冒雨抵抱川宿(모우저포천숙)
김성일(金誠一:1538~1593) 본관은 의성.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임하현 천전리에서 태어나 19세에 동생과 함께 퇴계선생의 문하에 들었고
31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다. 중간에 벼슬에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퇴계선생의 저작을 편집, 간행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53세(1593)에 일본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와서 왜가 군사를 일으킬 것 같지 않다고 보고 하였다.
그 때문에 다음 해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부임하던 중 임진왜란을 만나자 소환 명령이 내려왔지만, 목숨을 바쳐 지난날의 과오를 씻겠다고 하여 다시 의병장들과 협력, 왜군의 침입으로부터 진주성을 보전하게 되었다.
1593년 경상우도 순찰사를 겸하여 도내 각 고을의 항왜전을 독려하다 마침 진주성에 창궐해 있던 역병에 감염되어 진주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이황의 뛰어난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영남학파의 큰 줄기를 이루었다.
이조판서, 대제학에 추정되었으며, 저서로는 『학봉집』이 있다.
산 비에 갖옷이 젖어서 무거운데
山雨濕重裘 산우습중구
가는 나그네 갈 길이 바쁘네
客行猶未休 객행유미휴
가난에 굶주린 백성들은 취락도 이루지 못하고
殘民不成聚 잔민불성취
늙은 노거수의 반이 시들어버린 가을이네
老樹半凋秋 노수반조추
잠시 객사를 빌려서 하룻밤을 묵으니
暫借賓軒宿 잠차빈헌숙
마치 산속 절에서 지내는 것 같네
如從野寺遊 여종야사유
날이 저물어 가니 사람들은 또 헤어지고
向昏人又散 향혼인우산
서늘한 호각소리가 수심을 일으켜 주네
寒角動邊愁 한각동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