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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에세이】
‘치매(癡呆)’라는 용어에 대한 불편함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필자의 말
‘치매(癡呆)’라는 말이 일상적인 언어로 흔히 쓰이는 것을 본다.
나는 ‘치매’라는 용어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가슴 아픈 이유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겪어본 사람만이 그 슬픔을 안다.
‘치매’라는 용어를 다시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녀가 부모에게 쓰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여러 차례 언론사 지면에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아직도 각종 지면에서,
또는 다양한 누리소통망에서 ‘치매’라는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을 보면 불편하다.
2023. 5. 16.
윤승원 소감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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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일간지 칼럼 <‘치매’ 2題>와 <동아일보 기사>를 참고로 덧붙인다.
▲ 윤승원의 세상風情 (錦江日報 2010년 10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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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저고리의 ‘이름표’
윤승원 논설위원
총기(聰氣) 좋은 옛 어르신들은 집안의 대소사나 가족 생일 등을 달력에 일일이 표기해 놓지 않고서도 죄다 기억해 냈다. 서당 문턱에 가보지 않았어도 축문을 줄줄 외워 잘 쓰시는 어르신들도 많았다.
요즘도 그런 분들이 많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삶의 지혜나 상식은 최고 학부를 나온 젊은이 못지않은 어르신들이 많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선현들의 가르침 또한 크게 배운 사람보다 오히려 훌륭하게 자녀 교육을 시키는 어르신들도 많다. 모두가 ‘건강한 정신세계’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총기 좋으시던 집안 어르신이 어느 날 갑자기 ‘기억 장애’가 오기 시작한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이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절망적인 낭패감이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에게 ‘치매(癡呆)’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한다.
부모님의 기억력이 쇠퇴한 것을 일컬어 ‘건망증’이란 표현도 쓰기가 죄송스러운 일인데, 가슴 아프게 정신적 장애를 겪는 부모님에게 어찌 ‘치매’라는 말을 예사로 쓰겠는가.
치(癡) 자, 매(呆) 자 모두 ‘어리석다’ 또는 ‘바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치매의 사전적 의미는 ‘정상적인 정신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를 이른다. 하지만 어른에게 함부로 ‘노망(老妄)’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치매’란 말도 역시 비슷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이 시대에 눈 먼 사람을 소경이나 봉사라 하지 않고 시각장애인이라 하고, 말 못 하고 귀먹은 사람을 벙어리나 귀머거리라 하지 않고 언어장애자나 청력장애자라 하듯이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에게는 ‘치매’란 말을 함부로 쓰기 어렵다.
근심 어린 얼굴로 “기억 장애를 겪고 계시다”라고 말하는 것이 자식, 며느리, 손자녀의 도리란 생각이 든다.
치매란 대뇌 신경 세포의 손상 따위로 말미암아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본질적으로 상실된 경우를 말한다. 치매를 ‘질병의학’으로 구분해 놓은 ‘전문용어대역사전’을 보더라도 ‘기억장애, 판단장애, 추상적 사고의 장애 및 인격 변화 등을 포함한 지적 기능의 일반적 손실을 특징으로 하는 기질적 정신장애’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21일은 세계치매협회와 세계보건기구(WTO)가 정한 ‘세계치매의 날’이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환자는 47만 명으로, 100명당 9명꼴로 치매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유병률 8.8%) 치매는 드문 병이 아니라 흔한 병이 되었다. 부모가 치매면 자식도 치매에 걸리는 이른바 유전질환도 아니라고 한다.
얼마 전 TV ‘인간시대’에서 본 어느 30대 젊은 가정주부가 겪는 눈물겨운 ‘기억장애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완전히 고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근 치매약물도 많이 개발됐고 적절한 재활치료만 병행하면 치매의 진행속도를 늦추거나 정체시킬 수 있다고 한다. 증세를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 가능성도 높고 중증으로 가는 것도 막을 수 있다는 게 전문의의 견해다.
한국치매협회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1.5배 높아지고 과도한 음주 역시 뇌 세포를 파괴시켜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치매의 원인이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 두 잔 정도의 적당한 음주는 오히려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울증이 있으면 치매에 걸릴 확률도 3배나 높다니, 평소 육체적인 운동 못지않게 정신 건강을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장애를 겪는 어르신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중요하다. 기억장애를 겪는 집안 어르신이 어쩌다 대문 밖을 나가면 온 식구가 찾아 나서야 한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어르신을 찾기 위해 길거리를 헤매 본 가정에서는 그 애끓는 심정이 ‘미아 찾기’ 못지않음을 이해한다. 급기야 동사무소 스피커를 통해 어르신의 인상착의까지 방송한다.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장애를 겪으시는 어르신을 각별히 잘 보살피는 집안에서는 평소 어르신의 저고리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새긴 이름표를 달아 드린다. 유년 시절, 내 가슴에 손수건과 이름표를 달아주셨던 어머니. 노년에는 거꾸로 자식이 어머니 가슴에 이름표를 달아드린다.
