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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湖畔의 벤치(항산화건강 동호회) 원문보기 글쓴이: 배시창 에발도
테레사의 이웃사랑
배시창 에발도
주일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언덕길을 올랐다.
성전까지는 수십 계단을 더 올라가야한다. 계단 밑 도로입구에 십여 명의 자매님들이 도열하여“전교 합시다”글이 적힌 노란 띠를 두르고 시위 하는 것처럼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어느 소 공동체에서 실시하는 주일 봉사 행사정도로 생각했다.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전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실시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다소곳이 형식적인 면이 다분히 있는 것 같았다. 평소 안면이 있는 자매님 곁으로 살며시 다가가“이런다고 전교가 됩니까.”라고 물어보니 “글쎄 말입니다.”라고 대답하고서는 자신도 멋적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2년 전 뉴질랜드에 머물고 있을 때 크라이스트처치 한인장로교회에서 특별한 강연회가 있었다. 강사는 연변-평양 과학기술대학교 김00 총장이었는데 교회 목사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 초청받았다고 했다. 교민사회에서 이런 강연회가 열리면 종파를 초월하여 신자든 비신자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다. 이민사회의 무료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열성적인 신도들의 참석 권유 때문에 체면치레로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필자도 그 교회 신도의 권유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분은 서울의 큰 교회의 장로 출신이라고 했다. 단상에 올라 잘 꾸며진 성전을 한번 둘러보며 하시는 말씀이
“주님을 이곳에 모시기가 조금 거북스럽겠네요.”
신도 수에 비해서 너무 크고 호사스럽게 지은 성전을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 성전을 비꼬는 말투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김 총장의 지적은 올바른 것이었다. 한국의 비대해진 개신교 성전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계서야 합니다. 성전만 호화롭게 지어 놓고 십자가만 걸어 둔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머무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머물고 싶은 성전이 따로 있습니다. 그곳은 가난한 교회이며 하느님나라에 갈 자격이 있는 목자들과 신도들이 있는 곳입니다. 하느님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성전지붕이 높다고 크다고 호화스럽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오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고는 큰 착각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목장입니다. 넓으면 양들도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한 사람의 목자가 수많은 양들을 보살 필 수 없습니다. 작은 목장의 목동은 양들과 하루 종일 같이 살면서 편애없는 愛情으로 양들을 감싸주고, 상처 입은 양들을 치료해 주고, 좋은 풀밭을 구해 인도해주는 것이 바로 목자 예수그리스도의 참 모습인 것입니다. 목장이 크면 양들을 정성껏 보살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목장은 작아야 합니다.” 개신교 장로께서 이런 말씀을 다 하시다니 놀랄 뿐이었다.
강연 중에 전교에 관한 말씀도 하셨다. 전교가 제일 중요한 하느님의 사업임을 강조하면서 어느 교회 장로님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죽어서 좌우 품 천사의 안내를 받아 훨훨 날아서 천당으로 갔답니다. 천사들 따라 간 곳이 큰 궁전 같았는데 입구까지 안내하고서는 장로님 홀로 남겨 놓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대요. 할 수없이 혼자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는 온통 유리벽으로 장식된 큰 전시실이었는데 사각으로 짜여 진 작은 유리케이스 안에는 보기에도 너무 화려한 황금 면류관을 위시하여 온갖 종류의 면류관들이 진열되어 있었답니다. 황금면류관에 현혹이 되어 가까이 가보니 Showcase 앞에 ”머리에 맞는 것을 골라서 쓰라“는 경고문이 붙어있었대요. 황금 면류관부터 머리에 얹어보니 헐렁해서 맞지 않았다고 하네요. 어떤 것은 작고 어떤 것은 헐렁해서 머리에 맞는 면류관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낙담에 빠져 있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한쪽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로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개털 면류관이 있어 장난삼아 써보니 글쎄 그것이 꼭 맞더랍니다.
”목사님, 60평생을 하느님 말씀을 순종하며 열심히 살아 왔는데 개털면류관은 좀 너무한 것이 아닙니까?“ 라고 불평을 하드랍니다.
함께 식사하던 목사님중의 한 분이 “장로님, 지금까지 전교를 몇 명이나 하셨는지요.”
“안 그래도 그것이 문젠가 봅니다. 부끄럽게도 한사람도 하지 못 했습니다”
“단 한분이라도 전교를 했었다면 황금 면류관은 장로님 몫인데, 참 아쉽군요.”
필자도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 온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 총장님의 연설을 듣는 순간 필자 역시 가슴이 뜨끔하였다. 나 역시 한사람도 전교해 본 적이 없으며 필히 해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져본 적도 노력해 본 적도 없었다.
물론 입교권면을 수없이 했지만 단 한사람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냉담하고 있는 여 동생도, 사랑하는 후배마저도 먹혀들지 아니했다. 전교는 어려운 일이고 말로 해서는 안 되는 일 인 것을 벌써 깨달았다. 지금도 소 공동체 활동 중에 전교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있다. 미지근한 믿음을 가진 자가, 세상의 탐욕 속에 헤어나지 못한 자가, 주님의 십자가 지기를 두려워하는 자가, 그리고 신앙생활도 세상생활도 모범이 되지 못한 자가 어떻게 전교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自愧心 때문이었다. 전교는 믿음을 완성하여 세상생활과 함께 병행 할 때 자연히 완성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는 전교가 신앙생활 마지막에 피울 수 있는 향기 진한 꽃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상외로 쉽게 전교되는 사례도 많이 있단다.
