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 가족 22-21, 이사 온 지 4년
“아이고, 은이가 이사 온 지 벌써 4년이 다 됐네. 시간 참 빠르다.”
며칠 전, 은이와 같은 집에 사는 강석재 어르신이 스치듯 말한 것을 듣고 시간을 실감했다.
‘그래, 이맘때 은이가 이사 왔었지! 벌써 4년이나 됐나?’
손가락을 접어 가며 한 해 한 해 날짜를 세니 어르신 말이 맞다.
2018년 11월 15일, 태어나서 줄곧 부모님과 함께 살던 은이가 월평빌라로 이사 왔다.
가족들과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리는 은이를 만났다. 아버지 품에 안긴 은이가 생긋 웃었다. 오래 기억될 순간이라 생각했다. 첫 만남, 이사 온 날.
아버지, 어머니, 형, 어머니의 외삼촌과 외숙모까지 은이와 함께 온 가족이 둘러앉자 방이 가득 찼다. 소장님과 팀장님이 우리의 가치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일하려 하는지 설명했다. 앞으로 은이가 생활하는데 집에서처럼 가족들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당부했다. 가족들은 은이의 지난날과 유의해서 챙겨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어머니는 은이가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적은 포스트잇 여러 장을 건넸다. 작은 글씨로 가득 메워진 쪽지, 어머니는 직원에게 전할 글을 쓰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남상면사무소를 찾아 ‘거창군 남상면 웃골길 79, 월평빌라 304호’로 전입신고를 했다.
“이제 다 됐네.”
아버지인지 어머니인지 부모님 중 한 분이 나지막이 말했다. 여전히 그 마음을 헤아릴 도리가 없다.
집으로 돌아와 은이를 눕히며 어머니는 몇 번이고 이부자리를 정돈했다. 누울 때 꼭 양쪽 다리에 쿠션을 베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팀장님 두 분과 떠나는 가족을 입구에서 배웅했다. 조금씩 멀어지는 차를 가만히 바라보며 울컥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잘 돕는다고 직원이 대신 아파하고 슬퍼하지 말라’고 했는데, 부모님과 함께일 때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면 되는데, 잘 지낼 텐데 서글픈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사람을 돕는 일,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오늘까지만 슬퍼하자. 애써 빨리 이 마음을 날려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성이 하, 이름이 은이에요. 온유할 은 자를 씁니다.”
온유할 은, 하은. 이름처럼 얼굴이 참 맑은 아이다.
은아, 잘 지내보자. 만나서 반가워. 「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정진호」 발췌
그동안 은이는 어떻게 지냈나? 사회사업가로서 어떻게 사회사업으로 도우려 노력했나?
4년이라는 딱 떨어지는 숫자를 앞에 두고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2018년 11월, 월평빌라 304호로 이사 왔다. 아버지, 어머니, 형, 외삼촌과 외숙모까지 함께였다.
2019년 3월, 창남초등학교 5학년으로 전학했다. 현장체험학습 가는 길, 은이도 같은 반 친구들과 같은 버스에 올랐다.
2020년 1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예령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해, 예령이가 주말에 종종 은이 집에 놀러 오곤 했다. 같은 해 수학여행은 코로나로 취소될 뻔하다가 학생들의 요청으로 당일치기로나마 다녀오게 되었다. 이번에도 은이는 같은 반 친구들과 같은 버스로 함께 다녀왔다.
2021년 2월, 거창으로 이사 와 다니던 창남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정든 친구들, 담임 선생님과 도움반 이정 선생님에게 감사 인사 전했다. 운동장에서 예령이와 졸업식 기념사진을 찍었다.
2021년 3월, 지금 다니는 중학교로 진학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은이를 돕는 사회사업가가 오래 고민하고 의논한 끝에 결정할 수 있었다.
2021년 12월, 겨울방학식이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구미 본가로 향했다. 구미에 간 건 거창으로 이사 오고 3년 만에 처음이었다. 일부러 휴가를 맞춰 은이와 함께한 부모님 품에서 9일 머물렀다.
2022년 1월, 구미 본가에서 부모님과 한자리에 모여 지원 계획을 의논했다. 부모님이 조심스레 은이가 교회에 다닐 수 있는지 물었다. 기쁜 마음으로 적극 돕겠다고 했다. 신년 과업에 ‘신앙’이 추가되었다.
2022년 6월, 코로나로 몇 번이나 약속을 미루고 취소해야만 했던 예령이와 창포원에서 토요일 점심 피크닉을 즐겼다. 그 자리에서 예령이가 교회에 다니는지 물었고, 예령이 어머니로부터 교회 한 곳을 소개해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지나 가천교회 김안나 사모님과 통화하고 저녁 수요예배에 참석해 인사했다. 그 후로 줄곧 학생 예배와 주일학교에 출석한다.
