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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보낸 사람(엡6:21-22) 대민성결교회 이석민 목사
[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22]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결코 혼자 이룰 수도 없고 하나님께서 혼자 이루도록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도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혼자 다 하실 수 있지만 제자들을 남기고 그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없었더라면 기독교가 지금처럼 영향력 있는 모습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없었어도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지만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나 한 사람이 소중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일로 부르셨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서 더욱 충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적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삶 속에는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일해 오셨습니다. 돌이켜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전에 목적도 소망도 없이 세상 가운데서 방황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죄의 권세 아래에서 신음하며 고통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한 손과 편 팔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고, 우리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반은 이렇게 탄탄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사랑해 주신 선택받은 사람이 된 증거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해 주신 은혜는 참으로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두기고를 에베소에 보낸 목적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이 핍박을 받고 사단의 유혹을 받아 영적으로 쇠퇴되어 있는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을 소생시켜 주고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것이 매우 귀한 일이고 그러기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위로하기 위해 우리의 시간을 내고, 물질을 쓰고, 노력하고 힘을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옥중의 바울은 이제 두기고를 에베소교회와 아시아의 교회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한 말씀인 에베소서 서신을 가지고 두기고는 특별한 보냄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중요한 편지를 보낼 때 아무에게나 심부름 부탁을 하지 않습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중요한 서신을 보냅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하는 바울에게 있어서 그 서신을 두기고에게 부탁했다는 사실은 두기고는 바울이 가장 신뢰할 수 있었던 사람이란 뜻입니다. 즉, 두기고는 바울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바울의 사역을 돕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을 돕는자로 특별히 보낸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알리기 위해(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바울 사도는 자신이 보내진 모든 곳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곳이 감옥이라 할지라도 복음전파의 사역은 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하나님께서 복음의 사신으로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복음을 전하다가 비록 감옥에 갇힌 몸이지만 복음을 전함을 통해 되어진 것이므로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자신의 현재의 사정과 활동에 대해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에베소 교회 성도들과 공유하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단순히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보다 더 끈끈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을 위한 걱정으로 근심에 잠겨있을 성도들에게 특별히 믿을만한 두기고를 보내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고 도리어 그들을 위로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에베소교회의 형편과 성도들의 사정을 알고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 에베소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당시 바울의 일로 상심하고 있을 에베소 성도들은 바울에 대한 일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었으므로 누군가에 의해 바울의 소식을 듣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바울의 일로 근심하고 있을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바울을 대신하여 위로해 줄 일군이 필요했습니다. 이 일에 두기고가 바로 적격자였습니다.
두기고는 누구보다도 바울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며 에베소 성도들의 상심한 마음을 위로하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일꾼이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사도바울이 개척해 3년간 사역했던 곳으로, 남달리 애착이 가는 교회였습니다.
감옥에 있지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기 하기 위해서, 두기로를 에베소교회에 보낸 것입니다.(20)
로마의 사정을 알리고,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21)
두기고는 하나님의 사랑받은 형제이고, 바울의 사랑받은 형제이고, 교회의 사랑받은 형제입니다. 두기고는 아마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를 하대하며 계급의식을 가지고 대하지 않고 바울은 그에 대하여 형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사정을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전하도록 바울에게 위임을 받았습니다. 부탁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에베소교회 성도 사이에 연락병 노릇을 했습니다.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이 어떻게 지내며 무엇을 하는지를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알리고 교회의 사정을 바울에게 알리는 중요한 일이였습니다. 이런 일은 진실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입니다.
바울은 두기고가 진실한 사람이기에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말씀을,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를 통해서 보낸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에베소 성도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지만 에베소 성도들의 형편과 사정을 살피는 일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미움은 오해를 낳으나 사랑은 이해를 낳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서로 이해하고 있는지 형편과 처지를 잘 알고 있는지 누가 비난할 때 서로 옹호해 주고 있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이해하고 옹호해 줍니다.