15-6년 전 필자가 살았던 동네에 테레사(가명)라는 자매님이 살았는데 의지 할 곳이 없었던 어느 노부부를 위해 아무도 모르게 2-3년간 베풀었던 선행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녀의 희생적인 이웃사랑으로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녀의 선행을 알고 있는 이웃 사람 몇몇은 테레사의 선행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믿음의 길로 들어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테레사의 성격을 보아서 이웃들에게 성당에 나가자고 먼저 이야기 한 것 같지 않다. 이웃을 사랑한 에너지는 감동이 되어 가슴속에 다가온다. 감동을 주고받을 때 이웃사랑은 더욱 강해지는 법이다. 이웃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주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었기 때문에 감동을 받은 이웃들이 스스로 믿음을 찾아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행위가 참다운 전교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테레사는 연약한 여인으로써 참으로 장한 일을 해 냈다. 그 당시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다.
<테레사의 이웃사랑 이야기 1부>
성당 구내에도 누렇게 물던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은행나무와 자작나무의 잎사귀가 낙엽이 되어 한잎 두잎 떨어지는 10월 중순 어느 새벽이었다. 바오로씨(65세)는 평소처럼 미사 준비를 하기 위해 6시에 성전에 도착하여 성전내부에 불을 밝히고 이곳저곳을 점검한다. 새벽미사가 시작될 쯤에 마당을 쓴다.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오니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마당에 낯선 할머니 한분이 마당을 쓸고 있었다.
바오로씨는 신자 중 누군가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일이 가끔 있기 때문에 할머니의 맞은 편 쪽에서 입구 쪽을 향해 평소와 다름없이 마당을 쓸기 시작하였다.
낙엽이 떨어지는 양이 매일 매일 많아져 갔다. 시월에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은 잘 쓸리지도 않는다. 아직 푸른빛이 남아 있는 조그마한 잎사귀가 콘크리트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빗질을 여러 번 해야 한다. 20여 분 동안 쓸어 모은 낙엽을 쓰레기통에 옮겨 담았다. 할머니도 함께 도왔다.
할머니 나이는 이순이 될까 말까 한 나이였다. 보통의 키에 허리가 꾸부정하고 허약해 보였다. 그 날은 바오로씨와 할머니는 서로 눈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그 날 이후 아침이 오면 마당 쓰는 일에 할머니가 동참했다. 바오로씨가 다른 일로 바쁠 때면 할머니 혼자서 할 때도 있었다.
바오로씨는 할머니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평소에 제가 못 뵌 분 같아 그러는데 언제부터 이 성당에 다녔습니까.”
“저는 성당에 다니지 않아요.”
“성당에 나오지 않으면서 이른 새벽부터 청소는 왜 하러오는데요.”
“사연이 있어서요. 영감이 지병으로 죽고 난후에 잠만 깨면 갈 곳도 없고요, 비가 안 오면 혹시 어떤 사람을 만날까 해서 운동도 할 겸 여기까지 걸어 올라와요. 이곳에 올 때마다 아저씨 혼자 비질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아입니꺼”
“그랬었군요.”
“생각해보니 바깥에 종일 앉아 있을 자리도 마땅찮고요. 마당이라도 쓸어주고 사정하면 여기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게 해줄 것 같아서요"
“집은 어딘데요”
“요 아래 지하철 건너편에 있습니더.”
“혼자 삽니꺼”
“야”
“자식들은 없십니꺼”
“.........”
바오로씨는 더 이상 묻지를 아니 했다.
가을비가 내렸다. 밤새 내린 비 때문에 보름 전 보다 낙엽이 더 많이 떨어져 비에 젖어있었다.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오후 한시쯤에 비가 개었다. 비가 개이자 할머니는 집에서 사용하던 빗자루를 들고 성당으로 왔다. 마당을 반쯤 쓸고 있는데 바오로씨가 점심을 먹고 성당입구로 막 들어오고 있었다.
“할매요, 점심이나 자셨는기요. 땅이 마르면 하구로 그만 하이소.”
“시작한 일인데요”
어쩔 수 없이 바오로씨도 비를 들고 함께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또 지나갔다. 마당을 다 쓸고 난 후에 할머니는 마리아상 옆에 있는 벤치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아저씨 물어 볼 께 있는데요”
“물어보이소”
“성당에 나오려면 누구에게 말씀을 드려야 하요”
“성당에 다니고 싶소”
“야”
“근 달포 동안 사람을 기다려 봐도 나타나지 않네 예”
“누굴 기다리는 데요. 혹시 가족 분을 찾습니꺼”
“아입니더. 우리를 오래 도와준 고마운 색시라 예.”
“이름은 알고 있습니꺼”
“이름도 모르고 어디 사는 줄도 몰라 예. 누가 카던데 이 성당에 다닌다고 해서 찾아 와 봤십더. 한번 만나보고 싶어 예”
“이 성당만 해도 신자수가 사천 명이 넘습니더. 얼굴은 대충 알아도 이름을 다 모릅니더. 그 색시가 성당에 나가라 합디꺼”
“아이라 예. 그런 말 없었심더”
“나도 그 색시가 성당에 나가는 줄 몰랐어 예. 내가 보고 싶다 그러니까. 우리 동네 슈퍼주인이 성당으로 가보라 캐서 왔서 예”
“색시 집이 어뎅가 슈퍼주인에게 한번 물어보지 그래요”
“이 근처에 살기는 사는데 슈퍼주인도 집을 잘 모른다 안 캄니꺼"
"매일 새벽 두 세 시쯤에 집으로 온다 카는데 어데서 생맥주집을 한다 합디더. 있는 곳을 알면 뭐 할라꼬 여기에 오겠능교”
“영감님은 언제 돌아 가셨는데 예”
“벌써 6개월이 다 돼 갑니더.”라고 말을 하는 순간 죽은 영감이 생각났던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바오로씨의 마음도 아팠다. 괜히 물었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다시 말을 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바오로씨는 할머니가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만 같았다.
