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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군부는 철권통치로 민중을 억압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다. 군사정권의 붕괴는 힘이 아닌 양심과 진실에 의해서였다. (박군 고문치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 신군부는 철권통치로 민중을 억압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다. 군사정권의 붕괴는 힘이 아닌 양심과 진실에 의해서였다. (박군 고문치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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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은 하마터면 묻힐 뻔했다. 전두환 정권은 이 사건의 휴발성을 잘 알기 때문에 은폐 조작을 시도하고, 야당은 진실에 접하고도 권력의 보복이 두려워 발표를 꺼렸다.
당시 고문치사 혐의로 구속된 조한경 경위와 강진경 경사가 갇혀 있던 영등포교도소에는 이부영 동아투위 기자가 86년 5월 3일 부천시위 주도 혐의로 구속되어 있었다. 두 경찰의 나름대로의 억울함과 박종철군 고문치사 진상이 경찰에 의해 조직적으로 축소 은폐되었음을 파악한 이부영 기자는 이 사실을 비밀리에 밖으로 알렸고, 사실을 전해들은 동료들은 이 사건을 가까운 몇 동지들에게만 알리고 공개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시대가 너무나 험하고 무서웠던 때인지라 면책특권이 있는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질의 형식을 통해 공개하는 방법을 강구하고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 협의하여 합의를 했지만 신민당 측에서도 큰 부담을 느끼며 4월을 그대로 넘겼다. 이 조작 사실을 아는 이들은 정치권의 야당의원과 함께 그 수가 늘어 보안에도 큰 위험을 안게 되었다. 이 사안은 결국 사제단에 접수되었다. (주석 2)
감옥의 이부영 기자에게서 은폐조작 사실을 알게 된 김정남(30여 년 동안 민주화운동을 막후에서 주도해온 분) 씨는 이 사실을 공개하고자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결국 정의구현사제단을 찾게 된 것이다.
그때 함세웅 신부는 일요일이면 구파발성당에 와서 미사를 집전했기 때문에 어떤 때는 구파발성당으로 황국자 여사가 찾아가 뵙기도 했다. 5ㆍ18 특별미사에서 봉헌키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것이 하늘이 섭리한 절묘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함세웅 신부에게 진정을 다한 간곡한 편지를 썼다.
이와 관련해 신부들이 여러 차례에 걸친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5ㆍ18 특별미사 때 성명을 발표키로 결정한 것은 거의 마지막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추기경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매우 심각해했다고 들었다. 신부들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이 사건의 진실은 밝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제단은 누구도 하기를 두려워하는 무겁고 힘든 시대의 짐을 떠맡았다. (주석 3)
5월 18일 저녁 명동성당의 광주민주항쟁 7주년 기념 미사에서 사제단 소속 김승훈 신부에 의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사되었다〉가 발표되었다. 전두환 5공에 대한 '최고장'이었다.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박종철 군을 직접 고문하여 죽게 한 하수인은 따로 있다.
2. 범인 조작의 각본은 경찰에 의해 짜여졌고 또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3. 사건의 조작을 담당하고 연출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4. 검찰은 사건의 조작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밝히지 않고 있다.
5. 이 사건 및 범인의 조작 책임은 현 정권 전체에 있다.
6.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은 다시 규명되어야 한다.
7.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형사에 대한 재판은 공개되어야 한다.
8. 이 사건의 조작에 개입한 모든 사람은 처벌되어야 한다.
9. 박종철 군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10. 이는 우리 사회의 양심의 척도가 될 것이다. (주석 4)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 은폐조작과 관련, 한 언론사는 뒷날 이렇게 정리했다.
인간의 기본권이 짓밟히던 암울한 시대에 굴하지 않고 올곧은 소리를 외쳐온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그동안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 환경운동 등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 왔다.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사제단의 시국미사와 성명서 발표 등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사제단은 특히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크게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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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5월 22일 <동아일보>는 김승훈 당시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신부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축소·은폐했다"고 밝힌 내용을 보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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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수사를 받던 도중 사망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당국은 경찰관 2명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고 덮으려 했다. 하지만 구치소에 수감된 해당 경찰관들은 자신들만 처벌되는 것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했고 이 이야기가 같은 곳에 수감된 당시 전민련 이부영 상임의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부영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쪽지를 밖으로 내보냈고 결국 5월18일 사제단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범이 더 있다"며 당국의 사건 축소ㆍ은폐 사실을 폭로했다. 사제단의 폭로에 국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으며 이것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주석 5)
전두환은 국민의 열화와 같은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고 4.13 담화를 통해 현행체제를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사제단은 4월 23일 '긴급조치시대의 재현을 거부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통해 '4.13 조치'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결의를 밝혔다. 10가지 내용의 제목을 살펴본다.
1. 현행 헌법에 의한 정권 승계는 어떤 경우에도 역사와 국민으로부터 거부될 수밖에 없습니다.
2. 현행 헌법에 의한 정권 승계는 정치 군벌 내부의 권력 승계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3. 우리는 두려움 없이 민주주의와 정의를 구현해 나갈 뿐입니다.
4. 불의한 권력에 대한 협력과 동조는 범죄행위입니다.
5.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투신해야 합니다.
6. 모든 민주세력은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7. 우리의 힘으로 민주화ㆍ자유ㆍ인권을 이룩해야 합니다.
8. 가난한 사람들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9. 우리는 외세의 힘을 빌어 이 땅의 민주화를 이룰 만큼 비굴하지 않습니다.
10. 동장에서 대통령까지 우리들의 손으로. (주석 6)
주석
2> 함세웅, <긴장과 격동의 한 해, 거짓 정권의 실체가 드러나다>, <암흑 속의 횃불(8)>, 23~24쪽.
3> 김정남, 앞의 책, 527쪽.
4> 함세웅, <이 땅에 정의를>, 397쪽.
5> 유시춘 외, <70~80년대 실록 민주화운동(11), 우리 강물이 되어>, 81쪽, 경향신문, 2005.
6> <암흑 속의 횃불(8)>, 152~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