일선 경찰관들이 순찰 중에 발견하면 내 집안 어르신처럼 가슴 아파하며 업어다 모셔 드린다. ‘기억장애’ 질환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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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승원의 세상風情(2013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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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후회
윤승원 수필가. 논설위원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셨습니다.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동문서답하실 땐 조마조마했고, 상대가 큰 목소리로 같은 말을 되풀이할 땐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심야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청취자의 사연이었다. 노인을 모시는 집안에서는 흔히 겪는 일인데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청취자의 사연에 진행자도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다.
“저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저의 할머니는 진지를 드실 때, 자꾸 음식물을 흘리셔서 그릇을 입에 바짝 대고 드시라고 제가 책망하듯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서는 ‘응, 알았어, 그렇게 할 게’라고 천진하게 말씀하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노인이 되면 누구나 그런 장애를 겪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어르신께 핀잔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살아계실 때 좀 더 잘해 드릴 걸 후회가 돼요.”
청취자의 사연이나 진행자의 고백이나 모두가 공감이 가는 내용이어서 가슴 뭉클한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런 후회스러웠던 일들이 누군들 없으랴. 유년시절, 연로하신 외삼촌이 멀리서 찾아오셨다. 그런데 어르신이 식사하실 때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치아가 없으셔서 잇몸으로 음식을 씹을 때 나는 소리였다.
노인의 입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개구쟁이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어머니 앞에서 흉내 내곤 했다. 당시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까.
연로하신 친정 오빠가 모처럼 찾아 오셨는데, 힘든 보릿고개 시절, 대접도 소홀한 데다가 식사 땐 입에서 이상한 소리를 낸다고 어린 자식들이 흉까지 보았으니,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철부지 자식은 나이가 든 뒤에야 가슴이 아려온다.
돌이켜 보면 죄송스러운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기억장애’(나는 ‘치매’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에게 어리석을 ‘癡’와 ‘呆’자가 들어간 낱말을 죄송스러워 쓸 수가 없다)를 겪으시던 어머니께선 집을 나가시면 찾아오지 못하셨다.
큰 형님의 말씀에 의하면 “어머니가 동생들이 보고 싶다면서 집을 자주 나가신다.”고 했다. 그러나 자식들은 직장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어머니가 밖에 나가시면 온 식구들이 힘들게 찾아 나서야 한다”는 큰형님의 안타까운 말씀을 듣고, 어머니의 저고리와 치마에 연락처를 새긴 이름표를 달아 드렸다. 돌이켜 보면 이름표를 달아 드릴 일이 아니라 자주 찾아뵙고 정성을 다해 보살펴 드리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얼마 전 EBS의 ‘인류원형탐험’에서 본 두마갓족의 삶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병든 아버지를 찾아뵙기 위해 아들은 망망대해에 쪽배를 띄운다. 쪽배엔 아버지가 좋아하는 호박, 수박, 가지, 쌀 등 선물을 실었다. 바닷길은 험난했다. 항해 도중 배가 뒤집혀 물건이 떠내려가기도 한다. 그러나 호박만큼은 용케 건져 내어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 곁에 도착한다.
병석의 아버지는 멀리서 찾아온 아들을 보고 반가워 미소 짓는다. 호박을 지극 정성으로 요리하여 아버지 입에 약처럼 떠 넣어 드리자 아버지가 놀랍게도 기력을 되찾는다. 아들의 눈물겨운 정성도 감동이지만, 짧은 부자지정(父子之情)을 나누고 헤어질 때의 모습은 압권이었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아들은 험난한 바다에 다시 배를 띄우고 서서히 멀어져 간다. 아들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손을 흔들어 주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은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이었다. 원시족도 부모를 봉양하는 효성만큼은 문명국의 자식들보다 오히려 순수하고 극진해 보였다.
자식이 입에 떠 넣어드린 호박성분이 병석의 아버지를 살린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기력을 회복하게 만든 것은 어떤 특효약이 아니라 자식의 효심이었다.