“할매요, 그 색시를 만날라 카면 일요일 미사에 한번 나와 보이소. 일요일에는 미사가 네 번이나 있는데 오전11시에 제일 많이 참석합니다. 우짜면 그 때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라고요, 성당에 나올라 카면 수녀님을 한번 만나보이소. 내일 수녀님 계획이 어떤가 모르겠는데 제가 여쭈어보고 내일아침에 수녀님 만날 시간을 알려주면 안 되겠소 ”
할머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안 했다. 할머니는 색시부터 만나보고 나서 성당에 나오려고 생각했다.
노부부 내외는 평생을 창녕에서 살아왔다. 외아들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열심히 갈고 거두어 들였다. 조금씩 전답도 늘려가며 세 식구가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외아들을 두었는데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년간 농사일을 돕다가 군 입대를 하게 된다. 제대를 하면서 군에서 사귄 친구소개로 부산에 있는 완구공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몇 년 후에 부도가난 그 공장을 인수하면서 자금 마련을 위해 부모 생계에 필요한 집과 전답일부만 남겨 놓고 거의 다 처분을 하였다. 아들은 이내 결혼을 하게 되었고 어느새 이층 단독주택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며느리까지 보게 되자 내외는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었고 손자, 손녀 녀석들이 찾아오는 날만 기다리며 살아왔다. 봄에는 나물을 캐어 보내고 여름이면 옥수수를 따서 보내고 가을이면 마늘이랑 고추랑 그리고 탈곡한 햇살을 장만하여 아들집에 보내주는 일이 마냥 즐거웠다.
할아버지가 칠십이 넘어서자 농사 일이 점점 힘에 부쳤다. 농사 일만 갔다 오면 밤새 꿍꿍 앓는 날이 많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밭일하고 돌아오는 어느 봄날에 비를 흠뻑 맞고 쓰러져 버렸다. 동네 한의원에서 꽤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그 후로 부터 왼쪽수족을 못 쓰는 중풍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아들 내외가 갑자기 고향집으로 들러 부산으로 가서 살자며 아들 차에 억지로 실려 온 지도 이년이 흘렀다. 돈이 급해서 그랬던지 며느리는 전답과 집을 급히 처분해 버렸다.
부산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도 이년 동안 아들과 며느리는 병원에 한번 다리고 간적이 없었다. 더구나 보고 싶은 손자들 얼굴 한번 구경하지 못했다. 냉하고 습한 지하실에 갇혀 살아왔다. 부산으로 이사 온 다음날부터 며느리는 출입문에 열쇠를 채워 버렸다.
"여기는 촌 하고 달라서 집 나가 길 잃어버리면 찾아오지도 못합니다. 그러고 차들이 많아 위험 하고요, 절대 나다니면 안 됩니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로 숨 한번 크게 쉬고 싶고 잊어버린 따사한 햇살을 만져보고 싶을 때마다 "며늘아, 잠시 바람 좀 쉬고 들어오면 안되겠나"
"내가 뭐라 캅디까. 위험하다고 했지요. 그리고 밥 들어 갈 때 말고는 저 창문 절대로 열지 마이소. 알겠어 예"
며느리의 강경한 어조에 어쩔 수없이 약조를 하기는 하였으나 바깥세상 구경하고 싶을 때마다 "길가에는 안 나가고 집 안에만 있을 테니 제발 문 좀 열어 달라"고 사정사정 하였으나 끝내 며느리는 못들은 척했다. 어디에다 하소연 할 때도 없었다. 서러움과 억울함이 밀려올 때는 정말로 참을 길이 없었다. 그럴 때 마다 순하고 병든 영감 엉덩이를 주먹으로 많이 지어 박았다. 살아왔던 고향집에 가고 싶어도 다시는 갈 수없는 꿈속의 집이 되어버렸고 정답던 마을사람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오늘은 딸아이의 봄 소풍가는 날이다. 테레사는 새벽 2시에 눕힌 몸이 영 말을 듣지 않았다.
남편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제 시장을 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테레사는 잠을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넘었다. 날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옷을 걸치고 집 밖을 나왔다. 골목길과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운 동네 가계들은 아직 문이 열려있지 않았다. 가끔 버스를 타고 내리면서 보아둔 새 온천 아파트 슈퍼까지 오게 되었다. 남의 동네까지 오는데 7-8분쯤 걸어왔다. 거기에는 문이 열려있었고 이른 아침인데도 이웃 할머니들과 아줌마 몇 명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세상에 그런 불효자식이 어데 있노. 천벌을 받아도 싸지”
테레사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가계 안으로 들어가 김밥재료를 사고 딸이 마실 음료수와 과자도 샀다.
“동네에 무슨 일 있습니까.” 아무 생각 없이 가계 주인에게 물었다.
