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매님이 세 번째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애국자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실 세 번째 아이니까 육아가 이제 익숙하고 훨씬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더 힘들고 다른 아이들도 보살펴야 했기에 더 바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아한 육아는 불가능했고, 한 손으로 애를 안고 집안 살림을 해야 하는 고된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당 반장님이 찾아와서는 어려운 반원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면서 기도 목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진짜 바쁜데, 내가 더 힘든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으면서 기도할 시간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안 바빴다고 말할 때가 있었나? 여유 있을 때는 기도를 많이 했을까?’
그 뒤 틈틈이 기도했습니다. 애 안고 걸어가며 기도하고, 아기 재우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덕분일까요? 아이가 아프지도 않고 잘 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짐이라도 생각했던 아이가 더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평화를 찾으면서 기쁨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자매는 말합니다. 기도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자기 마음부터 변화시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욕하겠습니까? 사랑의 마음이 자리 잡으면서 자기도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이 담기면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외면하면 더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 각자가 잘 살 수 있도록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을 뛰어넘습니다. 적극적으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루카 6,31)의 황금률을 말씀하시면서, 조건 없는 사랑을 즉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자녀 되는 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는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루카 6,38)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 머물면서 지금을 잘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계산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이 많습니다. 이 정도 받아야 나도 이 정도 베풀 수 있다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이 세상의 자녀와 다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야 우리가 받을 상이 클 것(루카 6,35 참조)입니다.
오늘의 명언: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랜터 윌슨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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