‘두기고’라는 이름의 뜻이 “유쾌함”입니다. 바울은 답답하고 피곤한 옥중의 생활 속에서도 말없이 손과 발이 되고 있는 사랑스러운 제자 두기고의 헌신을 바라볼 때 마다 마음이 유쾌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 주면서 잘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형편과 처지에 대한 눈물 날만큼의 “세심한 배려”를 포함합니다.
어느 일터에나 일꾼이 필요하고 더욱이 좋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좋은 일꾼을 찾기가 힘든 시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기고란 일꾼은 참 좋은 일꾼이었습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심복으로 바울이 쓴 편지를 가지고 골로새 교회를 방문한 주인공입니다.
성도 된 우리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이웃의 올바른 사정을 알리고 마음을 위로하는 목적을 가진 파송자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합니까? 서로 이해하고 사정을 잘 알도록 합니까?
사정과 사정을 전달하고, 연결해 주는 복음의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 어려움과 그 사정을 전해 주고, 사단의 간계에 흔들리거나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허리띠를 하고 흉배를 붙이고 진리의 성령의 검을 든 진실한 일꾼, 두기고와 같은 충성스런 일꾼들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2.진실한 일꾼입니다.(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본래 우리 타락한 사람의 속성은 진실할 수가 없습니다.
남을 속이고 속는 것이 사단이 우리에게 준 가장 악한 습성입니다.
아이들도 서너 살만 되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른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거짓이 팽배해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사단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신을 조장해서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까지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그들의 목표는 거의 완성이 되어서 이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도 믿지를 않는 불신의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진실은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섰을 때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를 받아 주 안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났을 때 비로소 진실한 사람이 됩니다.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
여기의 ‘진실하다’는 원어로 ‘피스토스’인데 ‘처음과 나중이 변함없다’라는 의미입니다. 모두 다 상황과 현실을 변명하며 합리적인 이유로 자신을 정당화하며 바울을 떠났을 때 두기고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진실한 일꾼은 변함이 없이 중심을 가지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일꾼을 가리킵니다. 두기고는 바울이 마게도냐와 헬라 지방의 성도들에게 거둔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에 갈 때 동행했던 일꾼이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도 곁을 떠나지 않고 편지를 대신하여 전달하는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당시 편지를 전달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두기고는 복음을 위해 생명을 걸었습니다. 능력이 있어도 진실이 부족하여 일을 맡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라도 맡겨진 일을 진실되게 감당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두기고는 바울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형제였고 주 안에서 복음과 사역을 잘 감당하며 바울을 도와 주의 일을 하는 진실한 일꾼이라고 합니다.
'일군’(디아코노스)은 ‘사역자,집사’등의 직분 자들에게 사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명칭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두기고의 진실성은 그가 바울 사도에 의해 얼마나 신임 받는 인물이었는가를 통해서 엿볼 수 있습니다.
전도하는 진실한 일꾼이라고 합니다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이였으나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습니다.(행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교회의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는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환경 여건 속에서 전도해야 합니다.
두기고가 사랑을 받을만하게 모든 일을 잘 순종하고 진실하게 모든 일을 처리한 것 같습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종에게 가장 중요한 덕입니다. 진실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두기고는 자신을 행해서는 언제나 진실했고, 즉 솔직한 꾸밈이나 권모술수가 없는 그런 일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에베소 교회 성도들, 즉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성실한 사람, 사명감을 가지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남이 알아주나 안 알아 주나, 처음이나 나중이나, 환경이 좋든 나쁘든 한결같은 사람, 성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향해서는 그야말로 충성스러운 일군이었습니다. 두기고는 자신이나 교회나 성도들이나 바울에게, 하나님께도 언제나 진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는다 하더라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모습을 말합니다. 두기고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일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자신의 형편과 사정을 알리기 위해 믿음의 동역자인 두기고를 보내며 기쁜 마음으로 소개하며 추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처한 상황과 마음과 뜻과 생각을 믿음 안에서 알리고 전해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가서 전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두기고를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에게만이 아니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주 안에서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부르심을 따라 바울을 잘 돕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는 진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이었습니다.
