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 초반, 사업에 실패해 나락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가족과 떨어져 야반도주하다시피 해 스며든 곳이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이었던 신림동 난곡 달동네였다.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은 쪽방촌이 장관을 이루던 난곡 골짜기에서 보낸 삼 년은 좌절과 자포자기, 그리고 절치부심의 나날이었다. 그때 내가 기거하던 쪽방을 에워싼 텃밭은 그나마 내 숨통을 틔워주던 공간이었다. 휴일이면 텃밭 옆 감나무 평상 아래에서 주인집 사위와 마주 앉아 종일 막걸릿잔을 기울이곤 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밭에서 뜯어다 주시는 쌈 중 가장 훌륭한 술안주는 더덕 순과 양귀비 순이었다. 양귀비 재배는 불법인데 약으로 쓰겠다고 몰래 밭 가장자리에 몇 포기 심어둔 모양이었다. 양귀비 순은 맛이 쌉싸래한 데다 마약 원료라는 생각 때문인지 먹을 때 특별한 기분이 들었고 특히 쓴맛이 무척 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내 삶의 암흑기이긴 했지만 아무것도 잃을 게 없었으므로 외려 가장 평온한 시기였지 싶다.
일터 곳곳에 지천으로 피었던 개양귀비꽃이 속절없이 지고 있다. 개양귀비는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양귀비과 양귀비속 두해살이풀이다. 줄기 높이는 30~80cm가량이며 전체에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 깃 모양으로 갈라지고 갈래조각은 선꼴 피침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5월경 가지 끝에서 한 송이씩 꽃이 핀다. 꽃 빛깔은 적색이 주종이지만 흰색을 비롯해 몇몇 색이 있다. 꽃봉오리일 때는 아래로 수그리지만, 꽃이 만개하면 하늘로 향한다. 꽃잎은 넉 장이 십자 마주나기 형태로 달리며 수술은 많고 암술대는 방사형이다. 튀는열매는 넓은 거꿀달걀 모양이다. 개양귀비에는 마약 성분이 없어 심는데 제약이 없다.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데 군식하면 장관이다. 중국에서는 개양귀비를 ‘우미인초(虞美人草)’라 부른다는데 초패왕 항우의 애첩 우미인의 무덤에서 피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한방에서는 말린 꽃과 전초를 ‘여춘화(麗春花)’, 과실은 ‘여춘화과실(麗春花果實)’이라 부르며 진해, 진통, 지사약 등으로 약용한다.
글/사진 : 정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