어요. 그 당시 악삼을 비롯해 여러 명이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지하에 난 동굴 덕이었어요. 문제는 출구를 먼저 선점하고도 그 장점을 못 살린 것은 북해방의 방해 때문이었죠."
"잘 알고 있습니다. 총사.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하나입니다."
"무엇입니까?"
"이 동굴에 과연 출구가 있냐는 겁니다. 그리고 출구로 예상한 지점에 출구가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전혀 다른 지점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장 소군의 안색은 삽시간에 굳어졌다.? 동이각주가 자신의 지도력을 의심하고 나선 것이다.? 장 소군은 동이각주가 갑작스럽게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학경자와 함께 온 자신의 오빠인 장 철군 때문이었다.? ? 장 소군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10여 명 속에 몸을 숨기고 먼 산 보듯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장 철군에게 향했다.
'오라버니가 이렇게 어리석고 속이 좁단 말인가.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따위 짓을 하는 건가. 그리고 정보를 취급한다는 동이각주의 직책을 맡은 자가 천지사방을 구분 못하고 아부에 정신을 잃다니...'
장 소군은 속으로 큰 한숨을 쉬며 절망했다.? 그녀의 오빠인 장 철군은 구유도 혁무강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여동생인 장 소군에게도 질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보다 나은 인물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증오를 느끼고 있었다.? 그 누구라도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을 용납할 수가 없을 만큼 그 속은 좁았다.
장 소군은 오빠나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은 배제했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장 소군은 악삼과 부딪칠 때마다 시간싸움이라는 것을 깨우쳤다.? 악삼은 여타 무인들과 다르게 치고 빠지기를 주로 한다는 사실을 분석해 낸 것이다.? 장 소군은 악삼과 겨루게 되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바로 시간이었고 먼저 유리한 고지를 누가 점령하는 것이며 또한 모든 퇴로를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내부의 적과 협상을 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장 소군은 간단 명료한 방법을 선택했다.? ? 품속에서 총사령을 꺼내 학경자와 동이각주. 오빠인 장철군에게 내보인 것이다.? 그들은 장 소군의 손바닥에 놓여진 동그란 금패를 보자 바로 땅바닥에 부복했다.
"총사령으로 명합니다."?
"명하십시오."?
"앞으로 일체의 반문을 금하고 내 명령에만 복종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내 뒤를 따르세요."
"알았습니다."
장 소군이 총사령을 거두고 동굴의 출구지점으로 예상되는 곳으로 달려가자 남은 10여명은 군소리 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 물론 장철군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방법이 없었기에 불평 한마디하지 못하고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들이 사라지자 잔마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하지... 학경자의 뒤를 따르자니 저 동굴에 못 들어갈 것이고... 이거 어떻게 하나... 고민이군."
잔마는 장 소군 일행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동안 고민했다.? 양 갈래 길에서 고민하던 잔마는 학경자 뒤를 쫓는 것으로 결심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 학경자에게 자신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땅 속으로 은신해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잔마는 장 소군 일행이 사라진 방향으로 은밀하게 움직였다.?
장 소군 일행을 추적하기로 잔마가 결심한 것은 한 인물 때문이었다.? 그는 잔마의 원수인 학경자가 아니고 장 소군이었다.? 잔마는 장 소군의 머리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녀가 뱀처럼 집요해 한번 노린 사냥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악삼 일행을 노리고 용문석굴까지 온 장 소군이 자리를 떳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잔마는 결론 내렸다.?
잔마는 장 소군이 동굴의 출구 지점을 예상하고 그 지점으로 달려가 포진할 것이라 생각했다.? ? 더 이상 동굴입구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잔마는 바로 장 소군 일행의 뒤를 추적해 갔다.