“세상에 70이 넘은 병든 노인네들을 지하실에 가두어 놓고 아들이 부도를 내고 가족들과 함께 야밤 도주를 한 모양이요.한 채권자가 집에 들어가 보니 현관 아래 지하실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가까이 가보니 모기소리보다 작은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하드래요. 문을 부수고 지하실로 들어가 보니 글쎄 노부부가 아사 일보 직전이었다고 합디다. 다행히 발견되어서 망정이지 오늘 하루만 넘겨서도 동네 초상 칠 뻔했다고 합디다.“
“어딘데요.”
“바로 xx은행 뒤 이층집 안 있습니까. 경찰도 다녀갔다 합디다"
딸 소풍도 보내고 남편 출근도 시켰다. 아침마다 이 시간에는 왠지 마음이 급하다. 그 시간만 지나면 항상 여유가 생긴다. 밀린 빨래 감도 세탁기에 집어넣고 집안 청소도 말끔히 하였다. 도시락을 싸주고 남은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나니 연달아 큰 하품이 나오면서 잠이 쏟아졌다. 추석, 설날 명절 외에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매일같이 새벽 두 세시 까지 가계를 열어야 하므로 오전시간에 잠을 자두지 않으면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테레사에게 이런 생활이 이유 있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테레사는 관광버스를 타고 성지순례 가는 꿈을 꾸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겹겹이 둘러싸이고 갑갑하게 느껴지는 깊은 산중에 내렸는데 방향은 몰라도 한 방향이 시원하게 트여있었다. 산 아래 먼 곳에는 넓고 평화로운 벌판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앞으로 굽이치는 긴 강물이 휘돌아가며 흐르고 있었다.
성지는 고요하였다. 넓은 잔디밭 중간쯤에 원통을 길이방향으로 반으로 잘라 업어 놓은 듯한 꽤 큰 동산이 만들어져 있었다. 둥그스럼한 동산위에는 나무가 없고 잔디로만 덮여져 있었고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가 정면으로 보였는데 안내자는 그 입구를 향해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테레사는 안내자 뒤를 따라 가면서 왠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였다. 순례 행렬은 이미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보이지 않았으나 테레사는 너무 두려워 밖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 들려왔다.
동굴 안은 어둡지 않았고 공간은 매우 넓었다. 입구부터 한 두 사람 어깨를 걸고 걸을 수 있도록 모양이 서로 다른 몇 개의 "S"자 를 길게 늘여서 연결시킨 것 같은 인도가 중심선을 벗어나지 않고 동굴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좌우측 공간은 전부 꽃 밭 이였다. 꽃밭 모양은 모두 다 달랐다 .어떤 꽃밭은 평평하고 어떤 꽃밭은 울퉁불퉁하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운치 있게 흩어져 놓여 있었다. 마치 잘 가꾸어 놓은 정원 같았다. 꽃밭은 10-20미터 씩 길이 방향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이 인도 양쪽에 나 있는 조금 더 큰 개울로 모여들어 길 따라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띠인 것은 활짝 핀 난 장이 해바라기였다. 꽃모양은 크나 키는 한 자 정도로 매우 작았다. 그리고 꽃나무 사이마다 작고 하얀 십자가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꽂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꽃밭 같기도 하고 다시 보면 십자가가 총총 박혀있는 무덤 같아 보였다. 어떤 것은 바로 서있고 어떤 것은 거꾸로 박혀 있었다. 처음에 인형들이 매달려 있는 것 같이 보였으나 자세히 바라보니 인형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산 사람을 축소시켜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그들 모두는 눈을 감은 채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못 참아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이 보였고 어떤 이들은 세상에서 지은 죄의 대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굳게 입을 다물고서는 깊은 신음소리를 억지로 참아가며 고통을 이겨내려고 애쓰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거꾸로 매달린 이들은 긴 머리까락을 땅위에 늘어뜨리고 고개를 들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 때마다 머리카락이 출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어가며 혓바닥을 길게 빼고서는 연거푸 거품을 토해내고 있었다. 테레사는 갑자기 한기가 들었다. 두려움의 전율이 온몸을 감전시켰다. 가슴은 벌렁거렸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이 보다 더한 두려움을 본적이 없었다. 칼을 든 강도보다도 무섭고, 달려드는 맹수보다도 더 무서웠다. 그런 두려움은 이것과는 비교될 수없는 두려움이었다. 테레사는 더 이상 바라볼 수도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왔다. 바깥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동굴과 좀 떨어진 곳으로 가서 잔디밭에 앉았다. 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였으나 숨이 막히고 두려움은 여전했다. 차츰 진정되어 가면서 혼자 있기가 무료했다. 순례행렬이 밖으로 나올 때까지 동산주위를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동산 모서리를 돌아가니 동산과 연결된 조그마한 아치형 돔이 몇 개 보였다. 각각의 출입문이 있고 열려있었다. 테레사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입구라 생각하니 진절머리가 나 첫째 돔 내부는 아예 눈길을 주지 않고 지나쳤다. 두 번째 돔 앞을 지나면서 그만 옆 눈질을 하고 말았다. 그 돔 안에는 밀 납으로 만든 예수님 모습이 보였다. 테레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 방안으로 들어갔다. 조그마한 방안에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이 절간에서 보던 부처님처럼 정좌한 모습으로 마룻바닥에 앉아 계셨고 등 뒤에는 눈이 왕방울만 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천왕이 삼지창을 들고 벽에 붙어 서있었다. 동굴 안에서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예수님모습을 보는 순간 큰 위로가 되었다. 두려웠던 마음은 사라져 버렸고 갑자기 몸속에서 알 수 없는 어떤 신비한 힘이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지그시 눈을 감고 성호를 그었다.
