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조금 심하다는 의견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이 <금융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도 추이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하였고, 한국의 전체 교역량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어서던 2006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오는 19일 매일경제신문에서 중국연구소를 설립하는데, 기념 세미나의 주제 또한 ‘한국경제, 중국의존도 이대로 괜찮은가’라고 한다. 조지 소로스와 누리엘 루비니 같은 사람들이 중국의 경착륙 가능성을 경고하자 최근 들어 이러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 같다.
◆ "왕서방과 우리는 공동운명체"
이들의 걱정은 이해가 된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가업(家業)으로 삼고 있는데, 이웃에 있는 왕서방네 슈퍼마켓에 납품하는 비율이 1/4을 넘는다. 게다가 우리 집안 식구들이 사먹는 채소와 음식, 입고 있는 옷과 가전제품의 1/3도 왕서방네 슈퍼마켓으로부터 구입한다. 그러하니 왕서방네 슈퍼마켓에서 갑자기 우리 아이스크림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왕서방네 슈퍼마켓이 휘청거리다 문을 닫으면 우리 집안도 함께 위험에 빠질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납품처를 더욱 다변화하고, 왕서방네 슈퍼마켓의 내부사정을 잘 꿰뚫고 있자고 대안을 내어놓는다.
이 문제는 개인과 기업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 같다. ‘국가전략’의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다. 왕서방네 슈퍼마켓이 우리집에서 가장 가깝고 물건값도 싸니까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인데 일부러 저 멀리 최서방네 슈퍼마켓이나 값비싼 김서방네 백화점으로 가라고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릇 개인과 기업은 이익을 따라 물처럼 흘러가기 마련인데 그런 흐름을 일부러 틀어막고 다른 방향으로 부득부득 물길을 휘어잡을 수도 없지 않은가.
왕서방네 내부사정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자는 대안은 좋은데, 그러니까 중국에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우리가 재빨리 사태를 파악하여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말인데, 중국경제의 경착륙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왕서방네 슈퍼마켓이 망할 것 같으니 재빨리 우리네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꺼내는 일처럼 손쉬운 작업도 아닐 테고,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낙하산 짊어지고 뛰어내리는 순간처럼 신속한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거대하고도 치열한 현실의 문제다. 결국 가장 자연스러운 대응책은 ‘왕서방네와 우리는 공동운명’이라는 사실을 그냥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편안하다.
너무 무책임한 소리 아니냐고? …… 그러면 당신은 대안이 있는가? 경제의 측면에서는 대안이 없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놔두어야할 뿐이다. 혹자는 각 국가, 지역과의 FTA 확대를 통하여 우리의 시장을 더욱 확대하는 것을 대안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굳이 대중(對中)교역 의존도 문제가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아가야 할 당연한 흐름이다. 결국 남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앞서 말한 ‘국가전략’의 차원 말이다.
◆ ‘遠交近親’이 대한민국의 새 국가전략
갑자기 생뚱맞은 질문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이 앞으로도 계속 친미(親美)국가로 가는 것은 옳은 길일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한미동맹(韓美同盟)은 해방이후 우리의 선배들이 선택하였던 국가전략 가운데 가장 최고이자 최상의 결정이었다고 본다. 그것으로하여 우리는 지긋지긋한 가난과 멸시에서 벗어났고, 양놈들의 초콜릿이나 받아먹던 극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적을 만들어냈으며, 오늘 이렇게 고개를 뻣뻣이 들고 ‘선진국 국민’으로서 세계 각국을 누빌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을 우리의 필살(必殺)의 경쟁상대로 삼았던 것도, 의도하였든 우연이었든, 어쩌면 유효한 전략이었다. 지금에야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게도, 학급 꼴등이 전교 2~3등짜리 옆집 아이를 이겨보겠다고 덤벼드는 꼴이었지만 우리는, 옆집 아이의 학습노트를 그대로 베껴 쓴다는 손가락질과 ‘너희는 할 수 없어’라는 비웃음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코피를 쏟으며 밤을 새워 공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성공이랄까, 예로부터 멀리 있는 나라와는 친하게 지내면서 이웃한 나라를 먼저 치라고 했다, 한국의 친미전략은 외교사에 성공사례의 하나로 꼽을 수도 있겠다.
중국이 세차게 떠오르니 한미동맹을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한때 한국 사회에 꿈틀거렸다. 특히 반미(反美)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정권의 요직에 중용되었던 참여정부 시절에 더욱 그랬다. 반미의식의 연장선에서 친중(親中)적으로 변해가는 인사들도 그때에 만났다. 물론 ‘친중’은 좋다. 그렇다고 친중이 반미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친중하는 것은 좋지만 반미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는 계속하여 ‘친미’하여야 하고, 거기에다 ‘친중’하여야 한다. 친미하면서 친중하는 일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제야 본격적으로 ‘외교의 예술’이 필요한 때다. 양쪽 모두에게 굽신거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되지도 않을 균형자 역할 같은 것은 바라지도 말고, 덩치 큰 두 나라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일방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든든한 우리의 자리를 잡아나가야 할 때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경제력(經濟力)이고, 경제력이 국력(國力)의 기본 바탕이 된다. 중국 의존도 같은 것도 걱정일랑 하지 말고, 중국으로부터 얻어낼 것이 있다면 더더욱 깡그리 얻어내자. 이것을 ‘의존’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단어로 표현하지 말고, ‘성과’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가. 우리가 중국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성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더욱 강해지면 된다.
걱정되는 것은 중국의 패권(覇權)과 미국의 응전(應戰)이지만, 친미하고 친중하면서 곡예를 넘고 실익(實益)이 없는 싸움에는 절대로 휘말리지 않으면서 우리는 철저히 이기적인 대한민국으로 살아가면 된다. 원교근친(遠交近親) - 미국과 동맹이고 중국과도 절친한 대한민국! 2012년 대선에는 이러한 곡예사의 능력과 포커페이스의 표정을 가진 분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