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
"좋은 낚시 캠프가 되기 위해서는 똑같이 일을 분담하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각자 더 많이 하겠다고 나서야 한다."
-폴 퀸네트의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중에서-
상동낚시터.
붕어랑피싱센터 회원 아저씨들의 성급한, 때 이른, 철 모르는 봄 소풍 소식을 화보를 통해 접하며 부러움과 소외감, 원인 파악 안 되는 미안함 등이 교차하는 묘한 감정에 빠집니다.
또한 오동나무 한그루가 저 곳에 우뚝 서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었으면 저 모임이 더욱 빛났을 터인데 하는 생각도 금할 수 없고.....
-사실, 일요일은 내가 독실한 크리스찬이 되기 위해 몇 년 째 애쓰고 있는 관계로 어떠한 사적인 모임도 참석할 수 없다는 것으로 위안 내지는 변명을 삼을 수 있겠네요-
그러면서 다정다감한 회원님들의 즐거운 모습을 카페 화보로 읽으며 위 ‘폴 퀸네트’의 명언이 떠 올라 한 자 올립니다.
근 삼십년 가까이 낚시를 즐기면서 많은 낚시꾼들을 만나고 그리고 소식없어 멀어지고 또 몇 년 후 우연히 만나고, 마치 인생유전처럼 낚시인생을 겪어오면서 하나 깨닫는 것은 진정한 낚싯꾼들은 모두 정신병을 앓고 있는 선한 정신병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결코 무겁지 않은 경미한 정신병을 앓으며, 물가로 가기 위해 자나 깨나, 심지어 생업 중에도 물에 낚싯대를 던지기 위해 모든 생각과 행동을 그에 맞추는, 어느 곳에 있든지 그 어떤 것을 보든지 이것이 낚시에 어떤 소용이 있을까 생각하는, 오직 내 인생에 낚시만이 가치 있고 낚시와 관련된 것만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저 깊은 무의식 중에 은밀히 감취두고 살아가는, 그래서 물가에 앉아 있을 때에만이 그 병이 치료되는 희귀병을 앓는 이들.
일상 생활에서는 일이천원, 일이만원도 근검절약이라는 덕목을 철저히 실천한답시고 스쿠루지 노랭이처럼 아끼고 꼬깃꼬깃 주머니속에서 꺼내기를 더디하건만, 낚시와 관련해서는 기십만원을 심지어 듣기로는 기백을 노랗고 푸른 가을낙엽처럼 주저없이 흩날려버리는 이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이젠 건강도 좀 돌보아야겠다며 작심하고 오른 뒷산 등산로에서조차 죽은 놈이든 산 놈이든 벌어진 나뭇가지만 보면 요걸 어떻게 받침대 주걱으로 쓸 수 없을까 빨간 조명 아래서 여체 더듬듯 어루만져보고, 우연히 발걸음에 채이는 기괴하게 생긴 나무뿌리를 볼라치면 요놈은 우찌 다듬어야 클램프 재목이 될까 고민하시느라 운동은 아예 물 건너 가버리고, 마눌님께 억지로 끌려간 쇼핑몰 다이소 천원 코너에선 눈에 보이는 것마다 요건 어떤 용도로 낚시 가방에 넣을 수가 있을까 만지작거리며 참으로 큰 고민에 빠지는 철없는 어른들, 마트의 모든 것이 낚시와 관련된 것으로만 보이는 아저씨들, 어린 아들 학용품조차 낚시 가방에 넣기 위해 깊이 연구하는 늙은 아이들.
오랜만에 친구와의 한 잔 약속에, 만날 시간보다 한 두 시간 먼저 나가 시내 대형 낚싯방에서 어정거리며 이것 저것 기웃거리다가 신제품이라도 있을라치면 기어이 한두 개 집어와야만 간만에 시내에 나온 보람을 느끼는, 마음이 흡족해지는, 그래서 술맛이 더 좋아지고 2차 지하실 노래방에선 더 크게 노래 부르는, 참으로 귀여운 어른들.
생업에 육신이 고달플 때면 ‘우찌하여 일주일이 일곱날인가 삼일이면 좋을 터인데, 월화수목금토일이 아니라 월토일 월토일, 얼마나 간명하고 좋은가. 그러면 사흘에 한 번씩 낚시갈 수 있고 얼마나 좋을까.’ 하고 텍도 없는 망상에 빠지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사실에 혼자 씁쓸해 하는 안타까운 어른들.
예상치 않았던 휴일 특근 명령에 입에선 십원짜리 수천 개가 드글거리고 정신조차 혼미해 올 때, 사무실 의자로써는 도저히 안 되겠고 재빨리 뛰쳐나가 차트렁크에서 엊그제 머털낚시에서 배송된 팔만 팔천원짜리 신개념 섬 바이오 낚시의자를 꺼내와 앉아 서류를 만지작거려야만-부당한 명령을 내린 상사에게 말없는 항변의 의미를 보내야만-비로소 진정이 되고 글자가 제대로 보이는 아 이놈의 중병이여.
지독한 몰황과 비바람에 혹독한 고생 후, 이제는 낚시 끊겠다며 굳은 결심 속에서 낚시대를 접지만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벌써, 아니 늦어도 온몸 깨끗이 씻고 아내와 함께하는 이불 속에서는 다음 주 토요일에는 이런 채비로 요놈의 붕어쉐이들을 혼내 주어야겠다고 연구하고 혼자 희죽거리고 가슴이 들뜨는 이들, 그들이 낚시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만의 생각인가?-
그 어떤 질환보다도 완치가 어렵건만 너무나 쉽게 치유되는 정신병, 그것이 바로 낚싯병이 아닐까요?
