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복 시인(1924~1986년, 전남 함평)의 시 '실솔(蟋蟀)'을 만납니다.
옥색 고무신이 고인 섬돌 엷은 그늘에선
즐즐(喞喞) 계절을 뽑아내는
적은 실솔(蟋蟀)이여
- 이수복 시 '실솔(蟋蟀)' 중에서.
귀뚜라미를 한자어로 '실솔(蟋蟀)'이라고 합니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면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요?
이수복 시인은 귀뚜라미 소리를 '즐즐(喞喞) 계절을 뽑아내는' 소리라고 합니다.
가을이 오는 이유가 계절의 문턱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 덕분이었네요.
귀뚜라미가 '즐즐(喞喞) 계절을' 뽑아내고 있었네요.
귀뚜라미가 계절을 뽑아낸다는 구절은 우리의 눈을 동그랗게 만듭니다.
시인이 그렇다는 이야기겠지요?
이 가을, 시인이 '옥색 고무신이 고인 섬돌 엷은 그늘'에서 울고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러면서 시인은 아름다운 가을의 시를 즐즐(喞喞) 뽑아내고 있었네요.
가을, 우리도 저마다의 울음으로 무엇이든지 뽑아내고 있겠지요?
----[출처] 독서목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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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솔(蟋蟀) / 이수복
능금나무 가지를 잡아 휘이는
능금알들이랑
함께 익어 깊어드는 맑은 햇볕에
다시 씻어 발라메는 문비(門扉) 곁으로
고향(故鄕)으로처럼 날아와지는 ······
한 이파리 으능잎사귀
- 깊이 산을 헤쳐오다 문득 만나는
어느 촉루(觸髏) 우에 신기(蜃氣)하는 아미(娥眉)와도 같이
자취 없이 흐르는 세월들의
기인 강물이여!
옥색 고무신이 고인 섬돌 엷은 그늘에선
즐즐(喞喞) 계절을 뽑아내는
적은 실솔(蟋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