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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각산 (웨딩바위-관봉-굴통바위-문수봉) |
산행은『 한량의 고독 』이었습니다. |
◆ 일자 : 2016년10월10일(월요일) |
◆ 날씨 : 맑음 |
◆ 장소 : 삼각산 |
◆ 코스 : 진관사-웨딩바위-관봉-잉어슬랩-옥좌바위-굴통바위-비봉-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대남문-구기동 |
◆ 시간 : 약7시간20분(휴식시간 포함) |
◆ 인원 : 여덟 명 |
◆ 비고 : 푸른산산악회 |
[삼각산] |
가는 푸르름 / 오는 건 알록달록 / 한량의 고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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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구간 및 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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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
[연신내역] |
- 3번 출구 만남 / 7211번 버스 승차 / 진관사 입구 하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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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
[진관사 입구] |
- 화장실 앞 / 인사 소개 및 산행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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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6 |
[웨딩바위] |
- 향로봉 길에서 울타리 넘어 가면 초입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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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13:13 |
[웨딩바위정상] |
- 식사 및 휴식 /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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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3~13:39 |
[관봉] |
- 초입에서 꼭대기까지 / 슬링줄 데이지체인 연결에서 보조자일 만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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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 |
[옥좌바위] |
- 잉어슬랩 초입을 착각해 옥좌바위 바로 아래에 다다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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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3 |
[비봉] |
- 굴통바위 오름 / 코뿔소 바위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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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8 |
[사모바위] |
- 인증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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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 |
[문수봉] |
- 그림자가 길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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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 |
[대남문] |
- 성루의 담쟁이가 빨갛게 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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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 |
[구기동지킴터] |
- 길섶 이파리들 색깔은 아직은 푸르름이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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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 |
[구기터널앞] |