나의 열한 살짜리 늦동이는 내가 낚시가방을 들고 나오면 “아빠. 또 정신병원 가세요?” 하고 묻습니다.
폴 퀸네트
베테랑 낚시꾼이자 심리학자인 폴 퀸네트는 20년 동안 마약 치료 센터의 책임자로, 알코올중독자 요양소에서 입원환자 컨설턴트로 일해왔다. 자살에 관한 세계적인 전문가로서 생활의 대부분을 깊은 절망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보낸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낚시를 치료법으로 사용하느냐?”라고 묻기를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돌팔이 의사나 그렇지 않지”라고 대답하는 그는 우리가 상상으로만 알고 있는 바로 “못 말리는 낚시꾼”이다. 그는 낚시와 인생은 함께 가는 것이라 믿으며 지금도 낚시에서 인생을 배워가는 중이다.
50년 이상 낚시 여행을 다니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파블로프의 송어』 『다윈의 배스』 『자살:영원한 결정』을 써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인터넷서점 YES24 작가 소개에서 인용-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정신질환치료자인 위의 폴 퀸네트 역시 낚시광이라고 하네요.
다음의 세 권의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 나는 워낙 국어를 사랑하다보니 영어는 아예 읽지도 쓰지도 않기에 바다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읽었습니다. - 원서로 읽을 능력이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님을 밝혀드립니다. ㅎㅎ. 반모님이나 쌍디아빠는 원서로 읽을 수 있을라나? 낚시할 시간은 있어도 책 읽을 시간은 없을라나? - 혹, 부득이한 사정으로 낚시를 못 갈 때, 찌통을 열고 알록달록 찌를 정리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을 때 위의 책들이 대리만족의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 같기에 감히 소개해 드립니다. 낚시인의 또 다른 면을 보시면서 ‘아하!’하고 무릎을 치며 공감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께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 된 것 같사오니 넓으신 마음으로 용서하시기를......
『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
『 다윈은 어떻게 프로이트에게 낚시를 가르쳤는가?』
『 인간은 왜 낚시를 하는가?』
자, 이제 본론이자 결론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참 많은 낚시터를 다녀보았지만 상동낚시터처럼 아늑하고 다정다감한 곳은 없었다는 것.
모든 회원님들이 정이 넘치는 포근한 낚시터라는 것.
받는 이 보다 주는 이가 더 많음으로 나의 이기심이 항상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라는 것
"좋은 낚시 캠프가 되기 위해서는 똑같이 일을 분담하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각자 더 많이 하겠다고 나서야 한다."라는 명언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라는 것
등을 화보를 보며 더욱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어 두서없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이제 곧 3월. 따뜻한 양지에 앉아 혹은 뜨거운 난로 옆에서 상동의 좋은 분들과 함께 제가 앓고 있는 경미한 정신병을 치료할 수 있겠지요.
-오동나무 올림-
첫댓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장르가 바로 수필인데 오늘 오동샘의 이 한편의 수필은
벌써 5분 전에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가야 했는데 똥마린 강아지처럼 사타구니 비틀면서
생리현상까지 참아가며 끝까지 읽어내려가지 않으면 안될 만큼 두 눈이 번떡 떠지게 하네요.
내 일찌기 오동샘의 필력을 미루어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가히 내공이 이 정도일 줄이야...
한줄한줄 읽을때 마다 적나라하다 못해 내 속을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다 내 보여준 듯한
발거벗은 희열을 느낍니다. 오늘따라 왜이토록 나의 중학교 시절 국어샘이 보고 싶은지
모르겠네요...아~~ 보고싶은 박미현 샘...
상동정신병원 원장님......낚천.........간호사..........누굴까요.......
원무과장은 반야님 간호과장은 신박사님 엠블란스차 기사는 쌍디행님
그리고 마지막 경비는 바로나 ㅋㅋㅋ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읽을수있는 글이네요
가슴에 팍~악 꼭히네요...
오늘하루도 오동샘의 글을 읽어면서 많은생각이 지나갑니다.. 공부를 그만큼 즐겼더라면.. 내자신은?
낚시에 빠져들면서 느끼는 사람들 마음이야 누구나 다를수도 똑같을수도있지만 저역시나 아직 낚시인생에 배워야할께많이 남았있기에.. 미련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나봅니다 .자연의벗이되고 붕벗들의 모임은 즐겁기만한데 바쁜일상생활에 찌들은 현대인들에게 휴식과 즐거움이 피로로 남는다면 ..또하나의 숙제라봅니다. 오동샘의
언제나 재미나고 좋은글 잘읽었읍니다
오동쌤 오랜만에 글올리셨는데 걸작을 올려주셨네요ㅋ
한구절 한구절 우리의 마음을 어찌저리 잘 표현을 하셨는지 놀랍고 감탄 스럽습니다
낚시꾼이라면 무릅을 탁! 칠만큼 공감되는 글이란거 저만 느끼는게 아니지 싶습니다
역쉬 오동쌤 멋져부러요~~~^^
오동쌤님 구구절절 우쩨이리도 우리네 마음쏙에 와닿는글 넘감사하게 읽었네요
오동쌤님 노년에 좋은책 많이 출판해서 한권 주세요^^
서점에 가본지 꽤 오래되네요...
.쌤, 조은글 감사히 잘 읽어읍니다...
오동샘님... 같은 병을 앓고 있는이들의 마음을 달래주시는 이런 글 자주 올려 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바쁘실텐데...제가 염치없는건 아닌지...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