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촉촉한 봄비가 내리더니 우리가 떠나려는 오전 시간 빗줄기가 제법 굵습니다. 진이에게는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를 아쉬움의 떠남이고 우리에게는 곧 다시 돌아올 잠깐 여정의 작별입니다. 제주도는 벌써, 육지보다는 한달 여 앞서 매화 만발, 수선화도 활짝입니다.
연휴시작이라 들어오는 관광객은 많을지언정 나가는 관광객은 적은터라, 완도행 배에 오르니 특별히 독자방을 배정받고 편하게 가고 있습니다. 객실 취식도 금지지만 특별허락을 받고 녀석들 언제나 반기는 컵라면 삼매경! 오후 4시 배편이니 완도항에 도착하면 진이를 인계하고 우리는 최대의 늦장으로 천천히 올라갈 예정입니다.
이번에 다녀오면 5월말에 태균이 병원진료일 전까지는 당분간 제주도를 떠날 일이 없습니다. 영흥도집도 세입자가 생겼으니, 이번에 정리를 마치고 오면 당분간은 큰 짐이 해결되는 셈입니다. 자꾸 제주도에서 다소 큰 일들이 주어지니 마음의 짐을 하나라도 더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단출하게, 간편하게, 군더더기없이, 명쾌하게, 홀가분하게, 여운없이, 미련없이, 때로 손실도 감수하며 그렇게 살아갈 일입니다.
제주도에 와서 큰 보람은 역시 자연과 깊이 교감을 하는 일상생활이고, 그 다음은 생각해본대로 자유롭게 뭐든 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마음은 원래 목표하는대로 구심점을 잃지않거나 더 확고하게 하니, 문제가 있다면 저의 능력일 뿐, 의지는 충만합니다. 능력이란 건 언제나 회의懷疑를 보태도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 법입니다.
발전해 나가는 삶과 퇴행해가는 삶의 경계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 여러 명 직접 양육과 교육을 맡아서 해보니 그 경계가 무엇인지 읽힙니다. 그 경계 속에 놓여진 것들은 일반아이들의 성장에도 충분히 적용됩니다. 그러니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아이들은 '사람의 본질'이라든지 '인간다운 삶' 등 거창한 주제의 핵심경계에서의 필수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귀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현실이 대다수라 이걸 일목요연하게 이해시킬 수 있는 작업이 꼭 필요할 것입니다. 인간으로서의 부족함은 넘치는 인간성을 더 가치있게 하고, 어설프고 부자연스런 사회성은 세련된 사회적 기술을 더욱 빛나게 하고, 동물적 본성에 가까운 뇌의 단계는 인간진화의 비밀을 풀어가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흥미진진한 과제를 주는 환경이 그래서 저는 좋습니다. 저를 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를 딱하게 여기며 '얼마나 힘들까?' 노골적으로 말하곤 하지만 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저의 흥미진진함과 호기심, 우리 아이들로부터 얻는 생생한 산지식의 가치를 절대 알 수도 눈치챌 수도 없을 것입니다.
진이를 떠나보내기 전 날, 세 녀석을 데리고 단골미용실을 들렸더니 원장님이 미용실 안 여러 명의 할머님 고객들을 제끼고 제일 먼저 해줍니다. 오늘은 세 녀석이나? 하면서...
세 녀석들 깔끔하게 이발하고나니 인물이 훤해졌습니다. 개운한 한달의 시작입니다.
첫댓글 잘 다녀 오세요.
저는 퇴행이라는 말이 너무 무섭습니다.
대표님 글에는 다 있어도 퇴행 사례는 없었지 싶습니다.
제가 읽고는 즉시 까먹는 사람이라 확실하진 않지만요.
진이 청년은 잘 귀가 했을꺼고
두 청년은 곧 제주도로 잘 오기 바랍니다.
대표님도 감기 절대 만나지 마시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