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7-8월호
차예절 특강
규방다례의 실제
찻상보 접고 덮는 일
이귀례(본 협회 이사장)
그동안 차예절의 면면과 생활차 행다법(行茶法)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설명한 것과 같이 규방다례(閨房茶禮) 행다의 기본은 생활차 행다이며 이는 기타 여타 행다법의 근간이 되는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랜기간 고집스럽게 우리의 전통 차예절법을 지키려고 노력해 온 나로서는 현재 차를 배워 익히고 있는 후배 차인들이 그동안 본 협회보를 통해 소개했던 자료들을 꾸준하게 읽어 숙지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것은 단지 고집이 아니며 우리 전통의 맥과 흐름을 이어 받고나서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든 이후에 나름대로의 행다법을 주장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차 행다는 물론 모든 행다 중에서 절예절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와 가장 마지막으로 행하는 것이 상보를 접고 덮는 일일 것이다.
이에 이번 특강에서는 찻상보를 접고 덮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찻상보(茶床褓)는 다기나 상을 덮는 보자기로 옛부터 빨간색과 남색으로 안팎을 삼아서 만들어 사용했던 엄연한 다구(茶具)의 한가지로
우리나라는 주거 공간이 대체로 협소하므로 물건을 보자기로 덮거나
쌈으로써, 보관과 운반에 편리하여 널리 사용되어 왔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관중(館中)의 홍도탁자(紅道卓子)위에
다구(茶具)를 놓고 그 위에 붉은 보자기로 덮었으며(布列茶具於其中 ,
而以紅紗巾 之)’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찻상보를 썼음을 알 수 있다.
보자기는 주로 소중한 물건을 싸 두었으므로 복을 싸 둔다는 의미로
신성시되어 궁중이나 혼례식에 널리 사용되어 왔고 수의 문양도 복을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유물 중 덮개보와 예식보를 살펴보면, 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경서보(經書褓)는 불경의 겉표지를 덮을 때 금박의 표지가 상하지 않도록 비단으로 만들어 덮개로 사용한 것이다. 또 혼례용보(婚禮用褓)는 나무 기러기를 싸는 기러기보가 있는데 가운데와
네 귀에 이삭을 상징하는 붉은 수실을 달아 장식했고, 청홍(靑紅)의
색은 부부애를 상징하며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또한 사주단자보(四柱單子褓)가 있어 부귀영화나 장수를 비는 글자와 무늬를
수 놓았다.
이밖에 수놓은 보자기로 선암사(仙岩寺)에 있는 탁자를 덮었던 것으로 용무늬를 수놓은 탁의(卓衣)와 19세기 후기의 것으로 붉은색 양단에 목단을 수놓았으며 무늬 주위에 감로한반(甘露漢盤)의 네글자가
사방으로 쓰여 있어 찻상보가 아닌가 짐작되는 목단문보(牧丹紋褓)등이 있다.
과거의 상보들이 다양한 모양과 수로 화려함을 강조한 것과 달리 오늘날의 찻상보는 상의 크기에 어울리는 사각형으로 덮었을 때 귀가
바닥에 닿지 않아야 하며 가운데 술이나 네 귀가 없는 단순한 형태로
변모했다.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상보에도 음양설(陰陽說)에 결부된 민속적인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 생활에 재앙을 물리치는 것이
양색(陽色)으로는 청·홍·황색(靑·紅·黃色)이 있는데 특히 홍색(紅色)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재액이 없기를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실례로 영조때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쌀가루를 시루에 깔고 삶은 팥을 겹겹이 펴서 찐 증병(甑餠, 시루떡)으로 새해에 신(神)에게 빌기도 하고 아무 때나 신에게 빌
때 그것을 올린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그 국물을 문짝에 뿌려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 한다’고 적혀 있다. 이는 붉은색이 아직도 부적 등에 쓰이며’붉은 모래를 가지고 다니면 악귀가 침범 못한다’는
민간신앙을 잘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임금님의 수랏상은 붉은색이고 궁중에서 보석함 싸는 보자기는 「홍진(紅眞) 보자기」라고
불릴 만큼 붉은색은 신앙적인 측면에서 서민계층은 물론 귀족이나 왕족사회의 일상생활에까지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찻상보는 단지 다구를 덮는 역할 이외에도 차의 신령스러운
맛이 잘 우러나기를 기원하는 신앙적 의미와 조심함의 의미, 귀함의
의미 등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귀중한 다구(茶具)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