- 옷 갈아입음 / 삼거리 정류장,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늦더위니 가을 더위니 하더니만 이제는 가을 추위를 말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콧물이 주르륵 나오고 재채기가 나오며 금방 몸에서 반응이 일어났다. 가을 환절기의 불청객은 이 가을에도 빠짐없이 찾아들고야 만다. 누구를 탓하랴! 제 약함을 탓할 수밖에 없으리! 그렇게 자연에 거스르지 않고 고분고분 순응하는 거가 뱃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낮에는 기온이 올라가 추울까 더울까 산행하기에는 그지없이 좋은 날씨였단다.
콧물눈물 재채기에 환절기의 불청객들 오지않길 바랬건만 이가을에 다시왔나 그누구를 탓하오리 약질체력 원망할까 자연섭리 따라가며 그냥그냥 거닐게나
진관사길 한옥마을 기와기붕 곡선각선 우리문화 전통양식 보기에도 멋이있고 기인세명 그혼들이 한자리에 모인그곳 돈안되는 인문학이 사람냄새 풍기었네
진관계곡 윗길에는 테크계단 생기었고 선두일행 내빼지만 따라잡을 여력없어 가다쉬다 느긋하게 나의길을 걸으리라 향로봉길 우측에는 웨딩슬랩 기다리네
푸르름이 아직많은 능선자락 이파리들 푸른하늘 얕은구름 가을햇살 내려쬐고 웨딩바우 한발자국 힘을모아 내딛으니 짝짝붙은 바닥촉감 온몸으로 전해지네
관봉슬랩 초입길을 클랙잡고 올라섰고 몇발자국 올라치다 가재걸음 중심이동 임시방편 슬링줄을 허리에다 잡아메니 뒤따르는 산우님들 수월하게 올라치네
배고파서 우는걸까 애미찾는 울음일까 들고양이 야옹소리 잉어슬랩 길목인가 올랐다가 길이없어 내리막이 더힘들고 옥좌바위 걸터얹아 산자락을 아우렀네
조각바위 차곡차곡 큰바위에 붙여넣고 크고높게 쌓아올린 큰봉우리 비봉이라 굴통바위 한계단씩 땡겨주고 밀어주니 훤히트인 꼭대기에 돌비석이 우뚝섰네
사모바위 잠시놀다 승가봉에 천국문길 의상능선 나한봉에 보현봉이 분열하니 내려보며 사열하는 대장군이 따로없고 쇠줄잡고 올라서니 문수봉길 똥바위네
긴그림자 뒤로하는 대남문의 들국화들 성곽성루 담쟁이는 빨간장갑 손에끼고 뒤쳐져서 홀로우는 한량에게 손흔드니 고즈넉한 석양길에 추억노래 들려왔네
봄비되어 떠난사람 봄비되어 돌아왔네 비에젖은 아픈가슴 노래가락 추억되고 해질녘의 비봉비석 다시오라 손짓하니 풀벌레들 저녁새들 짹짹이며 슬피운다
문수봉 정상에 다다르니 저녁 햇살이 비스듬히 내리며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석양의 불그스레한 햇살을 받은 성곽 자락의 이파리들은 알록달록한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대남문의 담쟁이는 빨간색으로 변했지만, 구기동 쪽으로 내려오는 계단길 이파리들은 아직 푸르름이 그대로 있었다. 선두 일행은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따라붙을 여력이 없는 그는 계곡마다 놓여 있는 다리를 세어가며 따박따박 천천히 거닐며 추억의 봄비 노래를 불렀단다. 리딩하신 대장님과 함께하신 산우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걸레 중 광(1934~2002)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
삼천대천(三天大天) 세계는 산산이 부서지고 나는 참으로 고독해서 넘실넘실 춤을 추는 거야 나는 걸레
남한강에 잉어가 싱싱하니 탁주 한 통 싣고 배를 띄워라
별이랑, 달이랑, 고기랑 떼들이 모여들어 별들은 노래를 부르오 달들은 장구를 치오 고기들은 칼을 들어 고기회를 만드오
나는 탁주 한 잔 꺾고서 덩실 더덩실 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 나는 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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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좌측에서 개성이 대장님, 동항님, 유지니님, 물비늘님, 부시리님, 해공님, 모래시계님
▲ 『 삼각산 』 진관사 입구 한옥마을에 있는 '셋이서 문학관' / 천산병, 중광, 이외수
▶ 셋이서 문학관 천상병, 중광, 이외수, 기인 세 명이 생사를 넘어 한 데 뭉쳤다. 천상병, 중광, 이외수의 공통점은? 기인(奇人)이다. 각자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쓴다. 그런데 은평구청은 왜 이 세 사람을 한데 묶어서 ‘셋이서 문학관’에 동시 입주시킨 것일까? 그 답은 중광이 1989년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와 함께 펴낸 ‘도적놈 셋이서’라는 책에서 기인됐다.
이 ‘도적놈’ 말고도 이들에게 꼭 따라붙는 다른 수식어가 있어 각자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천진무구, 무욕(無慾)으로 일관하다 하늘로 올라간 천상병 시인의 대표작은 귀천(歸天)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뒷골목 작은 찻집 ‘귀천’하면 그의 아내 목순옥씨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출생한 천상병은 마산중학 때 국어교사였던 시인 김춘수의 주선으로 ‘문예’지에 시 ‘강물’을 발표했고 나중에 유치환 시인에 의해 시인으로 정식 추천됐다. 1951년 한국전쟁 통에 서울상대 중퇴, 1967년 소위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죄목은 간첩 불고지죄. 중정에서 고문으로 백치상태가 되고 그 후 동가숙 서가식하다 행려 병자로 정신병원까지 갔다. 동료문인과 시인 지망생들에게 500원, 천 원씩을 받아서 막걸리를 사 마셨던 천상병은 문단에서 ‘아름다운 갈취꾼’으로 회자됐다. 그의 시 ‘귀천’은 가난에 찌든 삶이었지만 고통스런 삶을 뛰어너머 초연함으로 세상을 끌어안았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 하리라......
