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8월5일
7번국도- 여름휴가
남편과 단둘이 1박 2일로 휴가를 가보는 일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누구나 그렇듯이 정신없이 살았다. 언제나 둘이 오붓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휴가를 가도 언제나 아이들 챙긴다고 혼이 쏙 빠져서 돌아왔다. 애들이 다 크면 갈 수 있겠지, 위로하면서도 그러면 나이가 얼마야? 너무 많은 생각에 왠지 슬펐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된 지금 슬프지 않다. 마음은 그때보다 더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여행의 맛과 멋을 알 수 있어서 좋다.
2박3일 정도 갈까 했는데 시아버님 기일이 중간에 있어서 하루 정도 다녀오기로 했다. 며칠째 전국이 펄펄 끓고 있다. 밖에 나오면 화상을 입을 것처럼 느껴지는 여름의 절정이건만 막상 나와서 더위와 마주하니 ‘괜히 지레 겁내고 방에 갇혀서 살았네.’하는 생각이 든다.
달리는 자동차 에어컨 덕분에 우리는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서 7번 국도를 따라서 여행한다. 바다가 보이는 휴게소에서 어느 시인의 시처럼 파도가 끓여주는 라면 맛은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탁 트인 여름 바다를 하루 곁에 두고서 달렸다. 연푸른 바다는 더위를 집어삼킨 채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주고 있다.
남편에게는 추억의 여행이다. 젊은 날의 시간이 오롯이 살아있는 곳을 아내와 여행하면서 둘러보고 있다. 여행 하다 보면 남편이 일한 곳이 나온다. 도로, 울진공항, 국제 크루즈터미널, 제주 국제학교를 만난다. ‘길 위의 남자’라로 불렀다. 지금도 장거리를 오가면서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속초 후포 서울 경기도 부산 제주도까지 길 위에서 지낸 시간이 얼마나 많을까?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잘 버티면서 여기까지 왔다.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보내면서 나는 시인이 되었다. 시를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그가 열심히 일하던 후포에서 나는 시를 썼고 속초에서 정동진에서 아름다운 시를 지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있었는지 모른다.
가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곳이면 들려서 즐기고 너무 애쓰면서 여행하지 않는다. 후포는 남편과 나에게 좋은 기억이 많은 곳이다. 바닷가 소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면서 사진도 서로 찍어주고 커피도 마시고 남편이 잠시 머물렀던 시골집도 둘러보면서 다음 목적지로 달렸다.
바닷가 휴게소는 아무런 소품이 필요 없다. 통유리 건너편으로 보이는 바다 그 자체가 최고의 풍경이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라면과 우동을 먹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온통 그와 나만의 존재하는 세상 같았다. 올여름은 동해안 해수욕장이 다소 한산했다. 너무 뜨거운 날씨 탓인지 휴가철이건만 도로도 한산하고 바닷가 마을도 그다지 부산하지 않았다. 휴게소에도 평소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차림으로 오갈 뿐 피서철 풍경치고는 밋밋한 그림이었다.
아침에 일찍 출발해서 아주 작은 항구까지 일부러 들려서 슬쩍 훔쳐보면서 향기도 맡고 내가 모르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과 음식을 맛보면서 쉬엄쉬엄 구경하면서 잠시 머물다 다시 낯선 길로 나섰다. 스카이워크에서 꼼짝도 못 하고 서 있는 내 모습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모른다.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를 아무 생각 없이 올라갔는데 걷다 보니 생각보다 무서웠다. 중간 지점까지 걷다가 바닥이 유리로 된 곳에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파랗게 질려서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남편 혼자 끝까지 걸어가서 이리저리 혼자 사진을 찍는데 부러웠다. 빨리 오라고 손짓해도 놀린다고 이런 나의 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정말 더 있다가는 현기증으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망상 해수욕장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내 마음으로 들어온 바다는 너무 맑고 고요했다. 정동진은 여전히 연인들의 메카다. 썬 크루즈는 여전히 멋진 신사의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파도를 타면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강릉의 빛나는 여름이었다.
하루 자동차로 바다를 원 없이 보면서 즐겼다. 내 몸에 바다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눈빛도 바다색으로 보일 것이다. 늦은 저녁에 도착해서 남편이 공사한 속초항 국제크루즈터미널에 가보았다. 10년이 지나서 다시 오니 남편도 상기된 얼굴이다. 여기저기 공사하면서 생겼던 일화를 이야기해 주면서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했다. 터미널 앞에서 다시 사진을 찍어주었다. 함께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존경심과 연민이 생겼다. 고생했다. 나의 사람아.
호텔 예약을 안 하고 갔더니 어려움이 있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침대만 하나 있는 방을 잡았다.소파가 있는 방은 5만 원을 더 주면 된다고 남편이 묻는데 그냥 침대만 있어도 된다고 하면서 그 돈으로 맛있는 것 사 먹자 했더니 남편이 ‘철이 났네.’ 하는 눈빛으로 웃었다. 깨끗하고 시원하면 그만이다. 남편과 단둘이 호텔에서 잠을 자는 일이 처음이다. 조금 설레고 색다른 분위기가 가슴을 뛰게 했다. 청초항이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 하룻밤은 아름답고 멋졌다.
설악산으로 갔다. 비까지 내려주는 멋진 여행이었다. 우천 관계로 케이블카를 탈 수 없었다. 신흥사로 우산을 앞세워 걸었다. 설악산은 언제 와도 처음인 듯 새롭다. 설악산을 닮은 청동상 앞에서 기도했다. 건강해서 이렇게 다시 올 수 있음에 감사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다 이루어짐에 감사하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면서 살아가게 해 주소서. 이렇게 여행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황태해장국을 먹었다. 이것저것 가르지 않고 먹으면 좋으련만 식성이 좋은 남편과 여행 할 때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 그래도 예전처럼 큰소리 내거나 삐지거나 하지 않는다. 쉽게 넘긴다. 그러다 보면 언제 그랬나 싶게 넘어간다.
어둠을 가르며 다시 7번 국도를 다시 달린다. 집으로 오는 길은 어둠이 깃든 바다를 보면서 온다. 후포에서 해물찜으로 저녁을 먹었다. 후포는 우리에게 마음의 휴게소다. 열두 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1박2일 7번국도 여행은 바다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