“저는 바르고 참되게 살고 싶습니다. 주님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눈을 들어 바라보자 가시면류관을 쓰신 주님의 머리에서 진 붉은 피가 한 방울씩 이마를 타고 흘러 내렸다. 그리고 주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되고 바르게 살아가기란 쉽지가 않아, 큰 고통이 뒤 따르지”
주님의 말씀이 끝나자 말자 갑자기 사천왕이 움직이면서 테레사 팔을 꼼짝 못하도록 붙잡고 자신의 미간사이에 박혀있는 구슬을 빼어내어 테레사의 그곳에 눌러 박으려고 하자 테레사는 놀라서 꿈을 깨었다.
잠을 잤으나 개운치 못하고 머리가 무거웠다. 그리고 꿈 내용이 아직도 생생하게 눈에 아련 거렸다.
한참이나 꿈 생각을 하면서 그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냉담 때문에 이런 꿈이 꾸이는 걸까. 죄지은 자가 죽어서 연옥에 가면 저토록 심한 고통을 받게 될까" 라고 생각해 보았다.
테레사는 생맥주 가게를 오픈하고부터 살림살이도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가정살림 하는 것만으로도 늘 피곤에 지쳐 잠이 많았던 그녀는 잠 때문에 주일미사도 자주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항상 주님을 향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뵙고 목소리를 들은 것 만 하드래도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과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저녁준비를 해놓고 오후 5시쯤에 가계로 가야하기 때문에 2시 가까이가 되면 항상 시장을 간다. 화장을 대충하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면서 또 꿈 생각이 났다. 테레사는 시장가는 반대쪽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테레사는 xx은행 뒤쪽에 있는 그 집을 쉽게 찾았다. 빛바랜 회색대문은 잠겨있었고 작은 출입문이 반쯤 열려있어 노크도 하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담 밖으로 나와 있는 목련가지에는 누렇게 물들고 시들어 버린 꽃잎 몇 송이가 연녹색 잎 새 사이에 숨어있었다.
대문 양쪽으로 담 길이만큼 모가 없는 자연석을 나지막하게 쌓아 만든 꽃밭에는 소담스럽게 피어난 연산 홍이 따스한 햇살에 졸고 있었고. 밖으로 튀어나온 평평한 돌 위에 한 간호사가 앉아서 잡지를 읽고 있었다.
“누구 계세요” 그 간호사가 쳐다보았다.
“누구신데요”
“동네에서 소식 듣고 찾아 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계세요”
“지하에서 링게르 맞고 계십니다. 하도 연로한 분들이라 천천히 주사하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네요.”
“의사 선생님께서 이야기 들으시고 주사 끝날 때 까지 곁에 지키고 있다가 오라고 했습니다.”
“고마우신 분이네요.”
현관문 옆에는 라면 한 상자와 쌀 한 포대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다녀간 모양 이였다.
테레사는 간호사에게 지하실 입구를 물었다. 오른 쪽 옆 모퉁이를 돌아가니 옆집의 좁은 담을 끼고 중간쯤에 출입구가 있었는데 열쇠고리가 부서진 채로 문이 열려있었다. 지하계단 끝에는 60촉의 희미한 백열등 불빛이 밝혀져 있었고 역한 냄새가 입구부터 풍겨 나왔다.
지하 방문은 닫혀있었다.
“계세요”불렀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테레사는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밝은 곳에 있다 들어와서 그런지 형광등이 켜져 있어도 방안은 너무 침침했다. 습하고 차가운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냄새가 너무 지독하여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지하 방 크기가 3-4평정도 되었고 페인트도 벽지도 바르지 않았다. 시멘트 바닥에 비닐장판을 절반쯤 깔고 그 가운데 두터운 일인용 메트리스 두 개가 놓여있었다. 두 노인네는 그 위에 나란히 누워 링게르를 맞고 있었으며 말을 건네어도 대답이 없었다. 남쪽으로 나있는 환기통 같은 조그만 창에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고 조립식 개다리 법상위에는 치우지 않은 음식 그릇들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이곳이 노부부의 비참한 생활이 펼쳐진 옥살이 현장이었다고 생각하니. 테레사는 울음이 터져 나오려 했으나 억지로 참으며 지하실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켰다. 답답한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포근한 오후의 봄 하늘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왜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노부부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씻을 수없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 무슨 피맺힌 원한이 쌓였기에 노부모를 짐승 다루듯이 학대하며 옥살이를 시켰을까. 짐승에게도 이렇게까지 하면 안되는데 말이다.
늙고 병든 노부부가 자식으로 부터 이런 비참한 대우를 받아가며 목숨을 부지해왔다는 사실에 테레사는 치를 떨며 분개하였다. 더구나 이런 환경에서 죽지 않고 살아온 것만도 기적이라 생각했다. 세상에 알려지면 누가 자식을 낳고 키우려 하겠는가. 생각만 해도 세상 살아가는 일이 너무 어렵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테레사는 앞으로 이 불쌍한 노부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주님, 이 불쌍한 노부부를 도와주소서."
"내가 너를 그곳에 보내지 않았느냐. 불쌍한 그들을 부모 모시듯 정성껏 잘 거두어 주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딸 소풍 보내려 남의 동네까지 시장 보러 오게 된 것도 주님께서 인도하신 것 같았고 꿈속에 주님을 만나 뵌 것도 이일과 관련 되는 것 같았다.
