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의 저편을 찾아서-1-(60년대의 한 소도시에 비친 우리의 모습)
이번에 고향에 가서 ‘추억의 책가방’을 뒤져서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책속에서는 제가 어릴 때 60~70년대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었습니다. 어릴 때 천진난만하게 놀았던 우리 동네 정경, 못먹고 못살던 그 시절 그 모습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던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이 들어있었습니다.
고향에서 가져온 추억의 책가방. 울산광역시 공보실에서 귀한 자료를 제공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이 60년대 초반의 우리 동네 모습입니다. 저 멀리 대나무와 울타리 찔레나무가 옹기종기 모여있는데가 우리 동네입니다. 우리동네에서 벌판으로 나가면 아카시아 나무들이 늘어서서 아카시아 꽃이 피는 봄이 오면 아카시아 꽃을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아카시아 꽃잎의 봄 내음. 옹기종기 초가집들이 정답게 모여있는 곳. 봄이면 제비가 날고 노고지리가 울었습니다.
60년대 후반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동네 모습입니다. 왼쪽에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난 번에 적었던 글에서...
“공영주택이란 내 고향 울산이 공업화가 되면서 우리 동네 멀리 주택단지를 만들어 외지인들에게 분양한 주택인데 분양받은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짓지 않는 회사원이나 공무원들이었다. 문제는 어머니가 옥이네 집 앞 도로에서 쪼그리고 앉아 채소를 파는 것이다. 이거 어디 동네 창피해서 살수가 있나요. 장차 사돈될지도 모르는 집앞에서 채소를 쪼그리고 앉아 채소를 팔다니...아들 체면은 안중에도 없는 행동임이 틀림없겠다.
딸기 농사에 앞서 어머니는 초봄에는 우리집 앞에 있는 밭에서 ‘시나나빠’와 ‘조선파’를 거두어서 우리 동네 공영주택 앞에서 내다 팔았다. 시나나빠는 이른 봄에 나는 채소로서 김치도 해먹고 나물도 해먹는 채소인데 서울에서는 뭐라하는지는 모르겠고, 무식한 마눌을 둔 덕분에 이것이 우리말로 무엇인지도 아직도 모르고 또 롯데마트의 채소 코너에 가도 잘 보이지 않는다. 조선파는 양파와 대비되는 작은 파를 말하는데 주로 파전을 많이 해먹는다. 우리는 이것으로 주로 김치를 담가 먹었다. 어쨌던 어머니는 농사일에서 현금을 만드는게 쉽지 않으므로 한 푼이라도 현금을 만들어야 자식들의 소소한 학비라도 감당할 수 있었기에 봄이 오자말자 공영주택 앞 신작로에서 ‘다라이’를 펴놓고 쪼그리고 앉아 시나나빠와 조선파를 팔았다.
옥이네 집은 우리 논으로 가는 길목이고 학교로 가는 길목이므로 꼼짝없이 외통수 길목이다. 이래서 논농사를 지을러 갈 때도 옥이네 집 앞으로 이동해야했고, 오가며 그 집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창피해서 죽을 것만같았다.“
윗 사진에서는 그 때 그 장소와 모습이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니 어머니 모습이 클로즈엎되어 오버랩되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우리 딸기밭은 노고지리가 많았던 곳으로 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밭매러 가시면 항상 한두마리는 잡아 오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포란 기간에는 노고지리는 도망을 가지 않으므로 잡아 오신 듯합니다. 그 정도로 새가 많았습니다.
69년도 대홍수 모습. 1969년에 400mm가 넘는 비가 내려 울산 시내 전체가 침수하는 막대한 피해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큰 홍수가 났던 1969년도에 유난히 밝았던 추석달은 기억에 선명합니다.“
넝마주의 사람들 모습. 이 모습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알 수 없지요. 과거에는 큰 바구니(망태)를 둘러메고 길에 떨어진 천이나 물건을 주워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갑자기 공설 운동장에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여기서 가슴 아픈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조금 후...
하늘이 도우셔서 갑자기 소낙비가 좍 내렸습니다. 모두 우왕좌왕이지만 비를 맞더라도 행사 연습을 위해 그 자리에서 행열을 지어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윽고...
박병우는 보았네~!!!~ 비에 젖어 드러나는 여학생들의 속옷 색상을...흰 속옷, 야하게 보이는 검은 속옷.....과연 옥이는 흰속옷일까? 검은 속옷일까? 전부 흰색으로만 보여 그 숫자를 셀 수없던 무리들이 속옷의 흑백색상에 따라 내 눈으로 선명히 구분이 되어 들어왔습니다."
이 모습이 60년대 미스코리아입니다. 보름달같이 둥근달 얼굴이 인상적입니다. 축하 프레이드를 위해 무개차(無蓋車)를 타고 한껏 멋을 내고 있습니다.
퀴즈
위의 사진 모습은 남녀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 모습일까? 정답을 고르시오
(1)남녀 학생들이 꿍꿍이하여 나룻배 타고 놀러가는 모습이다. 쌍쌍 비율이 맞지 않는 걸보니 아마도 피보기 미팅인 모양이다.
(2)낙씨줄을 손에 잡고 낙씨하는 모습이다.
(3)홍수가 나서 급하게 대피하는 모습이다.
(4)다리가 가설되지 않아 나룻배를 타고 로프를 잡고 등교를 하는 모습이다.
답은 4번입니다. 60년도 중반까지 우리 동네는 다리가 없었습니다. 이래서 강건너 학교까지 등하교시는 이런 식의 나룻배로 이용하여 등하교를 해야했습니다. 이러면 배를 타면서 우연히 마음에 드는 여학생(예 옥이)와 단둘이 승선을 하게 되었다면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지요.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애환이 많았던 나룻배였습니다.
첫댓글 제가 아주 어릴 적에 보았던 모습들도 보이는군요. 저 나룻배 한 번 타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