’중광, 미치광이 중? 걸레스님? 한국의 피카소? ‘걸레스님’ 또는 ‘미치광이 중’으로 불리는 중광(重光)은 제주도 출신으로 1960년 26세 때 경남 양산의 통도사로 출가했으나 잇따라 불교의 계율을 파괴하는 기행 때문에 1979년 승적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선화(禪畵) 영역에서 파격적인 필치로 독보적 세계를 구축, 유명세를 탔다. 1977년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에 참석해 ‘나는 걸레’라는 자작시를 낭송한 뒤 ‘걸레스님’이 됐다. 1979년 미국 버클리대학교 랭커스터 교수가 펴낸 책 ‘광승(狂僧)’의 주인공이 됐다. 그후 ‘한국의 피카소’로 불렸다. 그의 그림은 미국 뉴욕의 록펠러 재단과 샌프란시스코 동양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중광의 일화는 김수용 감독의 영화 ‘허튼소리’(1986)로 만들어졌고 이두용 감독의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1990)에는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막걸리통에 소주를 담아 마시는 등 과도한 음주와 줄담배로 건강이 나빠졌고 1998년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선수행하며 달마 그림에 몰입했다. 백담사 오현 스님으로부터 ‘바위처럼 벙어리가 되라’는 뜻으로 ‘농암(聾庵)’이란 법호를 받았다. 2000년 10월 서울 가나아트센터에서 그의 마지막 전시회 ‘중광 달마전: 괜히 왔다 간다’가 열렸다. 2002년 타계한 뒤 양산 통도사에서 다비식이 열렸다.
호, 불호의 상반된 평가가 있지만, 그래도 이외수는 천상 ‘썰 푸는’ 소설가 생존해 있는 이외수 작가는 세상으로부터 호, 불호의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고 있다. SNS를 통한 정치, 시사문제에 주장을 쏟아내는 소셜테이너로서 반대자들의 거센 항의와 조롱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그의 본업은 소설가이다. 한때 대마초사건, 문학 여제자 희롱사건 등에 얽혀 이미지가 손상되기도 했다.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되고, 1975년 ‘세대’ 문예현상공모 에서 중편 ‘훈장’으로 신인문학상을 받고 전업작가가 됐다. 학원강사를 때려치우고 중편 ‘장수하늘소’(1981), 장편 ‘들개’(1981), ‘칼’(1982) 등을 발표, 고정 마니아 팬을 확보했다. 2002년 ‘괴물’, 2008년 ‘장외인간’에서는 환상적 기법이 가미된 유미주의 경향을 띠었다. 화가로도 활동,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2006년 선화집 ‘숨결’을 출간했다.
문사철(文史哲)의 인문학이 아무리 ‘돈이 안 된다’지만, 그래도 사람 냄새나는 쪽은 아무래도 그쪽 세계다. 머리가 어지럽고 욕심이 과하게 자신을 얽매어 붙잡거든 북한산 둘레길 진관사방향 은평 한옥마을 어귀로 발걸음을 옮겨볼 일이다. 그곳에 ‘ 셋이서 문학관’이 있다.
- 김동철- [출처 어느 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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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각산 』 '셋이서 문학관' 화경당
▲ 『 삼각산 』 진관사 입구
▲ 『 삼각산 』 진관사 입구
▲ 『 삼각산 』 진관사 입구
▲ 『 삼각산 』 진관사 입구 / 인사 소개
▲ 『 삼각산 』 진관사 계곡을 따라 오르면 만나는 이정표, 웨딩바위는 향로봉 쪽으로 가다 우측 울타리 너머에 있다.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 어떤 한 분이 잘 올라오시는데 여성같기도 하고 남성같기도 해서 헷갈렸다.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유지니님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물비늘님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해공님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모래시계님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동항님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부시리님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모래시계님과 물비늘님
▲ 『 삼각산 』 웨딩바위 정상으로 올라서고 있다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사모바위와 비봉을 배경으로 선 해공님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바라본 비봉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바라본 사모바위