테레사는 무슨 좋은 방법이 있겠지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고 일층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마루에는 감색 소파와 두꺼운 유리를 깔아둔 사각테이블이 마루공간을 반쯤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희뿌연 먼지가 두텁게 깔린 유리위에는 담배꽁초가 가득 채인 재떨이와 빨간색 전화기가 두서없이 놓여있었다.
도망갈 때의 긴박한 상황과 초조한 심정을 탁자위에 고스란히 놓아두고 간 것 같았다.
큰 방의 자개농도 그대로 있었다. 농문을 열어보니 옷장은 비어있었고 두터운 이불과 요 그리고 베게 두 개와 얇은 침대보가 있었다. 부엌 한 구석에 낡고 작은 냉장고는 전기코드가 빠져있었고 찬장에는 그릇들도 많이 남아있었다. 아이들 방에 책상도 그대로 있었고 책들이 너절하게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필요한 것만 챙겨서 달아난 모양 이였다. 테레사는 두 노인을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테레사는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마루와 안방을 청소하려고 마음먹었다. 신발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마루부터 쓸기 시작하였다.
밖에서 책을 읽고 있던 간호사가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아줌마 예, 혹시 친척 되십니까.”하고 물었다.
“아니요”
“그러면 청소는 왜 하는 대요”
“지하실의 노인 내를 일층으로 모셔야 할 것 같아서요.”
간호사도 비로소 청소하는 이유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맞다. 그지 예.”하며 응수를 하고서는 함께 거드는 시늉을 했다. 테레사는 마루에 물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는 커튼을 재치고 창문을 열면서 말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아줌마 예”
“이 집 며느리 이야기 들어 보셨습니꺼.”
“아니요”
“아까 동네 아줌마들한테 들은 이야긴데요. 이 동네 이사와 십년 가까이 살았는데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 집에 사는 것을 몰랐다 안 캅니꺼. 또 며느리 되는 사람과 말 한마디도 나눈 사람이 없다 캅디더. 남편은 어질고 순하게 생겼다 카던데 며느리는 키도 조그마하고 꼭 백여우처럼 생겼다 카데 예.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하실에 감금시켜 꼼짝 못하게 한 것 아닙니커. 나는 아직 세상을 오래 안살아 봐서 잘 모르지만 이런 경우가 말이 됩니꺼, 안 그렇습니꺼”
테레사는 방과 마루청소를 끝내고 부엌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가스레인지를 돌려보았다. 파란 불꽃이 피어났다. 냉장고 코드를 꼽고 문을 열었다.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 있는 그릇과 양념 통들을 꺼내어 씻었다. 그리고 보일러 스위치를 넣어 보았다. 집 모퉁이 어딘가에서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탱크 안에 석유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현관 밖에 있는 쌀 포대와 라면 박스를 부엌으로 옮겼다.
“아가씨, 링게르 주사는 언제 끝나요”
“한 삼십분 있으면 끝날 것 같습니다”
테레사는 장롱안의 두터운 요를 끄집어내어 햇볕이 들어오는 남쪽 방향으로 머리가 향하도록 깔고 침대보를 덮었다. 그리고 이불도 끄집어내어 깔고 베게도 가지런히 놓았다.
거실로 나와 수화기를 들어보니 다행히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D방위산업체에 근무하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 오늘 바쁜 일 없어”
“별로”
“바쁘지 않으면 한 시간 정도 외출 하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어”
“와 보면 알아, 30분후에 xx은행 바로 뒷집으로 와 줄 수 있을까”
“그래 알았어.”
남편직장에서 승용차로 15분 정도면 도착 할 수 있는 거리였다.
“아가씨 나 잠시 시장에 다녀와야겠는데, 그 사이 우리 남편이 오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해줄래요”
테레사는 가지고온 시장바구니를 들고 급히 달려 나갔다.
남편이 기다릴까 자기 집에 필요한 것은 사지도 못하고 김치, 간장, 된장과 두부와 마른멸치와 계란그리고 기초반찬 두어 가지를 사서 급히 돌아오니 남편이 대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왔어”
“무슨 일이야”
“상세한 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노인 두 분을 큰방으로 좀 옮겨줘”
노인을 들고 밖으로 나오는 남편의 모습은 일그러져 있었다. 노인 몸에서 풍기는 악취 때문이었다. 쇠약해 질대로 해진 노인의 얼굴과 손목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수염과 머리는 한없이 자라있었다. 사람 모습이 아니었다. 할머니도 마찬 가지였다.
자리에 눕히고 남편과 테레사는 누워있는 두 노인네를 서서 바라보았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남편 어깨에 기대어 한참을 울었다. 남편은 테레사 어께에 손을 얹고서 울음을 멈추라고 몇 번이나 말을 했다.
그리고 물을 끓였다.
목욕과 이발은 뒷날 해주기로 하고 우선 수건을 적셔 노부부의 손과 발을 그리고 얼굴을 닦아드렸다.
“자기 회사로 가야지. 나는 죽을 좀 쑤어 놓고 집으로 갈 테니 먼저 가봐. 자기 고마워”
벽시계는 세시를 넘어서고 있어 테레사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도 병원으로 돌아간다고 인사를 했다.
“아줌마 수고 하셨어 예. 내일 오전에 한 번 더 올 것 입니더.”
