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상계동은
박세현
내가 사는 상계동은 신중간 계층의 꿈이 밀집한 곳
초고층 아파트가 있고 은행 점포들이 즐비하며
작은 욕망도 풍선처럼 부풀릴 수 있는 즐거운 동네
책 읽는 일들이 전근대적 취미로 다가올 때
느린 걸음으로 산보하기 좋은 곳
공원엔 관리되는 잔디들이 녹색의 발언을 토하고
베드민턴 치는 중년의 여인들의 팔 힘이 허공을 긋는 곳
나는 안심하면서 아파트 단지 사이를 떠다닌다
아는 사람 만나 인사하지 않아도 편한 곳
어정뜨기가 같잖은 마음 껍질을 뭉개기 좋은 곳
주차장마다 넘쳐나는 배기량 1500의 DOCH 의 욕망을 보며
허허로운 웃음 날리기 좋은 곳
주말이면 호프나 소주도 끼워 파는 햄버거 가게에서
목월 선생의 강의를 추억하는 공대 출신의 주인과
퇴근하는 백병원 간호사들의 명랑한 젊음을 흘깃거리며
실없는 토론과 생맥주의 엷은 술기운 때문에
사는 게 아기자기한 몽환으로 다가오는 곳
상계동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보수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진보주의자가 되기도 한다