아버지가 평소 좋아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소박하지만 진정 어린 성의를 다하고 간 ‘두마갓족의 효자’야말로 당장 아버지가 돌아가신다고 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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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후 동아일보(2018.7.7.)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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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8. 7. 7 [오늘과 내일 / 서영아] ‘치매’, 이 표현 꼭 써야 할까요? 서영아 도쿄 특파원 2018-07-07 도쿄에서 기사를 쓰다 보면 일본식 표현을 쓴다는 핀잔을 자주 듣곤 했다. 가령 요즘은 문제없이 사용되는 단어 ‘입장(立場)’은 10년 전만 해도 ‘자세’ ‘처지’ ‘주장’ 등으로 바꾸라는 주문을 받았다. ‘존재감’도 기계적으로 ‘영향력’으로 바뀌었다. 영어로 ‘presence’인 존재감은 영향력과는 어감이 다르지만 상관없었다. 그때마다 조금 억울했던 게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한국어로 알고 사용하는 서구어 대부분이 일제 번역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 번역어를 통해 근현대 개념을 수용했다는 점도 일본에 빚지고 있다. 메이지유신(1868년)을 전후해 일본에서는 대대적인 번역 붐이 일었다. 서구 문물을 접한 일본인들이 네덜란드어 독일어 영어를 어떤 한자어로 옮길 것인가를 놓고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듭한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가령 후쿠자와 유키치는 ‘speech’를 처음에는 ‘演舌’로 번역했다가 어감이 나쁘다 하여 ‘演說’로 바꿨다. ‘會社’란 말이 상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을 뜻하게 된 것은 1866년 후쿠자와의 저서 ‘서양사정’부터다. ‘society’는 처음에는 ‘교제(交際)’ ‘세상(世間)’ 등으로 번역되다가 1875년 도쿄니치니치신문에 ‘社會(소사이어티)’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심지어 중국의 정식 국가명인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순수한 중국 유래 한자는 중화(中華)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인민’도 ‘공화국’도 영어 개념을 번역해 한자어를 만든 것은 일본인이고 그것이 중국에 역수입됐다. 그런데 ‘치매’라는 일제 단어는 늘 저항감이 느껴진다. 관련 기사를 쓸 때마다 이 단어를 기피하기 위해 애쓰곤 했다. 주로 ‘알츠하이머’를 썼지만 글자 수를 너무 잡아먹는다. 최근엔 ‘인지증(認知症)’이라 쓰되 처음에만 괄호를 붙여 ‘치매’라고 설명해주는 일이 많아졌다. 치매의 한자는 미치광이 치(癡), 어리석을 매(태·‘태’라고도 읽는다)로 구성된다. 글자 그대로라면 ‘어리석은 미치광이’란 뜻이다. 메이지 초기 의학용어집에서는 라틴어 ‘Dementia(정신이 없어진 사람)’를 ‘광(狂)의 일종’이라고 번역했다. 그 뒤 치광(痴狂), 풍전(풍癲), 치매 등으로 번역되다가 1900년대 초반 유명 의학자가 ‘狂’이란 글자를 피한다는 취지로 ‘치매’로 쓰기로 했다. 한반도에도 그 단어가 들어간 것이다. 아마도 항간에서 쓰이는 ‘노망(망령)’보다는 의학용어 냄새가 난다고 봤을 것이다. 정작 일본에서는 치매가 차별적 표현이라 하여 2004년 후생성이 나서 ‘인지증’으로 싹 바꿨다. 고령이나 혈관 장애, 알코올, 파킨슨병 등으로 인지 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증세를 통틀어 말한다. 한국에서 환자의 인권을 존중해 정신분열병을 조현병, 간질을 뇌전증으로 바꿔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장수대국 일본은 당연히 인지증 환자도 많다. 인지증은 안락사를 주장하는 오싱의 작가 하시다 스가코 등 고령자들이 가장 겁내는 증세이기도 하다. 자신이 자각할 수 없는 상태에서 몸만 살아 망신스러운 일을 벌일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인지증 환자와 그 가족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진단 뒤에도 자의식이 있고 논리정연한 사람이 적지 않다. 완치는 어려워도 약물과 주변의 도움으로 진행 속도를 늦추고 증세를 완화하는 길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서 ‘치매 안심센터’를 만든다거나 ‘치매 국가책임제’를 시행한다는 등의 뉴스를 볼 때마다 그 취지가 반가우면서도 신경이 거슬린다. 치매 대신 다른 표현을 쓰면 안 될까.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를 청각장애인, 말을 못 하는 사람을 언어장애인으로 바꾼 걸 감안하면 ‘인지장애’ 정도가 어떨까. 장수화가 진행될수록 이 단어를 쓸 일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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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짚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너무 외래어 번역에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노인들의 '기억 감퇴'는 우리 모두의 걱정거리입니다. 치매라는 묭어보다는 인지장애, '기억장애'라는 용어가 좋을 듯합니다. 이는 나이가 들면 누구나 가장 무섭고 두려운 현상입니다.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용어’ 하나에 담긴 뜻도 잘못 알고 무심코 쓰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습니다. ‘언어의 심리적인 효과’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치매 노인은 설령 의식하지 못해도 그 가족들은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쓴 칼럼을 다시 소환한 까닭은 아직도 여전히 ‘치매’라는 용어가 아무런 문제 없이 쓰이고 있는 까닭입니다.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이 저의 이런 우려를 학술적으로 설명해 주었기에 반가웠습니다.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 공감과 추천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 ‘한국문학시대’ 카페에서
◆ 문경옥(시인) 2023.5.16. 16:5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이 시대에 ‘치매’라는 말도
당연히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못된 단어 하나에 평생을 잘 살아오신 어르신과
가족들이 상처받지 않게 적절한 대체어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 답글 / 윤승원(필자) 2023.5.16. 18:21
문 시인님이 공감해 주시니 글을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한국문학시대’ 카페 공간에서 만나 뵙게 되어 참으로 반갑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니 더욱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