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도 보고, 갈잎 낙엽속에 옛 산성도 보고, 타버린 호국사에서 근현대사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
껴 보고는 적상산 사고까지 봅니다. 오늘 일과는 다 마쳐 가는 길에 불쑥 서창(西倉) 여신석이 보고 싶어서 그리로 차발길을 돌립니다. 적상산의 서쪽 길, 주 통로였던 길 입구에 있었던 여신석을 뵈온지가 그 얼마이던가 ! 지금도 여전히 있을런지 궁금해집니다 . 1968년에 처음 뵈었으니, 어언 56년 전 일인데,,,
많이도 변해 버린 길, 지금은 덕유산 국립공원지구안에 있다. 옛기억을 더듬어 찾아 간 곳 마을 입구멀리에서 쉽게 찾아뵙니다.
차 오른쪽으로 언덕에 허름한 당집 속에 고즈녁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적상산사고 문화해설사 말로는 고석할미라는 사전 지식을 참고 삼아 찾아뵙니다.
적당히 나이 든 느티나무 앞에 계십니다.
성지기도 따라와 사진 찍습니다.
스레이트 지붕에 사방이 휑하게 뚫린 당집 안에 모셔져 있습니다.
언뜻 보면 할머니 모습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웅크리고 앉은 곰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착각인가?
아랫도리를 들어난 채,,, (한 쪽에 허물 벗은 매미 껍질이 말라버린 채 매달려 있네요.)
남근석은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여근석 모양의 산신석은 뵙기가 쉽지 않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사진 찍어 본다.
(어데서 이런 돌을 구해왔을까? 이렇게 신성한 돌을?
언제 누가, 무겁기도 할텐데, 옮기기도 쉽지 않았을 일인데....의문은 자꾸만 생긴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 동네 토박이를 찾아 나선다.
동네 첫들머리에 있는 식당에 들른다. 손님 없는 식당 한 할머니를 찾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석할머니 사연을 들어본다. 운이 좋아서인지 슬금슬금 이야기 타래에서 실 풀듯 궁금해서 묻는 말에 답해준다.
매년 음력 정월 초3일에 제를 지낸단다. 돌려가면서, 효험을 봤느냐 했더니 아들 넷에 잘 키웠단다.
고석할머니 신에게는 적상산 등산객들이 제물을 올려놓고 간단하게 제를 지내고 간다고 알려준다..
(나중에 보배한테서 들은 애기로는 진안 읍내에서 19살에 시집와서 산지가 49년째라는 할머니이다).
저 아래 고석할머니 당집 말고 저 묘(의병장군 묘) 앞에 있는 소나무 만큼 큰 소나무 옆에 또 다른 산신각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녀가 손들어 가리키는 묘쪽 소나무를 보니 제법 연륜이 가득한 멋진 소나무가 보인다.
다시 할머니 한테 들은 산신당집을 찾아 나선다.
나혼자 듣기가 아까워서 일행들이 뒤따라 올라온다.
식당 할머니가 말한 길 건너편 언덕배기에는 묘 한 기가 있다.
그 앞에는 노송 한 그루가 보인다.
의병장 장지현 장군 묘역이다.
(1592년)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다. 덕유산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이다. 추풍령 일대에서 싸우다 전사하신..
덕유산 서편 계곡 안성 쪽 칠연계곡에는 의병들의 전장터가 있고 의총도 남아있는 데... 관련된 것 같기도 하고...
묘역에는 수령 400여년 된 서창 소나무가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의병장 장지현 장군 묘역 앞쪽에 있는 서창 소나무
서창 소나무와 의병장 장지현 장군 묘
420년 된 소나무로 보호수 안내판이 돌에 새겨져 있다. 2001년 이야기이니 현재로는 440년이 된 소나무인 셈이다.
식당할머기 손으로 가리킨 쪽 저 근처를 향해서 할아버지 산신당 소나무를 찾아 올라간다.
할버지 산신당을 찾아 올라간다. (붉은 점 표시쪽)
한참을 헤매인다, 길도 없고 잡목으로 가시나무로 뒤덥힌 숲길속에서 오로지 노송만을 목표로 해서 찾았다.
겨우 찾은 곳, 허름한 산신당 당집이다.