“아가씨, 제가 밥상을 채려 놓고 갈 건데 내일 제가 좀 늦으면 죽을 데워서 드리라고 부탁하면 안 될까요. 미안 합니다.”
“오게 되면 그럴게 할께요.”
오후 네 시가 가까워져오자 테레사는 마음이 급했다. 떠나려 해도 해야 할 일이 더 있을 것 같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녁 차려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죽을 끓여 놓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쌀을 씻기 시작하였다. 일주일이나 굶었으니 밥보다는 죽이 좋을 것 같았다. 쌀을 씻으면서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폭탄이 떨어지는 아비규환의 긴박한 전쟁터도 아니고 쓰나미가 몰려와 죽음과 삶을 갈라놓는 절박한 순간도 아니었을 텐데 병든 부모를 지하에 가둬놓고 떠난 그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든 부모가 어찌 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지 않았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그 다음에 찾아오는 후유증이 얼마나 클 것인가 전혀 의심치 않았단 말인가. 정녕 부끄러움 없이 이 일을 저질렀다면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리고 노인네는 일주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어떻게 지냈을까. 배고픈 순간에 죽음의 그림자가 스칠 때마다 밀려오는 두려움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자식이 그리고 세상이 원망스러워 많이도 울었을 것 같다.
며느리 한사람 잘못 들어오면 집안이 망한다는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노부부에게 이토록 모진고통을 안겨준 이야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얼마 전에도 며느리 때문에 시동생이 자살한 사건이 이 동네에서 발생했다고 들었다. 년 년생으로 태어나 군대 갔다 올 때 까지 친구처럼 다정하게 살아온 형제가 있었는데 형이 먼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동생은 형을 형수에게 뺏겼다는 생각을 하고 한 동안 쓸쓸하게 지냈다. 결혼 이 개월이 지나자 며느리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동생이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가끔 어머니는 "내가 네 두 형제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며 눈시울을 적시면서 형수 흠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다.
“엄마, 요사이 여자들은 다 그렇대요. 남편 잘 거두고 자식 잘 키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엄마 세대와는 많이 달라요. 대접받으려고 생각하지 마시고 며느리도 자식같이 사랑해주세요. 그리고 엄마 내가 좋은 색시 얻어 엄마 편하게 해 드릴 테니 마음 푸세요.” 라고 어머니에게 조언하고 위로까지 하던 시동생 이였다. 형수로 인해 단란하게 살아왔던 가정에 분란이 끊이지 않자 형수교육을 시키지 못하는 형까지 원망스러워졌다. 어느 날 동생은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형수를 교육시켜보려고 찾아갔다. 다정했던 형제관계를 깨고 엄마마저 눈물 흘리게 만드는 형수를 보는 순간 울화통이 터져 버렸다. 형수를 실 컨 두들겨 패고서는 술이 깨이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건이 이 동네에서 발생했다. 슬픈 사건이었다. 그러나 테레사는 그 보다도 두 노인네 사건이 더 잔인하고 불행한 사건이라 생각 되어졌다. 정말로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 태어나 생부, 생모를 이지경이 되도록 방치해온 그 아들과 며느리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혹시 정신병자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지하실 문이라도 열어두고 도망칠 것이지 문을 걸어 잠근 채 도망 칠 만큼 정신이 없었단 말인가. 이건 존속 살인행위나 마찬가지이다.
가슴이 답답한 테레사는 “주님께선 이런 사람들도 용서를 해 주시나이까” 하고 묻고 싶었다.
테레사는 쑨 죽을 두 그릇을 펐다. 그리고 김치도 잘게 썰고 계란도 쪄서 상에 올렸다. .
“할아버지 할머니 진지 드세요. 초췌해진 눈을 뜨고서 테레사를 바라보았다. 테레사가 상을 방바닥에 놓자 할머니는 일어나보려고 안간힘을 다 쓰는 것 같았다. 일어나 겨우 앉고서는 흩어 진 머리를 두 손으로 쓸고 틀어 비녀를 꼽고 난 후 테레사 쪽으로 힘겹게 돌아앉았다. 할머니는 기력이 빠질 대로 빠져있었다. 죽 그릇을 끌어당겨 숟가락으로 힘들게 저어가며 식히기 시작하였다. 죽이 식었는지 몇 번씩이나 입가에 대고 확인을 한 후에 영감 가까이 다가가 한 숟갈씩 퍼서 영감 입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영감이 삼킨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조금씩 떠서 먹이기를 반복하였다. 영감을 먹이는 동안 할머니는 한 숟갈도 먹지 않았다.
할머니의 애틋한 모습을 지켜보는 테레사는 눈시울이 젖고 목이 메어서 차마 가야겠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더 늦어지기 전에 가야하는 테레사는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말았다.
“할머니 제가 시간이 없어 이만 가 봐야겠네요. 내일 다시 올게요. 죽은 오늘저녁과 내일 아침까지 드실 수 있도록 충분히 끓여두었는데 배가 고프시면 조금씩 데워서 잡수세요.”
할머니는 테레사를 힘겹게 바라보며 머리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그 모습에는 감사의 뜻까지 새겨져 있었다.
현관문을 나오려 하는데 백발이 성성하고 건강하게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영감 할마이 어째 됐노, 어째 살아났나” 큰 목소리를 내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두 분께서는 큰방에 계십니다.”
“색시는 누구요. 처음 보는 사람 같은데...”
“이웃에 삽니다. 죽을 쑤어 놓고 가는데 지금 식사중이십니다. 방으로 들어가 보세요.”