2022년 7월, 가천교회 김은삼 목사님과 장로님 한 분이 은이 집에 심방 왔다.
2022년 10월, 목사님의 주선과 주일학교 선생님의 추진으로 주일학교 동생들이 은이 집에 놀러 왔다. 세어 보니 열 명이나 됐다. 은이가 준비한 피자를 먹고 놀았다. 동생들이 은이 오빠, 은이 형에게 찬양 몇 곡을 불러 주었다.
은이 잘 살았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 이상 기대하며 꿈꾸고 살 것이다.
지원하며 부족한 일이 없지 않으나, 미안하지 않다.
마음을 다해 도왔고, 지난 시간이 부끄럽지 않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은이 어머니가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
은이가 이사 간 날을 기억하고 연락해 주셨다.
부모님에게 지난 4년은 어떻게 기억되는 시간일까?
감히 그 감정 모두 헤아릴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부모님 마음에도 염려와 미안함보다 기대와 희망이 커졌기 바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길가에 나뭇잎이 떨어지고 이제 겨울 느낌이 납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하은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요? 아픈 곳은 없는지요?
오늘이 하은이 월평으로 간 지 딱 4년 됐네요. 세월 참 빠릅니다.
하은이 좋은 선생님 덕분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더더욱 감사할 따름이네요.
하은이 보러 갈 때까지 잘 지냈음 하네요. 선생님,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언제나 진심이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더더욱 진심을 담아 답장한다.
은이 잘 지낸다는 것 자랑스럽게 보여드리고 싶고, 이렇게 궁리하며 돕는다는 것 말씀드리고 싶고,
우리 동료가 함께한다는 것 당당하게 소개하고 싶어 몇 가지 자료와 사진을 첨부한다.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 아침저녁으로는 부쩍 추워졌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보관해 두었던 은이 겨울용 패딩과 외투 꺼내어 입으려고 합니다.
며칠 전부터 은이랑 같은 집에 사는 강석재 어르신이 몇 번이나 말씀해 주셔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이 날짜를 잘 기억하고, 때마다 알려 주시거든요.
이렇게 보니 시간이 참 빠릅니다. 새로 시작하는 일이 많고 처음이 많던 신입 직원이었는데,
은이 지원하는 동안 많이 배우고 손에 익은 일이 늘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으로 전학했던 은이가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고요.
은이가 잘 자라고 있는 것, 여느 아이들처럼 이런저런 일을 겪지만 때마다
돕는 손이 있고 든든한 부모님이 있어 잘 넘기며 지내는 것에 감사합니다.
제가 잘하게 되는 일이 늘고, 교회며 학교, 재활…, 은이 여러 일이 뜻한 대로 잘 이루어지는 것도 감사하고요.
무엇보다 미약하게나마 제가 부모님 뜻과 생각을 헤아리게 되고,
부모님이 제 뜻과 생각을 헤아려 주시게 된 게 가장 기쁩니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은이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은이 지원하는 동안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잘 돕고 잘 거들고 싶습니다.
아버님 어머님도 같은 마음이시겠지요. 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첨부) 2018년 11월 16일, 월평빌라 밴드 ‘하은 군이 이사 왔습니다’ 글 캡처
‘은이 이사 온 다음 날 동료에게 공유한 글입니다.’
(첨부) 2022년 9월 19일, ‘하은, 재활 22-25, 바닥에 발을 붙이고’ 일지 파일과 피드백 사진
‘언젠가 썼던 일지이고요.’
(첨부) 2022년 10월 4일, ‘『새로운 케어 기술』 하은 팀 공부 기록 취합’ 파일
‘『새로운 케어 기술』이라는 책을 공부하면서 월평빌라 동료들과 궁리하고 기록한 내용입니다.
언제 시간 편하실 때, 천천히 봐 주세요.
은이 이렇게 지원하고 공부한다는 그 마음 전하고 싶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년 11월 15일 화요일, 정진호
은이 거창에 이사 와서 만난 사람도 많고 한 일도 많네요. “은아, 고생했어. 잘 지내 줘서 고마워.” 신아름
벌써 4년이나! 그동안 잘 살아 줘서 고맙습니다. 하은이도 부모님도 갈수록 평안해하니 그게 참 고마웠습니다. 4년 돌아보니 감사요 은혜라, 은혜요 감사라. 월평
하은, 가족 22-1, 은이가 보낸 새해 인사
하은, 가족 22-2, 부모님과 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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