반가움에 안도의 숨을 쉬고는 산신당 안을 조심조심 열어 본다.
당 안에는 시루가 먼지를 뒤집어 쓰고 뒤엎어져 있고, 촛대 하나와 양은 주전자가 귀퉁이에 나뒹굴고 있다.
산신각 안에 산신도라도 있으려나 했던 기대감을 실망시킨다.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의 산신각을 연상해서일까?
나중에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확인해본다. 맞단다.
요 몇년 째 제를 지내지 못했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인가?
거미줄과 먼지투성이의 산신당도, 사람이 다니지 않고 관리가 안된 숲길인 것도 알만하겠다.
점점 약해져 가는 우리 민속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서 안쓰럽기도 하고,
느긋하게 앉아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동안 내 대신 보배가 안국사 이야기며 자식 자랑 이야기만 듣고는 마시라는 커피도 사양하고는 인정많은 호박잎 순만 잔뜩 얻어가지고 돌아온다.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지는 할머니와 정다운 호박잎순나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식당할머니와 헤어져 내려오면서 적상산을 뒤돌아다 본다.
서향 빛 맞은 적상산의 본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붉은 치마 (赤裳) 입은 산 모습이 이름 그대로 이다.
치마라는 말이 여성을 가리킨다는 이름과 여신의 모습과 겹친다. 고석할머니 치마인가?
아래에 안내판들이 보인다. 찾아가 본다.
반달가슴곰 출현지역 경고판이 보인다.
곰 출현 지역이라고 ! 적상산이 곰의 서식지로 알맞은 곳인가 보다. 참나무 군락, 물도 있고...
고석할머니 돌 모양이 곰할머니 모습을 닮은 듯하더니 곰, 곰, 고석할머니와 곰 할머니, 곰의 본디 말은 '고마'인데,,,,
상상의 나래를 피기 시작한다.
백제의 고도 공주(公州)의 옛이름이 ' 고마나루 : 熊, 津 .
<삼국유사> 단군신화에 나오는 단군 탄생 이야기 속의 곰, 암콤(<암곰) 이야기가 떠오른다.
삼신할머니가 아기를 점지해주시고, 출산을 도와주시고, 禁줄 달고, 백일 기도하고, 첫돌맞이,,,
신단수가 바로 서낭당의 느티나무, 소나무가 아니겠는가? 각 마을마다 있는 정자나무가 신단수 노릇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을 해보게 된다. 5천년 전의 신단수요, 곰이 곰할머니로 삼신할머니로 전해져 오는 것은 아닌가 ....
다음 주 (11.26 예정) 찾은 예정인 고맛나루 백사장 변에 있는 암곰 "웅녀상"을 미리 본다.
마을 입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비보림인가,,,, 마을 입구에 이렇게 느티나무로 정자나무로 삼은 곳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계룡산 동학사 입구의 박정자도 대표적인 곳이다.
느티나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한다. 한자로 괴목(槐木) 이라는 이름이 갖는 함축성만 미리 말해두고 싶다.
수령이 520년이나 되는 노거수 느티나무이다.
노거수와 함께 이웃한 느티나무 군락들이 서창 마을 앞을 지켜 주고 있다.
적상산 안렴대 가는 길에 내려다 본 서창 마을 일대 조망 사진
단군할어버지와 곰할머니 전설만 확인하고 돌아서 금산으로 와서 도리뱅뱅이와 어죽으로 배고픔을 달랜다.
식당 앞 공중화장실이 최신식이다.
냉난방이 되고 청결하고, 쾌적하기 그지없는, 멀리 갈기산과 부엉이산을 이어주는 출렁다리가 보인다.
이 길로 지나가는 왜군들을 대항해서 조헌 장군의 의병들이 싸웠던 곳,
구름다리 아래로는 지금도 금강만이 여울목을 지나 유유히 말없이 흐르고 있다.
제원을 거쳐서 남부군의 이현상이 태어난 곳 외부리를 지난다.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곳들이다.
근현대사서부터 고대까지 다 뿌리가 박혀있는 적상산의 여운이 못내 가셔지지 않는 귀로길이다.
(2024.11.22(금) 카페지기 자부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