찾아온 할머니가 도움이 되어줄 것 같아 테레사는 조금 안심이 되었지만 곁에 있어주지 못하고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오늘저녁은 어떻게 보내실까. 아무 탈이 없어야 할 텐데 생각하며 집으로 오는 길에도 몇 번이나 뒤 돌아 보며 걸었다.
일요일이었다. 그 사이 남편과 이야기 할 시간이 없었다.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남편이 먼저 말을 끄집어내었다.
“당신 그 두 노인네 어떻게 알게 되었지”
테레사는 꿈을 꾼 이야기와 그 집에 가게 된 내용을 전부 다 이야기했다. 남편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반대는 안 해, 그렇지만 피곤 한 몸으로 그분들을 언제까지 도울 수 있겠어.”
“나도 그게 제일 걱정거리야. 무슨 방법이 있겠지. 당신이 좀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나.”
“노인네들이 그 집에 얼마나 머물 수 있을지 그걸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 그 것부터 좀 알아줘”
“그리고 다른 것은 없어”
“저분들을 어떻게 언제까지 도와 드려야 할지 나도 잘 몰라. 외부의 도움을 받기는 받아야 할 텐데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좀 알아 봐야겠어. 동 사무소와 성당에는 내가 가서 알아볼게”
그 날 오후에 남편과 함께 그 집으로 갔다. 할아버지 머리도 잘랐고 면도도 해주고 목욕도 시켰다. 목욕 후에는 준비해간 내의로 갈아입혔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원기가 회복되어 가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약간 부축만하면 화장실까지 다닐 수 있게 되었고 할머니는 식사까지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테레사는 노인네가 한 고비를 넘긴 것 같이 생각되어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매일 시장에 갔다 오는 길에 필요한 반찬을 조금씩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는 일을 잊지 않았다.
오랜만에 할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색시, 한 밤중에 영감이 항상 춥다는데...”뒷말을 흐렸다. 테레사는 보일러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몰랐다. 집에 있는 전기담요를 가지고 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할머니 오늘만 고생하세요. 우리가 쓰던 전기담요를 내일 가져다 드릴게요.”
밖에 젊은 남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목소리를 듣고 방에 있던 테레사가 밖을 나와 보았다.
“누구시죠”
“00은행에서 나왔습니다.”
“실례지만 아주머니는 K사장님과 어떤 관계입니까.”
테레사는 며칠째 드나들며 보고 들은 내용을 있는 데로 이야기했다. 그들은 노인네의 슬픈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보였다.
“이 집 주인 되는 분이 부도를 내고 연락이 두절된 상태입니다. 어쩔 수없이 채권확보를 위해 경매절차를 밟으려 찾아왔습니다.” “그렇군요.”
테레사는 마음이 급해 “언제까지 집을 비워드려야 하나요.“하고 물었다.
“집이 경매 될 때까지는 은행에서 직접 관리를 하게 됩니다. 무어라 말씀은 못 드리지만 살림을 하고 있을 경우 집을 훼손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경매가 끝나 채권회수 되는 날까지 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정이 어려운 것 같으니 지점장님과 의논해서 결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경매기간이 오래 걸리나요.”
“육 개월 정도 걸립니다.”
테레사는 은행직원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노부부는 테레사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있다. 데레사는 며칠에 한번 씩 들렸다. 갈 때마다 시장에 들려 필요한 것을 구입하여 냉장고 안에 넣어두면 할머니가 밥도 짓고 요리를 했다. 테레사는 “할머니 잡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미리 말씀 해주세요. 다음에 올 때 사 가지고 올께요.” 할머니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색시 충분하다고”만 이야기한다. 미안해서 그럴 것이다. 가끔 가계에서 구운 통닭도 가지다 드렸다.
노부부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3개월 후면 집도 비워 줘야하고 살집도 마련해야 한다. 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섰다. 누구하고도 의논 할 사람이 없었다. 오직 남편뿐이다. 남편과도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한 달 전부터 노인네의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벌기 위해 가계 문을 30분 일찍 열고 30분 늦게 닫아왔다. 테레사는 3개월째 전기세, 수도료 및 생활비를 지불해왔다. 어떻게 노부부를 걱정 없이 살아가게 할 수 없을까 하고 남편하고 여러 번 의논도 해 보았다. 의논을 해보아도 현제까지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외부지원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생각만하다 차일피일 미루어오다 3개월이 지나가 버렸다.
동사무소를 찾았다. 담당자는 서른 가까이 보이는 지체부자유한 아가씨였다. 그녀의 책상 옆에는 목발이 세워져 있었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았던 것 같았다.
주민 등록부에는 노부부가 부양가족으로 되어있었다. 테레사는 알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 아가씨는 매우 적극적이고 테레사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난 후에 조목조목 규정을 찾아가며 설명을 하였다. 일단은 부양할 자식이 있으면 지원대상이 안된다고 하였다. 동사무소에서는 극빈자로 등록 되어있는 경우에만 양식과 조금의 현금이 매달 지불된다고 했다.
테레사의 딱한 사정을 다 듣고 난 아가씨는 “차 상급 지원자 규정”이 있기는 한데 현장을 방문하고 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에 문의하고 난 후에 답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테레사는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곧이어 성당으로 달려갔다.
평소에 잘 아는 마르셀리노 사무장을 만났다. 사무장은 노인네가 비신자라고 이야기하니 빈첸시오회 회장을 만나 보라고 했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