장소군은 오빠인 장철군이 분기탱천한 얼굴로 뒤를 따라 오고 있는 것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녀의 생각에도 오빠는 구유도 혁무강이나 지금 추적하고 있는 악삼에 비해 너무나 열세였다.? 지닌 무학이나 역량을 제외하고도 아량이나 마음가짐에 있어서도 너무나 차이가 난 것이다.? 한 방파를 이끌 인물에게는 무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리를 이끌 수 있는 넓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장철군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장 소군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장 소군은 오빠에 대한 생각을 접고 악삼을 추적하는데 모든 역량을 다하기로 마음먹고 동굴의 출구지점을 향해 달려가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 그런데 출구예상 지점의 절반 정도 거리에 도달했을 때 그녀의 눈에 기묘한 석불이 조각된 암벽에 회색 승포를 입고 긴 머리를 삿갓으로 가린 인물을 발견했다.? 장 소군은 비구니로 보이는 인물이 허리까지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길렀다는 점에 묘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그 여승의 머리는 먹물처럼 검으면서도 윤기가 흘러 너무나 아름다워 장 소군이 은근히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 있는 암벽에 부각된 열두 개의 팔을 가진 석불은 기괴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장 소군은 여승에게 그 정체를 물으려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학경자가 그녀의 발길을 막았다.? 장 소군은 짜증을 내려 했으나 학경자의 안색이 굳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어 질문했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봉 노야."
"총사. 뒤로 물러나시오. 저 인물은 위험하오."
"아는 인물인가요?"
"처음 본 사람이오. 하지만 이렇게 나를 두렵게 만든 인물은 동해 방주님이래 처음이오."
"네에!"
장 소군은 깜짝 놀랐다.? 그녀가 보기에 비구니 복장을 한 여인은 아무리 봐도 20대로 보였다.? 비록 삿갓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장 소군은 그녀가 20대 중반에 불과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십대고수에 못지 않은 학경자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장 소군을 뒤로 물러나게 한 학경자는 비구니 복장을 한 의문의 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의문의 여인은 학경자가 가까이 다가오는데도 일체의 미동도 없었다.
학경자는 의문의 여인과 삼 장 정도의 거리에 도착하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더 이상의 공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치명상을 입을 거리에 들어가야 하기에 학경자는 더 이상의 움직임을 자제했다.? 학경자는 언제든지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내고 의문의 여인을 향해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
학경자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다른 인물이 한 질문이라면 조금 건방진 말투겠지만 학경자의 입에서 나왔다면 너무나 정중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평소 욕과 살벌함이 묻어나는 비속어로 상대를 겁에 질리게 만드는 학경자에게 이런 정도의 말투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의문의 여인은 학경자의 정중함에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학경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내리고 의문의 여인에게 다시 한번 정중하게 물었다.? 그의 방식대로...
"누구인지 말하시오.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어떻게 할건가?"
의문의 여인은 학경자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버렸다.? 그러나 누구도 화를 내지 못했다.? 의문의 여인의 음색은 천상에서 노래하는 선녀처럼 듣기가 좋았다.? 사성(四聲)이 기본으로 깔린 중국어는 음절의 고저에 따라 듣기에 무척 싫은 목소리와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가 확연하게 구별되어진다.? 그런데 의문의 여인의 목소리는 단순한 목소리가 아니라 노래와 같았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분명히 시비조의 어투에 중간에 말을 자르는 무례까지 범했거늘 학경자조차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 천하가 인정하는 더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그 마저도 아무런 대응이 없었으니 다른 인물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왜 아무런 말이 없는 거냐?"
"그게..."
"팔푼이들이군. 너희는 여기에 왜 왔느냐?"
"이 땅 밑에 동굴이 지나고 있어요. 우리가 가려는 곳은 이 동굴의 출구입니다."
의문의 여인이 말하자 아무도 대답조차 못하자 장 소군이 앞으로 나와 자신의 목적을 말했다.? 그런데 동굴에 대해 장 소군이 말하자 의문의 여인에게서 강력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마치 폭풍처럼 쏟아져 나온 기세에 다들 안색이 변해 버렸다.
