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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2023년 주총 결산: 개미는 ‘봉’이다
조선일보
김홍수 논설위원
입력 2023.04.06. 00:00업데이트 2023.04.06. 00:51
https://www.chosun.com/opinion/economic_focus/2023/04/06/D6HZSY3CO5CBFCBJZS4UVLGQ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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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 연봉 대폭 올리면서
소액주주 배당엔 인색
상장기업 이익은 주주 몫
시장의 응징 닥쳐올 것
SK하이닉스는 직원 3만명의 연봉을 16%나 올려 평균 1억3384만원씩 지급했다. 반면 이익 감소를 이유로 주주 배당은 22%나 줄였다. 사진은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주주총회'에서 발언하는 장면./SK하이닉스 제공
자본주의 체제에서 상장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다. 상장 기업이 상품, 서비스를 팔면서 월급(직원), 이자(채권자), 세금(국가) 내고 남은 돈, 순이익은 원칙적으로 주주의 몫이다. 주주는 기업이 망하면 투자금(주식)을 한 푼도 못 건지는 위험을 지는 대신 이윤에 대한 우선권을 갖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이 원칙이 한국에선 통하지 않는다.
2023년 주주총회 시즌이 끝났다. 한국 대표 기업들의 지난해 영업 실적과 배당 내역이 일제히 공개됐다. 대표 기업들의 배당 행태를 보면 상장 기업들이 소액 주주들을 얼마나 봉으로 취급하는지 드러난다.
반도체 가격 폭락 탓에 이익이 4분의 1 토막 난 SK하이닉스. 주주 배당을 전년 1주당 1540원에서 올해는 1200원으로 22%나 줄였다. 회사는 이익 급감을 이유로 투자 계획도 축소했다. 그런데 직원 3만명에겐 작년보다 16% 늘어난 1억3384만원의 평균 연봉을 지급했다. 이래 놓고는 회사 운영 자금이 부족하다며 나중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교환사채를 2조2000억원어치나 발행한다고 엊그제 발표했다.
지난해 금리 인상과 고유가 덕에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유사와 은행은 어떨까. 4조6000억원의 이익을 내 은행 업계 1위를 차지한 신한금융지주. 1주당 이익이 7308원에서 8454원으로 1146원(15%) 늘었는데, 1주당 배당은 1960원에서 2065원으로 105원(5%) 올려주는 데 그쳤다. 직원 평균 연봉은 1억원이 넘고, 은행장은 성과보너스를 합쳐 15억원이 넘는 수입을 챙겼다. 1위 정유사 SK이노베이션. 순이익이 1조4000억원 더 늘어났는데 배당은 3000억 더 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직원 평균 연봉은 9400만원에서 1억5300만원으로 63%나 올려줬다.
제조업 대표 주자 현대차. 순이익이 7조원대로 1년 전보다 2조4000억원 늘었다. 주당 이익도 1만원이나 늘었는데, 주당 배당금은 5000원에서 7000원으로 2000원 올려주는 데 그쳤다. 직원 평균 연봉은 1억원을 넘어섰다. 전자 업종 대표 기업 LG전자. 순이익은 1조4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대로 늘었다. 직원 평균 연봉이 전년 대비 15.5%나 올라 처음으로 1억원을 넘어섰다. 반면 배당 총액은 1539억원에서 126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의 ‘쥐꼬리 배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의 주요인 중 하나다. 최근 10년간 기업 이익의 주주 환원율을 보면 미국 89%, 미국 제외 선진국 68%, 브라질, 인도, 멕시코 등 신흥국 평균 38%, 중국 31%인 데 비해 한국은 28%에 불과하다.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한국 상장 기업의 주식 가치는 세계 주요 증시 중 가장 낮다. 상장 기업 보유 자산을 시가총액으로 나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84배(2022년 말 기준)에 불과하다. 일본, 중국은 물론이고 필리핀보다 낮다.
작년은 투자자에게 악몽 같은 해였다. 코스피, 코스닥 지수가 각각 25%, 35% 폭락했다. 미국 기업 같으면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소각 등 적극적 주주 환원 조치로 주가 방어에 나섰을 것이다. 우리나라 상장 기업들은 1300만 소액 주주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 SK, 카카오 같은 대표 기업들이 소액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쪼개기 상장’을 별일 아닌 것처럼 해치우는 걸 보면 기가 막힌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그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형성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소액 주주 홀대 기업에 대한 시장의 응징 에너지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