가는 푸르름 / 오는 건 알록달록 / 한량의 고독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물비늘님의 유연한 포스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물비늘님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 『 삼각산 』 웨딩바위에서
▲ 『 삼각산 』 관봉슬랩에서
▲ 『 삼각산 』 관봉슬랩에서 유지니님
▲ 『 삼각산 』 관봉슬랩에서 해공님
▲ 『 삼각산 』 관봉에서 비봉을 배경으로 포스를 잡으신 모래시계님
▲ 『 삼각산 』 관봉에서 비봉을 배경으로 포스를 잡으신 물비늘님
▲ 『 삼각산 』 관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관봉 슬랩
▲ 『 삼각산 』 관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웨딩바위
▲ 『 삼각산 』 관봉에서 바라본 비봉과 옥좌바위
▲ 『 삼각산 』 잉어슬랩
▲ 『 삼각산 』 옥좌바위 아래 잉어슬랩 / 오르다가 다시 내려왔다. 길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 『 삼각산 』 옥좌바위 아래 잉어슬랩
▲ 『 삼각산 』 옥좌바위 아래 잉어슬랩 / 내려오는 모습
▲ 『 삼각산 』 옥좌바위 아래 잉어슬랩 / 내려오는 모습
▲ 『 삼각산 』 잉어슬랩에서 비라본 비봉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허리에 줄을 메고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허리에 줄을 메고 내려서고 있다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허리에 줄을 메고 내려서고 있다 / 건너고 있다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바라본 가야 할 굴통바위와 비봉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허리에 줄을 메고 내려서고 있다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허리에 줄을 메고 내려서고 있다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허리에 줄을 메고 내려서고 있다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내려서고 있다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내려서고 있다
▲ 『 삼각산 』 옥좌바위에서 내려서고 있다
▲ 『 삼각산 』 굴통바위 초입에서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바라본 옥좌바위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 『 삼각산 』 굴통바위에서
▲ 『 삼각산 』 비봉에서
▲ 『 삼각산 』 비봉에서
▲ 『 삼각산 』 비봉에서
▲ 『 삼각산 』 비봉에서
▲ 『 삼각산 』 비봉에서
▲ 『 삼각산 』 비봉에서
▲ 『 삼각산 』 비봉에서
▲ 『 삼각산 』 비봉에서
▲ 『 삼각산 』 비봉에서 바라본 자락들
▲ 『 삼각산 』 코뿔소바위에서
▲ 『 삼각산 』 코뿔소바위에서
▲ 『 삼각산 』 코뿔소바위에서
▲ 『 삼각산 』 코뿔소바위에서
▲ 『 삼각산 』 코뿔소바위에서
▲ 『 삼각산 』 코뿔소바위에서
▲ 『 삼각산 』 코뿔소바위에서
▲ 『 삼각산 』 코뿔소바위에서
▲ 『 삼각산 』 사모바위에서
▲ 『 삼각산 』 사모바위에서
▲ 『 삼각산 』 사모바위에서
▲ 『 삼각산 』 사모바위에서
▲ 『 삼각산 』 사모바위에서
▲ 『 삼각산 』 사모바위에서
▲ 『 삼각산 』 사모바위에서
▲ 『 삼각산 』 사모바위에서
▲ 『 삼각산 』 사모바위에서
▲ 『 삼각산 』 천국문
▲ 『 삼각산 』 문수봉 오름길 초입
▲ 『 삼각산 』 문수봉 오름길 초입에서 단풍
▲ 『 삼각산 』 문수봉 오름길
▲ 『 삼각산 』 문수봉 아이스크림바위
▲ 『 삼각산 』 문수봉에서 바라본 보현봉
▲ 『 삼각산 』 문수봉 아래
▲ 『 삼각산 』 문수봉 아래
▲ 『 삼각산 』 문수봉 아래
▲ 『 삼각산 』 문수봉
▲ 『 삼각산 』 아이스크림바위
▲ 『 삼각산 』 보현봉
▲ 『 삼각산 』 문수사와 성곽길
▲ 『 삼각산 』 문수봉 정상
▲ 『 삼각산 』 문수봉 정상
▲ 『 삼각산 』 성곽
▲ 『 삼각산 』 성곽
▲ 『 삼각산 』 성곽의 가을
▲ 『 삼각산 』 대남문의 들국화
▲ 『 삼각산 』 대남문의 가을
▲ 『 삼각산 』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길
▲ 『 삼각산 』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길
▲ 『 삼각산 』 구기동으로 진행 중에 바라본 문수봉 남벽 슬랩
▲ 『 삼각산 』 구기동으로 진행 중에 바라본 문수봉
▲ 『 삼각산 』 구기동으로 진행 중에 만난 다리, 국수교
▲ 『 삼각산 』 구기동으로 진행 중에 만난 다리, 돌단풍교
▲ 『 삼각산 』 구기동으로 진행 중에 만난 다리, 귀룽교
▲ 『 삼각산 』 구기동으로 진행 중에 만난 다리, 박새교
▲ 『 삼각산 』 구기 탐방지원센터
▲ 『 삼각산 』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중에 어느 집 정원수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에 감사드립니다.
2016년10월11일
제코 장 태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