"너희도 연화불창을 노리는 것인가?"
"연화불창?"
의문의 여인은 오른 손을 들어 장 소군 일행을 겨누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열 여덟 개의 염주 알이었기에 다들 긴장을 하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바박.]
[푹. 푹. 푹...]
"크윽!"
갑자기 염주가 폭발을 하더니 장 소군 일행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염주알은 이마를 꿰뚫어 버리고 뒤통수를 관통해 버렸다.? 여섯 명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즉사해 버렸다.? 선 채로 죽음을 당한 그들의 표정에는 고통도 놀라움도 없었다.? 일상의 생활처럼 평범한 표정을 지은 그들의 이마에는 반치 두께의 구멍이 뚫려 있을 뿐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털썩. 털썩...]
여섯 구의 시신이 뒤로 넘어지며 누런 먼지를 일으켰다.? 뒤통수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황토를 붉게 물들이자 장 소군은 의문의 여인에게 따지듯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데 이런 살상을 벌이나요?"
장 소군은 의문의 여인에게 손가락 짓을 하며 외쳤다.? 그러나 의문의 여인은 장 소군의 외침에 일언반구의 응답도 없었다.? 그녀는 염주알을 피해낸 세 인물에게 시선을 옮겨 버렸다.? 두 알의 염주 알을 양손으로 잡고 굳은 표정으로 서있는 학경자와 칼로 한 알의 염주를 막고 왼 팔로 두 알의 염주를 막은 동이각주 선우전, 그리고 선우전의 뒤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철군을 그녀는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학경자는 삿갓 밑에 살짝이 보이는 의문의 여인 입술이 기묘하게 휘어지며 미소를 짓자 소름이 끼쳤다.? 의문의 여인이 무릎을 구부리지도 않고 허공으로 날아 오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탄력 경공!"
그녀는 학경자가 경악하는 모습에도 흔들림 없이 허공에서 양팔을 펴고 오른 쪽 다리는 무릎을 구부려 학과 비슷한 모습을 만들었다.? ? 학경자는 의문의 여인이 한순간에 자신의 면전에 도달하자 양손에 낚아챘던 염주 알을 그녀에게 날려 버렸다.
[휙. 휙.]
단 일장의 거리에서 날아온 염주 알을 의문의 여인은 가볍게 받아쳐 버렸다.? 오히려 두 알의 염주알은 동이각주에게 날아가 버렸다.
[쨍.]
"크악!"
"커억!"
동이각주와 장철군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염주 알이 갑자기 날아오자 방비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이각주는 동해방 내에서도 제법 고수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동이각주는 염주 알이 날아온다고 느껴지는 경로를 향해 칼을 들어 막으려 했다.? 그러나 칼날이 아닌 도면으로 강력한 내력이 들어간 염주 알을 막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칼은 단번에 두 동강이 나면서 동이각주에게 큰 내상을 입히며 절망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동이각주를 절망하게 만든 것은 두 동강 난 자신의 칼이나 내상이 아니었다.? 자신이 내상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내지른 신음보다 먼저 터져 나온 비명소리의 주인공 때문이었다.? 그는 동이각주가 신주단지 받드는 듯이 모시는 동해방의 소방주 장철군이었다.
장철군은 동이각주의 칼을 부셔버리고 날아온 염주 알에 오른 쪽 눈이 터져 버려 고통을 이기지 못해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또한 두 번째 염주 알은 장철군의 어깨를 뚫고 지나가 버렸다.? 장철군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동이각주 선우전은 원한을 품은 눈으로 의문의 여인을 노려보았다.
의문의 여인은 허공에서를 학경자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경자는 강철조차 으스러트린다는 응혈조로 공격하며 철비벽으로 강화시킨 팔목으로 의문의 여인이 내지르는 발차기를 막기 시작했다.
[퍼벅. 퍽.]
첫댓글 즐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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