분문에서 ‘진실한 일꾼’ 이라고 한 것은 교회에 공을 세웠으니까, 또는 나이 들었으니까 논공행상에서 덤으로 직분을 땄다는 식의 개념이 결코 아닙니다. 직분자는 일을 하기 위하여 부름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일을 하되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성경은 ‘봉사의 일’이라고 단정짓듯 말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봉사의 일’은 곧 댓가 없는 일을 말합니다. 교회의 일에는 댓가가 없습니다. 교회는 오히려 헌금을 드리게 하고 시간을 드리게 하고 재능도 드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댓가는 없습니다.
즉 직분자는 교회를 섬기되 댓가 없는 봉사로 섬겨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땅에서는 댓가가 없는 대신 하늘의 상급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지혜 있고 진실한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나에게 주어진 재산, 시간, 재능, 생애는 모두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으로 성도들은 이를 관리하는 영적 청지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롭고 진실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진실은 하지만 지혜가 없고, 어떤 이는 지혜롭기는 하나 진실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청지기는 지혜와 진실을 겸비한 사람이며 이들에게 구하시는 것은 충성입니다(고전 4:2).
3.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22)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세상에는 우리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위로는 능변가이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위로자는 상대의 말을 들어 주고, 판단하지도 충고하지도 않으며, 가만히 있어 주고, 꼭 필요할 때 같이 있어 주며, 손도 잡아주고 꼭 껴안아 주기도 하며, 목메어 함께 울어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충분히 훌륭한 위로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위로에는 사람을 소생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혹, 우리의 주변에 위로와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오늘 시간을 내어 그 사람과 같이 있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따뜻한 눈빛으로 그 사람의 말을 조용히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슬픔과 외로움 속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위로는 진정한 이해와 사랑에서 나옵니다.
특히 성도 된 우리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소망을 갖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복음 전파에만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통한 위로와 용기를 심어 주는 것도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입니다.
본문22절에 ”우리 사정을 알리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여기의 ‘위로하기 위하여’는 원어로 파라칼레세‘인데 ’곁에서 부르다‘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 곁에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두기고를 보냈습니다.
비록 자신은 감옥에 있을지라도 복음을 로마에 선포하는 계획을 알림으로 에베소 성도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습니다. 옥중생활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기회인 것을 두기고를 통해 전함으로 그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두기고는 바울사도가 죄수의 몸으로 있으면서도 에베소 성도들을 사랑하고, 기도해 주고, 믿음 잘 지키기를 원하고 있음을 알리고 에베소 성도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두기고는 바울의 심정으로 에베소 성도들에게 바울의 진정을 알리고, 믿음으로 위로하였습니다.
주 안에서 일꾼은 어린양을 돌보듯이 성도들을 돌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상처받은 아픔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받기만 하고 전혀 위로할 줄 모른다면 진실한 일꾼이 아닙니다. 괴로운 지경에 있는 이들을 위로하여야 합니다. 끊임없이 돌봄을 베풀어 좌절하거나 실족하지 않도록 위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해주셨듯이 우리도 서로에게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우리 주변에 고난당한 사람들이 있으면 위로해야 합니다. 이사야 40장1절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근심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위로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2장7절에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있으면 위로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장14절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사실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위로의 사도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위로하도록 명령하십니다(사40:1). 우리는 위로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마음이 여리고 환난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환난 받는 것도 믿음이 연약한 자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또 위로받는 것도 그들의 위로를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위로가 믿음이 연약한 자에게 역사할 때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고후1:6).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를 세상 사람들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초청하는 위로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서로 위로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 사랑, 이웃 사랑은 바로 남을 이해함으로 위로할 수 있을 때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로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모든 사람의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위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와 그로부터 얻는 모든 위로를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힘껏 외치고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아름다운 구원의 소식을 널리 알리며 온 세상이 그 위대한 은혜의 선물을 주신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세상을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성도의 입에서 남을 비난하는 소리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헐뜻는 소리는 더욱 안됩니다. 공격적인 언어가 나와서도 안 됩니다. 특히 교회의 직분자들을 명심해야 합니다. 위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격려하는 말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1.알리기 위해(21)
2.진실한 일꾼입니다.(21)
3.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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